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시세계
광 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7월이 되면 포도가 더욱더 푸른 빛을 띠는 고향의 정겨운 모습과 정취를 그대로 잘 표현하였다. 물론 육사는 고향에 대한 향수에 의해서만 청포도라는 시를 쓰지는 않았다. 이 시에는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끈끈하고도 절대 끊어지지 않는 민족정신의 기상이 듬뿍 들어있다.)
-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육사는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활活, 원록原祿,원삼源三 이며 자는 태경台卿이다. 육사선생은 본관이 진성으로서 조선시대 최고의 대성리학자 퇴계이황선생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퇴계선생의 13대손 이가호李家鎬옹이었고, 어머니는 김해허씨 허길許吉여사이다. 허길 여사는 구한말, 고종황제가 강제퇴위당하자 군사장으로 13도 창의군을 이끌고 의병을 봉기한 왕산 허위 선생의 종질녀이다.
왕산 선생의 친족은 항일투쟁의 대표적인 집안인 고성이문 종손 석주 이상룡 선생과도 혼인관계를 이루었으니 석주 선생의 손자며느리 허은 여사가 바로 왕산 선생의 종손녀이며 육사와는 이종사촌이 된다. 왕산의 집안, 석주의 집안은 모두 당대최고의 명문거족이었으나 안위와 영달을 모두 뒤로 하고서 조국광복의 대도에 그대로 일신을 바친 집안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난 육사는 퇴계선생의 후손답게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대단했으며, 국권을 강탈당한 시기에 태어나 나라를 되찾자는 구국운동에 대한 집념또한 대단했다. 그의 필명 육사는 그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때 부여받은 죄수번호가 264여서 그 264 번호를 호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육사라는 필명에 담긴 뜻은 일본 역사를 찢어 없애겠다는 강력한 항일투쟁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중국자전>에 따르면 육사陸史의 육은 죽일 戮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육사는 22세의 나이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로, 일본의 고관대작들을 암살하거나 관공서를 폭파하는 의거를 행하는 단체이다. 의열단의 의미는 정의正義의 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는 뜻인데, 적극적인 태도로 일본 왜놈들의 세력에 항거하여 조국의 광복을 성취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 또한 담겨 있었다. 특히 의열단은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였으며, 백범 김구선생, 단재 신채호선생, 심산김창숙선생, 우사김규식선생등이 고문으로 있었고 초창기 단원에는 김원봉선생, 윤세주, 신철휴선생등 13명이 있었다.
육사 이원록 선생이 맹렬한 정의의 실천을 행하는 의열단에 가입할 수 있던 배경은 모두 그의 집안이 남인[퇴계]학파에 소속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남인학파의 본향 안동은 예로부터 충과 의를 숭상한 지방이었으며, 나라가 위태로우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많은 선비들이 분연히 일어섰다. 예로 임진왜란이 그러했으며 이는 구한말과 일본침략기시대에서 또한 이어졌다.
석주 이상룡선생, 일송 김동삼선생, 백하 김대락 선생, 척암 김도화선생, 동산 류인식선생, 추산 권기일선생,단주 류림 선생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수 많은 안동의 항일지사들은 조국과 고향을 뒤로 한채 해외에 나가 조국의 광복에 헌신하였다. 그 중심에 퇴계학파가 있었고 그 속에 육사선생이 있었다.
1926년 육사선생의 23세의 나이로 중국 북경으로 사거 북경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 육사선생이 부여받은 죄수 수인번호가 공교롭게도 육사선생의 호와 발음이 같은 64였다.
선생은 석방이 되자 다시 북경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중국최고의 사상가라 할 수 있는 노신魯迅 등과 교류하면서 독립운동의 열망을 불태워 나갔다.
1933년이 되자 선생은 귀국하였고 육사라는 필명으로 [황혼] 이라는 작품을 <신조선>에 발표하여 시단에 등단하고 논문, 시나리오까지 집필하였다. 또한 친분이 있었던 중국인 노신의 소설 [고향]을 번역하기도 했고 1937년에 이르러서는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불후의 명시 [청포도靑葡萄],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의 주옥같은 시를 발표하였다.
선생은 1943년 4월에 중국을 방문하였다. 육사는 중국을 방문하기전 석초 신응식申應植에게 중국 북경행을 밝히고 당시 한글사용이 규제받자 한시漢時만 발표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육사는 중국에서 국내로 무기를 반입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으며, 모친과 큰형의 소상에 참사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그만 서울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고 북경으로 압송되어졌다.
그는 압송된 후 북경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 구금되었고 1944년 1월 16일 새벽, 41세 나이로 타지에서 파라만장한 생을 마감하며 순국하였다.
그후 친척 이병희 여사에 의해 그의 시신이 거두어졌고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0년 고향 안동으로 이장되었다.
광야를 향해 백마를 타고 달리는 超人을 그린 육사 이원록. 그의 삶은 조국을 위해 유형과 무형을 모두 다 바친 일생이었고, 오직 조국광복을 향한 일념에 가득찬 삶이었다. 그는 늘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목가적이면서도 웅혼에 가득찬 장엄한 필치로 민족부활의 염원을 담아냈다. 늘 나라를 되찾겠다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육사. 그는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도 묵묵히 지식인의 도리를 다 한, 참 선비였다.
육사 선생의 시들은 대부분 민족광복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의 사상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만들어낸 시문과 같이 그의 인생또한 빼앗긴 민족과 나라를 찾기 위해 살다간 파라만장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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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육사(李陸史)의 시세계
1. 서 문
육사 이원록은 1933년 무렵부터 시를 발표하여 한권의 시집을 남겼다. 아우 이원조(李源朝)의 말과 같이 빈궁과 투옥과 유랑의 40평생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으나, 30세 때에 비로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작품은「황혼」(<신조선>,1933)이다. 사후(1946) 그와 함께 '子午線(1937) 동인이었던 신석초(申石艸)등 4명'서'를 쓰고, 아우인 평론가 이원조가 '발'을 쓴 「육사시집」(서울출판사,1946)이, 이어「청포도」(범조사,1964),「광야」(형설출판사,1971)등이 간행되었다.
이육사의 시는 양적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작품의 가치 자체에도 있지만 그 보다는 탄압이 극심했던 일제 군국주의와 중요 작가들이 친일 체제 문학 ㅈ고을 기울었던 식민지 시대 말기에, 그만은 끝까지 독립 투사로서의 지조를 지키고, 일제에 의해 수차 체포.투옥되는 수난을 겪으면서 마침내 북경 감옥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채 옥사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글에서는 전기적 사실에 치중하지 않고, 작품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여 그의 시집 전체의 구조분석을 통해서 정신세계의 공간적 체계와 그 시적 특성을 살펴 보고자한다.
첫째, 이글에서는 이육사 시 전체의 일관된 공간 구조를 분석하여 정신의 체계적 특성을 고찰한다. 그의 시의 일관된 공간 구조는 크게 '다원공간(복합공간)과 '단일공간'으로 구별되는데, 이 두 공간 구조는 이육사의 정신세계 체계와 상응한다.
둘째, 이육사의 공간의식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시간의식을 내포한다. 그의 공간의식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합 단계로 상승하는 과정을 갖는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그리고 이 모든 단계를 총체적으로 통합하는 단계는, 현실의 모순극복에서 이상 실현으로,현실주의에서 이상주의로 상승하는 자기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고통,슬픔,상실,절망 등에 대한 상황의 체험을 바탕으로 높은 레벨의 이데올로기적 리얼리티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육사의 공간 의식의 제1단계는 '물'의 공간이다. 이것이 제일 낮는 단계다. 제2단계는 '물'에서 한단계 상승한 물(평지)의 공간이다. 평지에 속하는 모든 사물들(고향,사막,길,나무 등)의 세계가 이 단계에 속한다. 제3단계는 평지에서 한 단계 더 상승한 '고원'이다. 평지인 현실세계의 극한 상태이면서 동시에 가장 하늘과 가까운 높은 공간이다.
제4단계는 산이나 고원에서 한단계 더 상승한 '하늘'이라는 보편적 공간이다. 한없이 높고 푸른 보편적 세계인 하늘을 비롯하여 태양,별,구름,조류 등의 세계가 여기에 속한다.
제5단계는 이 모든 공간의 레벨을 하나의 총체적.우주적 상징 체계로 통합한 사계다. 이 통합 세계는 보편적 진리인 형이상적 의미가 암시되는 이상 실현의 가능성을 가장 밀도 있게 형성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공간과 시적 주체 관계
1) 다원공간
'다원공간'에서는 구조상의 몇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시적 자아가 현존하면서 실제로 체험되는 공간과,체험되지 않은 공간이 공존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단일한 큰 공간 내에서 그 공간 속의 분립된 작은 공간에로의 이동 현상이 발견된다. 말하자면 큰 공간 속에 복수의 작은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내제한다. 셋째, 모든 공간에서 시적 주체의 의미있는 삶의 행위들이 존재하고 있다.
공간속에서 사물들만이 현실에서 떨어져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그러한 사물들과 더불어 반드시 행동하는 주체가 어울려 식민지하의 암담한 상황을 암시하는 정신적 .상징적 의미의 다이너미즘을 보여준다
내 골ㅅ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받아드리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중 략).....
제-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세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 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황혼」의 제1,제3,제4연
작품「황혼」의 공간은 '골방', 즉 큰 방의 뒤쪽에 딸린 작은 방, 갇혀있는 협소하고 답답한 방이다. 골방은 추방되었거나 소외된 단독자인 시적 자아가 현존하는 장소로서, 이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12성좌의별,격리된 수도원이 있는 삼림, 수인들이 유폐되어 있는 시멘트 장판방,행상대들이 낙타를 타고 다니는 고비사막,문명을 등진 토인들이 사냥하는 아프리카의 원시 삼림지대-이러한 넓고 다양한 여러 공간들이 복합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주체가 현존하면서 황혼을 받아들이는 공간은'골방'뿐이며, 그 밖의 나머지의 공간은 황혼의 빛의 영역이 확산되어 의미상으로 관련되는 심리적.상상적 공간일 뿐이다. 이 모든 공간이 황혼이라는 동일한 순간에 공존하며,동시에 역사적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고립.단절되어 있고 의지가지 없는 장소라는 공통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 작품 속에 복합적 공간이 내재하고 있지만, 시적 주체가 현존하는 '공간'과 현존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조건의 인식에 있어서 그 상황이 유사하거나 의미상으로 관련되는 다른 공간들이 같은 시간에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복수의 공간이 대등하게 공존하는 '다원공간'의 변형으로 볼 수 있고,따라서 '변형다원공간'이라고 명명해 두기로 한다.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 밤
앞 내ㅅ강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르던 노래는 강건너 갔소
강건너 하늘끝 사막도 다은 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러서 갔소
못 잊을 계집에나 집조차 없다가
가기는 갔지만 어린 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래ㅅ불에 떨어져 타 죽겠소
사막은 끝 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먹은 별등리 조상오는 밤
-「강건너 간 노래」중 제1-3연
작품 '강건너 간 노래'는 내가 노래를 부르던 '앞내 ㅅ강'의 공간과, 내 노래가 건너간 강 저쪽의 사막이라는 두 공간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강 이쪽의 공간은 섣달의 밤이며 추워서 강물이 얼어붙은 동토인데, 그 동토에서 시적 주체는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그 노래는 동토의 삶, 즉 식민지 하의 아픔과 모순을 고발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와 꿈일 것이다.
그 노래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 '사막'으로 울려 퍼진다. 즉 죽음의 사막을 생명의 세계로 회복하려고 하는 상황의식을 담고 있다. 그 노래는 제비같이 날아가기는 갔지만 '어린 날개'가 지쳐 어느 모랫불에 떨어져 타 죽을 것이며, 그 사막을 덮고 있는 푸른 하늘에서 슬픈 별들이 조상 오는 밤이라는 것이다. 시적 주체는 강 이쪽의 동토에 존재하지만 그가 부른 노래는 그 강을 건너 저쪽의 '사막'으로 날아가서 거기서도 그 노래의 염원이 실현되지 못하고 떨어져 타 죽는다.
회의주의 내지 비관주의의 시다. 강 건너 저쪽의 사막에는 시적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자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노래'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강건너 간 노래」는 앞의 「황혼」과는 달리 변형이 아닌 그대로 '다원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단일공간
한 작품이 하나의 공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단일공간' 또는 일원적 공간이라고 한다. 이 육사의 작품에는 거의 대부분 시적 주체의 행동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그 주체의 환경 또는 배경으로서의 장소가 다 단일한 것일때, 엄밀한 의미에서 '단일공간'으로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이 복수인 다원공간과는 대조가 된다.
시 「호수」,「자야곡」,「교목」등은 모두 '단일공간'의 작품이다. 그 만큼 이미지나 의미가 흩어지지 않고 응집되어 독자에게 주는 효과도 단일.단순한 것 같다. 시적 주체가 복수로 드러나고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이 단일한 경우도 가정할 수 있느나, 이육사에게는 이런 경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내여 달리고 저운 마음이련마는
바람 씻은 듯 다시 명상하는 눈동자
때로 백로를 불러 휘날려 보기도 하것만
그만 기슭을 안고 돌아누어 흑흑 느끼는 밤
-「호수」중 제1,2연
「호수」는 배경이 되는 공간이면서 이 시의 의인화된 주체이다. 단일공간이면서 단일주체라고 할 수 있다. 어디든 달리고 싶은 염원이나 의지가 있지만 그리고 백조를 불러 날려보내도 하지만 '호수'는 호수라는 한계조건을 끝내 벗어날 수 없어 눈을 감고 명상이나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일 공간 속에서의 페쇄 또는 유폐의식과 그러한 구속에서 해방되고 싶은 염원의 좌절이'명상'하는 자세로 전환되고 있다.
암울하고 짓누르던 식민지 시대 상황 속에서의 소외와 좌절에서 오는 삶의 한 국면을 상징한 것이다. 이육사는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거나 중립상태로 두지 않고 휴머니즘이나 역사적 상황의식의 반영이나 상징으로 표현한다.
수만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건만
노랑나비 노잖은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자야곡」중 제1연
「자야곡」은 조국의 상실과 연결되는 고향의 황폐화,고향의 상실을 읊은 것이다. 고향이라는 단일공간이 단일대상으로 되어 있다. 고향은 하나의 마을로서 국가라는 체제와 민족 공동체라는 큰 공간의 집단으로 확대될 수 있는 작은 공동체적 상징성을 갖는다. 나비도 날지 않는 무덤과 같은 고향은 이미 고향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했고, 식민지하의 타자가 되어 버린 고향이다.
시적 주체는 그러한 고향과 동화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존재로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연기가 돌아가는 항구나 옛날의 들창이나 달과 강이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고향이라는 단일공간 속에 내재하는 사물이다.
작품「광야」는 광야라는 단일공간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이 광활한 단일공간 속에는 과거,현재,미래라는 복합적 시간과 더불어 하늘,산맥,강물,매화 등의 여러 사물 공간들을 내포하고 있다.앞에 든「호수」나「자야곡」같은 단일공간은 폐쇄적이거나 황폐화된 현재의 비관적 모습이지만,「광야」의 공간은 그런 것을 극복한 미래의 유토피아로써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총체적으로 통합된 단일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3) 공간과 시적 추체
다원공간이건 단일공간이건,그것이 절대공간이나 기하학적인 추상공간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서의 공간,시적 주체의 삶이 현존하며,그 삶이 그 상황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이육사의 시적 공간의 특징이다. 즉 바람직한 삶이건 바람직하지 못한 삶이건 간에 이육사 시의 공간은 객관적 무기적 공간이 아니라,인간이 있는 휴머니즘적 공간,상징화된 역사가 내재하는 그 속에는 고통,수난,좌절,절망,방랑,죽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주체적 의지에 몸부림과 더불어 꿈,염원,희망,이상이 있는 세계이다. 시의 바깥에 있는 식민지화한 조국의 현실 및 역사의 모순이나 부조리와 병존하면서, 그것을 반영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육사의 시의 공간에는 시적 주체로서의 자아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황혼」,「청포도」,「연보」,「여정기」등에 보이는 일인칭 화자인 '나'는 곧 시적 주체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고,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일제에 의한 타자화를 거부하는 '민족적 자기'인식의 주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작품속의 시적 주체를 통해서 인간 이육사 자신의 현실적인 삶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역사주의자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형식주의 일변도로만 나아갈 필요는 없다. 이육사 시의 공간에는 '나'라느 시적 주체 외에 다른 사물들 즉 동식물이 등장한다.'식물'이나 '동물'이 단지 객관적 사물에 지나지 않느냐,그렇지 않으면 시적 자아나 역사적 상황의 싱징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런데 식물이나 동물 또는 그밖에 다른 자연의 사물이 의인화되어 그 작품의 중심적인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시적 자아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의 '식물'이나'동물'또는 그 밖의 사물은 그 작품의 배경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주체의 역사적.현실적 의미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항상 앓는 나의 숨결이 오늘은
해월처럼 게을러 은빛 물결에 뜨나니
-「파초」중 제1연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교목」중 제1연
어느 사막의 나라 유폐된 후예의 넋이기에
몸과 마음도 아롱져 근심스러워라
-「반묘」중 제1연
위 시들은 모두 식물이나 동물이지만, 인격이 부여된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이 상징이 배경이 되고 그 배경 속에 시적 주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징 자체가 바로 그 작품의 내적 외적 이미지로 다시 말하면 상황 속에 인격적 주체나 다름이 없는 차원에서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는"나는 파초다","나는 한 그루 고목이다","나는 한 마리의 반묘다"라는 명제가 묵시적으로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파초'나 '교목'이나 반묘는 시적 대상의 레벨에서 시적 주체의 레베로 다시 시인자가의 레벨로 격상될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3. 물과 뭍의 공간, 고원, 하늘, 통합의 공간
1) 물의 공간
이육사 시의 전체를 구성하는 정신적 공간 내부의 하이어라키를 살펴볼 차례다. 거러한 계층의 가장 낮은 공간은 '물'의 레벨이다. 이육사 시에는 종교와 과련된 작품이 거의 없으므로 물(바다,호수,강)이하의 하강 공간,즉 지하나 지옥의 세계로 더 내려가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도 하강,추락,죽음,상실의 이미지들이 있지만,그러한 부정적 이미지의 하위 공간은 수면의 레벨에서 끝난다.
이 시인의 내면에 정착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엇볼 수 있다.
(A) 큰 강 목놓아 흘러
여울은 흰 돌쪽마다
소리 석양을 새기고
-「소년에게」중 3연
(B)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 밤
앞 냇ㅅ강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르던 노래는 강건너갔소
- 「강 건너 간 노래」중 1연
(A)의 강은 목놓아 울면서 흐르고, 그 여울은 흰 돌쪽에 '석양'을 새기고 있다.
기쁨과 희망으로 평화롭게 흐르는 에덴의 강물이 아니라,자기(또는 민족적 자기)의 삶의 아픔이나 한을 목놓아 울면서 기슭의 바위에 포말로 부서지는 좌절의 강이다.
(B)의 '강'은 대낮이 아니라 밤의 강이며, 쨍쨍 얼어붙은 동토의 상황으로서 시적주체가 이러한 동토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는 강 저쪽으로 건너가 그곳의 불모지를 소생시키는 힘이 되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지게 된다.
이육사의 강은 생성과 발전을 보장하는 흐름의 연속체가 아니라 포말로 부서지는 단절의 이미지이며,재생의 노래도 강 저쪽으로 울러 퍼져서는 소멸되는, 말하자면 아픔과 죽음에 이르기위한 경계나 계기가 되어 있다. 식민지하의 역사적 현실과 상징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C)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로 밀항하는 짱크와 같애
소금에 절고 호수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렀던 밤 암초를 벗어난 폭풍과 싸워가고
전설에 읽어본 호반도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이 비쳐주지도 않았다.
-「노정기」중 제2,3연
(C)의 공간은 '바다'이지만, 여기서도 '강'과 마찬가지고 삶의 긍적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젊음의 보람과 희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삶의 현장이 아니다. '짱크'를 카고 이역으로 밀항하고,태풍이 위협하며,남십자성마저도 비치지도 않는,방향을 잃은 도피나 고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독백」에도 '바다'의 공간이 보이지만 갈매기처럼 유랑하고,선창마다 푸른 막을 치고 향수의 촛불을 태우며,밤마다 무지개만 사라지게 하는 절망적인 이미지다.
(D)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참아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교목」중 제3연
(E) 때로 백로를 불러 휘날려 보기도 했지만
그만 기슭을 안고 돌아누어 흑흑 느끼는 밤
- 「호수」중 제2연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혹한 세월에 불타면서 성장한 교목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호수'속에 깊이 거꾸러지는 모습은 너무도 처참하다.(D)'호수'는 현실의 모든 삶이,암담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모든 염원이 좌절되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징이다
(E)의 '호수'는 삶에 대한 역기능의 의미만 지니고 있고,초극의 비상의 꿈꾸지만 그것도 좌절되며 삶을 등지고 돌아 누어 자주빛 안개에 싸여 흐느껴 우는 것이다.
2) 뭍의 공간
이육사의 시의 공간의 제2단계는 '뭍'이다. 물의 레벨에서 한 단계 상승하면 뭍, 즉 대지나 평지의 레벨이 된다. 뭍이라고 해서 물의 레벨과 완전히 구별되는 공간이 아니라 사실상'물'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한 단계 상승한 연속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뭍에는 태어나고 성장한, 그러나 소외된 텅 빈 '고향'이 있고,지평선 너머로는 불모의 '사막'이 있으며, 고난과 비정적인 역정을 상징하는'길'이 있다.
(A)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처럼 발목을 오여쌌다.
-「여정기」중 제4연
(B) 첫사랑 흘러간 항구의 밤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
-「연보」중 제4연
쫓기고 지친 물의 공간에서는 그리운 것이 지평선이겠지만 그 지평선에 상륙하자 마자 더러운 물이 썩어서 고인 시궁치가 열대 식물처럼 발목을 구속한다. 발목이 오여싸이면 자유로운 보행이 안되고 활발한 삶의 행동이 저지되기 마련이다. 그리운 지평선도 결국은 역기능적인 바다의 연장에 지나지 않다. 바다 끝이 뭍에 닿는, 물과 육지의 경계 지대에 '항구'가 있다. 출발지요 기착지이며 낭만이 있지만 그 낭만도 덧없이 흘러가고 오히려 눈물이 섞인 술로 타락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뭍에는 고향이 있고, 고향은 조국이 내재된 제유다. 「자야곡」에 보이는 고향은 찬란한 '수만호의 빛'으로 번창해야 할 고장이나, 지금은 나비 한마리도 찾아들지 않는 절망적인 무덤이요, 그 위에 이끼만 푸르다. 슬픔과 그리고 자존심을 삼키는 꿈만 있고,옛날의 들창에는 짠 소금이 저려 있으며, 바람과 눈보라가 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니 독주나 마시며 덧없이 돌아가는 발자국 소리만 공허하게 울리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C)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우에
간 ㅅ잎만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
거미줄만 발목에 걸친다 해도
쇠사슬을 자아 맨 듯 무거웠다
-「연보」중 제6,7연
(D) 내 골ㅅ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 드리노니
-「황혼」중 제1연
뭍에는 고난의 역정을 상징하는 '길'이 있고,죄수처럼 고립.유폐된 '골 ㅅ방'이 있다. 작품「연보」에는 어릴때 버려졌던 돌다리목,강 언덕의 마을, 텅빈 고장,그리고 혹한의 서릿길과 눈길이 있다. 소외와 고독과 허무와 고난만이 있는 공간이다.
골방은 비록 황혼을 맞아들이는 때도 있기는 하지만 갈매기처럼 외로운 곳이다. 현실로부터 격리.단절.소외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황혼을 통해서 삼림속의 수녀,세멘트 장판 우의 수인,고비 사막의 행상대,그리고 아프리카 녹음 속의 토인과는 삶의 근원적인 조건에서 서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모두 타지화된 어두운 역사적 현실 공간과 병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3) 고원의 공간
평지인 뭍에서 한 단계 높은 공간이 '고원'이다. 고원은 현실주의의 지배를 짙게 받는 평지에서 벗어나서 하늘이나 태양이나 별에 더 가까이할 수 있는 상승 세계이다. 따라서 이 레벨에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의 극복이나 타자의 지배로부터의 초월이 가능한 형이상적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지점이다.
이육사의 경우 평지의 연속으로서 핍박을 받아 ?기는 막다른 지점이기 때문에 극복과 초월을 위한 형이상적 노력을 시도해 보나 불가능한 지점으로 나타난다. 이육사 시의 압권이라고 볼 수 있는「절정」은 평지인 뭍에서 한 단계 더 높은 그러나 여전히 뭍의 레벨이 상징하는 삶의 고통이나 절망의 극한 상황을 제시한다.
이 절정의 고원은 극복도 초월도 불가능한 바다와 뭍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 불가능의 강도가 점증하는 더 높은 레벨의 공간일 따름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미춤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절정」전문
이 "절정'의 상황은 최후의 의존처이며 형이상적 실재인 하늘도 끝나고 계절도 죽음인 혹한의 겨울이며, 사람이 살기 어려운 북방의 극지로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고 더 이상 생존유지도 어려운 곳이다. 진퇴유곡, 절체절명의 이 공간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기도나 어떤 순응의 자세를 취해야할 텐데, 이 절박한 위기의 상황은 그런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지점을 내어 주지 않는다.
이육사의 시에서 무지개의 이미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에서나 뭍에서나 ?기고 혹은 도피하고 위축되는 상황 속에서도 무지개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암시한다. 비록 종교적 신앙의 밑받침은 없으나 육사의 시에 일관되는 긍정적 이미지다.
(A) 무지개 같이 황홀한 삶의 영광
죄와 곁드려도 삶즉한 누리
-「아편」중 제5연
(B) 그리고 새벽 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여지세
-「파초」중 제7연
(C) 밤은 옛ㅅ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 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 건너 갔소
-「강 건너 간 노래」중 제5연
(A)의 무지개는 황홀한 삶의 광영과 어울릴 수 있는 긍정적 이미지다. 그리고 무지개와 같은 황홀한 삶의 광영은 죄오 동반해도 살만한 보람이 있다.
(B)의 '무지개'느 새벽 하늘 어디에 무지개가 서고 그 무지개를 밟고 이별한다면 이별도 반드시 슬프거나 절망만은 아닐 것이다.
(C)에서는 아름답고 고운 '무지개'가 비유의 한 구성부분으로 도입되어 있다. 무지개는 황홀한 광영의 삶이며, 이별조차도 기쁨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것이 표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원의 공간에서 볼수 있는 무지개는 이육사의 역사적 상황속의 미래에 대한 초월적, 형이상적, 심미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4) 하늘의 공간
이육사 시의 공간의 가장 높은 마지막 단계는 '하늘'이다. 하늘에는 태양, 별,달과 같은 이미지들이 있고, 갈매기나 백조와 같은 비상의 이미지들도 있다. 물에서 고원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의 공간은 모두 하늘 아래에 있다. 이육사의 시에 물 이하의 지하나 지옥 공간이 없는 것과 같이 하늘 위에 별도의 형이상적 천국 공간은 없다.
이육사에게 는 유교 외의 어떤 신앙이나 종교적 체험이 없었던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교적 현실주의, 인문주의에 자기의 설 자리를 설정했던 것이다.
(A)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절정」중 제2연
(B) 사막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먹은 별들이 조상오는 밤
-「강 건너 간 노래」중 제3연
(C)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청포도」중 제2연
(D) 까막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광야」중 제1연
위에 시는 모두 '하늘'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A)(B)에서의 '하늘'은 현실이나 역사의 부정적 의미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의미로 상징되어 있다.
(A)에서는 '하늘'이 하늘로서의 절대적,보편적 원리로 존재하지 못하고 북방의 극한 저점인 고원에서 끝나므로 한계가 있고 (B)에서는 사막을 덮고 푸른 하늘이 오히려 눈물먹은 별들을 조상하듯이 내려보내고 있으므로 구원의 원리가 결여된 하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C)(D)의 하늘은 새로운 세계의 개벽이나 창조를 암시하는 근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같이 이육사의 시에서 보여주는 '하늘'의 상징 체계는 무한과 유한,완전과 불완전의 이중 구조임을 알 수 있다.
5) 통합공간
앞에서 물->물->고원->하늘로 이르는 각 레벨의 공간 상징을 단계적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한편의 작품이 물이면 물,뭍이면 뭍이라는 명백한 구획을 그은 공간 구조로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편의 작품 구조속에는 이 모든 레벨의 공간이 뒤섞여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불과 20여편 남짓밖에 안되는 이육사의 작품을 이같이 각 공간 구조의 레벨로 체계화해서 고찰한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그의 작품의 흐름이나 전체 구조를 훼손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는 그의 치열하고 고매한 정신의 상징 체계를 명백하고 정연하게 질서화 하여 제시할 수 있다.
만약 한편의 작품 속에 각 공간 레벨이 다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이육사의모든 작품이 다 통합된 공간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히 타자화로 전락된 어둔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의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상징공간만 통합된 공간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가장 중요한 작품이 "청도포""광야""꽃" 등이다. 이 세편이 이육사의 대표작이다.
(A)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청포도」중 제3,4연
(B)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광야」중 제1연
(C)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은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꽃」중 제1연
이상 3편은 모두 물-> 뭍-> 산맥 ->하늘 등 공간의 점진적 상승 레벨 전체를 통합한 세계를 보여준다. 통합공간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A)의 "청포도"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상하의 계층질서를 암시하면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고 있다. 때는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그 청포도는 마을의 전설이요, 염원하는 보편적 진리의 하늘이 꿈꾸는 풍성하게 결실된 상징이다. 시적 주체와 더불어 이 청포도의 향연에 참여할 객체는 청포를 입고 하늘 밑에서 가슴을 연 바다로 곱게 밀려오는 흰 돛단배를 타고 올 것이다.
청포도에는 가장 높은 공간 레벨인 하늘의 질서 아래 바다,고장의 공간레벨 그리고 그곳의 시적 주체와 객체 모두가 미래가 실현되는 간소한 향연의 축제에 참여하는 이상적 상징 세계가 통합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B)의 "광양"에서도 가장 높은 보편적 질서와 공간인 하늘이 맨 먼저 열리고 그 아래에 산맥과 마을과 그리고 다시 그 아래의 바다와 강물들의 여러계층의 하위 공간들이 하늬 새로운 이상적 상징 세계로러 통합적 공간을 이루고 있다.
눈이 내리나 매화 향기가 이 공간 전체에 스며 확산되고 있으므로 시적 주체는 '노래의 씨'를 뿌려야 할 계절이다.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탄 초인이 있을 것이고 그 초인이 이 광야에서 그 노래를 목 놓아 불러 장중하게 울려퍼질 이상세계는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이육사의 통합적 공간 세계는 유구한 시간과 더불어 규모가 크고 웅장하고 광활한 민족적,우주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C)의 '꽃'에서도 가장 높는 질서와 공간인 하늘과 꽃과 뿌리를 내린 땅과 북쪽의 쓴드라,그리고 용솟음치는 바다라는 상하 계층의 여러 공간들이 통합된 하나의민족적,우주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방이 하늘이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거나 북쪽의 눈이 내리는 동토에서도 새로운 세계의 소생과 창조를 약속하는 꽃이 핀다.
기적적으로 빨간 꽃은 피어나 하늘과 땅을 하나의 세계로 통합하는 상하의 계층관계를 연결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바다가 생명의 근원적 상징인 '꽃'을 중심으로 통합된 공간이 우주적,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형성된다. 꽃은 온갖 타자들의 적대적 탄압과 폭력에도 죽지 않는,생명의 영원한 보편적 진리요 아름다움이다.
이상의 3편의 작품은 가장 높은 보편적 질서인 하늘의 공간 아래에 물 ->뭍->산맥 등의 상하 계층의 다양한 공간이 하나의 우주적 공간으로 형성되고 있다.
4. 결 말
이 글은 이육사의 시 전체를 '공간'체계의 관점에서 분석해 본 것이다. 이육사 시의 공간에는'단일공간'과 '다원공간'이 있다. 단일공간은 시적 주체와 그 배경이 단일한 것을 말한다. '다원공간'에는 시적 주체가 현존하는 공간과 시적 주체가 현존하지 않으나 그 주체의 회상이나 어떤 사물과의 관계에 의해서 연결되는 공간이 다원적 .복합적 으로 존재한다.
'변형 다원공간'이다. 시적 주체가 내부에서 이동하면서 형성된 복수의 공간이 병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순수 단원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육사 시에는 물->뭍 ->고원 ->하늘로 상승하는 4단계의 상징 공간이 있다. 이러한 단계의 레벨은 서도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속선상에서 상하 계층의 체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각 레벨의 공간은 삶의 현실,특히 군국주의와 식민지 현실이 상징적 체계로 반영되어 있고,동시에 그러한 타자화된 현실 속에서의 극심한 삶의 갈등 체험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육사의 대표적인 작품은「청포도」「광야」「꽃」이다 물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간 및 시간의 레벨을 통합한 이상주의적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현재,미래의 시간까지 통합된 이 작품은, 현실의 꿈과 의지를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민족 또는 인류가 새로운 세계로 통합된 비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출처 : 한국현대시인 특성론(국학자료원,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