2020년 1월 6일 새벽 3시 반, 잠을 깼다. 더 자고 싶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전혀 방음이 안된 호텔에서 복도와 이웃 객실에서 들려오는 간헐적인 소음으로 숙면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연말연시 2주간 중국에 있었는데 마지막 날 하루만 이 호텔에 머무는 게 다행이다. 동행인 딸은 어제 호텔 객실에 들어서면서 볼멘소리로 "이 호텔을 누가 예약했지? "라고 질문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를 뱉으면서 호텔 환경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온라인 세상에 가게 문을 이제 막 열은 소상인의 해외출장이 화려할 수가 없다. 최대한 비용을 절감해야 사업을 오랜 기간할 수 있고 그렇게 2년은 넘게 지속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당초 생각이다. 문을 연지 한 달이 지났지만, 예상했던 바대로 우리 가게를 기웃거리는 손님이 없다. 우리 가게에 오려면 네이버쇼핑 사이트에서 수십 번을 클릭해야 하는 때 누가 그런 수고를 하면서 오랴. 세상 유일무이한 상품을 취급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은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어제처럼 방탄커피를 마셨다. 이우에서 묵은 호텔은 아침식사가 제공되지만 항주에서는 아침을 포함하지 않은 가격으로 예약을 했다. 오늘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오전 8시 45분 출발 예정이기에 늦어도 6시 25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공항은 호텔에서 차로 가면 10분 거리에 있다. 항주 시내에서 묵으면 이른 시각에 공항에 도착하는 공항버스가 없다. 그런데 1박2일 항주에서 지내고 나서 보니 새벽에 택시 잡기가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고속철도의 주요 경유지이자 항주시의 교통요지인 항주 동부 역사와 연결되는 실내 통로가 있고 택시, 버스, 지하철 등 각종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매우 편리했다. 한국에서 예약할 때 이런 상황을 알았더라면 항주 시내에서 하루를 더 묵고 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공항에 왔을 것이다. 사정을 몰랐던 내가 공항 근처에 있는 이 호텔을 예약한 이유는 이른 아침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우리에게 공항과 호텔 간에 무상으로 교통 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7년여 있었지만, 중국은 매우 큰 나라이기에 성마다 별개의 나라로 간주해도 될 상황이다. 나는 산동성에서는 지내봤지만, 강소성 환경에는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딸과 동행을 하면서 새벽부터 난처한 상황에 부딪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영상 10도를 다소 밑도는 이른 새벽, 공항 주위에 안개가 많이 끼었지만 비행기 출발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공항 카운터에 도착한 시각 6시 15분, 아직 카운터 문은 열지 않았다. 10분 후에 연다고 팻말에 표시돼 있다. 중국 국제선 항공 카운터에 일찍 오면 기다려야 한다. 보통 출발 약 2시간 20분 전에 카운터에서 탑승 체크인을 하고 40분 전에 닫는다. 우리는 앞에 일행으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여성 뒤에 자리 잡고 대기한다.
2019년 12월 23일 오늘은 중국으로 출장 가는 날이다. 항주로 가는 항공편은 오전 11시대 출발이다. 지하철 환승을 하고 공항철도를 이용해서 인천공항에 왔다. 출장으로 중국에 가기는 2002년 가을 이후 처음이다. 과거 마지막 출장에서 나는 소속 은행의 중국 소형 지역은행의 한국 측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계약의 서명식 행사에 참관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갔었다. 나는 당시 평소 출장과는 달리 행사를 진행하는 실무부서에 속하지 않았고, 투자가 완료되면 경영을 지원하는 부서의 책임자 자격으로 갔었다. 따라서 당시 출장은 내가 업무 부담이 전혀 없이 진짜 참관인으로서 고위 경영진을 수행하고 중국 측 투자 파트너 은행의 참석인사들과 친분만 쌓으면 되었기에 매우 마음이 편했다. 그 행사는 결국 지분을 인수한 은행의 경영진 중 하나로 내가 그 해 연말 중국에 파견되어 7년여 근무하게 된 계기가 됐다.
중국 이우시장은 내가 중국에 근무할 때부터 중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 고객으로부터 자주 듣곤 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소상품 도매시장이다. 중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인이라면 이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동향을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외국인 사업가들이 중국의 인건비 상승 여파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경공업 산업은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산업 분야의 제조업이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상공인들이 자주 방문해야 할 시장으로서 이우가 이름을 드높였다. 지금은 온라인 상거래의 급속한 성장세로 인하여 이우시장의 영화는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고 있지만, 여전히 "이우에 없으면 세상 그 어는 곳에도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고 있고, 한국 수입상품의 80%, 세계 잡화 상품의 30% 이상이 이우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참고 : 책 [중국 이우시장 탐구생활] 2019년 발행)
딸이 개인사업자등록을 하고 개시한 사업의 주요 비즈니스모델이 중국에서 상품을 수입하여 마진을 붙인 후, 국내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지마켓, 옥션 등 온라인 오픈마켓에 상점을 개설하여 판매하기다. 중국에서 수입은 중국 내 온라인 도매시장 플랫폼에서 상품을 고른 후 한국의 수입 대행업체를 통해 진행한다. 수입 과정에서 상품구입비, 운송비, 관세를 합해서 상품의 수입 원가가 되고, 수입 대행수수료, 국내 재고관리 및 물류비용이 보태지며, 그 외 딸의 생활비 격인 고정 인건비를 포함하여 매출 원가를 산정한다. 재고관리와 물류비용은 집을 사무실로 이용하면서 창고를 갖고 있지 않기에 외주로 계속 부담할 수밖에 없고 인건비에 대해서는 대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부담이 되지 않게끔 나와 같은 무급 직원이 사업 안정화 단계까지 근무하기로 했다.
나는 딸에게 사업 개시 후 6개월간 상품 구색을 갖추고 나서 이우시장에 한 번 가보자는 말을 했다. 그런데 중국의 온라인 마켓에서 주문한 첫 번째 물량부터 우리가 주문한 색상과는 다른 상품을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교환을 하자니 관련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판매상이 자신의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격지에 있는 외국인인 우리에게 교환 비용을 요구하는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또 품질도 사진에서 본 반듯한 모습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온라인쇼핑이라 해도 장기적인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그들이 우리 가게의 소비자이면서 입소문 홍보도 해줘야 경영의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 품질 문제에 부닥친다면 고객은 우리 편이 아니고 반대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첫 주문부터 나는 갖게 됐다. 그래서 딸에게 이우시장에 바로 가보기를 제안했다. 우리 가게에 진열된 상품 종류는 이제 4 종이고 아직 팔리는 게 없기에 한국에서 특별히 관리할 일도 없다. 비록 비용은 들지만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사업을 키워보기 위해서 현지 도매시장에 가서 판매상과 상품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게, 중국에서 상품 조달 방식을 유지하는 한 꼭 필요한 절차라고 나는 판단했다. 장사 이력이 전혀 없는 우리로서는 처음부터 좌충우돌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봤다.
항주공항에 도착 후 사전에 검색한 대로 우리는 국내선 게이트 쪽에 있는 이우행 고속버스 승차장으로 가서 40분 후 오후 4시에 출발하는 승차권을 구입했다. 버스 출발 게이트에 있는 벤치형 대기 의자에 앉았다가 곧 일어났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애연가들의 메케한 담배연기 냄새에 견딜 수가 없었다. 중국에서 지낼 때에는 매우 익숙했었지만 오랜 기간 중국을 떠났다가 한국에서 막 도착한 우리에게는 실내 대합실로 자리를 옮겨야 될 만큼 낯설고 거북했다. 다행히 실내에는 금연 표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4시 10분 전 승차하는 장소로 다시 가보니 한참 탑승객이 몰려서 차에 타고 있었다. 버스 하단 짐칸에는 한국과는 달리 짐표를 발행하는 관리인이 없다. 승객이 각자 짐을 싣는다. 우리는 다른 승객들의 짐들로 짐칸의 공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짐칸 문 바로 안에 우리의 여행 캐리어 2 개를 넣었다. 우리 목적지는 이 버스의 종점이지만, 중간에 경유지가 있을 수도 있기에 정차하면 짐을 살펴볼 요량을 하고 차에 올라타서 지정된 좌석에 않았다. 버스는 좌석 등받이 조절과 발판이 한국의 우등고속버스처럼 기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좌석 간 거리는 충분했고 승차감도 안락했다. 내가 10년 전 탔던 산동성 칭다오에서 옌타이를 왕복하던 고속버스에 비해서는 확실하게 좋았다. 그때 버스는 장시간 고속도로를 달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수용하게끔 좌석 간 거리가 짧았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다행히 이 버스는 이우시장 버스터미널까지 직행으로 갔다. 1시간 30분 소요해서 5시 30분에 도착했다. 12월 동지, 밖에는 비가 내리고 어둡다.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600미터 거리이기에 날씨만 좋다면 캐리어를 끌고 도보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비가 내리는 데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걸을 수는 없다. 출발 전 짐을 꾸릴 때 우산을 같이 넣을까 고려했지만 필요하다면 상품 샘플을 겸해서 현지에서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 오는 첫날부터 비가 내릴 줄이야! 택시 탑승장으로 가는데 승용차로 영업하는 사람이 다가와서 타기를 권유한다. 중국에서 영업하는 승용차를 검정 흑을 써서 흑차라고 부른다. 어둠 속의 영업이다. 중국에서 검정 흑(黑) 자는 어둡다, 나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직폭력배 무리를 나타내는 흑사회(黑社会)라는 단어도 있다. 그 자는 8 위안이면 될 거리를 30위안을 부른다. "뿌싱(不行 싫다)“이라고 응답하며 계속 가던 길을 가려 하는데 다시 20위안을 부른다. 또 무시하고 가면 가격은 더 내려갈 것 같았지만, 앞을 바라보니 택시 승차장은 멀고 차를 기다리는 대기 행렬도 길었다. 집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어두워진 저녁 무렵 외국 타지에 오기까지 긴 여정에 우리도 많이 지쳤다. 이쯤에서 타협하고 타기로 했다. 외국인이 많은 이우에서 흑차는 현지에 지내면서 보니 영업용 택시보다 좋은 점이 있다. 짐이 많은 외국인 승객들이 이용하기 편하게끔 트렁크를 개조해서 공간을 넓게 만들었다. 우리는 1인당 1개의 캐리어를 가져왔지만, 여기 오는 대부분의 외국인은 1인당 2개 이상이 보통이다. 샘플도 구입하고 소형 상품은 판매를 위해 도매로 구입해서 귀국 편에 가져가기도 한다. 짐을 실을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영업용 택시 기사는 고객이 1~2명이 아니라면 짐 많은 고객을 받을 수 없다.
도착한 호텔은 중국식 2성 등급으로 별다른 편의시설은 없었다. 12월 하순은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아닌 중국에서, 특히 상거래 도시인 이우에서는 비수기이고 2성급 호텔의 숙박비는 1박에 한화로 4만 원이 넘지 않았다. 내가 중국 여행사가 진행하는 중국 내 패키지여행에 참여할 때를 제외하고 중국에서 이렇게 낮은 등급의 호텔에 자보기는 처음이다. 중국 정부의 외국인에 대한 숙박 권장사항을 봐도 3성급 이상 호텔에 묵으라고 한다. 이 호텔은 2성급이긴 해도 작년에 리모델링을 해서 식당과 1층 로비의 담소용 대기 소파 외에 다른 편의시설은 없지만 객실 환경은 깨끗할 것으로 판단했다. 객실 환경은 사전조사와 대체로 일치했다. 3년 전 미국에 여행을 갔을 때, 이 호텔보다 훨씬 저급한 객실 환경에서도 숙박비는 3배 이상을 지불하고 묵은 날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 호텔은 2개월 전 대학 친구 부부와 패키지로 간 중국 계림 여행 때 묵던 3~4성급 호텔에 비해서 객실 수준은 비슷하지만, 아침 뷔페가 훌륭했다.
첫댓글 품질 문제 있는 판매상은 만나지 않았나? 본론이 나오려면 이야기가 한참 남은 거지?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오다 보니, 이제야 답을 달게 되네. 상품이 같아 보여도 재료가 다르거나 색상, 디자인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해서 동종 아이템을 여러 점포에서 보다 보면 품질 관리가 양호해 보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대충 눈에 들어 오지요. 품질이 동일하다면 물론 가격이 낮은 판매상에 관심이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