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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게시판 스크랩 한국 기독교100주년기념 순교자기념관을 찾아서
多成 추천 0 조회 191 09.02.05 12: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순교 성지 및 유적지 탐방(1)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을 찾아서

              - 희생으로 믿음의 씨앗 뿌린 숭고한 발자취 -



       
                      

                   -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 숲속에 있는 순교자 기념관 -


    
2004년 7월 23일, 지루하던 여름 장마가 그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올 무렵 왕십리교회(기감) 장로 부부 32명은 김성철 담임목사님을 모시고‘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국내 순교성지 및 교회 유적지 탐방길에 올랐다.

   이 행사는 국내 순교 성지 순례를 통하여 복음의 수호를 위해 생명을 버린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 정신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믿음의 자리를 확인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으며, 한국성지순례선교회(대표:박경진 장로)의 협찬으로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순교자기념관 탐방을 시작으로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출발 기도에 이어 몇 곡의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는 동안 우리가 탄 버스는 어느 새 영동고속도로 양지 IC를 빠져나와 42번 국도를 타고 이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천 방향으로 4㎞가량 달리자 한국기독교 순교자기념관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판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서 5백여m가량 오르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니라'는 글귀가 새겨진 큰 바윗돌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여기가 순교자 기념공원의 입구인 셈이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 산 84-1



순교자의 숨결이 서린 동산

     
                                    

                             - 기념관에 이르는 길 양 옆에 세워놓은 순교기념 돌비 -


    
숲이 우거진 공원의 입구부터 전주(電柱)마다 써 붙인 산상수훈의 성구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하얀색의 순교자기념관이 삼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기념관에 이르는 길의 양 옆에는 유족들이 세운 높이 50㎝의 자연석으로 된 '순교자기념비'들이 순례자의 시선을 잡는다. 이 비석들은 순교자의 이름과 그 밑에 주옥같은 성구들이 적혀 있다.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1:8).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달게 받은 이들의 이름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멈춰 서면 순교자들의 숨결이 느껴지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들 중에는 한국 최초의 세례교인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 죄로 2년 간의 옥고 끝에 1893년 순교한 백홍준 장로, 천황 숭배를 거부하다 7년간 옥고를 치루고 1944년 순교한 주기철 목사, 6·25 당시 교회당을 비우라는 공산당에 맞서다 총살당한 박영근 목사 등등.

   조선조 말엽인 1884년 이 땅에 기독교 씨앗이 처음 뿌려진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도하다 숨진 순교자수는 2천 6백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초기에는 '혹세무민' 한다고, 일제 치하에서는 독립 운동의 중심세력이라며, 6·25때에는 공산주의에 항거하는 세력이라며 이들은 짓밟힌 들꽃처럼 소리 없이 죽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급속하게 번창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이 곳 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는 유명 무명의 수많은 순교자들 중 지금까지 알려진 2백2명의 순교자 유물들이 그들이 희생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순교자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

      
                                

                             - 뒷쪽 기도처로 오르는 길 옆의 십자가상 -                                              

    
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개신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지 1백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세워진 것이다. 1983년 당시 개신교 20개 교단들은 '한국기독교1백주년기념사업회'를 결성,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2천여 명의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처음 계획과는 달리 기념관 완공에는 여러 장애가 있었다. 부지도 그렇고 당시 12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건설비용도 문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평소에 기독교 복지사업에 뜻을 두었던 영락교회 정이숙 권사가 1986년 용인시 추계리에 10만여 평의 부지를 헌납했고, 1989년에는 이 사업을 위하여 재미실업가인 한규빈씨가 1백만 달러(당시 7억여 원)를 선뜻 내놓다.

   이 자금이 기념관 건립의 초석이 되었고, 부족한 자금은 국내 많은 교회와 신도들의 헌금으로 충당되어, 순교자기념관은 1988년 8월 진입로 공사를 끝내고 기념관 기공식을 가진 뒤, 1989년 11월18일 준공기념 예배를 드리고 문을 열면서 명실공히 기독교의 성지로 자리를 잡게 잡았다. 순교자기념관은 건축적인 면에서 아담하면서도 유려하여 91년 건축가협회로부터 `대한민국 건축가협회상'을 받기도 하였다.


순교자 기념관 관람  

    
                              

                            - 현관의 대형 그림 앞에서 선 순례자들 -  

  
기념관은 건평 3백66평의 3층 건물로.전체 직사각형에 가운데 원통형 모양을 넣어 유선을 강조했다. 양측에 원추기둥 두개가 받치고 있는 출입구를 들어서면 로비의 대형그림이 탄성을 자아낸다.빌리그레함 목사가 인도하는 여의도 집회 현장에 구름처럼 모여든 신도들을 보고 있노라면 솟구치는 신앙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또 1866년 제너럴 셔어먼호를 타고 국내에 들어와 선교하다 순교한 토머스 목사가 성경 앞에 무릎을 꿇고 참수 직전에 있는 모습을 그린 대형그림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혜초 김학수 화백이 기증한 40점의 역사화들 중 하나다.
  
    그림 옆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관람이 시작된다. 2층은 우측 회의실과 좌측 예배실로 이루어져 있다. 예배실에는 30년대 이전 개화기 교회들과 우리 사회 모습을 담은 사진 1백20점이 걸려 있다. 초가 교회 앞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들.댕기머리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야구를 하는 교회 어린이들. 갖가지 사진 속에서 보는 어설픈 개화기 성도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좌·우 전시실이 연결된 3층은 순교자의 선영들과 성경, 편지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일제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목숨을 바쳐 기독교 탄압에 항거했던 2백2명의 순교자들이 사용하던 것들이다.선영과 유리탁자 속에 전시된 손때 묻은 유품들을 보노라면 당시 고문 받던 순교자들의 눈물 어린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초상화 대신 '당신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고 적힌 거울은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념관에는 이밖에도 회의실에 마련된 서가에 교계 관련 서적 8백60여권이 비치되어 있고, 성서의 변천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2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행된 성서 40여권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외부 시설물

  
옥외에는 야외 집회장과 기념 공원, 십자가탑, 순교자 기념비와 기념관 뒤편 10만여 평의 산등성이에 조성된 10곳의 개인기도처가 있다.

      
                                   

                        - 주기철 목사의 '옥중명상'을 새긴 시비(詩碑) -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囚獄)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답하랴". 



   기념관 입구 시비에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시 '옥중명상'이 새겨져 있다. 이런 경건한 감동에 김소엽 시인은 모든 순례자의 마음을 대변하여 기념시비에 이렇게 적었다.


  
  
반만년/ 잠들어 있던 어둠의 역사가/ 당신의 피로/ 다시 깨어나고/  
   순교의 정신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나니/ 당신은/ 축복 받은 이 백성의/ 아비일레/  
   아브라함처럼/ 이 민족 한족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네//
   동방의 작은 횃불/ 삼천리 강산에/ 100년 전 복음의 씨로/ 등불이 켜지고/
   당신의 붉은 피는/ 지금도 우리 안에/ 꽃불로 타고 계시네//
   땅에서 죽고/ 하늘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넋이여/ 목숨을 버림으로/ 생명을 얻은/
   영생하신 임들이여/ 하나님 품 안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소서//
   아, 이 땅은/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거룩한 땅/ 순교의 비싼 값을 주고/
   하나님이 사신 땅/ 일천만 열매여/ 복되고 복되어라/ 칠천만 우리 동포/ 모두 다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당신이 목숨 버려/ 남겨주신 귀한 사랑/
   그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그 사랑/ 자손만대에 이어지게 하소서.


                                         
                                                                                 - 김소엽의 <순교자의 기도> 전문 - 

       
                                      

                                        - 기념관 앞에 세운 순교추모비 -

  
한국순교자기념관이 100주년 기념사업으로서 건립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서, 앞으로 남아 있는 성역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성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명실상부한 성지가 되기까지 이 사업 추진을 위해 각 교단이 얼마나 협조할 것인지 한편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무쪼록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협력해서 이 순교자 기념관의 후속 사업이 잘 진행되어,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경건의 교육장으로 유익하게 활용되기를 기원해 본다.     

      
                                             

                                    - 기념관 우측 숲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

   마치 순교자의 넋을 기리는 듯,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순교자기념관을 돌아나오며 교회의 씨앗이 되었던 2,600여 명의 순교자들의 믿음과 그 발자취가 오늘의 교회를 이룩할 수 있었던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보니, 그분들을 이제껏 잊고 지낸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하기 이를데없다. 숙연한 마음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 속으로 찬송을 부르며 발길을 돌려 산기슭을 내려왔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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