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은과 놋 10 예수님을 비추는 빛이라
9.그가 또 뜰을 만들었으니 남으로 뜰의 남편에는 세마포 포장이 백 규빗이라 10.그 기둥이 스물
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1.그 북편에도 백 규빗이라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이 스물이니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2. 서편에 포장은
오십 규빗이라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며 13.동으로 동편
에도 오십 규빗이라 14. 문 이편의 포장이 십 오 규빗이요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15.문
저편도 그와 같으니 뜰문 이편, 저편의 포장이 십오 규빗씩이요 그 기둥이 셋씩, 받침이 셋씩이라
16.뜰 사면의 포장은 세마포요 17.기둥 받침은 놋이요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요 기둥머리
싸개는 은이며 뜰의 모든 기둥에 은 가름대를 꿰었으며 (출38:9-17)
오늘 말씀으로 성전의 말씀은 마치게 됩니다. 수개월 동안 20편 정도의 분량으로 성전의 말씀을 다
뤄드렸고, 한주에 한편씩 하게 되었으니 여러분이 한 주 동안 되새김질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
니다. 여러분 믿음에 큰 유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성전 담에 대한 것으로서,
이제 자기의 믿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믿음인가? 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평가하는 곳입니다.
울타리의 재료는 세마포장인데 기둥은 놋으로 되었고, 그 기둥의 머리는 은으로 쌌다고 하였고, 또
세마포장을 양 기둥에 연결하는 기둥 사이에 갈고리는 은이고, 갈고리를 연결하는 가름대도 은이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세마포장에 사용된 놋과 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이해를 잘해야 합니다. 기둥과 다음 기둥까지 연결하는 것은 세마포장이고 위에 그것을 연결하
는 가름대는 은으로 되었고, 그 기둥머리도 은으로 싸라 해서 세마포장을 제외하고는 다 은과
놋입니다. 이해되었지요?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범한 죄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에 걸려서 영원한
형벌에 처했는데, 예수님께서 그 형벌을 대신하여 심판을 받아 주셨으므로 죄가 사해졌다는 것, 그
죄에서 용서받고, 이제 사람이 지옥 가지 않게 됐다는 것,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하는 생명을
얻게 됐다는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복된 복음 안에 들어오게 하시기 위
해 이스라엘을 들어, 인간을 찾아 내려오신 하나님을 알리는 통로가 되게 하셨고,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온 세상에 이 사실이 알려진 바가 되어
구주 예수님의 소식을 듣지 못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여 듣는 자는 살 것이요, 듣지 않는 자
는 말씀대로 영 죽음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전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성전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 우리로 성전이 되게 하
는 데 있음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구원에 머무르라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까지인 것을, 성전 울타리의 기둥을 세우고
포장을 친 것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삶의 목적이 자기의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에다 둔 것임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칫 자기 기분에 치
우쳐서, 자기에게 기쁨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좋아했다가, 기쁨이 없으면 하나님
이 나와 함께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내 감각과 기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한 것임을 말합니다.
수십 년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저에게 말하기를, 주일날 예배드리러 갈 때 자기가 하나님께 잘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있거나, 또는 헌금을 좀 넉넉히 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는 자기 마음이 아주 기쁘고 평안한데, 자기가
하나님께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하나님이 기쁘게 안 받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기 마음
이 틀림없이 편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예배를 안 받으시는 것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자꾸 졸음만 쏟아져서 비몽사몽으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예배드리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자기가 깨달았다는 듯이 자랑처럼 내게도 그럴 때 있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여러
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 뜻에 합당한 예배 생활입니까? 아닙
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자기만족이요 자기감정이요 자기도취입니다. 자기 공로 가지고 자기
가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이것은 가인의 제사입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 계시
지 않는 종교인입니다. 자기가 자기 기분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믿음입니까? 이것이 수십 년 아주
큰 교회라 하는 곳에서 신앙생활 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잘한 것이 있기 때문에 만나주신 것 아닙니다. 잘한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예수님의 피 흘리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입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의 예배
를 받으십니다. 자기의 잘한 것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받으시는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
께 예배하러 나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주신 그 은혜 때문입니다. 자기 기분과 상관없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드리는 능력으로 온전히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피
흘려주신 공로와 부활하신 생명의 은혜를 입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드리는 그 예배에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지, 자기 기분 따르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믿는다면서도 자기 기분으로 자기가
나와 예배한다고 하니, 자기가 잘한 것이 있으면 기쁜 것 같고, 자기가 잘못한 것 같으면 기쁘지
않은 것, 그것은 완전히 종교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한 것 가지고 나와야 우리를
만나시겠다고 했다면, 가인의 제사가 실패할 이유도 없고, 예수님이 오셔야 할 이유도 없고, 하나
님은 세상의 신들과 같은 신에 속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에게 말입니다. 너의 잘한 것 가지고 나오라 하셨다면, 나는 참으로 아
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불쌍한 자라서 큰일입니다. 나는 날이 갈수록 나를 보니 내게서 보이는
것은, 다 무가치한 것뿐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예수님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하심이 내게 능력이 되었으니, 그 큰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
다. '아버지! 예수님의 공로 그 피가 내게 있으니 나는 오늘도 예수님의 피로 내 죄를 씻어 주셨
고, 허물이 있고 마음으로 지은 죄 알고도 지은 죄, 부지중에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의 피가 깨
끗이 씻어주시니 어엿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나와 이렇게 예배드리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다 여기에 아멘이지 않겠습니까? 자기 잘한 것 가지고
나온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하기 바랍니다. 참으로 믿음을 똑바로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려면 또 성전이 이뤄지려면,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
신 피를 만나서, 그 귀하신 내 죄를 사해주신 피를 만나고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안중에 두지 않고, 관심 없고 다른 것들을 붙들고 있다면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없
습니다. 병 나음을 얻었어도 기도의 응답을 수십 번, 수백 번 받았어도 그것으로 예수님 안에 들어
가는 조건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만나서 죄 용서받은 증거로 예수님의 피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
증거는 예수님으로 피 흘리게 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첫걸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이것부터 확실히 깨닫고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 말씀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려고
하는 결단과 소원과 몸부림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영님을 모셔들이고, 성영님의 인도
를 받으며 성영님의 소원을 따라서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거룩케
하는 데 힘쓰지 않는 것은, 세상과 죄와 짝하며 육을 위해 살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니, 성영님
의 인도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교제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위해 거룩함에 들고자 성영님의 도
우심을 구하여 힘쓰는 자가, 성영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영님의 인도를 받고, 성영님을
따르는 것이 곧 예수님과 화목 하는 것이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십일조의 믿음이 되고, 하나
님의 뜻을 구하여 기도함으로 능력을 힘입고, 예수님과 화목으로 연합을 이루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세마포의 옳은 행실로 성전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기도 받겠다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무당 쫓아다니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내가 왜 고난을 받
는가? 각자 자기 신앙에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참으로 인정하여 믿는
가? 자기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인임을 진정으로 인정하는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가졌는
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비추고 회개하며 버릴 것은 버리고 있는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여
죄라고 하는 것들에서 돌이키는가? 성영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가? 화목의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화목하고 있는가? 하는 성전의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고, 성영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야지, 누구에게 물어보러 다니겠습니까? 그럴
때 성영님께서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이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나. 내게 주신 사명이 이것이구나'를 알게 되기 때문에, 성전으로 능력을 갖춰가는 것입니다.
성영님과 함께 교제 교통하며 영적 경험을 갖게 되므로, 믿음을 확실히 하고 나갈 수 있는 밝음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 기둥머리를 은으로 입히고, 그 가름대와 갈고리를 은으로 만들고, 기둥을 놋으로 사용
하신 것을 통하여 가르쳐주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간다''성전에 올라간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성전을
예루살렘 정중앙 해발 760m 정도 되는 곳에다 지으라 하셨기 때문에, 사방에서 성전을 볼 수가 있
을 정도의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성전에 올라간다,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했
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땅에 내려오셨고, 사람은 그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뜰의 포장을 치라 하시고, 기둥머리와 기둥 가름대를
은으로 싸라 하신 것은 여러분! 은이 뭡니까? 저 길에 굴러다니는 것입니까? 순은을 만들기 위해서
는 광산에서 채집하여 풀무 불에 몇 번 들어갔다 정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세마포는 뭡니
까? 광목과 같은 천인데, 옷을 짓기 위해 삼이라는 일년초 식물의 대를 쪄서 껍질을 채취하여 그
것을 계속 잿물에 담갔다 널었다 반복합니다. 그러면 짙은 누런색이 점차 연하게 바래집니다. 그
것을 가늘게 찢어서 실을 삼아 베틀에서 천을 짭니다.
그런데 그 천으로 옷을 지으면 누리끼리하고 좀 거칠기 때문에, 그냥 옷을 지어 입기도 하지만 볼
품이 없습니다. 그 상태는 내다 팔아도 큰 값을 받지 못합니다. 그것을 고가품의 천이 되게 하려면
누리끼리한 색을 빼고 깨끗한 하얀색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다시 잿물에 담갔
다가 햇빛에 널었다 하는 일을 계속 반복해야 점차 하얗게 바래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마침내 흰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제가 왜 이 은과 세마포의 제조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은은
풀무 불에 몇 번 들어갔다가 나와야 순은이 나오고, 세마포는 잿물에 넣었다 건졌다 반복해야 희고
깨끗한 세마포가 되는 이런 어려운 공정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런 신앙의 연단이 있다는 것과 그 연단을 거쳐 비로소 순은이 되듯 그 신앙의 빛이 드러나고
흰옷을 입게 되는 것임을 그같이 세마포로 뜰의 포장을 치고 은을 씌우는 것으로 뜻을 깨닫도록
하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빛이 누구예요? 예수님으로 세워지는 믿음의 연단을
받는다 말입니다.
모세가 포장을 칠 때는 연단되지 않은 세마포로 사용이 되었지만, 계시록에서는 빛나고 깨끗한 세
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해서 잿물에 세마포가 희게 되어 나오듯이 신앙의 연단을 통해 나온 성도들
은 그렇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큰 영광에 들어간 것입
니다. 시편66편에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신
앙을 단련하시는 그 시험을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다고 하셨어요. 죄의 노예가 되고 사단의 종이 된
그 근성을 뿌리째 뽑아내고, 육의 찌끼까지도 다 걸러내시기 위한 연단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
니까 여러분이 첫째는 세마포와 은이 이런 연단의 뜻을 가졌고, 그다음 연단으로 희고 깨끗한 세마
포를 입게 하신다는 것과 연단으로 단련되어서 나온 순은, 즉 성전의 관계가 되어 예수님을 비추게
하시는 의미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 성전 울타리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방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게 하시기 위한 이스라엘이 받은 이런 연단은 사실은 받지 않습
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의 승리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그 예수님을 믿음
으로 받아 예수님과 연합을 이루기 위한, 성전의 믿음과 행함을 온전히 순종하여 따르면 되기 때
문입니다. 번제단으로 또 물두멍으로 가르치시는 뜻을 받아들여 행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면, 그대로 영적인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영의 복을 받으면 삶도 따라서 복 있는 것입니다. 말
씀이 가르치는 대로, 버리라면 버리고, 행하라 하면 행하고, 떠나라면 떠나고, 있으라 하면 있는
그 같은 분명한 태도를 가진 신앙 인격의 믿음이면, 이스라엘이 받은 그 같은 연단은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알아듣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들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면서, 그런 것 채움받고자 믿는다고 하다가, 낭패를
만나 어려움을 겪는 것 가지고, 연단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습니다. '성
경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심에도 '자기가 맞다'하고 스스로 미혹되어서 쫓아가다가 오는 실패이고,
겪는 자기 어려움이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은 아니에요. 이해를 잘하세요. 그래서 햇빛에 은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므로, 멀리서도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오셔서 은같이 단련하실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것,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라는 것을 주변 이방 족들에 알려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으라 하신 성전 담은, 놋 기둥이나, 은이나, 세마포를 재료로 한 것은 아니지만, 놋
과 은과 세마포의 그 의미는 변할 수 없는 겁니다. 사방에서 보이는 곳에다 성전을 짓게 하셨기 때
문에, 오히려 점진적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더 깊게 높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안주할 때 예루살렘 정중앙 높은 곳에 성전을 짓고, 성전 담이 사방 멀리
서도 볼 수 있게 하여, 성전임을 알게 하신 뜻의 의미를 그대로 연결되게 하셨습니다. 사방에서도
성전이 보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리고,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에 사람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알리시는 뜻이었습니다. 세상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
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는 뜻이었다는 말
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전의 역할이 이같이 멀리서도 성전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그 반사되는 빛과 높이 있는 성전을 보고, 이방 사람들이 그곳이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계신
성전임을 알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기 백성에게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것과
자기의 백성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하셨는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은같이 단련하시고, 비로소 하
늘의 하나님이 땅에 사람들 가운데 오시게 하였고, 그 사람을 하늘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
라는, 먼데 사람들도 그 하나님에 대한 풍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그 성전을 향하여 나
올 수 있도록,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그 역할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정중앙 높은 곳은, 세상 가운데, 인류 중심에 하나님이 오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곳
이 지구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구약 성전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야 산다는 것을 알게 하
셨고, 또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었기에, 예수님이 참성전으로 오셔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심으로써
그것을 또 성전이라고 하셨으니, 구약 성전의 의미가 성전인 내게서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
이제 다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신약 성서가 또 요1장에 예수님을 빛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이 계신 성전이면, 예수님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빛을 반사함으로써 하나님이 계신 것과 예수님
이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신 구주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5:14,15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
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하셨습니다.
구약의 성전이 사방의 사람들에게 보이게 된 것처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질 수 없고 훤히 보
이는 것처럼, 그같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계신 성전이면 세마포 옳은 행실로 비친다는 것입
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는 것은 감추어 두려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 있는 등경 위에 놓아 집 안
을 밝게 비추려는 것이듯이, 너희가 예수님을 믿는 성전이면 숨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의 빛이 반사한다는 것입니다. 숨겨질 수도 없고 감춰질 수도 없어, 그대로 반사되어 비추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하신 그 지성소면, 세마포 옳은 것이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성전인지 아닌지 그냥 진단되는 것입니다. 성전인지 아닌지 자신도 알고 다른 사
람에게도 비침으로써 다 보고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보이는 것이라 하셨잖습니까? 예수님
을 믿는 것은 이제 산 위에 있는 숨기우지 못하는 동네와 같은데, 다 보여 안다는 것 아닙니까? 그
러니까 그 사람이 믿음인지 아닌지 훤히 다 보여 아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전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대로 세마포 옳은 행실로 빛이 되어 나올 것이요, 그것이 성전이요, 성전의 역할이요,
영광에 들어간 성도입니다.
엡5:8-11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다음에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성전이면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세상을 향해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분명한 태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싫든 좋든 상관없이 다 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
경이 사단을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사망의 권세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빛은 생명이요 천
국이고, 어두움은 사망이요 지옥이기 때문에, 빛의 일과 어두움의 일은 절대로 함께할 수가 없습니
다. 도무지 함께 섞일 수가 없습니다. 단지 빛을 어두움에 비추는 것입니다. 옳은 행실로 비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빛을 비추고 생명을 줌으로써 어둠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믿음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소속을 분명히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어
둠의 일에 끌어들이려고 수고를 절대로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믿는다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
이 끌려다녀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구실을 들어 변명하는 겁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진짜 믿는 자로 보지 않습니다.
롬13:12 이하에 말씀하기를 예수님의 강림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
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했습니다.
믿음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불못에 던져질 죄인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내놓아 피 흘려 자기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이신 것을 진짜 믿는다면, 이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을 비웃듯이 세상으로 잡아 끌어들이려는 그 속임수 앞에 끌려다니지 않는 겁니다. 인간적인
체면도 버리게 되어 있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보니 세상 것의 쾌락
이나 세상 것들로 인해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 줄 알게 되었노라'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크고 귀한 것을 갖게 되었노라'는 믿음의 분명하고 단호한
태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태도가 분명하면 사람을 통한 마귀도 더는 세상에 끌어들이지 않습
니다. 분명치 않은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유혹의 말을 자꾸 하면서 세상으로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이지, 태도가 분명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타협 없는 믿음에 마귀도
더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어두움의 일에 끌려다니지 않는 단호함의 태도가 바로 세상에 비추는 옳은 행실입니다. 간혹 그런
말을 듣습니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지, 신이 아니고 사람인데, 그 정도야 뭐 죄가 되겠
어? 하나님께서도 이해하시겠지'라는 말들입니다. 이같이 믿음 없는 인간적인 자기 생각을 앞세우
고 세상과 타협하겠다는 그것은 성전이 아닌 껍데기요, 언제까지나 세상에 질질 끌려다니는 종교인
입니다. 버려질 것밖엔 없습니다. 전도하려고 그런다는 이유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을 예사로 행하
지만, 그런다고 전도되는 것 백 프로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증거 받지도 않으실뿐더러 그런 태도로
전도하라고 하신 적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종교로 알게 하는 역할일 뿐입니다.
세상은 무조건 예수님이 싫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싫어합니다. 이유를
모르면서 그냥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는 구원이 원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
12:11에 마귀를 어떻게 이겼는가? 그들이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 즉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자기의 증거를 확실히 가지고 죽음을 두
려워하지 않았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은 지,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일
년이든 간에 믿지 않는 자들이 세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간계를 부릴 때,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명예 좀 있다고, 돈 좀 있다고, 금은보석 패물 몸에 지
녔다고, 값진 옷 몸에 걸쳤다고, 그런 것이나 자랑하고 있는 세상에 속하여 함께 드러내 뽐내려 하
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을 기뻐하고 간증하는 것이 되
어야, 그것이 빛을 나타내는 것이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요,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다음 '빛으로 나타나는 것은 모든 착함'입니다.'의로움'입니다.'진실함'입니다. 우리 속에 거짓
없는 진실함, 예수님이 선이요, 의요, 참이시니 바로 빛이신 예수님이 함께하는 자에게서 당연히
그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하심이 나의 선함이 되
어 사람들 속에 그 선하심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살아감으로 죄와 악을 이기고 의를
나타내고, 예수님의 참이 나를 지배하심으로 진실 됨을 나타내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믿는 자의 모
습을 보게 되는 것, 이것이 오늘 은장식의 의미입니다. 내게서 예수님을 보는 것, 그것이 세상에
비추는 빛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입니다. 에베소서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장)고 울타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착한 행실과 옳은 행실은 같은 뜻을 가졌습니다.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추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좋은 일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과 놋과 세마포의 일로 예수님이 비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비추어 주므로 저희로 구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행10:38에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면서 착한 일을 행하시고 하셨습니
다. 예수님의 착한 일이 뭐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 가르치고, 사람들을 죄에서 마귀에게서 병
에서 구원하신 일을 말씀합니다. 그 예수님의 일을 또한 우리가 세상에 나타내 비추고 구원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세마포의 옳은 행실로 착한 행실입니다.
여러분 성막 울타리의 기둥이 놋이지요? 울타리가 서 있게 하는 버팀목이 바로 기둥이지요. 이 놋
기둥이 바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일의 중심이 되는 것임을 말합니다. 놋은 심판을 상징하지요? 그
러므로 예수님이 심판받으신 십자가가 우리가 믿는 증거요, 그 증거의 흔적, 예수님이 달려 죽으신
십자가에 나도 같이 달려 죽었음을 나타내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사셨음을 전
하는 것입니다. 심판에 놓인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지옥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리
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아 주셨으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
하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는 목적은, 심판 아래 놓인 인간을 예수께 돌아서게
하여 은혜를 입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책임이 먼저 복음을 받은 성전 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수님께서 막16장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죄로 정하여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했습
니다. 복음을 전해 듣고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것을 죄로 정해서,
죄지은 것이 죄가 아니라, 예수님 믿지 않는 것을 죄로 정하여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복음 전함의 착한 행실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신 겁니다. 이 구
원을 등한시하고 좋은 일 한다고, 구제나 사람들을 돌보는 그런 일들만을 앞세워 행하는 것을 보
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이야,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하는 칭찬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것으로 영광 받으시는 것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의 중심, 복음의 핵심은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울타리의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 예수님을 전하는 것과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
이것을 통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을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그
외의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경우라도 영광 받
지 않으십니다. 대통령이 되어 국민을 잘 먹이고 입혔어도 영광 받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자는
다 죄인이데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까? 죄인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도 없을뿐
더러, 영광을 받지 않으십니다. 바로 복음을 듣고 그 복음 때문에 구원 얻은 자가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을 죄에서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저 사람을 통해서 또는 누구누구가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내게 전해주어서 제가 교회 나오게 되었지만, 이제 말씀 듣고 깨닫고 보
니 제가 죄인이고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누구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듣게 하셔서 저를 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하는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은과 놋의 의미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뜻을 다 들었으니 잘 알게 되었지요? 여러분에게서 나타나는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가 몇 주간에 걸쳐서 구약 성전으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보았습니다.
우리 믿음을 잘 알려주신 귀한 가르침을 듣게 되었는데, 과연 배우신 여러분이 얼마나 마음을 다
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믿음의 힘을 써 각자의 신앙이 되었는가는 하나님과 본인 자
신이 아는 것이겠지요. 이번에 성전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창조된 우리 인간은, 하나
님께서 제시한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의 뜻에다 맞히는 것이 우리 인간이 사는 길이
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그것이 복이라는 것,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성전에 대한 말씀은 이로써 다 마칩니다. 성전으로 보이신 아버지의 뜻을 성영님으로 알게 하시고
예수님의 구원을 온전히 전하게 하신 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온전히 돌립니다. 아멘!!
은과 놋 10 예수님을 비추는 빛이라.p341-p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