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손효찬(孫孝燦) 1927년 평북 창성에서 출생해 창성보통학교 6학년 때, 수풍댐 건설로 마을 일대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가족 모두 만주 長春으로 이주해 생활했다. 해방 후 신의주로 옮긴 손인호씨는 평양에서 열렸던 이북 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대회" 에
참가,"집 없는 천사" 를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이 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 는 권유를 받고 남행을 결심,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2월 여섯 살 터울의 형과
단둘이 서울로 내려온다."환영합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들 몸에 뿌려진 것은 DDT, 즉 살충제였다. 나이가 어려 곧바로 수용소에서 생활을 시작해야했던 그는 당시 서울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람은 1주일 동안 굶어도 물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회고할 정도다.
녹음일로 정신없이 바쁜 1957년 어느 날, 손인호씨는 천재 작곡가 이재호 선생님으로부터 곡을 받아
취입했는데, 대히트되어(1957년 음반판매 1위곡) '나는울었네', '비내리는 호남선'에 이어 연이은
히트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답니다. 바로 이 곡이 '울어라 키타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전에 이재호 선생님이 고봉산 선생님 간청에 의해 '울어라 키타줄'을 주기로 하셨답니다.
그런데 이재호 선생님께서는 이 곡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손인호의 목청에 딱 맞는 곡인데...' 하며
고민하다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전격적으로 손인호에게 녹음을 시켰답니다.
어느 날 고봉산 선생님이 지방 공연중, 점심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인호의 '울어라 키타줄 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후 작곡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후 '잘했군 잘했어'로 하춘화를 길러내셨고
유명작곡가의 길을 가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ㅡ무적인(이재호 선생 예명) 작사 이재호 작곡 손인호 노래 1957년작품ㅡ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좋은노래 잘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