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과 이동
고학년 팀 활동이 끝나니
곧바로 저학년 1팀과의 만남 시간이었습니다.
4시 5분에 새들 놀이터 앞에서 보자고 했지만
알고보니 아이들은 3시 55분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지각이에요!"
현아가 귀가 빨개진 채로 말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오늘 활동을 기대했으면...
한편으론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는 미리미리 나와있어야겠습니다.
수아는 예원 선생님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창균 선생님이랑 손 잡고 갈 사람?!"
예원 선생님이 물었지만
현아는 유담이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놀이터에서 오피스텔까지의 거리가
오늘따라 유달리 춥게 느껴졌습니다.
어제 오윤이의 따뜻한 손이 벌써 그립습니다....
신림동 공유공간에 가본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그그 선생님이랑..."
"면접 봤던 곳?"
"네네! 맞아요 면접! 아이 면접이라는 말이 안 떠올랐어요."
유담이가 면접했던 곳임을 기억해줬습니다. 고맙습니다.
현아는 지난번 아쿠아리움 갔던 이야기를 하며
"나는 가봤는데, 선생님만 안 가본거 아니에요?"
자신이 신림동 선배임을 강조했습니다.
선배님 깍듯하게 모셔야겠습니다.
- 누구에게 부탁 드릴까
출입 명부를 작성하면서
누구에게 부탁할지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고민해도
마땅한 둘레 사람이 없었는지 난감해했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어때요? 경로당 가서 부탁드려볼까요?"
"경로당이요? 어디 있어요?"
"저기 새들 놀이터 옆에도 있고 갑을아파트에도 있어요."
"와 갑을 아파트 우리집 옆이에요! 좋아요."
- 어떤 놀이 배울까
그럼 무슨 놀이 배우고 싶냐는 물음에
수아는 시종일관 외쳤습니다.
"오징어 게임이요! 달고나 달고나!"
다른거 또 배우고 싶은건 없냐고 물었습니다.
"보석 십자수요! 십자수 하고 싶어요."
유담이는 십자수에 꽂혔습니다.
"음.. 만두? 실뜨기? 호떡이랑 윷놀이는 별론데..."
윷놀이나 연날리기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묻고 의논하지 않았다면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시간이 되었을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것도 많고
어르신들이 무엇을 가르쳐주실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하나를 정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거 다 쓰기로 했습니다.
플랜B, 플랜C 모두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신림동 겨울놀이 활동의 묘미니까요!
- 카드 제작
드디어 카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카드는 미리 준비해둔 도안을 활용했습니다.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3개의 도안을 가져갔고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2개씩 골랐습니다.
"수아는 복주머니, 유담아 너는 뭐 할거야?"
"나.... 복주머니!"
"그럼 나는 하트 해야겠다."
한 살 많은 현아는
선택받지 못한 하트의 마음을 헤아려준 것일까요.
어쩌면 희소성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저 골고루 선택해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 연두색 빌려줄 수 있어?"
"내가 노란색 빌려간다~"
색연필은 복지관의 것이었지만
서로에게 묻고 빌려서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막 쓰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 하나하나가 귀하고 소중합니다.
"뭐라고 써야 할까요? 수아는 벌써 다 썼는데 혹시 뭐라고 썼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음 오징어게임이랑 깐부요! 저는 깐부 3명 있다고 적었어요. 그리고..."
깐부가 어인 말인가 싶었습니다.
9살 친구에게 최신 트렌드를 배워갑니다.
유담이는 어떤 놀이를 부탁할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습니다.
"으아아 모르겠어요."
고민하는 모습이
이 활동에 진심이구나 싶어
정말 고마웠습니다.
- 나가서 놀면 안되나요?
수아가 열심히 편지를 쓰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나가서 놀면 안 돼요?"
"카드 다 만들면 나가서 놀아요~"
카드 하나를 완성하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몇시까지에요?"
5시 30분까지 활동하기로 했는데
벌써 5시 5분이었습니다.
"그럼 10분만 더 만들고 20분 놀면 안 돼요?"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너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내일 당장 어르신들께 편지를 드려야하고
오늘 밖에서 놀기에는 너무나도 추운 날씨였습니다.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놀아주지 못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원한다고 다 들어주는 것만이
당사자의 자주성을 살리는 것은 아니라 배웠습니다.
아직 어렵습니다.
한 달 후에는 제가 과연 달라져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배워나가겠습니다.
- 활동일지 작성
오늘 활동은 현아가 가장 먼저 끝냈습니다.
그래서 활동일지 써주기로 했습니다.
날짜며 장소까지
"선생님 저 글씨 예쁘죠."
하며 적었습니다.
활동 내용은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친구들 이름도 적어달라는 부탁에
직접 초상화까지 넣어줬습니다. 고맙습니다.
"손이 아팠지만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재밌었는데 다음엔 또 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현아의 장난이었습니다.
그치만 이렇게 가슴 아픈 기록으로 남아버렸습니다.
다음엔 더 묻고 의논하고 부탁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헤아려야겠습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아는 유담이랑 현아랑 더 놀고 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현아를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롯데백화점 앞까지 다같이 데려다주었습니다.
따로 가면 시간은 단축되겠지만
아이들의 관계도 희미해질 수 있기에
다같이 손 꼭 잡고
함께 걸을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오늘은 현아의 생일이었습니다.
헤어지기 전 같이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습니다.
장난기 많은 유담이와 수아의
생일빵도 이어졌습니다.
제 생일은 이야기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후 수아네 집으로
마지막으로 유담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유담이도 내심 친구들과 같이 집으로 가고 싶었는지
아쉬움을 내비췄습니다.
"그럼 내일은 유담이네부터 가자!"
유담이가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현아 언니가 제일 멀리 사니까 먼저 데려다주고요."
이들에게 서로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수아가 집으로 올라가기 전
유담이를 꼭 안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서로가 친구여서 참 행복하겠다."
오늘은 수아에게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만 주는거에요. 먹으면 입안이 막 톡톡거려요."
어렸을적 자주 먹던 과자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고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의 피로가
작지만 귀한 선물 덕분에 싹 풀렸습니다.
고맙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것 투성입니다.
그래서 이 활동이 더 재밌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첫댓글 아이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재미있게 활동하는 모습이 너무 예쁩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즐겁게 활동할 수 있도록
늘 신경쓰시는 창균 선생님의 마음도 너무 고맙습니다.
신림동 겨울놀이 활동 항상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창균 선생님 응원합니다!
아이들이 해보고 싶은 것 마음껏 하게도 하고
못 해본 것 해볼 수 있게 거들 필요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는데 제일 재미있었어요"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할래요."
"다음에 또 가고 싶어요."
하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창균 선생님 잘 배우고
열심히 고민해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