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도량과 이근원통
제5절 해조음과 이근원통 그리고 능엄선
해조음이 관음수행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제 해조음을 이용한 『능엄경』의 이근원통 수행은 무엇인가를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능엄경』에서는 먼저 이근(耳根)을 강조한다. 안근(眼根)은 800공덕이고, 이근은 1200공덕이라고 해서 눈으로 보는 안근보다는 귀로 듣는 이근을 비중 있게 본다. 따라서 소리를 중시한다. 소리에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4가지가 있다. 그런데 소리에는 다시 내면의 소리(內耳聲)와 바깥의 소리(件耳聲) 2가지로 압축된다. 4가지 소리 중에서 해조음은 바깥의 소리에 해당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깥의 소리에 해조음은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그 사람의 기질에 상황에 따라 내면의 소리에 쉽게 집중하는 사람도 있고, 바깥의 소리에 쉽게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 해조음은 바깥의 소리이다. 해조음이든 또는 다른 소리이든 간에 한가지 소리에 계속 집중하면 다른 생각이나 소리는 들어오지 않고 계속해서 그 소리만 들러는 내면의 상태에 도달한다. 이 상태를 흔히 삼매, 일여(一如), 또는 입정(入定)이라고 표현한다. 이근을 사용해서 삼매에 도달한 것이다. 『능엄경』의 표현대로 하면 여기까지는 '듣는 성품'(聞性)을 사용해서 고요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듣는 성품을 다시 돌이켜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간 것이다. 마지막은 이근원통이다. 듣는 성품을 다시 돌이키는 것을 반문문성이라 일컫는다. 반문(反聞)을 문성(聞性)한다는 뜻이다. 문성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문성이란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문성이란 개념파악이 이해의 관건이다. 『능엄경』에서는 문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을 리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도 그 들리는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 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은 아니니라"
소리가 날 때는 소리틀 들음으로써 듣는 기능(聞性)이 작동하고 있음을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종소리가 나지 않을 때에는 아무 소리가 안 들리므로 듣는 기능이 멈추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소리가 안 들릴 때에도 듣는 기능만큼은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위 문답의 요지이다. 즉 종을 치지 않을 때에도 조용함 그 자체를 듣고 있는 것이다. 쉽게 비유하면 연단에 마이크가 ON으로 켜져 있을 때 연설자가 말을 하지 않으면 마이크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이크의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란 것이다. 왜냐하면 마이크는 그 순간에도 ON으로 켜져서 작동 중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때 문성이란 마이크가 ON으로 켜져 있는 상태와 같다. 이때 마이크의 켜져 있는 작용, 즉 듣는 성품을 돌이켜서 관하라는 것이 반문문성의 핵심이다. 반문문성을 보조지눌(1158~1210)은 『수심결(修心訣)』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 많으나 너에게 한 문을 가리켜서 너로 하여금 근원에 돌아가게 하겠다".
"그대는 저 까마귀 우는 소리와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듣는 성품을 돌이켜 보아라(汝返聞汝聞性). 거기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거기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이 없습니다".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다".
보조지눌은 해조음 대신에 까마귀와 까치 소리를 예로 들어 반문문성을 설명하였다. 장소가 바닷가였다면 해조음을 제시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목할 부분은 반문문성이라고 하는 소리에 집중하여 삼매에 들어간 다음, 마지막에는 이를 다시 돌이켜 묻는 수행방법이 관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까마귀 소리라고 하는 소리틀 통해서 문성에 들어가고, 문성을 다시 반문함으로써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고, 이 방법이 관음보살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관음보살과 소리의 밀접한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 관음보살의 방법이란 바로 필자가 주장하는 『능엄경』에 근거를 둔 능엄선(愣嚴禪)이다.
제6절 소결(小結)
낙산사 홍련암 법당마루에는 이상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홍련암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이 구멍의 용도는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3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 가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홍련암이 의상대사(義相大師)이래로 유명한 관음도량이라는 점, 그리고 보문사, 보리암과 함께 관음도량은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입지한 도량이라는 점을 주목하였다.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자리잠은 이유는 『능엄경』에서 제시한 47가지 소리 가운데 해조음의 청취가 그 주요한 이유라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홍련암 법당의 구멍도 관음을 친견하려고 하는 신앙적 용도이면서 동시에 해조음을 청취하기 위한 수행적 용도에서 조성되었다고 판단된다. 신앙과 수행의 용도를 아울러 겸하고 있지만, 비중을 따져보자면 후자의 수행적 용도, 즉 해조음을 청취하고자 하는 용도에다 더 비중을 두고 싶다.
관음도량과 해조음의 상관관계틀 입증하기 위해서 중국 보타도의 불긍거관음원을 직접 답사하였다. 여기서 조음동이라는 암각글씨를 확인함으로써 관음도량이 해조음과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조음동의 유턴(U-turn) 동굴 중간고리 부분에 불긍거관음원이 원래 자리잡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서 해조음과 관음도량의 관계는 『능엄경』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야만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도 밝혔다. 과학적 연구에 의해서도 해조음이 알파파틀 증가시켜 선의 상태로 유도한다는 점도 근래에 입증되었으며, 이는 다시 『능엄경』의 수행법인 반문문성을 통해 깨달음으로 승화된다. 이근을 사용하여 해조음을 듣고, 이를 다시 반문문성의 상태에까지 밀고 나가 원만한 깨달음(圓通)을 얻는 수행법을 능엄선이라고 명명하였다. 『능엄경』에서 제시한 독특한 선법이기 때문에 경전 이름을 따서「능엄선」이라고 하였다. "홍련암 법당에 뚫어진 구멍은 「능엄선」을 하기 위하여 뚫어 놓은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최종결론이다".
<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 조용헌 원광대학교대학원 불교학과 철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