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409
Eric Clapton
'기타의 신', '블루스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Eric Clapton의 연주곡 'Danny Boy' 입니다.
1996년 발표한 싱글 [Change the World / Danny Boy]의 B면에 수록된 곡 입니다.
'Change the World'는 1996년 영화 [Phenomenon]의 사운드트랙에도 수록된 곡으로, 빌보드 싱글챠트 5위, AC 챠트 1위,
영국 싱글챠트 18위에 올랐던 곡으로, 97년 그래미에서 "Song of the Year", "Record of the Year", "Best Male Pop Vocal
Performance" 3개 부문을 수상한 그의 대표곡이죠...
국내에서는 '아, 목동아'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북아일랜드의 민요인 'Danny Boy'는 북아일랜드 항구 도시 런던데리에서 전해 지는
민요 'Londonderry Air'가 원곡입니다. 1913년 영국의 프레데릭 에드워드 웨드리가 'Danny Boy'라고 하는 새로운 가사를 쓰고,
아일랜드 출신의 명테너 가수 John McComack이 레코드로 취입하여 대중적인 인기곡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빙 크로스비의 레코드로 리바이벌했고, 해리 벨라폰테가 불러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오 사랑하는 아들 대니야, 고적대의 소리가 널 부르는구나,골짜기에서 산기슭 아래에도, 여름은 갔고 장미들도 다 시드는데,
이제 너는 떠나야만 하고 우리는 여기 남아 널 기다린다.."는 노랫말로 개사된 가사중 "피리 소리"는 목동이 부는 것이 아니라 영국군대의
백 파이프 악단이 전쟁터에서 진군을 독려하는 멜로디로 쓰이게 됩니다.
아들이 전사해서 돌아오면 아버지의 무덤 곁에 묻어 저승에서 나마 못다한 부자의 정을 나누자는 애닯은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Single [Change the World / Danny Boy] (1996) |
1. "Change the World" 3:57 2. "Danny Boy" 4:14 |
에릭 클랩튼은 1945년 영국 Surrey주의 Ripley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생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흑인들의 비참함과 슬픔을 노래한 블루스가 그에게 찾아간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랩튼은 Muddy Waters, Big Bill Broonzy, Blind Willie Johnson 등 초기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성장했다. 특히 ‘델타 블루스의 왕’이라 불리는 Robert Johnson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야드버즈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의 뛰어난 블루스 기타 테크닉은 단숨에 그룹의 사운드를 특징지었고, 매니저 지오지오 고멜스키(Giorgio Gomelsky)는 그에게 ‘슬로우 핸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클랩튼은 그룹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며 1965년 3월 팀을 떠나 존 메이올이 이끌었던 블루스브레이커스로 자리를 옮겼다. 야드버즈를 탈퇴한 직후 그가 연주했던 ‘For Your Love’는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가 가세하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록음악계의 ‘3대 기타리스트’가 야즈버즈를 통해 모두 비상했다. 이 당시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와 관계된 에피소드 한가지. 그는 블루스브레이커스의 휴지기 동안에 다른 뮤지션들과 전세계를 돌며 블루스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클랩튼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몇몇 멤버들이 영국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클럽에서 계속 머물며 공연을 계속했다. 그는 그러나 강도로 돌변한 클럽 주인의 협박으로 옷과 새로 산 마샬 앰프를 놔둔 채 영국으로 도망쳐야했다. 음악 외에는 모든 일에 문외한이었던 ‘순수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클랩튼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존 메이올의 독단적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신만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1966년 존 메이올 몰래 드러머 Ginger Baker, 베이시스트 Jack Bruce와 함께 크림을 조직하고 합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음악 전문지 <Melody Maker>의 폭로로 인해 클랩튼은 블루스브레이커스에서 해고를 당해야만 했다. 이때 런던의 한 빌딩 벽에는 ‘클랩튼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문구가 새겨져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에릭 클랩튼은 크림을 통해 ‘악기 예술의 미학’을 획득했다. 블루스와 재즈가 절묘하게 어울러진 그들의 사운드는 즉흥적이고 빠르며 굉음을 발산했다. 멤버들의 정교하고 뛰어난 연주 실력은 타 밴드와의 간격 차를 크게 벌려놓았고, 음악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들의 앨범들인 1966년의 <Fresh Cream>, 1967년의 <Disraeli Gears>, 그리고 이듬해의 <Wheels Of Fire> 모두 명반으로 손꼽히며 파죽지세의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를 한자리에 모은 더블 앨범 <Wheels Of Fire>는 미국에서 4주간 정상을 차지하며 멤버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바로 이 작품에 명곡 ‘White room’이 수록되어 있다. 그룹은 그러나 서로간의 음악적 견해차를 이유로 1968년 11월 해산했다. 클랩튼의 음악 이력 중 최고의 절정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트리오는 1993년 1월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으로 재결합 공연을 가져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크림의 해체 이듬해 클랩튼은 진저 베이커와 함께 Traffic 출신의 Steve Winwood, Family의 베이스 주자였던 Rick Grech를 영입하여 슈퍼 그룹 Blind Faith를 탄생시켰다. 언론에서는 ‘인스턴트 슈퍼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들은 공연 때 ‘최후의 슈퍼 그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대로 그들은 1969년 데뷔 앨범 <Blind Faith>를 내놓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에릭 클랩튼의 1970년대는 한 여인과의 슬픈 사랑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다름 아닌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였다. 클랩튼은 1968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조지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같은 해 공개된 솔로 음반 <Wonderwall Music>에서 기타를 맡을 정도로 조지 해리슨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조지와 음악적 교류를 하면서 패티를 본 후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당시 종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패티 보이드는 클랩튼에게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었다. 음악 밖에 모르던 에릭은 그만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지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실의에 빠진 에릭 클랩튼은 술과 마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좌절감과 패배감은 1970년 11월에 발표된 Derek And The Dominos의 마스터피스 <Layla & Other Assorted Lovesongs>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남편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을 때/ 나는 당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어요/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당신께 애원합니다/ 제발...’. 수록곡 ‘Layla’의 구구 절절한 가사처럼 에릭 클랩튼의 상처받은 마음은 노래 전체에 용광로처럼 녹아들었다. 고통스런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바닥까지 긁어내어, 그 고통을 음악으로 걸러냈다.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다. 클랩튼의 이러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얼마 후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했고, 둘은 197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 음반은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블루스와 삶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걸작의 반열로 들어섰다. 실연의 파장은 매우 컸다. 에릭 클랩튼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인하여 병원과 요양원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기타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때부터 드라마틱한 재기 스토리가 전개된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그에게 구세주가 찾아왔다. 그룹 The Who의 Pete Townshend였다. 피트는 이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찬밥취급을 받던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으로 데려와 음악계에 데뷔시키는 등 선행을 벌여왔다. 피트는 클랩튼에게 마약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했고, 1973년 에렉 클랩튼의 레인보우 콘서트를 주최해 재기의 무대를 마련해줬다. 클랩튼은 데릭 앤 도미노스 이후 3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피트는 에릭 클랩튼이 정신을 못 차리자 하와이안 기타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력을 회복한 에릭 클랩튼은 1년 뒤 재기 작품 <461 Ocean Boulevard>를 내놓았다. 앨범이 출시되기까지는 피트 타운센드와 함께 RSO 레이블의 사장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의 도움이 컸다. 그는 폐인이 된 클랩튼을 위해 요양장소로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선뜻 내주며 재기의 기틀을 마련케 했다. 클랩튼도 스틱우드의 호의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다시 기타를 집어들었다. 스틱우드의 별장주소가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이다. 스틱우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Bob Marley의 곡을 리메이크한 ‘I shot the sheriff’는 정상을 차지했고, ‘Let it grow’, ‘Give me strength’ 등이 인기가도를 달리며 ‘기타의 신’으로 부활했다. 이후 연이어 내놓은 앨범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Wonderful tonight’이 실려있는 1977년 작품 <Slowhand>는 300만장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하지만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1989년 작품 <Journeyman>같은 수작을 낚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룹시절과 달리 음악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에너지가 없어지고 느슨해진 팝 블루스’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현실무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운명의 여인’ 패티 보이드와 헤어지고 이탈리아 투어 도중 만난 젊은 사진작가이자 배우였던 로리 델 산토(Lori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코너(Corner)가 뉴욕 맨하탄의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것이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은 “내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경찰관과 의료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며 망연자실했던 당시의 심정을 묘사했다. 클랩튼은 그러나 ‘예전처럼’ 기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와 노래에 더욱 몰두했다. 음악만이 유일한 치료제라는 것을 이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는 1992년 영화 <러쉬(Rush)>의 사운드 트랙에 삽입된 ‘Tears in heaven’에 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실었다. MTV의 제안으로 그 해 녹음된 앨범 <Unplugged>에서의 백미도 단연 이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애절한 멜로디와 노랫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에게 ‘Album Of The Year’, ‘Record Of The Year’, ‘Song Of The Year’ 등 알짜배기를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위로 선물’로 전달했다. ‘추억’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재진입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1994년 발매한 <From The Cradle>은 흥행과 평단 양편에서 세계적인 지위를 얻었다. 미국과 영국 앨범차트를 동시 석권하였고, 블루스의 성찬을 담아낸 작품으로 격찬 받았다. 4년 뒤에 내놓은 앨범 <Pilgrim> 또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에릭 클랩튼은 작품마다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켰다. 혼을 불어넣었다. 앨범 <Reptile>에도 그의 숨결을 살아 숨쉰다. 이 음반은 프로듀서 Simon Climie를 포함하여 전작 <Riding With The King>의 세션팀이 그대로 참여했다. 또한 시카고 소울의 거장 Cutis Mayfield의 빈자리를 남겨둔 채 The Impressions가 부드러운 화음을 더하고 있다. 블루스뿐만 아니라 레게, 컨트리,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음악 지류를 넓히고 있는 클랩튼은 새 앨범에서도 그 폭을 확대했다. 퓨전 재즈풍의 기타 연주가 도입됐으며, 라틴 음악의 요소도 엿보인다. 보사 노바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첫 곡 ‘Reptile’을 비롯해, ‘Modern girl’, ‘Son & sylvia’ 등에서 알 수 있다. ‘리듬’에 대한 클랩튼의 지속적인 실험이다. 선배들을 향한 오마쥬도 계속된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스승 중 한 명인 기타리스트 J.J. 케일(J.J. Cale)의 ‘Travelin` light’, 1985년에 세상을 떠난 ‘점프 블루스의 대가’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고전 ‘Got you on my mind’ 등이 그것이다. 또한 Stevie Wonder의 1980년대 히트넘버 ‘I ain`t gonna stand for it’, Ray Charles의 ‘Come back baby’를 새롭게 재해석 하며 두 명의 맹인 거장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향수’를 풍기지 않는다. 애절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안는 음색과 선율로 그만의 분위기를 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조에 맞게 ‘톤’을 찾아내는, 바로 ‘기타의 신’만이 할 수 있는 특허품이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에는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다. 특히 역경 속에서 소중한 음악의 싹을 틔우고 키워냈다. 내면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블루스로 쏟아냈다. ‘인간의 음악’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클랩튼은 전설로 추앙 받는다. [Albums] with The Yardbirds (1963–1965) 1964 Five Live Yardbirds (live) 1965 For Your Love (studio/compilation) Having a Rave Up (compilation) Sonny Boy Williamson and The Yardbirds (live) 1981 London 1963: The First Recordings! 2003 Live! Blueswailing July '64 with 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 (1965–1966) 1966 Blues Breakers with Eric Clapton (studio) with Powerhouse (1966) 1966 What's Shakin' with Cream (1966–1968, reunion 2005) 1966 Fresh Cream (studio) 1967 Disraeli Gears (studio) 1968 Wheels of Fire (studio/live) 1969 Goodbye (studio/live) Best of Cream (compilation) 1970 Live Cream (live) 1972 Live Cream Volume II (live) Heavy Cream (compilation) 1973 Cream Off The Top (compilation) 1983 Strange Brew (compilation) 1995 The Very Best of Cream (compilation) 1997 Those Were the Days 2000 20th Century Masters: The Millennium Collection: The Best of Cream (compilation) 2003 BBC Sessions (compilation) 2005 Cream Gold (compilation) I Feel Free Ultimate Cream (compilation) Royal Albert Hall London May 2-3-5-6, 2005 (live) 2011 Icon (compilation) 2013 The Alternative Album with Blind Faith (1968–1969) 1969 Blind Faith (studio) with John Lennon and the Plastic Ono Band (1969) 1969 Live Peace in Toronto 1969 (live) with Delaney & Bonnie & Friends (1969–1970) 1970 On Tour with Eric Clapton (live) with Vivian Stanshall and the Sean Head Showband (1970) 1974 The History of the Bonzos (compilation) 1992 Cornology (compilation) 2000 New Tricks (compilation) with Derek and the Dominos (1970–1971, new released 2011) 1970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studio) 1973 In Concert (live) 1990 The Layla Sessions: 20th Anniversary Edition 1994 Live at the Fillmore (live) [Solo Albums] Eric Clapton (1970) 461 Ocean Boulevard (1974) There's One in Every Crowd (1975) No Reason to Cry (1976) Slowhand (1977) Backless (1978) Another Ticket (1981) Money and Cigarettes (1983) Behind the Sun (1985) August (1986) Journeyman (1989) Rush (soundtrack album) (1992) From the Cradle (1994) Pilgrim (1998) Riding with the King (with B.B. King) (2000) Reptile (2001) Me and Mr. Johnson (2004) Sessions for Robert J (2004) Back Home (2005) The Road to Escondido (with JJ Cale) (2006) Clapton (2010) Old Sock (2013) I Still Do (2016) Happy Xmas (2018) [Soundtrack Albums] 1985 "Edge of Darkness" / "Shoot Out" - Edge of Darkness Soundtrack 1992 "Tears in Heaven" / "Tracks and Lines" - Rush Soundtrack 1996 "Change the World" / "Danny Boy" - Phenomenon Soundtrack 1998 "Further on Up The Road" - City of Angels: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1999 "Blue Eyes Blue" - Runaway Bride Soundtrack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