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유교문화길 3코스-구담습지길
물돌이동 이룬 하회마을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보는 곳
여행의 묘미 중에는 그 지역의 특색이 있는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느 집이 음식을 잘하는지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맛집을 찾곤 한다.
이번에 안동 유교문화길 2개 코스 트레킹 계획을 세우면서도, 숙박은 하회마을로 결정했지만 식사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가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하회마을 안에 음식 잘하는 집이 있으니 그 집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소개받은 집이 하회마을 작천고택이다. 중요민속자료 제87호로 지정된 작천고택은 전문식당은
아니지만 민박을 하면서 민박손님과 알음알음 찾아온 손님들에게 안동찜닭과 간고등어정식을 제공한다.
어제 안동 유교문화길 2코스를 걷고 나서 우리는 작천고택으로 향했다. 8명이 먹을 수 있도록 안동찜닭 2마리를 주문했다.
다른 지역에서 안동찜닭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안동 하회마을 작천고택의 찜닭은 그 맛이 남달랐다.
감자와 당근, 마늘, 대파 등에 고춧가루를 넣어 졸인 전라도 닭도리탕에 비하여 안동찜닭은 비슷한 재료지만
당면과 물엿이 추가되고 고추가루 대신 마른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 요리를 한다.
갖가지 채소와 닭고기에 물엿과 당면이 어우러지니 매콤․달콤하면서도 담백하다.
고택 대청마루에 앉아 먹걸리를 곁들여 먹는 안동찜닭이 오늘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오늘도 작천고택에서 간고등어정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김치를 비롯한 기본 반찬도 손맛 있는 전라도 여인의 음식솜씨를
능가할 정도이고, 간고등어 맛까지 좋아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던 아내까지도 밥 한 그릇을 후딱 비워버린다.
아침식사 후 우리는 다른 숙박자들과 함께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하회마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했다는 70대 중반의 민박집 할아버지는 하회마을 유래에서부터 꼭 들러야 할 고택들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는 어제에 이어 복습하는 기분으로 다시 한 번 하회마을을 답사하고 나서 유교문화길 3코스 시작지점인
현외삼거리로 이동한다. 현외삼거리에는 안동세계인형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교문화길 3코스는 안동세계인형박물관 건너편 현외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현외마을로 들어선 우리는 마을 안쪽 골목길을 따라 민가 뒤편으로 올라간다.
길가에는 빨갛게 익는 감이며, 대추․밤들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풍요롭게 해준다.
이어 낙고사지를 만난다. 이곳은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가 하회마을 입향조인 류공혜를 추모하기 위해
낙고사라는 사당을 세우고, 류공혜 등 네 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대원군서원철폐 때 사당에 모셔졌던 위패를 땅속에 묻어 보관하게 되었고,
지금의 비석은 2003년 문중에서 만들어 세운 것이다.
낙고사지를 지나 작은고개를 넘는다. 마을사람들이 작은고개당이라 부르는 곳이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현외삼거리에서 하회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큰고개, 현외마을 뒤 야산에 있는,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고개를 작은고개라 불렀다. 큰고개는 말을 타고 다니거나 우마차로 짐을 나르던 고개였고,
작은고개는 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고개였다. 작은고개에는 신목(神木)이 있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돌을 얹어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고 해서 작은고개당이라 불렀다.
길을 걷다보면 고개 아래로는 현외마을이 산에 기대고 있고, 마을 앞으로 풍천들판이 넓게 펼쳐진다.
누렇게 익는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이런 풍요로운 들판을 학가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낙동강변에 솟아있는 낮은 산줄기를 따라 걷는 길은 포근한 솔숲길이다. 가끔 도토리나무를 만날 때면 땅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볼 수가 있다. 사람들이 줍지만 않으면 도토리는 다람쥐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순흥안씨 묘에서 바라보니 하회마을을 휘감아 돌아오는 낙동강의 모습이 유연하다.
강물은 모래를 적시며 흘러가고, 강변에는 농토가 형성되어 있다.
산위에서 바라보니 풍천면 소재지가 가깝고,
새로 조성중인 경상북도 도청 소재지의 건물들도 풍천면소재지에서 멀지않은 거리에 있다.
914번 지방도로를 만나 낙동강에 놓인 광덕교를 건넌다. 광덕교 위에 서니 구담습지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1976년 안동댐, 1992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낙동강 상류에는 십여 곳의 습지가 생겨났다. 구담습지는 낙동강 배후습지 중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곳으로 하회마을 아래에서부터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 사이 4km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특히 광덕교 아래쪽으로는 습지가 잘 발달되었다.
습지에는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여러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구담습지는 4대강 사업 때 훼손 논란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낙동강에 설치된 보 가운데 가장 상류에
위치한 구담보는 전통적인 우리나라 보처럼 강물이 넘칠 수 있을 정도로 낮게 건설되었다.
이렇게 작은 보가 설치됨으로써 구담습지는 상당부분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광덕교 위쪽 강변에는 파산 유중엄을 기리는 정자인 파산정이 있다. 유중엄은 1564년(명종 19) 낙동강변 언덕에
정자를 짓고 학생을 가르치고자 스승인 퇴계 이황에게 물었는데 “형편에 맞게 차차 건립하라”는 답장을 받았다.
여건이 되는대로 정자를 지으려던 유중엄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정자를 짓지 못하고 돌아가신 선조를 항상 애석하게 생각했던 후손들이 1935년 지금의 자리에
단출하게 건물을 세우고, 그 이름을 파산정이라 했다.
광덕교를 건너면 부용대와 옥연정사․겸암정사로 가는 길이 갈린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논 뒤로 농가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옆을 지나 낮은 둔덕을 넘는다.
강변에 충적되어 만들어진 기름진 논과 밭에는 농작물들이 튼실하게 익어가고 있다.
이윽고 화천서원에 도착한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화천서원이 자리를 잡았다.
화천서원은 겸암 류운룡과 류성룡의 손자 류원지, 류성룡의 문인인 김윤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786년(정조 10)에 세운 서원이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사원철폐령으로 강당과 주사만 남고 훼철되었다가 1996년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휴식공간인 지산루, 강당인 숭교당, 동서재인 전학재과 심원재, 사당인 경덕사, 장판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화천서원은 문이 굳게 닫혀 밖에서 볼 수밖에 없다.
화천서원에서 푸근한 흙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니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에 닿는다.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이 1588년에 지은 서재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인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을 집필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 임금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을 담고 있다.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은 옥연정사 근처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이름을 옥연정사(玉淵精舍)라고 하였다. 옥연서당이이라는 편액이 붙은 옥연정사 마루에 앉아 있으니
하회마을과 낙동강의 모습이 낮은 담장 너머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마당에는 류성룡이 심었다는 수령 400년의 소나무 한 그루가 굴곡진 우리 역사를 닮은 듯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간죽문이라는 편액이 붙은 동쪽 문을 나가면 낙동강이 발아래에 와 있고,
한 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 하회마을과 낙동강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하회마을에서 이쪽으로 건너오는 나룻배도 보인다.
서애는 옥연정사에 머무는 동안 부용대 아래 절벽 3부 능선을 따라 형인 겸암 류운룡의
서재 겸암정사를 오가며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 서애와 겸암이 다녔던 길은
워낙 가파른 경사지에 있어 폐쇄되었지만 길의 흔적은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옥연정사에서 부용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화천서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하늘높이 솟은 적송의 환송을 받으며 우리는 화천서원으로 향한다.
화천서원 뒤편 솔숲 그윽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하늘이 열리면서 부용대에 닿게 된다.
부용대라 불리는 64m 높이의 절벽 위에 서니 병산과 화산 사이를 빠져나온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둥그렇게 돌아가는 모습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낙동강 물길이 휘감아 돌면서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흡사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물돌이동을 이루어 하회마을이라 불렀다는 연유를 가장 실감나게 볼 수 있는 곳도 이곳 부용대다
강과 산, 농경지와 마을이 어울리고, 마을에서는 한옥과 초가집이 사이좋은 친구마냥 어깨를 나란히 한다.
아무리 빼어난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화다.
하회마을의 허한 기운을 살리기 위해 심었다는 만송정 솔숲도 모래사장과 어울려있다.
낙동강의 맑은 물은 이곳 부용대에서 바라보아도 강바닥 모래가 훤히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맑다.
이처럼 부용대는 하회마을의 전경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부용대에서 겸암정사로 가는 길도 솔숲으로 이루어져 그윽하다.
잠시 솔향기를 맡고나니 겸암 류운룡이 1567년에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을 위해 지었다는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제89호)가 기다리고 있다.
겸암정(謙巖亭)이라는 현판은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이 직접 써준 것으로,
겸암이 스승이 직접 써준 글씨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누각에는 정면에 겸암정이라는 편액이, 안쪽에는 조용히 몸을 닦는다는 암수재(闇修齎)와
학문을 강설하고 익힌다는 강습재(講習齎)라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겸암정 현판이 걸린 누각에 앉으면 고요히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와 강변 모래밭, 고풍스러운 하회마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는 부용대 서쪽과 동쪽에 각각 정자를 짓고 학문하며 풍류를 즐겼다.
ㄱ자 모양의 안채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바깥채와 분리되어 있는데,
돈이 없어도 배우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그저 가르친다는 뜻인 허수료(虛受療)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겸암정사 누각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여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겸암정사를 나와 건물 뒤편으로 올라가니 겸암정사를 보호하듯 서 있는 소나무들이 배웅을 해준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저우리 마을로 간다.
낙동강변 들판에는 황금빛 물결이 춤을 추고, 저우리 마을은 작은 소나무 숲과 낙동강이 함께한다.
하회마을을 휘감고 돌아온 강줄기는 부용대와 화천서원 앞에서 다시 한 번 태극을 그리고
저우리와 기산리 들판을 적시며 흘러간다.
유교문화길 3코스는 저우리 마을에서 강변 자전거도로를 따라 구담교 다리까지 길게 이어진다.
이곳을 흐르는 낙동강은 구담습지를 이루고, 구담습지는 다양한 동식물이 생태계의 보고를 이룬다.
우리 일행은 봉정사 답사를 위해 3코스 일정을 저우리에서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봉정사로 이동하면서 낙동강 위의 광덕교에서 또 다시 구담습지를 바라본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이 곧 하늘이다.
(2015. 10.10)
*여행쪽지
-안동 유교문화길 3코스는 현외삼거리에서 시작하여 낙고사→광덕교→화천서원→부용대→겸암정사→저우리→구담교까지 10.3km에 3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 → 풍산 → 하회삼거리에서 하회마을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800m 쯤 가면 또 다시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하회마을 쪽으로 100여 미터만 더 가면 세계인형박물관 건너편으로 현외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안동역 출발하여 하회마을까지 가는 46번 시내버스가 하루 12회 있다. (06:20, 07:30, 08:50, 10:00, 11:00, 12:10, 13:20, 14:20, 15:20, 18:20)
-광덕교를 건너 화천서원․부용대로 가는 길가에 예미정(010-3923-2771)이라는 민박을 겸한 소박한 식당이 있는데, 손으로 직접 만든 건진국수와 손두부, 조밥 등이 맛있다. 하회류씨의 종가음식으로 알려진 건진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4:1로 섞어 반죽한 후 홍두께로 밀어 칼로 썰어낸 국수를 사용한다. 손으로 직접 만든 국수는 말린 은어를 우려낸 육수(요즘에는 은어가 부족해 멸치 육수를 사용하기도 함)에 넣고 잘게 썬 묵은 김치와 호박, 계란지단, 김가루 등을 얹은 후 국물과 함께 먹는다. 이렇게 정성이 가해진 건진국수는 담백하고 개운하다. 주인이 직접 만든 손두부에 막걸리 한 잔 마시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건진국수 7,000원
첫댓글 깜박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들어왔네요.. 몇 해전부터 시작한 트래킹 나들이가 여러 모로 좋지만, 이렇게 카페에 들어와 기억을 되살려 그 기분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점도 매우 좋아요. 늘 길 안내를 비롯하여 많은 수고들 하면서 또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남겨주어 정말 고마워요.^^ 내년 초 섬 나들이도 기대가 큽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늘 행복합니다.
우리의 행복한 길 걷기는 오래도록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