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은 확실히 ‘죽음’을 보장한다
핵 숭배 사상의 종교화
대학민국(남한)에는 하나의 ‘위대한 미신’이 있다. 이 나라 국민의 거의 모두 그것을 신봉하고 있다는 뜻에서 그것은 가히 ‘국민 미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국가가 그 신앙을 보호·지원한다는 뜻에서 ‘국가적 미신’이라고 이름 할 수도 있다. 그 ‘미신적 신앙’은 다름이 아니라 핵에네르기와 핵무기에 대한 맹목적 신앙심이다. 표현을 바꾸면 ‘핵’은 한국 국민의 신(神)으로 추앙되고 있다. ‘핵신(核神)’에 대한 절대적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는‘핵종교(核宗敎)’가 어떤 다른 종교보다도 광범위한 신자를 확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핵종교의 신도들은, 역시 다른 어떤 종교의 신도들보다도 그 신에 대해서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며 비이성적이고 무비판적이다. 그리고 다른 어느 종교의 신도들보다도 이 핵신에 대해서 더 무지하며 열광적이다 못해서 광(狂)적인 광신자들이다. 그들은 이 핵신의 제단 위에 자기의 생명과 전체 국민, 한반도 남·북 전체 민족의 생존을 송두리째 바치게 될지도 모르는 미신적 사고와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광란적 자태는 그 종교와 신이 국가의이념적·정책적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사교(邪敎)나 미신보다도 위험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민은 이 사실을 인식 못 하고 있으며 날로 그 ‘국가적 미신’ 종교에 깊숙이 빠져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20세기 말의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세계의 160여개 국민들 가운데 이처럼 위험한 ‘핵신 숭배’ 사상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국민은 우리뿐이 아닌가 싶다. 생각할수록 소름 끼치는 현실이다.
한국인이 핵에 무지하게 된 원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위험한 핵 숭배 사상에 사로잡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배경은 어떤 것인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풀이된다.
⓵민족 내부 문제의 군사적 해결정책: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분단된 남북의 민족 내부 문제의 성격을 오로지 군사적 대결의 측면에서만 인식하고 민족 내부 문제의 해결도 오로지 군사력에 의한 것으로 여겨왔다. 20세기 군사력의 궁극적 형태는 핵무기다. 해방 후 오늘날까지 40여 년을 두고 일관되게 길러져온 군사(군대)력 존중사상이 핵무기 숭배 사상으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논리다.
⓶맹목적 반공이데올로기: 이 나라 국민은 비이성적이고도 맹목적인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구체적 인간의 생명, 구체적 생존, 구체적 행복과 복지보다 우위의 가치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데올로기란 그 어느 것이건 역사적이고 가변적이며 상대적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어찌 된 셈인지 이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보다, 가변적인 것이 기본적인 것보다, 역사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보다 더 숭상되게끔 되었다. 그 결과로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반대하기 위해서 핵무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핵전쟁조차 바람직하다는 위험스러운 신념 같은 것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에서는 유럽 나라들의 시민도 우리와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체적 인간 생명의 절대성, 살아 있는 인간의 현실적이고도 구체적 안전과 행복이 ‘핵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그것보다 소중하다는 인식과 신념이 확고하다. 우리는 그와 정반대다.
⓷핵무기의 위험성과 핵전쟁의 종말성에 대한 무지: 위에서 본 ⓵과 ⓶의 결과로, 이 나라 국민은 핵무기와 핵전쟁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다. 막연한 지식이나 감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연한 두려움이 자기 생명의 말살에 연결되고,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는 전쟁방식이라는 데 대해서 확고한 인식이 없다는 말이다.
국민대중이 이렇게 된 이유와 책임을 구명할 필요가 있다. 군대와 군사력 숭배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성격상 반(反)평화적일 수밖에 없다. 그같은 사상과 이해관계의 체제는 따라서 군사력의 궁극적 힘인 핵무기에 대한 평화애호적 사상을 기피하고 억제하게 마련이다. 핵무기에 대한 비판, 핵전쟁에 대한 반대의 지식은 적극적으로 전파되지 않고, 그같은 사상이나 운동은 ‘반(反)국가적’ ‘공산주의적’으로 법적 처벌을 받고 있다. 대중을 계몽해야 할 보도기관, 언론기관, 지식인들, 평화주의적 단체와 기관 등의 활동이 억압을 당하는 현실에서 핵무기와 핵전쟁에 관한 진실된 지식과 정보가 자유롭게 보도되고 토론될 까닭이 없다.
핵위험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무감각해졌다.
⓸미국 국가이익 위주의 선전 결과: 미국의 정부, 특히 군부는 군사력의 무제한적 확대 증강, 군수산업 자본의 극대이윤화, 군부의 예산증대 및 군사기구의 자기증식(自己增殖) 원리에 의한 전쟁논리 조작, 전쟁 군수용 과학기술의 고용증대와 경제경기 부양효과, 해외 무기 판매의 정치·외교·경제·군사적 효과…… 등을 위해서 핵무기의 위험성과 핵전쟁의 인간종말론적 비참성을 과소평가하는 선전을 일삼고 있다. 이것이 이 나라 국민의 지식과 정보화, 그에 바탕한 사실 인식의 능력을 병들게 하고 있다.
⓹외국의 핵기지화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착오: 미·소 초핵강국은 각기 자기 국가의 국토·인민의 생명·재산이 상대방의 핵공격을 받지 않는 전략체계·전쟁구조를 다져놓고 있다. 그 대신 그들은 각기의 하위 동맹국의 영토에 핵무기를 설치함으로써 그 하위 동맹국의 국토, 인민의 생명, 그 재산(물질적 존재)을 희생시키는 전략구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는 자기 땅에 미국의 핵무기 기지가 존재하는 것이, 그리고 핵무기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자신’의 안전이 더욱 잘 보장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핵에네르기의 파괴성에 대한 인식
한국인 일반에게 ‘핵의 에네르기화=핵의 무기화’가 막연하게나마 인식된 사건이 1986년 5월 초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핵발전소의 폭발(융해)사건이다. 오랫동안 과학과 기술의 신비성에 매혹되어 있던 한국 대중은 비로소 핵발전소의 다른 한 면을 소련인들의 처절한 희생을 통해서 깨닫게 된 셈이다.
한국 신문들은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공산주의 사회)의 특유한 것처럼 보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체르노빌보다 몇 해 전 미국의 스리마일(Three Mile)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고는 미국(자본주의 사회)의 특유한 사고일까? 핵 재해는 사회의 제도를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핵발전소의 위험성(공해 정도는 차치하고라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별로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신문지상에서 소련의 참사와 관련해서 언급되었을 정도다. 바로 체르노빌 사고 직후 우리 정부는 또 수억 달러를 요하는 2개의 핵발전소 건설을 미국의 회사와 계약했다. 이미 가동 중인 고리(古里)발전소를 비롯한 핵발전소들에서 방사·유출되는 공해작용으로 주민과 산업이 피해를 입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되는 일이 없다.
핵에네르기의 평화 이용은 화약의 평화 이용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류의 문명적 성취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각별히 문제되는 점이 허다하다.
첫째는 그 핵발전소들의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방사능 물질의 확산에 대한 방지장치가 외국보다 훨씬 소홀하다는 문제다. 그에 관한 권위 있는 증언을 들어보자. 미국 수출입은행의 차관으로 한국정부와 핵발전소 건설을 계약하고 완수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과학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⓵남한에서는 핵발전소 건설계획이나 세부적·현장적 과정이 정부관료기구의 독점 하에 있어, 공중(公衆)적 토론·검토·이의제기·현장검증……등의 과정을 일절 배제한 채 추진되고 있다. 그 결과 독자적 규제‧관리조치가 없고, 건설은 날림이며, 인명에 대한 안전, 건강, 또는 방사능 확산 가능성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진행되었다.
⓶남한에서는 공사예정표가 인간의 안전보다 우선했다. 따라서 안전관리인들은 공사예정을 늦추는 것을 ‘구조적으로 억압당했다.’
⓷미국 스리마일 핵발전소 대규모 사고가 있는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남한정부는 아직도 ‘개별적이고 상세한 구체적 개선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있다.
⓸남한은 핵방사능 물질의 저장과 처리에 관한 종합적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⓹한국 핵계획은 수준 높은 전문적 인원의 부족으로 조작·운영·훈련의 난관에 직면해 있다.
⓺(남한에 건설하는 핵발전소들은) ‘미국 핵규제이사회’(NRC)의 규정들을 위반하여, 한국에 건설한 4개의 핵발전소에는 미국 핵발전소에는 적용하게 되어 있는 그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⓻남한정부는 1982년 레비(Levy) 씨가 「한국 핵안전에 관한 보고서」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개선권고사항의 ‘대부분’을 묵살했다.
둘째는 전시효과적인 핵발전소 건설계획이다. 정부는 본래 2000년까지 46개의 핵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핵발전소 재해에 대한 세계적 반대여론과 운동도 있고, 재원 문제도 작용해 17개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한국의 자연조건을 두고 어째서 이같은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도 몇째 안 되는 대대적인 핵발전소 계획을 추진하는가 하는 문제를 공중(公衆)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자원과 돈의 낭비 문제다. 정부 계획으로는 2000년에 46개의 건설이 완료되었을 때, 핵 발전은 5만 824킬로와트로서 총발전량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1986년 여름) 우리나라의 총발전량은 전력의 최고 소요시간에도 30퍼센트 정도의 잉여 발전시설(능력)을 갖고 있다. 핵발전소 46개 건설계획을 17개로 수정한 근거가 그것이다. 현재도 그러한데 앞으로 몇 개를 더 건설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도 납득이 갈 만큼 설명되지 않고 있다.
넷째로 정치적 흑막이다. 금년 여름에 미국 회사의 추가건설이 계약된 2개의 핵발전소 건설계획은 국내의 정치정세가 한창 긴급할 때, 정권지지와 관련하여 미국정부가 강요했다는 설이 있었다. 한국의 핵발전소 건설의 거의 전부가 미국(회사)과 계약되고 있는 사실도 정치적 관련성에 대한 의혹을 짙게 해준다.
다섯째로는 핵발전소와 남북 군사관계의 문제다. 핵발전소는 공중공격에 약하다. 만약 전쟁이 발생한다고 가상했을 때 그 많은 핵발전소 가운데 몇 개라도 폭격당하면 방사능 확산으로 말미암은 인명피해와 국토의 반영구적 오염은 거의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이란 공군의 이라크 원자로 폭력을 생각하게 한다. 소련의 평화시 체르노빌 사고는 그 예다. 북한으로부터 남한의 핵발전소까지는 재래식 탄두의 지대지(地對地) 미사일로 1분, 전폭기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가 주장하듯이 남북 간에 전쟁(남침)이 기정사실이라면 어째서 그처럼 많은 핵발전소를 국토의 각지에 계속 건설하려 하는가? 논리를 뒤집으면, 정부가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려는 계획은 그 같은 남침이 없을 것이라는 확고하게 계산된 판단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풀이된다. 남침이 확실하다면 핵발전소의 계속적 건설은 중지돼야 하고, 핵발전소의 계속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남침이 없을 것이라는 중요한 판단근거라면 그것도 국민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여섯째는 핵발전소 건설과 독자적 핵무기 생산계획의 문제다. 세계의 유력한 전문가와 연구기관들은 한국의 핵지식과 핵과학자 기술자의 수준, 그리고 그 많은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우라늄 등 물질로 독자적 핵무기 생산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자적 국방태세’의 일환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세계의 중진국 중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몇 개 나라에 ‘남한’이 속한 지는 오래다. “미국은 한국이 70년대 초에 개발계획에 착수했으나 1975년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이를 취소케 했고,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 생산계획을 포기하는 댓가로 미국은 핵무기에 의한 보호와 핵발전소 장비의 지속적 판매·지원을 공약했다”고 한다.
우리는 국가의 안보를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남북 간에 평화체제가 확고히 구축될 때까지는 군사력의 충실화는 계속 필요하다. 그러나 남한이 핵발전소의 부산물로 독자적 핵무기를 생산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북한의 대응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무기가 사용된다고 가상할 때, 그것이 이 반도상의 남·북 민족 전체와 이 민족이 살고 있는 국토에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민족적 양심의 문제와 결부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대만도 1870년대 초반에 우리와 같은 구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토 중국과의 군사관계에서다. 본토에 대항해서 대만 군부가 독자적 핵무기 생산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타임』(TIME) 특파원이 장경국(蔣經國) 총통에게 질문하자 장총통은 이렇게 답변했던 것이다.
“우리는 본토의 공산주의자들과 대립관계에 있고, 국토(대만)를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독자적 핵무기 생산계획을 구상한 바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 계획을 선친(고 장개석 총통)에게 보고했더니 선친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중국 민족은 대립은 하고 있지만 그 같은 무기로 싸워서 서로 몰살하는 따위의 생각은 해선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계획을 폐기해버렸다.”
미‧소의 핵표적이 된 한반도
한반도는 미‧소 초핵강대국이 그들의 핵무기를 실전 목적으로 시험할 핵전쟁의 표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지구상에서 미‧소와 동‧서 진영의 이해갈등이 군사적 대결로 확대‧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동‧서유럽과 중동 석유생산 지역, 그리고 동북아지역의 한반도다. 그런데 그 세 지역 중 한반도는 미‧소 충돌이 핵전쟁으로 직결될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데 대해서 모든 군사‧정치 전략가들의 견해가 일치해있다. 특히 미국에 무력 숭배주의자인 레인건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이 위험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레이건 정부의 국방성은 소련과의 ‘무제한적 군사대결’ 노선과 전략을 택하고 있다. 그것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핵우위적 위치를 토대로 해서 추진되고 있다. 그중 가장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계획이 소위 ‘우주전쟁’으로 알려져 있는 전략방위계획(SDI) 구상이다. 전우주의 핵전장화 전략이다.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기에 앞서 그런 구상과 전략이 전체 인류의 생존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부정논리(否定論理)로 접근할 수 있다.
미국정부의 그 같은 전략과 정책에 관해서 수년 동안 종합적 연구와 검토를 마친 미국 가톨릭주교단은 1983년 6월 30일 ‘레이건 핵전략에 대한 반대결의’를 239대 9라는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킨 바 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미국 대학의 일급 과학자 3700여명은 1986년 5월, SDI 계획과 관련된 연구에 일절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레이건의 우주 핵전장화 구상이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위험‧무모한 발상이며, 군비경쟁을 가속화하여서 핵전쟁 가능성을 촉진한다는 결론에서였다.
미국의 가톨릭 주교들과 그 과학자들이 반미적일 까닭이 없고 공산주의자일 이유도 없다. 소련보다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와 같은 결정을 해야 했는가를 한국인들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핵무기가 한국(남한) 땅에 더 많이 배치될수록 한국의 안전이 더 확고히 보장된다”고 지금도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다음은 우리 문제로 좁혀 미국 군부의 그런 전략이 한반도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자.
1983년 1월 16일 미국의 보도기관에 폭로된 미국정부의 「국방지침 1984~88 회계연도 계획」이라는 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 군인들은 다음과 같은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⓵ 대기권 우주공간에 배치할 신무기체제(SDI)를 개발하여 우주 공간을 새로운 전장으로 하는 우월적 지위를 확보한다.
⓶ 그 목적을 위해서 미국은 우주무기 개발을 제한하게 될 어떤 제안이나 조약도 거부한다.
⓷ 소련과 체결한 전략핵무기의 제반 제한‧통제에 관한 협정들(SALT)을 폐기한다.
⓸80년대 중반에 소련은 경제적으로 중대한 곤란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상황을 이용해서 소련의 무기체제를 일소해버리도록 군비증강 계획에 박차를 가한다.
⓹무제한 군비(특히 핵무기)경쟁을 다그쳐, 소련이 군사적으로 그리고 끝내는 정치적으로 굴복해 들어오도록 만든다.
⓺중거리 핵미사일을 선제공격으로 사용하고, 여러 전선에서 재래식 전쟁과 핵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을 갖춘다.
소련이 80년대 중반에 ‘중대한 곤란’에 직면하여 머지않아 ‘굴복해 들어올 것’ 같은 기색은 없어 보인다. 그럴수록 그 ‘전면 동시다발 핵 및 재래식 전쟁’ 개념은 위험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모든 핵보유 국가가 핵무기에 의한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또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터에, 유독 미국만이 핵선제공격을 공식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수의 미국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한국(남한)이 이 전략구조에서 어떤 위험에 노출될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방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83년도 국방보고서」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이 보고서는 “소련과 중동 산유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 소련의 군사력을 분산시키고 석유자원을 미국이 확보하기 위해서 동북아지역의 동맹국의 군사력과 함께 북한을 지상공격하고, 북한에 대한 핵공격을 감행한다. (…)”
이 전략구상이 말하는 “북한에 대한 동맹국의 지상공격”에서 동맹국이 남한(한국) 군대임은 자명하다. 해마다 대규모의 ‘팀스피리트’ 한·미 공동작전이 이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군부의 이같은 한반도 목표 핵전략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던져준다. 이것은 미국의 강대국적 에고이즘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와는 수만리 떨어져 있는 중동에서 소련과 석유쟁탈전을 벌이기 위해 이 민족의 땅에서 핵전쟁을 선제공격으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금수강산을 초토화하게 될 이같은 전략은 민족적 자존심이 있는 민족이라면 허용할 수 없다. 같은 군사적 상황에 놓여 있는 유럽국가의 정부와 국민은 모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중동석유 때문에 북한이 미국의 핵공격 목표가 된다면, 같은 현대 군사전략학을 공부한 소련 군부가 그 보복으로 남한을 소련의 핵공격 목표로 삼지 않으리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소련은 그 의도와 결의를 누차 명백히 한 바 있다.
미국의 한반도 핵전략과 한국 국민의 지위
우리는 위에서 미·소 양 핵초강국의 한반도를 겨냥한 핵전쟁 전략과 시나리오를 대충 파악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강대국 에고이즘’의 희생물이 될지도 모를 이 국민과 민족은 그들의 핵전쟁 전략상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들의 핵전략에 대해서 어떤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이익에 맞도록 그들의 핵전략을 바꾸게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단순히 그들의 결정에 따르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이같은 무수한 궁금증과 의심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 만큼 당연한 일이다.
미국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마이어 대장에게서 직접 들어보자.
그는 1983년 1월 23일 서울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언명했다.
⓵ 레이건 정부의 기본전략 개념은 재래식 전쟁이 장기화할 때에는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며, 이 개념은 한국(한반도)에도 적용된다.
⓶ 그 경우에는 미국의 야전군 사령관, 에를 들면 한국에서는 ‘한미 연합군 사령관’이 양국의 대통령에게 핵무기 사용을 건의할 수 있다.
⓷ 한국에서의 핵무기 사용 여부 결정은 15개 동맹국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보다 덜 복잡한 문제다.
⓸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북한에는 아직(소련이나 자체의) 핵무기가 없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 발언은 우리의 궁금증과 의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즉,
⓵ 한반도에서 군사적 사태가 일어나면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은 기정사실화된어 있다는 점, 남·북한의 어느 쪽도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전쟁행위를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⓶ 핵무기 사용에서 미국의 주한 야전군 사령관(즉 미국 제8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군 사령관)의 권한이 크다는 사실, 마이어 대장은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결단’에 달렸다는 주석을 붙이기는 했지만, 6·25 당시 맥아더 야전군 사령관이 원자탄 사용을 주장했다가 당장에 파면된 사실을 놓고 보면, 지금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핵무기 사용 결정권한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6·25 당시의 원자탄이 고작 TNT 1만 3000톤급(히로시마·나가사키형)인 데 비해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들은 그 몇십 몇백배의 위력을 가진 ‘핵탄(核彈)’임을 감안한다면 현지 사령관의 현지 판단과 발언권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⓷ 양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사용을 ‘권고’한 주한미군 사령관의 권고에 대해 한국의 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동의권과 거부권을 갖는가가 문제된다. 자동적으로 동의한다면 모르지만 국가·국민·민족적 입장에서 ‘거부’해야 할 때,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의 의사가 어느 정도 참작될 것인지 의심스럽다. 대한민국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조약에 의해서 미국의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이양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정권·정부·군사적 기구·정책·무기체제·고차적 전략판단…… 등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에서 그와 같은 발언권이 정치적으로, 조약상 규정으로, 또는 실제적 문제로서 허용될 것인가는 퍽이나 의심스럽다. 다시 말해서 실제상으로는 미국의 현지 사령관의 독단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⓸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는 동맹의 조약상 및 정치적 합의로써 미국의 핵전략에 관해, 미국은 그 15개 동맹국 모두와 사전협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문제가 ‘덜 복잡하다’는 마이어 육군참모총장의 말은, 단순히 15국과의 협의절치가 더 복잡하다는 뜻이기보다는 ‘질’적 문제로 해석된다. 유럽 동맹국가 정부와 국민(국회)은 미국에 대해서 ‘대등’한 입장에서의 협의를 하고 있는 데 비해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회도 국민(Public)도 핵무기에 관한 어떤 발언권도 허용되어 있지 않다. 우리 정부나 정부 지도자들 자신이 미국의 한반도 핵전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통보를 받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국민의 의사를 미국의 핵전략 수립이나 운영에 반영해야 할 우리나라 국회는 사실상 자기 나라 군대의 그런 일에 관해서도 관여할 권한이 없고 군부로부터 통보받는 일이 없다. 하물며 미국의 핵전략에 있어서랴. 이 점이 유럽(NATO)의 경우와 다른 점이다.
⓹ 북한에는 북한 자체적으로나 소련 등의 핵무기가 없다는 사실은 남한에 있는 미국 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북한과 소련의 국가관계가 나쁘다는 점, 외국의 핵무기 배치를 반대하는 비동맹국가군의 정식 회원국이라는 점, 소련의 핵무기 배치를 허용하면 종국에도 같은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위험성, 북한의 에네르기원은 수력발전이고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적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원자로 부산물이 없다는 점, 어느 쪽에 의한 핵무기 사용도 결국은 남·북한 전체의 파괴를 결과한다는 사실의 인식…… 등으로 해서 북한에는 핵무기가 없다고 인정되고 있다.
여기서 직접적이고 제1차적인 의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에 외국 및 독자적 핵무기가 없다면 핵공격의 우려가 없는데 어째서 남한에 미국의 핵무기가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북한은 핵무기 생산을 하지 않는 대신에, 소련의 핵보호를 기대한다는 양국 간 핵전략 원칙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다. 그리고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생산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 선언했다. 오늘날의 국제적 정보망과 사찰 능력은 핵무기 생산 여부를 쉽게 탐지할 수 있다. 마이어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말은 그에 기초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소련의 핵무기가 없는 북한에 대해서 미국이 중동 분쟁 전략으로 핵공격을 한다고 할 때, 소련을 공격할 미국의 핵무기가 있는 남한에 대해서 소련이 핵공격(보복)을 할 구실을 주며, 또 그것을 정당화할 것이라는 문제다. 소련은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그 권리와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는 미·소 양대국 에고이즘을 위한 핵전쟁의 볼모가 되었다. 우리는 이 심각한 민족공멸(民族共滅)의 위험성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헌실에 직면해 있다. 이 인식은 최근 국내 종교단체의 한 선언문에서 강력하게 밝혀졌다.
(…) 우리는 전민족의 생존을 송두리째 위협할지 모르는 한반도 내에서의 어떠한 형태의 전쟁이나 살상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또한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배치되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의사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한반도가 핵 불모지대가 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비록 거칠고 때로는 격한 표현을 쓰지만 죽음으로써까지 호소하는 민주인사나 학생들의 자료를 들어서 명시하는 증언이나 고발 가운데서, 한반도에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하는 핵무기 외에도 가공한 핵무기와 국지전에 사용할 전술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음으로 해서 핵전쟁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 우리는 한반도가 인류가 소망하는 화해와 사랑을 실천하는 평화운동의 중심지요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핵무기와 핵전쟁에 대한 반대요구를 이단시하지 않기를 요구합니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표 「현시국에 대한 우리의 기도와 선언」, 1986년 11월 18일)
이 선언문의 정신은 약 10년 전 한국의 대학생 가운데 89퍼센트가 “한국이 핵무기를 소유하기를 희망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비교할 때 의미심장한 반성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설의 변증』, 두레 1987
[출처]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
리영희 선집, 백영서·최영묵 엮음, 창비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