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포(海雲浦) 해역(海域)과 지세(地勢)변천
과거 수영비행장 현, 센텀시티 뿐만아니라 안락동 앞까지 바다였으며, 수영강쪽이 해운포요 동쪽은 재송포라 불리웠다.
오늘날의 수영구 수영(水營)은 조선시대의 선조 연대에 울산 개운포에서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 (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 : 줄여서 좌수영, 더 줄여서 수영)이 옮겨온 뒤 수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이전은 남촌(南村)이었다.
그것은 동래영지(東萊營誌), 영남영지(嶺南營誌), 여지도서(與地圖書)가 “좌수영은 울산 개운포에서 동래부 10리 정도의 남촌으로 이전하였는데 언제인지 모른다”고 하였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선조 25년(1592)에 동래 남촌으로 이설(移設) 하였다고 하고 울산읍지(蔚山邑誌), 징비록(徵毖綠)은 선조대(宣祖代)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좌수영을 건치(建置)한 포구를 해운포라 했다. 그것은<<동래부지>>관방(關防)조에 좌수영의 소재를 해운포 옛 터라 했고 역시 <<동래부지>>의 성곽(城郭)을 기술한 자리의 고읍성(古邑城)을 설명하기를 해운포 수영(海雲浦 水營)에 있다고 하였다.
이 고읍성은 오늘날의 수영구 망미동에 있었던 성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수영이란 이름 이전은 남촌이었고, 남촌에 수영을 건치했던 포구는 해운포였다.
이것은 바로 수영천과 동래천이 토사(土沙)를 실어내려 해운포 바다를 메워서 수영비행장이 되었다가 수영 컨테이너 하치장(荷置場)이 되고 지금은 센텀시티가 형성되고 있는 광활한 지역이 아주 옛날에는 바다였다는 사실이다.
이 센텀시티 자리의 서쪽인 수영천쪽에는 해운포라 한 대신 맞은편 자리(바다였을 당시)는 오늘날의 재송동 아래 재송포(載松浦)가 있었다.
이 재송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山川)조에 나오는데 재송포를 설명하기를 “현(縣:동래현을 말함) 동쪽 10리에 위치하여 소나무 수만주(數萬株)가 있다” 하였다. 이 재송동 아래도 바다였다.
오늘날 재송1동 산 74~75번지 일대 골짜기를 조선골(造船谷)이라 하는데 이 조선골에서 배를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해운포와 재송포가 바다였을 때는 그 바다가 더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가서 만(彎)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의 산천조에 의하면 다도(다도)가 나오는데 동국여지승람은 현에서 남쪽으로 4리 떨어진 곳이라 하였고 동래부지는 부(府)의 남쪽 7리에 있다 하고는 작설(雀舌)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다도는 글자 그대로 섬이다. 1735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는 동래부 지도는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 남쪽이자 동래천의 이섭교(利涉橋) 북쪽에 다도를 그려 넣고 있다.
이 다도는 그 지역이 바다였을 당시는 섬이었을 것이 동래천 상류에서의 물길을 따라 바다가 메워져 섬 아닌 조그마한 언덕같은 산으로 남아 있다가 동래에서 해운데로 가는 도로와 기차철도 부설 때 산처럼 남아 있는 토석(土石)이 깎여 없어지면서 지형 지세가 바뀌었다.
이로써 보면 다도가 있었던 자리도 아주 오래 전엔 바다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동해남부선 동래역 남쪽에 있는 패총(貝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