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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에 ‘스물스물’
이강옥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로 1993년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미래에 대한 방향 설정이 별로 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미래의 내 모습이나 직업조차 머릿속에 별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저 성적에 맞게 적당한 대학, 적당한 과에 입학했던 것 같다.
이 넓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왜 한 사람도 없었을까? 그런 길잡이가 되어준 어른이 내 곁에 왜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저 입시 공부에만 매달려서 우울한 고교 시절을 마치고 다양한 독서는커녕, 세상 공부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리숙한 어른이 된 듯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복을 입은 탓에, 대학생이 된 후 어떤 옷을 어디서 어떻게 사서 입는지조차 막막했던 것 같다. 화장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러 이유로 방황하던 나는 학업에도 소홀하여 1학기 중간고사 때 학사 경고를 받았고, 이내 충격을 받고는 나름대로 만회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차츰 대학 생활에 적응하면서 2월생인 나는 2학년 때인 1994년에 스무 살을 맞이했다.
다소 우울했던 1학년 생활과는 달리, 2학년 때는 좀 밝게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학교 대동제 때 우리 과 대표선수로 캠퍼스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해보기 위해 학교에 개설된 천주교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 후 세례를 받기도 했다. 또, 그저 그런 몇 차례의 미팅과 소개팅 이후, 나에게도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문 좀 열어주세요, 제발요!”
- 영화 <레옹> 중에서
스무 살 시절 내가 좋아하던 선배를 떠올릴 때, 같이 봤던 영화 <레옹>이 늘 생각난다. 작은 키에 얼굴은 통통하고 귀여운 덧니가 있으며, 웃으면 보조개가 보이는 92학번 선배였다. 검정색 야구 모자를 종종 썼던 것 같고, 순수하고 착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내가 즐겨 마시던 요구르트 음료가 있었는데, 그걸 기억했다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 매번 건네주고 가고는 했다. 선배는 아르바이트 가느라,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다. 당시 화제작이었던 <레옹>을 함께 보던 날도 삐삐(무선호출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영화 보던 중간에 잠시 나갔다 왔던 것 같다. 어쩜 아역 배우가 저렇게 연기를 잘하냐며 맞장구치던 기억은 나는데, 영화를 보고 밥을 함께 먹었던 기억은 없다.
그냥 그렇게 같이 있으면 설레고 좋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막상 선배의 고백을 들으니 갑자기 닭살이 돋았다. 내가 생각하던 전개가 아니었다. 그렇게 간질간질하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너무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삐삐가 없었기에, 선배가 나와 통화를 하고 싶을 땐 집으로 직접 전화를 했고, 때때로 엄마나 언니들이 대신 받아서 바꿔주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구구절절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는데, 그게 참 싫었다. 그냥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싫어졌다.
결국 우리는 잘 안 됐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나는 그 선배에게 내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못했다. 그냥 좋은 선후배로 지내자고 매몰차게 이야기하고 말았다. 선배는 그저 내 뜻을 존중해주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때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다른 선배를 통해 전해 들었다. 지나고 나니 후회가 많이 된다. 좋은 사람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냥 그렇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찾아와 내 몸을 휘감도록 그냥 두어도 될 것을…….’ 그때 나는 너무 용기가 없었다. 미운 아기 오리마냥, 누군가 나를 사랑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아.”
- 영화 <포레스트 검프> 중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대사가 하나 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아.” 어떤 사람은 우스갯소리로 ‘먹다 보면 텅 비어버리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극 중 대사를 보면 어떤 맛을 고르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은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그럼 초콜릿 상자 속에는 달콤한 것들만 들었을까? 씁쓸한 다크 초콜릿도, 알딸딸하게 만드는 술이 들어간 초콜릿도, 내가 별로 원하지 않는 조합의 맛도 있을 것이다. 물론 황홀하게 달콤한 맛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난 이 영화를 종로의 한 극장에서 친구 J와 함께 보았다.
지난 초여름 징검다리 연휴 때, 우리 가족은 충남 서천에서 이틀 동안 캠핑을 했다. 참 이상하게도 캠핑장에서 보낸 첫날 밤 꿈에서 J와 J의 아버지를 보았다. 꿈에서긴 하지만, 아버님은 몇십 년 만에 뵙는 거였는데, 참 이상하게도 나를 막 책망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92년 겨울, J와 내가 나란히 대학에 합격했을 때 전화로 축하해주시며 “맛있는 거 사줄게!” 하시던 말씀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J는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다. 만화책을 좋아했고, 구김살 없이 밝았다. 난 J에게 부러운 것이 참 많았다. 어린 시절, 언니들 어깨너머로 혼자서 피아노를 배운 나와는 달리, J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집으로 선생님이 찾아와서 피아노를 배웠다. 비좁은 주택에 살며 언니와 같이 방을 쓰다가 다용도실을 개조한 내 방이 생겨 뛸 듯이 기뻐하던 나와는 달리, J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았고 예쁘게 꾸민 자기 방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오밤중의 루틴이 있었다. 밤 12시 전후로 서로의 집으로 전화해 벨 소리가 두 번 울리기 전 받아서, 공부 많이 했는지 서로 묻기도 하고, 만약 졸고 있었으면 더 공부하다 자라고 깨워주곤 했다. 그런데 간혹 J의 엄마나 우리 엄마가 잠결에 전화를 받으시는 상황도 생겨나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새벽 공부의 출출함을 핑계로 하루에 라면 하나씩을 꼬박꼬박 끓여 먹었더니 장염이 오는 바람에, 한밤중에 전화로 깨워주던 우리의 루틴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J는 문과, 나는 이과를 가게 되어 2학년 때부터는 다른 반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당시 유행이던 유럽 배낭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렇게 바쁘게 사느라 서로 소식이 뜸했고, 최근에는 카톡으로만 종종 연락해서 자세한 근황을 몰랐다. 그런데 뜬금없이 캠핑 온 날 꿈에서 만날 줄이야! 그것도 J의 아버지까지!
“통화 괜찮아? 잘 지내? 정말 오랜만이지?”
“그러게, 잘 지내? 너희 동네 한 번 놀러 가야 하는데, 여유가 안 생기네.”
“부모님은 어떠셔? 두 분 다 건강하셔?”
“이야기가 길어.”
J의 아버지는 루게릭병 초기라고 했다.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루게릭병은 서서히 사지의 쇠약과 위축으로 시작되고, 병이 진행되면서 결국 호흡근 마비로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치명적인 병이다.
아버님은 지방에 혼자 계시다가, 편찮으신 이후로 J의 집 근처로 이사를 오셨다. 평소 깔끔하고 꼼꼼하신 성격 때문에 간병인을 집에 두는 것도 원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오랫동안 별거 중이시던 어머니가 오셔서 종종 살펴보시기도 하고, J도 가까운 거리에서 식사 등을 챙겨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J의 아버지는 공군 중령으로 퇴역하신 후, 대형 항공사의 파일럿으로 일하셨다. 훤칠하셨고 항상 단정하셨고, 모두가 부러워하던 자랑스러운 아버지상이었다. 그러시던 분이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이시라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사연을 나누면서 잠깐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희 부모님은 건강하시지?” 친구가 물었다.
“우리 엄마는 허리도 아프고 거동은 불편하신데, 아빠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셔서 엄마 케어 도맡아 하신다. 86세이신데 아직 운전도 하시고.”
“너희 엄마 아빠 보면 항상 부러워.”
인생은 정말로 ‘초콜릿 상자’ 같다. J도 나에게 부러운 점이 있었다니…….
“무슨 샴푸 써요? 냄새가 좋은데…….”
“비누 써요, 말표 빨랫비누.”
-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중에서
대한민국 대표 모범 부부로 유명한 차인표, 신애라 배우가 풋풋한 신인 배우 시절이 있었다. 종종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내 스무 살은 그들이 출연했던 <사랑을 그대 품 안에>가 방영되어 인기를 얻던 시기였다. 난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드라마만큼은 꽤나 열심히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봤던 것 같다.
나는 그 시절 은평구 응암동 쪽에서 수학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업이 끝난 어느 날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담벼락이 높은 어느 주택에 눈이 갔다. 담벼락에는 온통 “차인표 오빠, 사랑해요!” 류의 낙서가 되어 있었다. 또, 여고생으로 보이는 몇몇이 손수 만든 플래카드와 선물 따위를 들고 서 있는 걸 보고, 그곳이 차인표 배우의 집인 걸 알게 되었다. 인기 절정에 있는 차인표 배우의 집 앞을 지나가니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사랑을 그대 품 안에>를 이야기할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차인표, 신애라 배우가 아닌 바로 故 박광정 배우이다. 그는 극 중 신애라 배우가 일하던 백화점의 한 의류매장 매니저 역을 맡았는데, 그렇게 인상적인 얼굴은 처음이었다.
그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조연 배우로 활동했고, 걸출한 연극 연출가로도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다 46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날카롭지만 선하고 유머러스한 눈매, 병약해 보이지만 또 강해 보이는 얼굴, 전라도 사투리가 심하게 섞였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말투……. 그를 보면서, 주연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조연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내가 비록 중앙에서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근사할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가 그립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 미드 <X 파일> 중에서
<X 파일> 시즌1이 한국에서 첫 방영을 시작했다. 미드를 그다지 즐겨 보는 편이 아닌데, 유독 <X 파일>만큼은 내 마음과 정신을 온통 쏙 빼앗았다. VOD도, 동영상 플랫폼도 생소하던 시절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월요일 저녁 방영 시간 전까지는 집에 들어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던 기억이 난다.
늘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는 스컬리와 멀더가 서로 완전히 다른 수사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멋있었다.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지만, 제3의 남녀 캐릭터가 등장할 때면 둘 사이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면서 로맨스의 분위기도 생겨나는 관계가 그렇게 두근두근할 수가 없었다.
미지의 생명체가 등장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언제나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외계인과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과 그로 인한 음모들이 늘 사건의 이면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로써 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세상 물정 모르고 살다가, 비로소 차츰 넓은 시야를 가지고 바깥세상의 진실을 발견해나가는 탐험가가 된 것 같았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故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중에서
스무 살 어느 날, 지금은 고인이 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나왔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노래를 듣던 그때는 나도 서른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쉰이 될 줄은 더더욱!
스무 살 때 시간은 더디게 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할만한 즐거움이 없었다. 청춘은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자꾸만 저만큼 멀어져 가고 우리는 매일 무언가와 이별하며 살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매일 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죽고, 만나고 헤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 당시에는 그려지지 않고, 다 지나고 나서야만 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세상 어딘가에 늘 내 자리가 있었다. 열아홉에는 아쉽게도 나를 인도해주는 어른이 없었지만, 스물에는 ‘스물스물’ 피어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지금의 나 자신이 되느라고 내 안에서 스스로 ‘꿈틀꿈틀’ 자라고 있었다.
성숙하지 못했지만, 이리저리 아프게 부딪히며 그 아이가 온전한 자신으로서 느꼈던 감정들에 감사하다. 나의 스무 살을 함께해준 그 시절의 영화, 드라마, 노래에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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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강옥은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청소년 영상 교육을 전공했다. 인문예술교육 강사, 그림책 지도사,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좋은 그림책을 함께 읽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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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에 ‘스물스물’ 피어나던 내 안의 아이와, 그 시절을 함께한 영화, 드라마, 노래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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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시절 일기를 쓰셨을까요? 어쩜 하나하나 구체적이라.. 그때를 기억나게 하는 영화, 드라마,음악.. 스무 살 수집책 기획에 딱 맞는 글이네요.
우리 1인1책이 있는 은평구 응암동과 인연도 반갑고요. 겁 많던 스무 살 시절 놓쳤던 멋지던 그 남자, 뭐하고 계실까...
오~ 코멘트 써주신 거 인제 봤네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궁금하답니다~ ㅎㅎ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