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삶의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는 경험 문학
-『수필문학』 12월호를 읽고
강미애
12월호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차 같다. 첫 페이지는 사진 에세이, 나목(裸木)으로 시작된다. 내 남은 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이 지나가고 있다는 백선욱의 고백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문장에 어울린다.
인생 막바지에 내 삶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은 특별하고 주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면 나는 실패한 삶일까. 뮤지컬 〈쇼맨-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앞선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특별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작품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감상하기에 좋은 작품을 소개한 전명주의 뮤지컬 이야기도 인상 깊다.
문학에 대한 다양한 시선(視線)을 수필로 새롭게 풀어내고 있는 기획연재도 칭찬할 만하다.
〈이규식의 음식 IN문학〉에서 이규식은 함민복 시인의 시를 통해 한 폭의 수채화에 담긴 듯한 소박한 사랑과 믿음의 광경을 수필로 따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혼탁한 세상에 심성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양호인은 〈풍경 담은 간이역〉에서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며 웃고 싶은,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온기를 느끼고 싶은 임기역의 이야기로 지나온 기억과 시간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이재명은 〈현대 수필가가 바라본 고전 수필〉에서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과거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며, 현재의 시점에서 의미와 가치를 해석하는 일이라고 전한다. 삶의 다양성을 문학에 적극 수용하고 표현하는 장르는 수필이 아닌가 싶다.
12월호에는 특히 2023년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연차대회 및 사화집 출판기념회에 관한 글로 풍성하다. 금년에는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서 개최하여, 수도권의 특색있는 장소를 탐방하는 일정이었다. 바닷길이 아름다운 탄도항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공연장으로 개발 중인 폐채석장 대부광산의 일대를 돌아보며 그 문화재적 가치와 풍경들을 눈과 가슴에 담았고, 전국 유일 상설 서커스인 동춘서커스를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해 낙조가 바라보이는 오이도 카페에서 진행된 제31호 사화집 출판기념회에서는 ‘꿈길에서 만난 인연’의 의미를 담은 전통 창작무용과 가슴을 울리는 수필 낭독으로 감동의 시간을 더했다.
짧은 하루였지만 긴 여운이 남을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짧은 하루, 긴 여운〉의 김명희. 이번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안산에 대해 무지했을 것이고 가을 추억 하나를 놓치고도 놓친 줄 모르고 살아갔을 것이라는 〈안 갔으면 어쩔뻔!〉의 남민욱. ‘함께’라는 말은 들을수록 다정하다. 서로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든 작가들의 웃음꽃이 탄도항에 피어났다는 〈모세의 기적을 만나다〉의 박태희. 어떤 이유로 서커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대부도 동춘서커스를 보며 머지않아 다시 찾을 것 같은 마음이라는 〈서커스를 다시 생각하다〉의 서경희. 쓸쓸함과 또 다른 낯선 느낌은 쉽게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을 나그네에게, 서두르지 않아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스며들게 하는 듯 했다는 〈내 마음속의 길〉의 신영애. 눈이 내리는 겨울 어느 화창한 날, 다시 카메라 들고 대부도 바닷가를 걸어보고 싶다는 〈애인 수필이(Supiri)와 함께 찾아오리라〉의 윤기관.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모노레일 설치를 관광업무 담당자에게 건의해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는 가을 나들이〉의 이범찬. 대부도의 배후도시, 이름이 편안하다는 의미를 지닌 안산(安山)이므로 대부도도 덩달아 아늑하게 느껴졌다는 〈정겨움과 낭만을 맛보며〉의 이한재. 풍경도 음식도 좋았으나 이번 여행을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져〉의 최정숙. 한 번의 여행이 다음을 부르는 곳, 다양한 매력이 가득한 도시 안산에 다시 방문할 날을 기대한다는 〈건빵과 11월의 가을 여행〉의 김민정. 글쓰기가 궁금해 시작한 수업, 그 인연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하루가 참 행복했다는 〈가을 하루〉의 강효신 등 다양하고 풍성한 내용의 연차대회 참가기는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모든 문학의 원천은 경험이다. 경험이 없는 문학은 그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우리네 일상의 숱한 경험은 작가의 체에 걸러져 의미있는 문장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가 삶의 한 자락에 문학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행여 문학을 통해 우리들의 경험이 넓고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갔던 일들을 선명하게 다시금 부여잡고, 미진한 측면들을 더욱 섬세하게 포착하며, 에둘러 온 길을 다시 돌아가 원래의 길에서 정면으로 세상과 맞부딪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갑진년(甲辰年), 우리 수필가들의 새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