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13일(목) 전도서 8:9-13 찬송 364장
9.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도다
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개역 개정)
12-13절)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2절에서 악인이 장수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측면의 모순
즉 악을 행하면서도 큰 형통을 누릴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전도자는 현실적으로는 모순과 혼돈이 따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의인이 잘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는 13절에서 다시금 분명히 확증된다.
13절에서 악인이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한다는 내용은
12절과 모순된 것으로 보이나 현실이 아닌 궁극적인 운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운명을 만들어가는 의인과 악인의 판별 기준을
전도자는 12절과 13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과 연결짓는다.
한마디로 전도자는 인생의 가치가 다른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선인들과 악인들, 성도와 불신자로 구분되는 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한 부류의 사람들,
하나님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을 결정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믿는 자들, 곧 그리스도인이라 일컫는 자들 가운데도
구별과 분류를 가능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성경을 아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을 최상의 가치로,
인생의 진정한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부요와 명예, 권세와 영화를
더욱 실제적이고도 중요한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더욱 간절히 추구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라 이름하는 사람들이
매일의 생활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삶,
그분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분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고 끝마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도 화두(話頭)는 말씀 안에 사는 것,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간증보다
자녀들의 학업 성적, 사회 생활의 성공이나 부의 재테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스포츠 뉴스 등이 주류를 형성한다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피곤한 일상에
또 하나의 일을 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행사와 그분이 베푸신 은혜는 마치 삶과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이는 결코 지나치지도, 무리한 지적도 아닌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의 삶의 면모를 표면화시킨 것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가 반성하고 다시금 각성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앞서 말한 것처럼 성도와 불신자,
선인들과 악인들의 삶을 구분지어주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축복을 공급받는 삶을 살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의 삶을 무엇보다 고결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으며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역사를
수도 없이 목도(目睹)하였으면서도 조금만 삶에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어떤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자신의 길을 마치기까지 경외와 헌신으로 일관했던 모세를 비교해 보라.
그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가치가 동일하다 할 수 있을까?
말라기에 기록된 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대해 냉소하며
이를 번거롭다고 말하며 온전치 못한 재물을 바치는 자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사모하여
그 심령이 쇠약해졌다고 고백하며(시84:1-2)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 있는가?
그야말로 그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를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새롭게 다져야 한다.
그것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간직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가장 복되고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금이나 은보다 가치 있는
천국의 보화를 우리의 심령에 안겨줄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땅에 속한 덧없는 권세나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영광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며 살게 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고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