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아, 미안!
슈퍼 주방용품 코너에 가면 비닐 제품이 그득하다.
그 많은 것이 모두 필수품이고 소모품이다. 자연히 떨어진 것을 채워야 하니 돌아올 때는 항상 장바구니 한자리를 얘네들이 차지한다. 위생백, 위생 장갑, 지퍼백, 크고 작은 비닐봉지... 많은 것들이 모두 투명하고 튼튼한 비닐 제품이다. 환경문제, 소비문제가 매스컴을 타면서 요즘 백화점에서는 친환경 봉지라 하여 누런 종이봉투를 내민다. 부피가 있는 것을 담으면 찢어지고 무거운 것을 넣으면 밑이 빠지기도 한다.
그 옛날 내가 어렸을 때 비닐봉지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아버지가 한 잔 하고 오실 때, 빈 봉지만 가슴에 안고 들어오셔서 “바나나 어디 갔지?” 하고 찾으시는 걸 몇 번 봤다. 술에 취한 아버지 걱정보다 바나나 없어진 게 더 속상했다. 그때는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다니는 분들도 많았고, 지게 군이 있어 무거운 것은 날라주는 분들이 야채 가게나 과일 점에 늘 대기하고 있었다. 시대가 바뀐 지금, 이고, 들고, 지는 행위는 잊힌 유물이다,
비닐을 거부하면 생활이 무너질 것 같다. 옛날 엄마들처럼 손도 거칠거칠할 거고, 보자기에 싸든 지 자배기에 담아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니 그것은 못할 짓이다.
우리 집에 지하실이 하나 있다. 옛날에 지은 집이라 그런지 문짝이 허술해서 그곳이 고양이들의 놀이터다. 신이 난 그 녀석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야옹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새끼를 자주 낳아 가족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떨 때는 삼대가 들락날락할 때도 있다. 생각 끝에 나는 동네 아저씨에게 의논해서 고양이 퇴치 작전을 계획했다. “야옹아! 미안해!” 그 녀석들을 강제 철거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걸렸지만 동네 분들이 뭐라기도 하고 나도 힘들어서 그 아저씨에게 맡겼다, 그랬더니 그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두껍고 튼튼한 비닐을 넉넉히 가져와 고양이들이 드나들만한 구멍 상단을 못으로 박고 밑에 늘어진 비닐은 각목으로 둘둘 말아 무거운 벽돌로 눌려 놓았다. 그날부터 그 많던 고양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싹 없어졌다. 조용해져서 마음은 놓였지만 어디로 피신했는지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가끔 장독대 양지에서 노는 애들이 그 녀석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이렇게 비닐은 안전하고 튼튼하다. 마치 우리를 보호해 주는 가리개 같다.
이런 비닐이 환경을 파괴하고 소비 패턴을 자극하여 낭비를 부추긴다고 한다. 가끔 뉴스에 산더미같이 쌓인 비닐이 썩지 않고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다. 또 그것을 삼킨 물고기와 하늘을 나는 새가 죽어서 바닷가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면 환경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활에 불편함이 있어도 비닐은 지독한 독극물임이 확실하다. 이럴 때 나는 고민한다. 생활의 편리함만을 강조하여 고집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 지구를 오염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비닐 문화에서 탈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 연구가와 과학자들이 미래를 위해 분해되는 비닐을 개발 중이고 곳곳에서 비닐 사용 덜 하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참여하는 성의를 보여야겠다.
난 아직도 부엌 서랍에 비닐 랩, 비닐 장잡, 지퍼백,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가끔 딸에게 장조림,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밑반찬을 보내고 싶을 때 요긴하게 사용하니 없앨 수가 없다. 특히 통통한 에어백(뽁뽁이) 같은 비닐은 포장지로도 좋지만 겨울철 유리창에 바르면 바람막이용으로 그만이다. 바이닐 레코드판도 비닐 수지와 비닐 섬유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 하니 비닐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없어서는 안 되는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둥지를 깨고 나와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데 그것마저 못하는 내가 비겁하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나는 가방이 무거워도 내 컵을 넣고 다니고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필수품처럼 챙기는 것으로 비닐 남용을 절제하고 있다. 과연 이런 소극적인 방법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2024.4.9.)
첫댓글 맞아요^^ 안젤라 선생님^^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팝송이 실린 LP와 CD 레코드가 비닐로 만든다네요..고양이 족을 멀리 보내는 지혜도 재밌네요. 하하하.
그리고 실제로 생활 속에서 비닐 사용을 절약.실천하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 저도 가방에 비닐 봉지 하나쯤은 꼭! 갖고 다녀야 겠다고 다짐! 했습니다)
편리하고 유용한 비닐이 오늘날 많은 환경오염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알고 있으면서 말로만 외치고 불평하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엄희자 선생님처럼 작은 것이라도 적게 사용하는 일을 실제로 하고 노력을 해야지요.
따뜻한 선생님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그래서 진정성 있고 살아 있는 글이 된 것 같습니다.
다만 비닐로 고양이 퇴치 방법이 신기하고 궁금한데 잘 이해 되지 않네요.
저도 땅속 두더지를 어떻게 퇴치해야 하나 고민 중에 있어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엄희자 선생님의 대단한 글 쓰기 열정에 높은 찬사를 보냅니다.
계속 이어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