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칼치
필봉 최해량
서울에 380㎜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8월 한 달 동안 내릴 비가 하루 만에 내렸다. 이는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예상치 못한 비로 강남 지하철역이 침수되어 직장인들은 퇴근을 포기했다. 터널과 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하루 침수된 차량이 9,000여 대가 넘었고 반 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참상이 발생했다. 실종자가 속출하며 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생겨났다.
이 기상 이변은 북태평양고기압이 티베트고기압을 만나 거대한 비구름을 만들었고 이것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정체전선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부지방 하늘에 소양강 댐을 가득 채울 구름 호수 서너 개가 떠다니다 비를 쏟아 부었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 전선이 소멸할 기미는커녕 위, 아래를 오르내리며 더 넓은 지역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물 소동을 빚고 있던 그 시각 영남지방에서는 청정하기로 소문난 운문댐, 가창댐 바닥이 말라붙어 거북이 등가죽처럼 갈라져 있었다. 이 댐에 기대어 살아온 일부 시민들은 낙동강 물로 대신해야 했고 농부들은 무심히 하늘만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예부터 대구는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덥기로 소문난 고장이다. 겨울 기온은 중부지방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팔공산 칼바람이 체감온도를 떨어뜨리고 여름은 연일 전국 최고기온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장마철에도 찔끔찔끔 몇 방울 간드러지게 내린 게 전부였으니 영남의 이 아픈 속사정을 누가 알아줄까.
농사가 근본이었던 우리에게 가뭄은 국가적 재앙이었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친한 이웃 간에도 물싸움이 벌어졌다. 임금은 자기 반성문, 죄기소罪己를 써서 종묘와 사직에 고하고 백성들에게 반포했다. 내가 덕이 없어 한재가 발생했으니 연회를 폐하고 술도 금하겠다고 했다. 지방 관리들도 기우제를 지내며 어려운 주민들을 돌아보고 옥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기우제 행사를 따라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가뭄이 시작되면 5일장을 미남리 앞 갱변에서 내다보였다. 민초들의 고단함을 하늘이 보시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강바닥에 차양도 치지 않고 시장을 열었다. 상인들이 이끼조차 말라버린 울퉁불퉁 자갈길에 좌판을 벌리면 주민들도 이에 화답하며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비학산’에 묘를 파러 갔다. 이 산 정상에 3년만 묘를 쓰면 그 사람은 큰 복을 받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광, 흥해, 청하 세 고을의 들끓는 민심으로 묘를 파면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큰비를 만났다고 한다. 때로는 엉뚱한 산의 묘까지 파헤쳐 법정 다툼이 생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전승은 비단 우리 고장뿐 아니라 영남지방 곳곳에 남아있다.
기우제의 클라이맥스는 밤중에 산에 불을 놓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대 반, 호기심 반 보리짚 단을 들고 어른들을 따라 어두운 산길을 더듬으며 용산에 올랐다. 200여 미터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해아뜰’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해까지 조망되는 곳이다. 가져온 보릿단을 꼭대기에 쌓고 기우제를 지낸 뒤 불을 놓으면 약속이나 한 듯 이산 저산에서 불길이 올라 장관이 연출되었다. 이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봐라! 산칼치가 날아간다. 산칼치가 날아간다!”
“어디, 어디?”하며 가리키는 쪽을 보노라면 제법 희미한 불티가 다른 산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혼자만 못 본 사람이 될까 봐 나도 보았노라고 자신 있게 소리쳤다. 그래도 어린아이의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 ‘산에도 칼치가 사나?’, ‘칼치가 어떻게 날아다니지?’ 온갖 궁금증이 생겼다. 어른들은 이제 깡철이가 날아갔으니 비가 올 것이라고 하며 산을 내려왔다. 하산 길에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바다에 사는 산칼치는 깡철이가 되어 하늘에 올라가다가 힘이 없어 산에 내려앉으면 그 지방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두려움마저 들었다.
지난 7월 칠포 바닷가에서 산칼치가 잡혔다. 잡혔다기보다는 바닷가에서 건진 것으로 1, 2미터의 작은 것이었다. 사진으로는 보통 갈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궁금증이 떠올라 인터넷을 살펴보니 이 고기는 깊은 바다에 사는데 길이가 10미터가 넘는 것도 있고 등지느러미가 몸보다 더 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포항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4~5미터 길이의 갈치가 여러 차례 올라와 지진 발생의 연관성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또 이 영물은 하늘에서 내려온 별이라는 전승이 있었는데 이를 믿고 불을 놓아 쫓아내려는 소동을 벌인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름에 왜 산자를 붙였는지 궁금함은 여전히 풀지 못했다.
넓지도 않은 나라 안에서 어떤 곳에서는 물 폭탄이, 또 다른 지방에서는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이웃 중국은 양자강 수위가 낮아져 세계 최대 ‘낙산 대불’이 받침을 드러내었고 유럽도 500년 만의 유래 없는 가뭄으로 라인강이 바닥을 드러냈다. 남부 프랑스는 제한 급수를 하고 미국 서부 지방은 화단에 물을 주면 벌금형까지 선고한단다. 기상재해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대한 결과라고 한다. 난개발로 지구촌 허파가 파헤쳐지고 화석 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생선 뱃속에서 비닐 조각이 나온다고 하니 이제 좋아하는 갈치나 고등어도 함부로 먹지 못할 세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