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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보면 이렇습니다
이 상 욱
명예교수(법학전문대학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주로 자동차를 타고 출 ․ 퇴근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을 부리나케 열심히 다녔지만, 퇴임하고 나니 그다지 바쁠 일도 없고 시간도 많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는 빈도가 잦아지게 되었습니다(지하철이 공짜라서 자주 이용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항상 요금은 지불하고 이용합니다). 또한 논문 작성이나 강의 준비 등의 업보도 말끔히 사라진 상태라, 한가한 마음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면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지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돌아보게 되니 평소에는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어오지 않던 어쩌면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했고, 때로는 그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독 삐딱하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퇴임하고 이제 만 1년을 지나면서 그동안 보고 겪고 느끼게 된 몇 가지 사항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그 첫째는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잔소리가 많다는 점입니다.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지나친 안내 방송이 제 귀에는 잔소리(소음)로 들립니다. 두 번째는 이곳저곳에 위험을 강조하는 지나친 표현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닌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자신의 안전은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게 원칙 일진데, 돌아보면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가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끝으로 제가 보기에는 불필요한 것인데, 지나치게 과잉으로 설치된 시설물이 의외로 많아 오히려 주변 환경과 부조화를 이루며 미관을 해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몇 가지 사례만 말씀드립니다만, 아래 내용은 전적으로 제가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듣고 느낀 사항임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자 합니다.
1. 잔소리
먼저 시내버스를 타보겠습니다.
시내버스를 타면 친절하게도 버스 전면 전광판에 자세하게 이번 정류소의 이름과 다음 정류소의 이름을 알려주는 문구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심지어 어느 정류소까지 가는데 소요되는 예상 시간마저 알려주고 있습니다. 처음 오거나 가게 되는 낯선 길이라도 그 안내판을 보고 있으면 충분히 알아서 내리고 싶은데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영어로도 똑같은 내용의 자막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위에 또 방송으로까지 안내를 합니다. 이번에 내릴 곳은 어디 어디라고 안내하는 방송입니다. 영어로도 방송합니다. 눈으로 보면 충분할 터인데, 또 귀에 들리도록까지 안내 방송을 합니다. 과연 이렇게 중복해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하차하는 곳이 어디고, 다음 정차하는 곳은 어디인지 눈으로 보면 충분히 확인이 가능할 것인데, 또 방송으로까지 안내를 받을 만큼 우리가 무지한 것은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혹시 시각 장애인을 위하여 안내 방송을 하는가 싶은 마음에 버스를 탈 때마다 둘러보지만, 이제까지 시각 장애인이 혼자서 버스를 타는 광경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우리 버스 운행 체제 자체가 시각 장애인이 홀로 버스를 이용하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중간중간에 정류소 인근에 있다는 병원이나 한의원 등을 광고하는 안내 방송까지 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이용한다는 편리함을 담보로 이러한 광고까지 꼭 들어야만 하는지 의문입니다. 지하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량 앞과 뒤 양면에 다음 역의 이름과 내릴 방향까지 표시하는 붉은 색의 안내판을 선명하게 보여주면서도, 이번에 내릴 역의 이름을 방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어디 어디로 가실 승객은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광고 방송까지 합니다. 병원이나 법원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건물이나 장소에 대하여 그곳에 가려면 ‘이곳에서 내려야 합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두어 번 안내하는 방송이 나옵니다. 여기서 내리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듯이 아주 단호하게 ‘내려야 합니다’라고 방송합니다.
이제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도 매우 높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도 제각기 휴대전화 하나씩은 지니고 계시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수시로 전화기를 보거나 통화까지 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게 됩니다. 집에서 나설 때 목적지에 가려면 몇 번 버스나 지하철을 타서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각적인 안내 이외에 청각까지 자극하는 2중고(?)를 꼭 겪도록 해야만 할까요? 특히 역 부근의 병원 등을 언급하면서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광고 방송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글쎄요. 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조용하게 나름대로 생각에 잠기거나(깜빡 졸 때도 있습니다만), 특히 지상철의 경우는 높은 곳에서 창밖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승용차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이를테면 이따금 멍도 때리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광경을 그려보는데, 순전히 저만의 개인적인 욕심일까요? 버스나 지하(상)철의 지나친 안내 방송들이 제게는 불필요한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로 가보겠습니다. 퇴임한 뒤부터는 아내의 백화점이나 쇼핑몰 출입에 동행하는 빈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깔끔하게 단장된 비교적 쾌적한 환경의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돌아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한 편입니다. 아! 그런데 조용한 음악만 들려주면 더없이 좋을 터인데, 난데없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는 아동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타고, 노란 선 안에 그것도 가운데 중앙에 탈 것이며, 반드시 손잡이를 잡고 타고 뛰지 말라는 등의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그것도 우리말이 끝나면 일본어와 중국어로까지 안내해줍니다. 아니 요사이 어느 부모가 보호가 필요한 애를 혼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필요하다고 싶으면 스스로 잡으면 되는 것이지, 난간을 꼭 잡으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아차 싶어 손으로 난간을 잡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불필요한 잔소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는 곳에 주의할 사항을 자세히 표기한 스티커가 여러 장 붙어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경쾌하거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상쾌한 마음으로 쇼핑을 즐기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지, 잠시도 쉬지 않고 반복해서 듣게 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할 때의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 방송은 불필요한 소음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대구에도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및 지상철 3호선이 완공되면서 환승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청라언덕. 반월당. 명덕 등). 특히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청라언덕역에서 3호선 지상철로 환승할 때에는(또는 그 반대의 경우에도) 꽤 긴 시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게 됩니다. 그때도 역시 똑같은 내용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의 주의사항에 대한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운행되는 벽 쪽에 커다란 포스트를 붙여 주의사항을 자세하게 기재해두었습니다만,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말고 손잡이를 잡으라는 등의 주의사항을 방송하고 있습니다(그래도 에스컬레이터 위를 뛰어 올라가는 젊은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제게는 모두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디다.
이제는 기차역으로 가보겠습니다.
종래 서울이나 부산 등에서 개최되는 여러 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발표자 또는 사회자나 토론자로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행이나 부산행 등의 기차를 탈 때,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기차 안에서 발표 자료나 토론문 또는 사회자로서 언급할 내용을 다듬거나 마무리하느라 다른 경황이 없었습니다만, 이제 퇴임 후 그 부담이 일체 사라지게 되자 가끔 서울이나 부산 가는 기차를 타게 되어도 도착할 때까지 내내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이것저것 귀에 거슬리는 방송이 들려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코를 완전히 덮도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음식물을 섭취할 때는 대화를 자제하고(과거에는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다는 내용의 방송), 음식물을 섭취한 뒤에는 다시 마스크를 꼭 쓰라는 안내 방송입니다. 스피커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방송의 어조가 은근히 지시하고 훈계하는 것이지, 서비스 정신에서 말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코가 덮이도록 마스크를 쓰라는 안내 방송이나 음식물을 섭취할 때는 대화를 자제하라는 방송 등은 기차를 탄 승객들을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취급하는 듯하여 불쾌한 심기를 가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이 안내 방송이 필요한 경우를 거론하자면,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혹시 마스크를 지참하지 않은 승객은 승무원에게 이야기하면 준비된 마스크를 드리겠다는 정도의 안내 방송이 KTX나 SRT를 이용하는 승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뿐만 아닙니다. 기차를 타면 꼭 몇 번씩 방송하는 내용이 휴대전화에 관한 것입니다. 기차 안에서는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두고, 통화를 하려면 객실 밖의 통로에 나가서 이용하고, 동반한 아동이 통로를 뛰어다니는 등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화는 조용하게 하여 옆의 승객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입니다. 아직도 우리 국민은 이러한 훈계조의 계몽하는 듯한 방송을 들으면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무지몽매 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이러한 시시콜콜한 내용이 기차 내에 설치된 화면에 계속해서 방영되고 있습니다. 도대체가 그 방송을 듣거나 화면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기차 내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하거나,
애들이 시끄럽게 하면 옆 좌석의 승객에게 불편함을 줄 것이라는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지식 내지 에티켓을 습득하게 되는 것일까요? KTX나 SRT를 사용할 때마다 눈여겨 지켜봅니다만,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두고 전화를 받을 때는 좌석에서 일어나 객실 문을 열고 나가 통로에서 통화를 하는 예의 바른 사람도 많이 보았지만, 여전히 전화벨 소리도 요란하게 울릴 뿐만 아니라 좌석에 그대로 앉아 전화를 받으면서, 옆 좌석의 승객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큰 목소리로 시답잖은 내용의 통화를 하는 사람도 다수 있습디다. 이 사람들이 좌석에서 통화하면 옆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게 할까요? 제 생각에는 일어서서 문을 열고 통로 쪽으로 나가는 게 귀찮아서 그냥 통화를 하는 것이지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해서,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는 국민을 교육하거나 계몽하겠다는 얄팍한 우월감(?)에서 훈계조로 휴대전화의 기본적인 예절에 관한 안내 방송은 더 이상 기차 안에서 듣거나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있습니다. 운행하던 열차가 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정차하기 몇 분 전부터 열차 안에 설치된 큼직한 화면에 이번에 정차하는 역이 어느 역이라고 역명을 알려주는 문구가 뜹니다. 그것도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녹음된 방송으로도 정차역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이와 같은 화면이나 안내 방송을 듣게 되면 내릴 승객은 주섬주섬 내릴 준비를 하게 되지요. 그런데 또 덧붙여 나오는 것이 중복된 내용을 알려주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입니다. 특히 승무원의 안내 방송에는 내릴 문의 위치가 열차 진행 방향 오른쪽인지 왼쪽인지까지 알려줍니다. 아니 내릴 준비를 하고 바깥을 보고 있으면 금방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앞사람을 따라서 내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을 굳이 방송으로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더구나 제 경험에는 승무원이 오른쪽으로 내릴 문을 왼쪽이라고 방송하거나, 그 반대로 잘못 방송하여 수 분 후 다시 정정 방송하는 경우를 종종 겪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기차 안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다음 정차역의 이름을 알려주고, 녹음된 방송으로 다음 정차역이 어디라고 한 번 정도 방송하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게는 그 이상의 방송은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잔소리로 들립니다.
내친김에 기차역에서의 잔소리를 하나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올 때의 광경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수 분 전부터 안내 방송이 시작됩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노란 안전선 안으로 들어가라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호루라기까지 불며 경고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누가 기차가 들어오고 있는데,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 노란 안전선 밖으로까지 나가서 서 있을까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업무상 일일지라도 기차를 기다리고 타는 그 순간은 언제나 여행의 즐거움과 약간의 설렘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즐거움을 은근히 만끽하려는 순간, 노란 안전선 안으로 들어가라는 반복되는, 가끔은 신경질적인(?) 방송(같은 내용을 남성과 여성이 번갈아 방송할 때도 있습니다)과 특히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라도 듣게 되면 잠시 설레든 기분은 완전히 꽝이 됩니다. 그 역에서 정차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통과하는 기차가 들어올 때는 빠른 속도로 말미암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란 안전선 안으로 들어가라는 안내 방송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정차하기 위해서 아주 느린 속도로 플랫폼에 들어서는 기차에 대해서까지 과도한 경고의 안내 방송은 잔소리로 들립니다. 굳이 방송이 필요하다면, 어디 행 몇 호 기차가 몇 번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내용의 한 번 정도의 간략한 안내 방송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지하철이나 지상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구에서는 지하철이나 지상철의 노선은 복잡하지 않고, 그냥 일직선상으로 운행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방향으로만 진행될 뿐이지 운행 중에 목적지가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노선은 적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는 그 방향이 이를테면 영남대행이나 용지행 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영남대행 열차 또는 용지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종착역의 방향에 대한 안내 방송을 합니다. 혹시 다른 방향으로 운행되는 열차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단선뿐인데, 굳이 어디 어디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고 종착역인 목적지를 방송해야 할까요? 더구나 양방향으로 운행되는 플랫폼이 대부분이어서 바로 뒤편에는 반대 방향으로 운행되는 열차 노선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탈 방향의 열차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방송을 듣지 않더라도 사전에 충분히 알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 친절하게도 지금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역 이름과 열차의 운행정보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전광판도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그냥 열차가 조용하게 들어와서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승객이 타도록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지하철이든 지상철이든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올 때의 안내 방송이 제게는 모두 소음 내지 불필요한 잔소리로 들립니다.
2. 위험 경고
나이가 들면 집에서도 낙상 사고 등 제반 사고를 우려하여 여러모로 조심하게 되지만, 특히 외출하면 언제 어디서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는 물론, 인도를 따라 걷거나 차도를 가로질러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최우선으로 살펴야 하는 점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위험 경고는 꼭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 경고 표지판이 지나치게 과잉으로 설치되어 있다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이용하게 되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이나 안쪽 벽면에 붙어 있는 공지 사항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파트 문에 기대지 말라거나 손을 대지 말라는 위험 경고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도 머리를 아래로 하여 추락하는, 보기에도 섬찟한 그림이 있습니다. 달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문에 기대면 위험하다는 경고 정도는 있어야 하겠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에까지 이러한 스티커를 꼭 붙여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파트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도 한 참 전이고, 이제 엘리베이터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고층 건물 어디에서도 접하게 되는 문명의 이기인데,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서면 위험하다는 사실쯤은 초등학교 학생도 다 알고 있는 기초지식이라고 봅니다. 어린아이들은 당연히 보호자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동승할 터이니 알아서 조치할 것이고, 성인들을 위해서라면 굳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안내문을 부착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하철이나 지상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이나 지상철을 이용하기 위하여 플랫폼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은, 온통 위험 경고 표지판입니다. 안전문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도 열차를 탈 때 차량과 플랫폼의 간격이 넓으니 발이 끼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내용(‘발 빠짐 조심’)에서부터, ‘위험 기대지 마시오’, ‘문이 열릴 때 위험하오니 손을 잡거나 기대지 말아주십시오’, ‘위험 끼임 주의’, 등 유사한 내용의 위험을 경고하는 빨간색 문구의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같은 내용이 문 양쪽에 대칭적으로 붙어 있습니다. 지나친 위험 경고 안내문은 오히려 위험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거나, 안전 불감증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되는 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3. 과잉 시설
먼저 신호등부터 언급해볼까 합니다.
신호등을 설치하는 장소와 위치에 대해서는 교통 전문가가 아닌 제가 언급할 사항이 아닙니다만, 신호등에 매달려있는 신호기의 개수가 영 눈에 거슬립니다. 마치 차선 1개마다 신호기를 매달아 놓은 듯이 서너 개의 신호기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곳은 5개 정도의 신호기가 길 이편저편의 공중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복잡한 네거리나 오거리 정도라면 2개나 3개 정도 신호기를 설치해도 무방할 것입니다만, 왕복 2차선인데도 신호기는 2개나 3개를 걸어놓고 있습니다. 차도가 2차선이든 4차선이든 차에 앉아서 앞을 보면 다 볼 수 있는 장소에, 신호기(4차선이라면 2개까지는 이해됩니다) 1개만 매달아 놓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넓지도 않은 차도에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이쪽저쪽에 신호기가 서너 개 남발되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참 않습디다. 조망권도 침해됩니다.
그리고 차도에 왜 그렇게 말뚝을 많이 박아 놓는지요? 중앙선을 표시하는 노란색 선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굳이 말뚝을 촘촘하게 죽 박아 놓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마도 차도의 무단횡단을 방지하거나, 자동차가 무분별한 유턴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국민을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중앙선뿐만 아닙니다. 우회전하거나 좌회전하는 곳에도 보면,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말뚝을 죽 박아 놓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초등학교 주변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일반 도로에 그렇게 말뚝을 남발해서 설치하는 것은 이제 탈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끝으로 자신을 사회철학자라고 스스로 칭하고 있는 영국의 지성, 노(老)학자 찰스 핸디(Charles Handy)의 다음 글을 소개하며 끝을 맺을까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정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살기가 한결 쉬워진 듯하다. 그러나 주의하여야 한다. 그들이 너희의 이익을 진심으로 최우선시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들은 너희가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단순하고 가장 효율적이며 비용도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원할 것이다. 따라서 규칙과 규정을 제정하더라도 예외를 최소한으로 허용할 것이고, 시민을 체스판의 졸로 취급하는 조직화된 사회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복지국가의 부정적인 면이 여기에 있다.
복지국가는 개인의 차이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세심히 관리되는 사회다. 시민을 위해 더 안전하고 안정감 있는 세계를 만들려는 선의로 모든 것이 행해지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위험이 없는 사회라고, 무모하다고 생각되는 실험이 전혀 시도되지 않는 사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찰스 핸디 지음, 강주헌 옮김,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인플루엔셜, 2022. 18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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