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주일 예배
본문<마>18;12~14
제목; 잃은 자, 버린 자
5월은 가정의 달이요 어린이날과 어버인 날에
스승의 날이 있는데
이 가정의 달에 던지는 주님의 메시지는
잃은 자도 있고, 버려진 자에 버린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여 고아들인데
제가 국민 학교 3학년 때까지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 종로구 누상동에서 가까운
청와대 옆에
사직 공원이란 곳에 있는 매동 초등학교를 다녔고
4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는 장충 국민 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 매동 국민학교 옆에
전쟁고아들을 수용하는 고아원이 있었고
고아들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전쟁 시 피난 중에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고아원은 존재하는데 누구는 잃어버린 자로
고아가 되었고
버려지거나, 버린 자로 살아가는 고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님은 버려지거나 버린 자가 아닌
잃은 자를 찾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여러분도.. 처음에는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도 영적으로 잃어버린 자였다는 것입니다
아니 나도 예수 믿기 이전에는
버린 자이거나
버림받은 자로 여기며 하나님을 믿지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이제 돌아와
그 주님을 만나보고 성경을 가까이 대하고 보니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리거나 내가 버려진 자가 아닌
잃은 자였구나
내가 예수를 영접하여 믿기 이전에도
하나님은 늘 나와 동행하시며 가까이 계셨구나 하는 것을
체휼하며 느낍니다
예수님은 늘 항상 우리를 요14;18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약속하시면서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아멘
외로워하지도 고통과 고난 가운데 힘들어 하지도 말고
잘 견뎌내라
그리고 주시는 주의 말씀은
요14:17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아멘
여러분..은혜의 시대요
성령의 시대인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우리가 늘 말씀을 멀리하며 주를 찾지 않아서 그렇지
주님은 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셨고
사건과 문제로 말씀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셨던 것을
이제는 믿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그런 믿음이 찾아 옵니다
고난뿐인 인생
고난이 선택이 아닌 고난이 필수였던 우리네 인생에
실수와 실패로 힘든 삶을 살 때에도,
고독하며 고통스럽고
환난 가운데 무서워하고 떨며 두려워 할 때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늘 나와 동행했었다는 의식이 내 안에 고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저와 여러분은 우연히 천만 다행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아래, 그 분의 섭리로, 베푸신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갈급함으로 호소하면
그 일이 이루어졌고
오뚝이 인생으로 늘 살아나 도전할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과
그 능력의 힘이 작동되었을 때를 돌아보면
그 때는 몰랐는데 그 때도 지금도..
아니 처음부터
하나님은 나와 늘 동행하고 계셨다는 고백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말씀을 몰랐기에 몰랐고 지금은 말씀을 들으니
들은 말씀으로 깨달아지고 그렇게 믿어진다는 것이
나의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은 나와 우리를 위해 너무나 많이
수고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내 삶에 개입하시고 섭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분이 생명을 주셨고
그분은 살아 계시며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결코
특별한 자는 아니었는데도 하나님은 그리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별 볼일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구속하셨고 지명하여 부르시고
창조주께서 [너는 내 것이라..]하시며 피조물인 우리에게
사랑을 전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어느 날
신비한 체험을 통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내 심비에 새기며 말씀을 영접했는데
그 말씀은 신8;16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는 내가 너를 잘 안다..라는
주의 음성으로 들을만한 말씀 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말씀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열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번 찾아 볼까요? 신8장16절입니다..여러분 이 말씀은 어느 날
성경을 읽으며
송이꿀처럼 단 말씀 속에 취해 있을 때
말씀 한 구절이
인쇄된 종이 위에서 솟아오르는 신비한 체험으로 나에게 도전해 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한 줄로 죽 늘어서며 클로즈업되고
순간적으로 읽혀지는데
읽는 내 입술을 통해 내 마음에 쏙 들어와 그대로 암송이 됩니다
심비에 새겨졌다는 말씀입니다..한 순간의 짧은 체험이지만
이 말씀은 저에게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 있는 너에게 먹이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럴 때 즉각적인 내 반응은 그래요 하나님
내 열조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는 만나도 모르고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분들이 맞아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열조를 아시는 하나님은 나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읽을 때 어찌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지는
잘 모르지만
저에게는 이렇게 들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내가 네 열조도 알고
너도 안다
네가 인본주의와 세속적 가치에 빠져 얼마나 많은 시간과 세월을
네 멋대로,
네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는지도 알고 계시고
네가 가난이나 부요 가운데 처해 있을 때에도
네가 때로는
실패와 실수를 하면서 분하고 억울해했지만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은 그 교만함과 목이 곧음도 내가 잘 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찾은 너에게 광야를 선물로 주면서
그 광야의 양식으로 하늘의 만나를 주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너를 낮추고 시험하여 마침내 복을 주고자 한다..
그러니까 너는 이제부터는 순종하라..아멘 여러분
이렇게 진단했고
해석했으며 마침내 복을 얻기 위해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늘 나에게 관심이 있으셨는데 그 말씀은 시편139편 1~4입니다
여러분 시편 139편1~4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나
살펴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절은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절은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그런데 나도 하나님께 관심은 있었는데 믿지는 않았습니다
이방인이었고
잃어버린 자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잃어버린 세월이 안타깝고 아쉽다는 고백입니다
내 인생에
49년은 흑암을 살면서 잃어버린 시간과 세월이라면
그 이후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신 인생이요 시간으로
그렇게 까먹은 그 인생이...다시금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되돌아갈 수 없기에
소비된 그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잃어버린 자들을 주님 대신으로 찾아 나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리 가본 14절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
그렇습니다..잃은 자를 찾는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리고 명령입니다...이에 대해 예수님도 요6;38~39에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이어지는 39절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아멘
그렇습니다..예수님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는데
사49;15~16에서15절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에서 어머니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잊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게다가 여러분 16절이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데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아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긴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도 기록되었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고 네 주변을 성벽처럼 둘려 쳐놓고
너를 보호하고 이끄시며 항상 내 앞에 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모성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무엇에 쓰시려고
그리하실까요
그 답은 요한계시록19:9의 말씀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잃어버린 자를 찾는 가장 주된 이유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신부로 초대하기 위해서이고
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 모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이 큰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12,13절입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그렇다고 여러분...아흔 아홉 마리는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아흔 아홉 마리도 귀하지만 잃어버린 한 영혼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눅15;8~10은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한 드라크마의 값에
견줄 수 없는
시간과 인력과 그에 따른 재정과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찾는 다는 뜻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5백원짜리 동전을 찾기 위해 50만원을 투자하여
온 마당과 들과
산을 헤매어 찾고 또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전도할 때 드는 시간과 비용과 인력과
물질을
결코 아까워하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전도해도 안 오더라는 부정적인 견해보다는
전도하며
보내시는 영혼이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찾고 난 후에는 더 많은 값으로 큰 잔치마저 베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고
저와 여러분이 그 값에 견줄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잃어버린 작은 드라크마나 길을 잃은 어린 양을
되찾았을 때는
내게는 별로 큰 유익은 없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천국잔치를 베푸시고 우리를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이니 드라크미를 찾는 순종은
돈에 비교하고
견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에 있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양뿐이 아니라 기도원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노후 대책이고 교회해서 돈 번다는 이런 세속적인 생각은
날강도요
도둑이요 장사요 사역이 아닌 사업과 같은 짓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이런 일, 이런 자세로 사역하다가 변질되고 또 대를 이어
세습되니
교회가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영성은 바닥을 치며
영적 흉년에 영적 불임의 매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부흥사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사례비를 바라고 강단에 서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소비되는 시간과 준비하는 노력과 기름 값과 도로비 등에 비해
소액의 사례비를 받으면서도
내가 그곳 기도원에 가는 가장 주된 이유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길 잃은 어린 양을 찾기 위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전한 설교에
단 한 명의 영혼에게라도 내적 치유와
질병과 문제와 사건이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교회의 목양도
목양을 위하고 잃은 양을 찾는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부울경에서 cts 방송을 타며 오산리와 한얼산 남경산 등의 기도원을
안방 드나들 듯
이렇게 자주 드나들며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흔치 않은데
왜 우리 교회는 늘 이런가
이런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그 점은 나도 내 아내도 답답해합니다..사실 나도
숫자가 좀 늘었으면 합니다
예배 숫자로 힘 빠질 때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때문에 견딥니다..그리고 여러분이 열매이고
나와 내 아내는
하늘에서 받을 상급에 거룩한 욕심을 내며 견딥니다
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하셨기에
마지막 종말의 시대에 하늘의 상급에 욕심을 내며
예수 정신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잃은 양을 찾는 자가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은
6절의 예수 믿는 이 작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잃은 양에게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작은 자
한 사람의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를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큰 자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잃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다가 쉬는 자들 가나안 교인..즉 신앙은 있으나 교회에
안 나가고 있는 영혼들
실족하고 삐지고 그래서 지금은 방학 중인 영혼들
이들 모두가 잃은 양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도처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있고 교회 밖에도 있으며
거리거리 큰 길,
외진 길. 산책로 등산로에 널려 있고
각 가정에도 이모콘 기사를 하는 잃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이런 자들을 찾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적용을 하시겠습니까?
이제 14절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14절 말씀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뜻은 영혼 구원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벧후3;9의 말씀대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뜻이 있으시고
*또 요3;17의 말씀대로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고
*요6;39절에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셨으며
*살전5;9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을 얻게 하려 하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때문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뜻도
구원을 위함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힘든 사람에 대한 영적 부담이 있어야
잃은 양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늘 낮아짐의 겸손한 자세로 어린아이다움을 회복하고
또 이런 어린 아이
즉 작은 아이를 영접하고
우리의 언어 행실로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삼가 조심함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나설 때
천국에서 가장 큰 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나서는 일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결단으로 순종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해야 천국에서 큰 자로 마무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
천국에서 큰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