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계단
수필가, 시인 무념 : 김윤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중앙동 사십 계단은 6.25 당시 한 많은 피난살이의 역사가 담겨있다. 조각으로 만든 물지게를 진 소녀, 지게꾼 아저씨, 박상을 퇴기는 펑 튀기 아저씨의 삶이 한눈에 그 시절을 방영한다. 공동 수도에 양동이 줄을 세워 밤중이나 새벽 표를 사서 물을 먼저 받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던 곳, 물을 이고 지고 나르던 어린 소녀나 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 인다. 손님들의 짐을 지고 하루 품팔이를 하던 지게꾼 아저씨가 피로에 지쳐 휴식의 단잠을 자는 모습, 구두 통 위에 신사의 발을 얹어놓고 천 조각에 침을 퉤퉤 묻혀 구두를 닦는 소년은 온 얼굴에 구두약을 덮어쓰고 휠 끔 위를 올려 보는 모습이 선한다. 펑 튀기 아저씨 곁에 온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장작불로 쇠를 달구는 모습을 지켜보며 뜨겁게 달구어진 쇠가 펑~하며 대포 소리같이 터지면 하얀 박상들이 치천으로 흩어지던 순간 땅위에 흩어진 박상을 한 알이라도 더 주워 먹기에 기를 쓰던 시절의 아이들이 세월 속에 부모가 되어 먼발치에서 아픔으로 되살아 난다.
영도다리를 거쳐 광복동에서 용두산 이어 국제시장 중앙동 산 아래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의 판자촌이 집중된 장소다. 빈 몸으로 내려와 사십 계단을 의지하며 생명을 부지하던 곳, 그 앞을 지나 갈 때 마다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울던 나그네/ 노래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암울했던 추억을 떠 올리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 객지에 왔을 때 장사라는 첫 계단을 밟으며 사회를 배웠다. 사회의 계단은 태산 같이 높았고 어께에 무거운 짐을 지고 아직 근육도 생기지 않은 다리로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는 시험을 거치면서 늘 사십 계단 피난민들의 삶을 생각했다. 용두산 둘러 사십 계단을 오르면 산 밑에 두 평 남짓한 판자촌에 친구 집이 있었다. 그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저 큰 배를 타고 넓은 바다를 건너가 보았으면 끝없는 망망 대해를 지나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혼자서 깊은 생각에 휴일을 보낸 적이 있다. 십 대에 가장의 계단을 걸으며 이십 대에 삼십 대 갈수록 숨이 턱턱 막혀오는 좌절감 속에서도 오죽 어머니의 정신으로 인생의 기초를 다져왔다. 한 계단 오르면 미끄러지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났다.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내 육신의 무게로 버티며 금방이라도 태워 버릴 것 같은 오 유월 염천에도 묵묵히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세워 내가 가야 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세상의 눈치를 피하며 어른들의 모습을 배우고 상대를 속이며 달콤한 말들을 배워야 했던 아픔들이 추억 속에 되살아난다. 친구들은 천사 같은 교복을 입고 부모 슬하에서 인성교육과 학문을 배우며 희망의 나래를 펼쳐 가는데, 이 몸은 그믐밤에 남몰래 외래품을 짊어지고 행여 형사가 따를까 조여드는 가슴은 심장을 멎게 했다. 아이 업은 엄마처럼 바위 같은 짐을 지고 살얼음의 계단을 오르며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장사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거금을 벌이며 남들보다 더 많은 거짓과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재벌처럼 살았다. 밥을 먹기 위해 사회를 배워가는 계단은 강원에서 초발심에 든 상좌들의 고행 시험대 같았다. 올라갈 계단은 첩첩 산중인데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 가슴이 막혀오는 시간이면 하늘을 유유히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저 새들이 날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였을까 어린 새가 성장하기까지 꿈을 간직하며 날개가 찢어지고 나무에 걸려 다리도 부러지는 단계를 거쳤으리라 하늘을 내 집처럼 비행하는 새들은 법을 지키며 규칙대로 살아가건만 사람들은 길이 아닌 계단을 밟으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계단이란 말인가, 마음이 울적하고 혼자서 갈등이 일어날 땐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는 나의 소식에 꿈이 가득한 예쁜 카드를 만들어 답장을 보내주었다. 어머니 말씀에 내일 굶어 죽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말고 신뢰를 잃은 사람은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씀이 늘 머리에 떠올랐다. 원하는 첫 계단을 작은 걸음으로 시작하여 차차 강산으로 변하고 만물이 흐르는 역사를 거쳐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있다. 지난날의 꿈속엔 목표의 자리에 꽃밭을 만들어 숲속에서 아이들과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살고픈 소망으로 이곳에 왔다. 산봉우리에 올라서니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끝없이 흘러가고 산이 산을 서로 껴안으며 환희의 기쁨으로 손짓을 하고 있다.
저 산의 정기를 받아 나의 생명이 뿌리내리고 온갖 자양분을 베풀어 주신 천지신명이시여 산과 하늘의 정기가 내 심장 파고들어 몸 깊은 곳곳에 핏줄 되어 흐른다. 살아온 세월도 내 몸에 진 짐도 다 내려놓고 차분히 생각하며 겸손해야 할 시간이다. 지난 삶의 아픔과 슬픔, 미움과 분노, 원망과 저주들을 큰 가마솥에 장작불로 녹여, 감사와 사랑, 자비와 행복으로 숙성시켜 어둠속에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명약으로 쓰고 싶다. 인생 팔부 능선에 서서 천금 같은 시간, 지혜의 눈으로 반성하며 이제 하산을 하자 자유롭게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새처럼 가볍게 푸른 세상에 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이 작품은 2011년 경전반 1기생 졸업을 하면서 쓴 작품입니다. 현제 고심 정사 1기생 회장으로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두달에 한번씩 참석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 1. 무념 김윤선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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