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42~50
제4장
동일한 주제의 연속: 내맡김과 그것의 필요성 그리고 그것의 경이로움에 관하여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때에는, 더 이상 말로써 우리 자신을 변호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말은 우리의 생각만을 나타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말도 전혀82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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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들을 뭣에다 쓰겠습니까? 우리가 한 일에 대한 동기를 해명하는 데 쓸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동기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동기는 우리를 행동하게 했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우리가 감지했던 그 근원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이 또 다른 순간을 야기하는 원인을 이끌어 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이 신적 연쇄 작용 속에서 상호 지원하고, 모든 것은 단단하고 견고합니다.
그리고 앞서서 벌어지는 일의 이유는 그 뒤에 오는 결과를 봄으로써 알게 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생각하는 삶, 상상력으로 채워진 삶, 말이 홍수를 이루는 삶이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모든 것들이 영혼을 사로잡고, 영혼을 양육하고, 영혼을 지탱하지 못합니다.
영혼은 더 이상 이 모든 것에 따라 처신하지도 않고 자신을 지탱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어디로 걸어갈 것인지 더 이상 알지도, 예견하지도 못하며, 피곤할 때 기력을 회복하고 길에서 겪는 불편을 견뎌내기 위해 더 이상 생각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하는 그의 가장 내밀한 감정 속에서 벌어집니다.
그의 발 아래 길이 열리면, 그는 그 길로 들어서서 주저함 없이 그 길을 갑니다.
그는 정결하고 거룩하고 단순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의 계명이라는 곧은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이것은 하느님 그분에 대한 순수한 애착으로써, 그는 이 길의 모든 지점에서 바로 이 하느님을 끊임없이 발견합니다.
영혼은 더 이상 책이나, 끊임 없는 질문이나, 내적인 염려를 통해 하느님 찾기를 즐기지 않으며, 지면(紙面)을 통한 것들이나 헛된 논쟁들을 포기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고 그를 찾아오십니다. 영혼은 더 이상 그분께로 인도하는 길이나 방도를 찾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그에게 그 길을 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영혼은 그 길이 이미 나 있고 또 완전히 다져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의 몫으로 남겨진 일이라고는, 그가 지나치는 길에 보게 되는, 또 끊임없이 연달아 그의 앞에 등장하는 다양한 대상들을 통해,
매 순간 매 발자국마다 직접 그에게 당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붙잡을 수 있도록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시간 속에 출몰하는 그림자들의 흐름 속에서 신적 영원성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 그림자들은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감추고 있는 영원자는 항상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영혼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집착해서는 안 되지만, 필사적으로 섭리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십자가와 명시적 의무들과 전혀 의심할 바 없는 이끌림이라는 길을 통해 한결같이 하느님의 사랑을 뒤따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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