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를 조도에서
(2023년 1월 1일)
瓦也 정유순
관매도를 떠난 페리호는 2022년 12월 31일 15시 경에 하조도(下鳥島) 창유항에 도착하자마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 상조도(上鳥島)에 있는 도리산전망대로 향한다. 하조도와 상조도 사이에는 연도교인 조도대교 연결되어 있어 이동하기에 편하다. 그러나 여미리 마을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폭이 좁아 버스가 운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예상되나 버스기사의 노련한 솜씨로 전망대 코밑까지 올라간다.
<창유항대합실>
<도리산전망대 올라가는 길>
상조도 여미리의 도리산(210m) 정상에 자리 잡고 도리산전망대는 사방이 확 트여 다도해의 섬을 360도로 회전하며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는 나무로 잘 조성해 놓은 전망대에 서면 말 그대로 일망무제(一望無際)다. 새떼처럼 바다 여기저기에 둥지를 튼 다도해의 장관이 눈길을 빨아들인다. 관사도, 주도, 소미도, 맹골죽도 등 부근의 섬들은 떠돌다 동시에 멎은 것처럼 자태가 요염하다.
<도리산전망대와 통신안테나>
<전망대에서 본 섬들>
도리산전망대는 해안에서 바로 솟아올라 훨씬 높게 느껴지고 조망권도 매우 넓어 조도군도 전체와 진도 서쪽, 멀리 신안군의 섬들도 볼 수 있다. 상조도 북쪽으로 진도까지 비취빛 바다에 마치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놓은 것 같다. 부근의 이름난 섬들의 자태가 한해를 고하는 햇빛에 윤슬을 만들어 바다를 수(繡)놓아 한 폭의 산수화를 그린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장관들이다. 전망대 옆의 통신안테나는 이곳 소식을 세상 곳곳에 소식을 타진한다.
<바다의 물비늘(윤슬)>
임인년 마지막 날의 낙조까지 보고 싶었으나 아쉬움만 깊게 묻어두고 전망대에서 버스로 내려오다 조도대교 앞에서 내려 다리를 두 발로 걷는다. 상·하조도의 두 섬을 잇는 조도대교는 1997년에 개통된 연도교(連島橋)로 2차선 510m의 길이로 진도대교 보다 길다. 교량 중간의 높이는 50m로 대형 선박들의 통행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하조도와 조도대교>
다리를 건너오면 하조도 끝자락인데, 아직도 공원화가 진행 중인 것 같다. 이곳은 <나루꾸지>라는 나루터로 일찍이 상조도와 당도로 건너가는 나루터였다고 한다. 공원 옆에는 습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1837년에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간척지를 염전으로 활용하다가 지금은 농지가 되었다. 공원 옆 한적한 언덕에는 <조도대교준공탑>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순간을 기다린다.
<조도대교>
<조도대교준공탑>
상조도에서 조도대교로 막 접어들어 하조도 쪽을 바라보니 하조도에 있는 산의 형상이 만삭의 임산부가 머리를 서쪽에 두고 동쪽으로 발을 뻗고 누워 있는 형상이다. 머리와 복부 사이에는 막 태어날 아기에게 물릴 젖가슴이 봉긋하게 솟아 있다. 조도 주변의 많은 섬들이 저 어머니 산이 출산하여 떠 있는 것 같고, 포근하고 풍요로운 섬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산의 만삭 부위는 돈대봉이었고 머리부분은 손가락산이었다.
<돈대산(만삭의 여인)>
조도면(鳥島面)은 전라남도 진도군의 서남단 해역에 위치한 면이다. 35개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었고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면 소재지는 하조도에 있는 창유리(倉遊里)에 있다. 지명은 섬이 새 떼처럼 널려져 있는 모양이라 하여 유래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제도면(諸島面) 지역이었다. 1872년 이전의 지도에는 행정명이 아닌 섬 명으로 조도가 있었고, <1872년 지방지도(진도)>에 제도면(諸島面)으로 등장한다.
<조도면 지도>
어젯밤 몸을 의탁한 곳은 옛날부터 바다에 ‘고기 반, 물 반’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어종이 풍부하여 어유포(魚遊浦)라고도 부르는 창유리 선착장 부근이다. 그래서 원래 마을이름이 어유포였는데, 이미 이 지역 해산물을 저장하는 창고가 생기면서부터 창유리로 불렀다. 조도가 풍어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풍어시절에는 전국 항·포구 어디에서나 “조도갈 이! 조도갈 이!”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도에 갈 인력은 내 배에 같이 타고 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조도의 석양>
계묘년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려고 여명에 해안가로 나왔으나 하늘에는 구름이 장막을 친다. 일출을 보려고 먼 길을 달려왔건만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하조도 동쪽 끝에 있는 등대 쪽으로 급히 이동한다. 해돋이를 보려고 일찍 왔던 사람들도 솟는 태양을 보지 못한 아쉬운 표정이 얼굴에 역력하다. 이미 태양은 눈썹 높이까지 솟았으나 구름 속에 붉은 화상처럼 찍힌 태양을 보면서 나의 금년 소망을 조용히 빌어본다.
<흐린일출>
조반을 마치고 만삭의 몸으로 누워있는 형상을 한 돈대봉으로 향한다. 돈대봉(墩臺峰, 271.8m)은 하조도 서쪽에 있는 산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제 들렸던 관매도와 상조도에도 돈대봉이 있다. 흔히 돈대(墩臺)란 ‘높은 언덕에 옹벽을 쌓은 곳이나 성벽을 쌓아 적의 침입 등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던 곳’을 말하는데, 이곳에서는 봉화를 올려 다른 지역으로 정보를 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 같다.
<하조도 돈대봉>
읍구마을을 돈대봉 입구에서 오르는 산길 초입은 보통 산책길 같이 아주 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역시 산은 산이다. 점점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길바닥도 난폭해진다. 다행이 어려운 곳에는 데크를 설치해 놓았고, 고비마다 밧줄을 매달아 놓았다. 만삭의 몸인 정상에 올라서자 주변에 보이는 섬들은 저마다 전설과 보물을 숨겨 놓고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정상의 바위틈의 나무는 질긴 생명이 뿌리를 박고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생명의 끈기>
돈대봉을 넘어 손가락산으로 내려간다. 주변의 바위 틈새에는 부처손이라는 식물이 붙어 있다. 부처손은 부처님의 손을 닮았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으로 바위에서 자라기 때문에 바위손이라고 한다. 비 오는 날이나 습한 경우에는 잎이 펼쳐지고, 건조한 날에는 동그랗게 오므라든다고 한다. 부처손은 항암약재 등으로 널리 사용된다고 하나 세상의 모든 일들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치면 독이 생긴다고 한다.
<부처손>
손가락바위는 켜켜이 쌓인 퇴적암 덩어리로 되어 있다. 정면에서 보면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의좋은 삼 형제처럼 달라붙은 형상이다. 통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선 다음에 구멍바위 쪽으로 올라가 구멍을 통과하면 손가락바위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전망대마냥 구멍에서 바라보는 먼 바다와 수많은 섬들은 또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손가락바위>
하조도 동쪽에는 돈대봉을 지긋이 바라보는 신금산이 있다. 돈대봉과 손가락산이 멀리서 보면 만삭의 아내가 누워 있는 상이라면, 신금산(神禽山, 238m)은 돈대봉을 지그시 눈을 감고 바라보는 남편의 상 같다. 혹시 이 두 산은 부부(夫婦)산으로 조도를 만들고 관할하는 산신령의 부부는 아닌지? 꼭 무슨 조화를 부리며 조도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신금산>
산에서 내려와 떡국으로 점심을 한 후 마지막 여정인 신전해수욕장으로 간다. 신전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길이가 800m, 폭이 100m로 관리상태가 양호한 곳이다. 해변의 모래는 분가루처럼 부드러우나 사질의 바닥은 돌 같이 단단하다. 백사장 양 끝으로는 바위들이 너부러져 있으며, 그 바위에는 자연산 굴인 석화(石花)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특히 해수욕장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단위 피서지로 좋을 것 같다.
<신전해수욕장>
<석화>
관매도와 조도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아침에 다짐했던 내용을 조용히 음미한다. 항상 새롭고 거듭나기(日新又日新)를 바라면서…
오늘을 맞이하며
나는 항상 세상을 살아오며
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렸고
보다 나은 내달을 꿈꿔왔고
보다 나은 내년을 기대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항상
무언가 늘 부족한 오늘이었고
무언가 늘 섭섭한 오늘이었고
무언가 늘 서글픈 오늘이었다
새해의 오늘부터는
부족해도 만족할 줄 알고
섭섭해도 용서할 줄 알고
서글퍼도 기뻐할 줄 아는
오늘을 맞이하려 한다.
<계묘년(癸卯年) 새해 아침에>
<돈대봉 돌탑>
https://blog.naver.com/waya555/222977307276
첫댓글 새해의 오늘부터는
부족해도 만족할 줄 알고
섭섭해도 용서할 줄 알고
서글퍼도 기뻐할 줄 아는
오늘을 맞이하려 한다.
이글처럼 저도 살고 싶어요.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한번 시도해 보렵니다~~~
@와야
와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솜다리
고맙습니다.
계묘년 새해에도 이유없이 건강하세요~~~
좋은 말씀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더 좋은 일만 있으시길~~~
@와야 네~
와야님께서도 건강하시고 복도 듬~뿍 받으시와요!
@꽃다지
고맙습니다~~~
남쪽 섬여행하시며 새해를 맞이하셨군요. 멋진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맞이하며" 넘넘 공감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계유년 새해에도 더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석화"
돌에 핀 꽃.. 돌꽃..
마냥 신기합니다
신비스럽고 때론
낭만적이기도한
<조도> 여행 후기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오늘을 맞이하며>
좋은 글 마음판에 조용히
새겨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옛날 변산의 채석강에 갔을 때
석화 맛에 홀려 즉석에서
소주를 두 병을 마셨던 생각이 나더군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아요.
"부족해도 만족할 줄 알고
섭섭해도 용서할 줄 알고
서글퍼도 기뻐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