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석의 생태시 세계
자연 생태와 인간의 함수(函數)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자연 생태시의 실험적 구도
현대시에서 친환경적이거나 자연 회귀의 시법은 보편적인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경우는 흔하게 대할 수 있으나 자연 생태계를 직접 조망(眺望)하거나 그 생태계에서도 어류, 곤충류 등 특정 물체를 직접 관찰하면서 작품으로 승화한 경우는 아직 드물어 보인다.
더구나 자연환경의 파괴와 훼손으로 우리의 생태계가 손상되면서 거기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 멸종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실의 안타까움은 우리 시인들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인간의 존재문제와도 직결하는 자연 보존이 선행되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시인들의 사유(思惟)는 미래지향성을 지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의 대상으로 시적 승화가 현현되어야 한다.
여기 이를 보존하려는 배문석 시인의 의연한 결단은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생태시인’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주옥같은 우리나라 토종 민물고기 시 116편’을 묶은 시집 『詩가 된 물고기 世上』을 상재하여 세간에 이목을 집중한 바가 있다.
이번에는 그의 생태시 탐구의 후속타로 ‘행복을 꿈꾸는 나비춤’이란 부제를 붙여서 시집 『나비, 詩를 꿈꾸다』를 발간함으로써 또다시 ‘생태시인’의 위상을 확고하게 정립하면서 생태환경 사랑의 선구자의 역할을 자임(自任)하고 나섰다.
배문석 시인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지배하려는 환경들은 원시로 환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또다른 세상에 대하여 시인의 감성으로 생명의 의미를 서정에 담아 전달하고 싶었다’는 지론(持論)은 그가 일생을 두고 시와 생태계의 상관성을 실현하려는 의미심장한 인생(혹은 시인의)의 결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가 관망하는 우리의 자연은 다음 작품「시골처녀나비」와 같이 ‘순박한 꿈’과 ‘맑고 깨끗한 풍경을’ 요구하고 있다.
꿈은 순박하다.
순박하다 못해 하얗다.
너울거리는 물결에 부서지는 햇살,
그 빛처럼 영롱하다.
자연이 굽이치고
바람이 머물다 간 무채색 그루터기,
시골풍경은 그만큼 살갑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날개처럼 멋진 이 땅,
시골처녀나비가 누빈 세상이다.
지금은 텅 빈
돌담길에 묻어둔 추억 같은 빛깔,
쓰다버린 농약병과
찢겨져 나부끼는 폐비닐들이
비명을 지르며 손짓한다.
폐허로 가는 아우성, 그 무게로
짓눌린 산야의 신음소리까지
시골처녀나비는 날개에 싣고
순박한 꿈을 꾼다.
맑고 깨끗한 풍경을 달라고...
이렇게 그는 ‘쓰다버린 농약병과 / 찢겨져 나부끼는 폐비닐’에서 자연 훼손의 ‘비명’과 ‘폐허로 가는 아우성’과 ‘산야의 신음소리’를 접하게 된다. 이 ‘시골처녀나비’의 ‘꿈은 순박하다.’ 아니 ‘순박하다 못해 하얗다.’ 그러나 ‘날개처럼 멋진 이 땅’에서 버려져야 하는 ‘시골처녀나비’(혹은 인간)의 처절한 기원이 발현되고 있다.
그는 「공작나비」에서도 ‘자연을 사랑하라 / 까만 씨앗 하나 움트고 / 꽃 피면 아름답다는 걸 / 꽃씨 하나는 귀한 대답을’ 하고 있으며 ‘지구는 꿈꾸는 바다 / 억겁의 파라다이스’를 희구하고 있다.
꽃이 진다
붉은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고
소녀가 눈물 떨구듯
슬픈 소리로 꽃이 떠나간다.
유리창 너머
바람이 울고 간
그 하늘 그 청춘이
비처럼 흩날리는 서로의 계절
시들은 꽃잎들은 떨어져
유리창나비로 우화하고
소녀에게 보낸 봄은
화려한 꿈을 꾼다.
이 작품 「유리창나비」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슬픈 소리로 꽃이 떠나’가거나 ‘바람이 울고’ 가지만, 나비는 ‘화려한 꿈을’ 꾸고 있다. 이러한 나비들을 통해서 조감하는 친환경적 요소의 메시지는 우리들에게 경악심을 제시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나비’ 세계의 시적 형상화
배문석 시인은 우리의 토종 민물고기에 관해서도 그 특징과 서식지 등을 부록으로 첨부하여 우리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는데 이 시집에서는 각주(脚註)를 달아서 나비들을 일별(一瞥)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나비에 관한 교과서적인 역할도 겸하고 있다.
- 북방까마귀부전나비는 : 석회암지대의 나무가 적은 산지능선이나 정상에 서식하고 사는 아름다운 나비.
- 외눈이지옥사촌나비 : 날개 한 쪽에 눈처럼 생긴 무늬가 하나씩 있어 생긴 이름의 성이고 지옥나비는 지옥 가는 것처럼 고생고생하며 높은 산에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이 나비 의 생태 때문에 나비명이 된 그리스신화의 외눈거인(Mycalesis gotama Moore) 종 명의 나비.
- 바둑돌부전나비 : 국내 유일한 일본 납작진딧물의 분비물을 먹고 사는 순 육식종으로 바둑돌무늬가 온몸에 산재해 있어 이름 붙여진 아름다운 나비.
- 붉은목도리비단제비나비 : 날개 편 너비가 약 145mm로 대형종이며, 날개 무늬가 아름 답고 화려한 국제적 멸종 위기종 아름다운 나비.
- 별선두리왕나비 : 당면이라는 유독성분의 식물을 먹고 자라 독나비가 된 때문에 천적인 새들도 먹지 않으며, 계절풍이나 남풍에 밀려온 이국의 아름다운 나비.
이렇게 이름조차 생소한 나비들의 설명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우리 시인들도 이미지의 추출을 위해서 참고자료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나비들을 형상화하여 서정성이 깃든 한 편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나비 전문가이기도 하다.
봄빛 맛내던 솜씨로
간장독 모가지에 금줄이 걸리고
장독대 옹기마다 곰삭인 달이 뜬다.
치성 올리던 우물가 으뜸자리,
끼니가 두레박에 퍼 올려 질 때마다
손맛 뜸들이던
곰살 맞은 얼굴도 달로 뜬다.
돌담 옆 목단꽃은 붉게 벙글고
올망졸망 새끼들 눈망울에 뜬
살 오른 별은
눈물처럼 떨어져 꽃으로 핀다.
장독대 옹기마다 곰삭인
달빛이 스며 노오란 상추꽃에
수줍은 봄처녀나비,
꽃속을 누비는 술래잡기가 신난다.
--「봄처녀나비」전문
강둑에 개나리 움 부푼
옛이야기 도란거리며
바람 한 줄기 꿈을 꾼다.
살아나는 색깔마다
이른봄애호랑나비 날개에 물들어
봄빛으로 핀
산과 들을 누빈다.
숲을 깨우던 바람소리
더듬이로 헤치며
맘껏 날고 싶은 세상,
꽃바람 가늘게 흔들고 간
꿈의 뒤안에서
이른봄애호랑나비 멋진 비상이
봄 하늘을 꾸미고 있다.
--「이른봄애호랑나비」전문
배문석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나비의 멋진 세상으로 충만되어 있다. 그가 구사하는 나비의 특성은 대체적으로 자유로운 ‘비상(飛上)’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꽃 속을 누’비거나 ‘산과 들을 누’비고 있다.
그는 ‘날아보자 / 푸른 들 푸른 강을 건너가서는 / 세상 높이 오르자 / 작은 산 큰 산도 까마득이 / 힘차게 솟아보자(「번개오색나비」중에서)’거나 ‘아득한 숲에 안개 걷히고 / 깊은 골에 무지개 곱게 걸리면 / 왕오색나비는 허물을 벗고 /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른다(「번개오색나비」중에서)’, ‘날고 싶은 욕망 / 그 바다에서 껍질을 깨고 / 별박이세줄나비, 별로 뜬다(「별박이세줄나비나비」중에서)’는 어조는 이러한 ‘비상’을 꿈꾸는 나비의 속성을 현현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가 전개하는 시적 정황은 먼저 자연환경을 설정하고 그 나비의 생김새나 특유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장독 모가지에 금줄 걸리고 / 장독대 옹기마다 곰삭인 달이 뜬다’거나 ‘강둑에 개나리 움 푸른 / 옛이야기 도란거리며 / 바람 한 줄기 꿈을 꾼다’는 등의 어조는 그가 얼마나 친자연적 요소들을 투영함으로써 시적 효과의 상승을 도모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해가 좋은 날은 청경한 하늘 빛깔을
외로 기울어 몸과 날개로 받아내면서
지치면 한라산 중턱쯤 풀밭에 날개를 접고
그리움에 목이 말라 바다를 마신다.
--「함경산뱀눈나비」중에서
뇌의 심연에서 일렁이는 본능,
그 바다 깊이로
돈무늬팔랑나비가 날아간다.
오죽하면 돈 무늬를 걸치고
욕망으로 떨어졌을까
그래서 슬프다.
돈짝만한 이름을 달고
힘들게 날아야하는
팔랑나비의 날개,
자꾸만 어둠으로 추락한다.
사람들 눈먼 탐욕이 흙 갈피에 쌓여
돈무늬팔랑나비는
어릿광대 눈물처럼 떠돈다.
--「돈무늬팔랑나비」전문
배문석 시인이 나비와 연관된 사유의 중심에는 ‘그리움’이 있는가 하면 ‘눈물’도 있다. ‘그리움에 목이 말라 바다를 마신다’거나 ‘어릿광대 눈물처럼 떠돈다’는 어조가 ‘제주도 한라산이 푸른 파도에 젖’게 하고 ‘오죽하면 돈 무늬를 걸치고 / 욕망으로 떨어졌을까 / 그래서 슬프’기도 한 것이다.
그는 다시 ‘썩고 신음하는 목숨들이 / 한 껍풀씩 아리게 잘려가는 동안 / 천국을 향한 계단 밑 숲 어딘가 / 길 잃은 주검들만 쌓여간다(「꼬마까마귀부전나비」중에서)’는 어조에서는 죽음(혹은 존재)에 대한 고차원의 정서가 투영되고 있으며 ‘탄생과 소멸의 뒤안에서 / 행복과 불행의 씨앗을 고르고 / 자유와 방종의 그늘을 거두며 / 하늘과 땅위의 울림이 오기까지 / 사랑과 이별의 종착이 아니길(「큰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중에서)’ ‘세상을 기도’하고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융합에서 창출하는 공존의 메시지이며 자연을 통해서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는 그의 가치관 설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주(註)를 붙인 것과 같이 ‘큰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는 우리나라에서 국지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감소추세에 있어서 환경부 지정으로 보호하는 품종의 나비임을 감안하면 ‘날개 아래 세상을 기도’하는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어느 소녀 순정이 깃든
살며시 접고 가는 노리개 한 쌍,
날개를 폈다 접었다
햇살 눈부신 들판이 춤춘다.
큰까치수영꽃 간들어진 허리를
계곡 틈 작은 숲이 눈길 휘도록
무르익는 유월의 길목
춤추는 꽃들도 흥겹다.
--「깊은산부전나비」중에서
날개에 짜넣은 흑갈색 비단처럼
밤이 스며 몸빛 갖춘 꿈같은 세상에
점무늬 세 쌍 전설이 열리고
산굴뚝나비는 신의 춤을 춘다.
--「산굴뚝나비」중에서
이 두 작품에서는 비로소 ‘춤’이 있고 ‘흥’이 있다. ‘햇살 눈부신 들판이’ 있으며 ‘꿈같은 세상’에서 꽃들이 춤추고 나비들도 춤을 춘다. 이는 우리의 칠정(七情)을 나비의 특성과 함께 다양하게 투영하여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배문석 시인은 많은 나비들과 소통하면서 그가 체험한 삶과의 연관성을 통해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는 ‘토종 민물고기’에서와 같이 나비들의 생태계 현장에서 체득한 고차원의 지식이 포괄되어 곤충학자나 일반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시(詩)로 적시하여 전달함으로써 그가 탐색하고 추구하려는 진실을 명징(明澄)하게 정립시키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3. 친화경적 사유의 진실과 과제
지금 우리는 자연파괴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일찍이 볼테르가 말한 ‘자연은 인간이 베푸는 교육 이상의 영향력을 그 속에 품고 있다.’는 교훈을 무시한 채 인간은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20세기를 넘어서면서 급속하게 발전한 문명의 혜택은 그만큼 자연을 훼손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공장 폐수가 흘러 강과 바다가 오염되어 인간이 물을 식용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수중 생물들이 죽어갔다.
또한 매연과 공장 굴뚝의 시커먼 연기는 대기를 오염시켜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리는가 하면 이상 기온이 이 지구를 엄습하여 얼마 후면 지구가 파멸한다는 중대한 위협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국가적인 대책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있지만 기형이나 돌연변이의 생물이 탄생하거나 멸종되는 생물을 복원하는 일에는 아직도 미흡한 것 같다. 이러한 일련의 위기를 외치는 시인들의 진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 시인들도 시의 본령(本領)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날아보자,
푸른 들 푸른 강을 건너가서는
세상 높이로 오르자.
작은 산 큰 산도 까마득이
힘차게 솟아보자
올라가서는
하늘에 감춰둔 무지개를 꺼내다
오색물 날개에 곱게 들이고
어둠을 걷어내는 에오스여신처럼
싱그러운 새벽을 열자.
자연과 인간 그 끄나풀로부터
더럽고 추악한 욕망을 사멸하는
관능의 칼을 뽑아
숲을 다듬고
사람과 미물 사이에서 해악을 잘라내자.
시궁창 같은 탐욕의 늪에서
그 질긴 오염을 걷어내고
가쁘게 숨 쉬는 생명의 뿌리로 내려가자.
가느다란 생명으로 내려가서는
해오라기가 숨을 거두며 마지막 내는
슬픈 소리를 들어보자.
자연을 끌어안고
자신이 삭아 새싹으로 돋을
신음소리 심장에서 퍼 올리자.
아름다운 번개오색나비야.
배문석 시인은 이 작품「번개오색나비」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푸른 들 푸른 강을 건너가서는 / 세상 높이로 오르’기 위해서 ‘날아보자’고 어조를 높이고 있다. 이것이 자연 회복과 자연 사랑을 위한 호소가 가미된 그의 시적 진실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욕망’과 ‘사람과 미물 사이’의 ‘해악’과 ‘시궁창 같은 탐욕의 늪’과 ‘그 질긴 오염을 걷어내고’ ‘가쁘게 숨쉬는 생명의 뿌리로 내려가’서 ‘해오라기가 숨을 거두며 마지막 내는 / 슬픈 소리를 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것이 그에게서 분사(噴射)된 ‘자연을 끌어안고 / 자신이 삭아 새싸으로 돋을 / 신음소리 심장에서 퍼 올리’려는 절규를 들을 수 있게 한다. 또한 그는 ‘얇은 날개로 힘들다는 것, / 하얀 무채색이 숨을 막는다는 것도 / 얼마나 오른 뒤에야 깨우치고 / 팽나무 풍게나무에 핀 꽃이 목숨이란 걸 / 얕잡아 본 자신의 후회가 / 올라 본 후에야 깨닫는 속물 // 꽃피고 숲이 짙게 푸르러진 까닭이 / 섭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왕오색나비」중에서)’ 단정함으로써 그의 절규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우리의 고전 민요에서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가자 /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가자’는 자연 회귀를 통한 인간의 감화(感化)라는 신선한 충격이 잠재해 있으나 현대문명의 비극은 자연파괴에서 출발한다는 근엄한 현실을 외면하는 우리 인간들의 비극, 그 비극적 사유에 대한 각성이 아쉽기만 하다.
산사엔 청아한 바람과 아람드리 나무들과
스님만 사는 줄 알았더니
중생들도 살고
풀벌레도 살고
꽃들도 살더라
부처나비가 나는 시공도 있더라
부처를 닮아
다소곳이 합장하는 날개가
눈부시다는 부처나비,
목탁 치듯 톡톡 튀며 날아
죄업을 씻어내는 동자승이 될지니
어울려 사는 사바세계가 그러하듯
염주알 하나씩 풀어가는
버려야 얻는다는 법어대로
합장하는 심중에
소원대로 이루어질지어다
깊게 우거진 숲에서
바람이 열고간 산사 풍경소리
자연이 깃든 풀빛 세상이여.
배문석 시인은 결론적으로 「부처나비」에서와 같이 ‘자연이 깃든 풀빛 세상’을 위한 그의 고뇌와 갈등들이 나비를 통해서 강렬한 메시지를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청아한 바람과 아름드리 나무들과’, ‘중생들’과 ‘풀벌레’와 ‘꽃’이 공존하는 자연,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이며 인간이 순응해야 할 미학이다.
배문석 시집『나비, 詩를 꿈꾸다』를 관류하는 나비의 꿈과 진실은 바로 배문석 시인 자신의 꿈이며 실현해야 할 진실이다.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神學)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파스칼의 『팡세』가 아니더라도 우리 생명과 직접 상관성을 갖는 자연은 우리가 복원하고 보존해 나가야한다는 근엄한 진리를 다시 일깨우는 교시적인 작품들이며 동시에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