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하면 인격이 높아지고, 기도를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신중이란 화엄성중님을 말하는데 삿된 마구니를 꺾고 정법을 수호하는 일체의 선신을 일컫는다. 이 신중님께 기도 예경하는 것은 일체 존재에 대한 예경이기도 하며 또한 사소한 장애 정도는 신장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소박한 발원이다.’
여기에 ‘신장의 힘’이란 말이 나와 있습니다.
법요집 65페이지 신중유치 편을 보시면 ‘항상 보살펴 주옵시는 신령하신 화엄성중님, 자재하신 신통력과 끝없는 위신력으로 삿된 마구니를 꺾고 정법의 깃발을 높이 세우시니 그러므로 저희 정법 수행자들은 귀명정례 하나이다.’
여기에서도 신통력, 위신력이라는 표현으로 ‘힘’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신통력과 위신력, 우리가 신중기도를 하는 것은 신중의 힘을 빌리는 것, 바로 신중의 가호지묘력을 우리가 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삼국유사를 읽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그런 사기(史記)들이 있는데 삼국유사에 보면 ‘환인(桓因)이 제석천야(帝釋天也)라’. 환인이 곧 제석천이라 했고, 제석천은 바로 신장의 한 부류입니다. 환인이라고 하는 신장이 환웅을 지상으로 내려 보낼 때 꼭 세 가지를 주었습니다.
첫째, 거울을 주었다고 했어요. 거울이라는 것은 바로 지혜, 반야 그런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준 것은 칼입니다. 칼이라 하는 것은 힘을 상징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많이 변해도 칼, 총 이런 것은 힘을 나타냅니다. 힘이 없으면 나라도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고 가정도 그렇거니와 모든 영역은 힘으로 유지되고 존속되는 것이지요.
환인이라는 신장이 환웅을 내려 보낼 때 칼을 줬다는 것은 힘을 줬다는 겁니다.
아까 우리가 읽었던 내용에도 보면 신통력, 위신력, 가피지묘력이니 가호지묘력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이는 부처님의 십력, 열 가지 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힘을 국력이라 하지요. 현재 우리는 국력이 모자라서 애를 좀 먹고 있는데 힘이란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이지요.
세 번째, 환인이 환웅에게 준 중요한 증거물이 뭐냐면 방울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방울은 곧 기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인물이 누구이지요? 네, 일연이라는 스님이었습니다. 일연스님께서 삼국유사 속에, 물론 창작한 내용도 있겠지만 민간에서 내려오던 많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은 포교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님 말씀을 손쉽게 온 세상에 퍼뜨릴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가 이 삼국유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삼국유사는 포교서(布敎書)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포교서에 가까운 삼국유사 내용을 보면 첫머리에 이러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서 방울을 줬다는 것은 모든 백성들이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거울이 상징하는 반야·지혜를 증득하도록 애를 써야 되겠고, 두 번째는 칼이 나타내는 힘을 지녀야지요.
동방을 지키는 지국천왕도 칼을 들고 있지요? 바로 힘의 상징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힘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기도에 대해서 더 말씀드리면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살아있음의 그 의미가 바로 기도에 있다고 보시면 돼요. 우리가 밥을 통해서 육체적 자양분을 섭취하지만 정신적 자양분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가히 알 수 없는 자양분을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 인격 3구조라는 말을 쓰는데 인격 3구조라 함은 지知·정情·의意 즉, 지식과 정서와 생각, 의지를 말하는 거지요. 이 지· 정 ·의 라 하는 인격 3구조를 가만히 뜯어보면 기도를 하는 사람의 인격과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의 인격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갖추게 되는가?
첫째는 아까 위에서 거울이 나타내는 뜻이 반야지혜라 했는데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반야지혜를 갖게 됩니다. 사람이 명철해지게 된다는 그런 얘기지요? 기도와 참선이 궁극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선정일치禪淨一致 되는 점이 있습니다.
즉, 화두선을 통해서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또 다라니나 관음정근이나 사경이나 또는 절을 많이 함으로써 그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고요해져서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되었을 때 거기에 지혜가 드러나게 되는 거지요?
그 지혜는 우리가 말하는 반야, 지혜 이렇게 표현하는데 바로 기도를 통해서 증득된다는 것이지요.
만일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물론 전생부터 타고난 지혜가 많은 사람은 지금 사는 것과 같이 앞으로의 삶도 큰 문제는 없겠습니다마는 이생에 와서 인간의 몸을 받아서 내가 쭉 살아가는 동안에 알파 되는 부분이 적다는 거지요. 더 보태어지는 부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과거의 생이 어둡고 지혜가 없어서 많은 곤란을 겪었다하더라도 이제부터는 기도를 통해서 밝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 지혜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야를 곧 광명이라고 하는데 반야광명을 갖게 되면 세상이 환하게 보이지요.
바로 기도는 지·정·의 라고 했을 때의 지知이며 지혜의 에너지를 솟게 하는 원천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다음 ‘정情’ 이라고 하는 것은 ‘뜻 정情’자를 쓰는데 정서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사람이 좀 따뜻해집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은 좀 다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불자가 보면 어려운데 가서 봉사도 하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이 불쌍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애를 쓰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서가 풍부해지게 된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들락날락 하는 고은氏, 이런 분들도 사실은 수행을 많이 하는 불자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오랫동안 절에서 수행한 스님출신입니다. 고은氏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주 유명한 시인이지요. 전직 스님이셨어요.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당 서정주 선생님도 다 불심이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도 기도를 통해서 정서가 풍부해지게 되는 겁니다. 미당 시인은 돌아가셨습니다마는 마지막 돌아가실 때 방안을 비추는 것을 보니 염주를 탁 들고 있어요. 염주를 책상 위에 늘 올려놓은 모습은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면 그렇게 되기 힘들어요.
아무튼 기도하게 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짐으로서 행복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어떠냐? 이때도 선천적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선천적인 것은 과거 지난 것이니 놔두고 지금 현재 개인으로 보더라도 기도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는 행복감, 행복지수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기도를 하게 되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됩니다.
스스로도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삭막합니다.
스스로도 삭막한 것을 느끼게 돼요. 절에 와서 기도라도 열심히 해 봐요. 그러면 내 마음이 좀 촉촉해지는구나! 그런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만일에 절에 다니다가 무슨 계기로 인해 절에 안 나오게 된다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상당히 세속에 시달리면서 황폐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도 내 마음이 삭막해지고 내 마음이 황폐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지·정·의 가운데 ‘의’, 의지인데 기도하면 의지가 대단히 굳건해 집니다. 살아가면서 성공의 큰 관건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이 의지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의지, 그런 것이 꼭 필요해요. 아주 극단적인 운동을 하는 선수가 있지요? 보면 대부분이 종교가 있고 또 불심을 가진 우리 불교인이 대단히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는 초월적인 의지가 대단히 필요 할 때가 있어요. 그 초월적인 의지가 바로 기도에서 비롯됩니다.
의지가 굳건해짐으로써 자기가 하고 있는 분야에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뭘 하든지 간에 자신감이 살아 있어야 돼요. 지금 나의 형편이 좋지 않다하더라도 자신감만 살아 있으면, 그리고 의지만 굳건하면 반드시 그 어려움을 타개하고 훌륭하게 지금보다는 100배, 1000배의 더 좋은 유익한 그런 일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기도로써 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그것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삶은 기도하지 않는 삶보다도 훨씬 더 박진감 있고 다이나믹하고 그렇다는 겁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봤을 때도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와 기도하지 않을 때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의지도 약해지고 자신감도 없어져요.
우리가 가정사가 힘들 때 절에 와서 기도하는 것도 다 자신감을 얻고 자기의 의지를 부처님 전에 고해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어쨌든지 간에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지·정·의(知·情·意) 라고 하는 인격 3구조를 완전히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 인격의 완성을 보게 하는 것’이라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그리하면 인격이 원만하고 원만해져서 최고의 인격자인 부처님을 닮아 가게 되고 부처님 세계에 드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이 가지고 계신 두 가지 큰 특성이 있으니 그것은 복덕과 지혜이지요. 부처님처럼 복덕도 원만해지고 지혜도 충만한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것을 두고 우리가 근원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바로 근원입니다. 근원의 자리에 계합해 가는 일이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이 굳건해지고 기도하는 마음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면 삶이 별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여(如如)합니다.
그 사람은 언제보아도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까불거리지 않습니다. 이랬다저랬다 변덕부리지 않습니다. 늘 그 자리에 여여한 자리에 있으려면 바로 기도를 하셔야 되고 바로 여여한 자리에 들었다는 것은 근원의 자리에 계합했다 그런 얘기입니다.
살다보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점도 있지요. 우리절·대관음사라 하더라도 어떻게 자기 마음에 다 들 수 있겠습니까?
와서 보면 방석 놓여진 것도 삐뚤삐뚤해서 마음에 안 들고 영단에 꽃이 쭉 있습니다마는 영단의 꽃도 이리저리 질서 있게 안 해놓고 아무데나 갖다놓고 그럴 수도 있을 테고 , 그리고 법당 바닥은 지저분할 수도 있습니다.
보면 지엽적인 조그마한 것을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가 할 수도 있는 문제고 자기가 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두고 남을 핑계 되고 남을 탓하고 모함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지만 영남불교대학 대관음사는 큰 나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아주 큰 나무라, 큰 나무의 나뭇잎을 보면 뒤에 진딧물도 있고 자벌레도 있고 개미가 돌아다니면서 잎을 갉아먹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그걸 보고 전체 나무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 영남불교대학은 지금 전체적으로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지금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런 것을 보고 심지를 굳건히 해서 의지하고 다니셔야 되는 것이지요.
여여하다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은혜도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은혜를 많이 입고 살 겁니다. 부모로부터 받는 은혜, 형제로부터 받는 은혜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보면 묘한 것이 천 번을 잘 해 주다가도 한 번 수가 뒤틀리면 그냥 원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999번 받은 그 은혜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한 번 때문에 원수가 돼요. 그런 수가 우리 주위에 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심지가 굳건하지 못하고 마음이 여여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 대부분 불심이 없어요. 그냥 자기 마음에 들면 취하고 그렇잖으면 버리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리고 영남불교대학에 대해서도 그래요. 이곳에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이 자체가 혜택이라, 별다른 혜택이 있겠습니까? 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 할 수 있는 그런 터전에 내가 몸담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혜택, 큰 은혜 아닙니까?
좀 더 나아가서 영남불교대학과 거래 관계가 있었다, 돈을 좀 벌었다, 그러면 큰 은혜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요. 조그마한 어떤 일이 생기면 지금까지 받은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주 영남불교대학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아까 말씀드렸던 지·정·의라고 하는 인격구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은 기도도 잘 안 해요. 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그냥 말뚝 신심으로 반짝기도를 하고 말지요. 그래서 의리를 헌 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저는 늘 생각에 사람은 기도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 놓여있는 상태가 여여(如如)해야 하며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그래도 참 잘 사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근원의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결코 흔들림 없이 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잘한 것을 가지고 신경을 쓰지를 않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방석가지고, 나무에 낀 진딧물 가지고 시비 걸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가는 스스로 한 번 생각 해 볼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라는 것이 해보면 금방 싫증이 나고 또 잘 안 돼요.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또 싫증이 난다고해서 안 할 수도 없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휴대폰을 충전하는 일과 같습니다. 스님들이 머리를 깎는 이발기계 등 전기제품도 충전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충전 할 때는 보이지도 않아요. 에너지가 이쪽으로 저장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나중에 보면 저장이 되서 몇 시간 동안 기계가 작동이 되고 스님들이 머리를 깎고 하지요. 휴대폰도 그렇겠지요.
그것처럼 기도는 나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이다. 이래 생각하면 딱 맞습니다. 충전해 놓은 것이 있어야지 써 먹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요. 근데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충전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충전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다급할 때 약 떨어지면 어떻게 되요? 급할 때 못 써먹는 그런 사람이 없잖아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란 바로 내 가정의 평화와 소원성취, 나의 마음의 평화와 소원성취를 위한 충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는 이 생각을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겁니다.
충전되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반드시 충전이 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실 때에는 어떤 자세여야 합니까?
첫째는 100% 삼보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걸 전제로 하고,
두 번째는 내 온 몸과 마음을 다 던져야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기 몸 도사리면 안 됩니다.
그 두 가지에 관한 이야기가 『법보시』 12월호에 나와 있습니다. 『법보시』 책자가 없는 분을 생각해서 자상한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59페이지입니다. 책이 있으신 분은 같이 읽겠습니다.
‘ 나는 이미 뛰어나고 이미 건넜습니다. 나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승가의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나를 인증해 주십시오. 나는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우바새는 뭐지요? 독실한 남자신도, 신심이 장한 남자 신도를 우바새라 합니다. 여자신도는 뭐라고 하지요? 우바이, 그런 거는 잘 아시네요.
이런 결심들은 한 번 해 보셨습니까?
전문의 내용은 집에 가셔서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첫째는 부처님과 법과 승단의 주인인 스님에 대한 믿음의 마음이 100% 있어야 됩니다. 그리한 뒤에 우리는 또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되느냐? 18페이지입니다.
問 身문신
禪 甚 麽 問 者 선 심 마 문 자
莫 問 無 誠 信 막 문 무 성 신
窮 究 眞 實 禪 궁 구 진 실 선
不 問 口 問 身 불 문 구 문 신
무엇이 참선, 기도냐고 묻는 이여
근성근성 성의없이 그러지 말게
진실로 그것이 궁금하다면
입으로 묻지 말고 온몸으로 묻게나.
- 無一 又學-
기도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으로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온 몸이 너무나 절절하고 간절해져야 됩니다. 온 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온 몸으로 부처님 전에 물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도 기도를 안 하셔서 지금 [송구영신 원성취 백일기도]라 해서 기도노트도 드렸는데 기도노트를 아직도 안 가지고 계신 분 손들어 보세요.
괜찮습니다. 기도노트는 다 가지고 있지요?
제가 일일이 검사 할 수도 없고 지금 4페이지를 펴 보세요. 5일차에 보시면, 초하루 절에 가는 날이라고 써져있지요? 그런데 기도체크에 체크는 다 하셨는지요? 제가 볼 수 있게 이쪽으로 보여줘 보세요. 아~ 그래도 착한 분들이 더 많네요.
저는 착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잖아요? 옳은 것을 시켰을 때 따라하면 착한 거지요.
옳은걸 시켰는데 ‘니나 해라’ 해 봐요. 그런 사람들하고 어떻게 상종을 하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좀 착한 불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착한 불자가 되시면 부처님도 아마 잘 봐 드릴 겁니다. 부처님한테 미움을 받는 불자가 되시려면 기도하지 마시고 기도체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체크를 꼭 하시길 바라고 [送舊迎新 원성취백일기도]라 되어 있는데 이것이 입재가 이미 되었습니다마는 사실은 음력으로 10월 1일인 오늘이 우리절 [10년기도 9년차 입재]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지금부터 9년 전에 10년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월이 이만큼 흘러서 오늘이 10년 기도 9년 차에 들어갔다니까요. 참 대단한 세월이지요? 그래서 오늘 초하루 기도일에 오신 분들은 지금 며칠 지났다 하더라도 큰 관계없으니 4~5일 내가 늦게 시작했다 생각하고 백일기도에 100% 다 동참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대답도 하기 싫지요?
기도는 누가 훔쳐 갈 수도 없고 진짜 정신적인 에너지인데 그것을 하라 하는데도 대답을 작게 하셨지만 아마도 속으로는 대답을 크게 하셨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제가 간곡하게 조언을 해 드립니다. 기도를 하시면 인격이 달라지고 기도를 하시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자기인격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지는 기도를 하라는데 그 기도를 안 하는 불자는 나쁜 불자입니다. 착하지 못한 불자입니다. 제가 재삼 말씀드리지만 영남불교대학. 대관음사는 기도도량입니다. 이런 도량에서 기도를 한 번 다부지게 해 보시길 바라고 책을 본 김에 [송구영신 백일기도 발원문]을 정성껏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송구영신 (送舊迎新) 원성취 백일기도 발원문
거룩한 불, 법, 승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인간의 몸 얻기 어려운데 인간의 몸 얻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려운데 부처님 법 만났으니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고 감사하옵니다.
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오는 한 해를 더욱 희망차게 맞이하기 위하여 최고의 기도도량에서 송구영신 원성취백일기도를 올리오니
부처님이시여!
저의 이 간절한 발원에 감응하여 주옵소서.
환희심으로 동참하옵는 이번 100일 기도는 불가사의한 힘으로써 우뚝 선 복된 도량, 지혜 도량 우리절 영남불교대학․大관음사의
거대한 반야용선에 승선하는 천재일우의 선택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 기도를 통하여 가족들이 목적하는바 모든 일들이 아무 장애 없이 성취될 수 있도록 가피 내려 주옵소서.
그리고 저희들의 이 기도의 힘이 모여서 이 세상이 하루 빨리 불국토가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
은혜로우신 부처님!
온 마음을 바쳐 청정 공양 올리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법요집 226페이지입니다. 제가 끝내지 싶지만 끝 안냅니다. 책은 이미 다 넣으셨겠지요?
이런 재일이 돌아오면, 재일에 내가 또 절에 가게 되니 죽지는 않았구나,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라는 그런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야 할 텐데 혹시 그런지요? 네 다행입니다. 우리는 죽는 것도 겁나지 않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했으니 그런 뜻에서 감사송을 한 편 읽고 끝내겠습니다.
감 사 송
부처님!
저의 마음은 항상 감사에 넘쳐 있습니다.
이 땅 위를 살아 걷고 있는 기쁨에 대한 감사와 이 땅 위를 함께 걷고 있는 나의 가족, 그리고 친지 등의 사랑과 신뢰에 대한 감사와 언제나 실패와 실망을 극복하고 찬란한 광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살펴 주심에 대한 감사와 부처님께서 힘과 지혜와 무한한 용기를 베풀어 주심에 대한 감사로 제 마음은 가득 차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에 힘입어 저의 모든 소원이 이뤄질 것임을 확신하오며, 앞으로의 삶이 항상 기쁨에 넘치고, 건강하고, 유익하며, 남과 사회를 위해 나의 능력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게끔 가호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항상 제 주위의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하고 있으며 어느 곳 어느 때에도 부처님께서 항상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리옵니다.
한 달 내내 건강하시고 가족이 하시는 일들이 다 잘 되시고 소원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오늘 기도는 여기에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영남불교대학 회주 우학 큰스님의 법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