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富川市]
설화·민요
이 지역에는 지명유래담, 자연물에 관한 설화, 이인·악인설화 등이 전한다. 송내동의 「서도사설화」는 인과응보를 말하여주는 악인의 이야기이다. 포악하고 인색한 서도사는 인근의 전답을 모두 가지고 있는 부자였다. 하루는 남루한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는데, 재워주기는커녕 하인을 시켜 곤장을 치게 하였다. 매 때리는 것이 서툴러서 그랬는지 매 몇 대에 과객이 맥없이 죽어버렸다. 시신을 묻으려고 하는데 몸에서 숨긴 마패가 나왔다. 과객은 암행어사였다. 이 소문이 퍼져가자 서도사는 강화도 소실집으로 피해다니다 피살체로 발견되었다. 서도사가 죽은 뒤, 그 가족 중에 두 명이나 정신병자가 나왔고, 가세도 기울어 살기가 곤궁해져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가계마저 끊어지고 말았다고 전한다. 범박골의 「배못탱이전설」은 이 마을의 형성 유래담이기도 하다. 배못탱이는 동구밖 느티나무의 이름인데, 이 나무의 동남쪽은 하천·평야지대로 매우 지형이 얕은 곳이다. 옛날 큰 장마가 져서 이 일대에 물이 범람하자 몇몇 사람이 뗏목을 만들어 높은 곳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노를 저었다. 산과 산 사이의 구릉을 따라 분지에 이르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어서 여기에 배를 매고 상륙하여 마을을 이루니 바로 지금의 범박골이며, 느티나무는 배를 매었던 곳이라 하여 ‘배못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귀신과 바둑을 둔 담력 큰 원님에 대한 설화도 있다. 옛날 부평에 원님이 부임만 하면 죽어가므로 조정에서는 할 수 없이 한 사형수를 고을 원으로 보내었다. 부임한 원님이 첫날밤 촛불을 밝히고 기다리는데 일진광풍이 일어나며 촛불이 꺼지고 옥관자(玉冠子)를 한 선비 차림의 귀신이 나타났다. 원이 이 밤중에 어인 행차시냐고 인사를 건네자, 귀신은 신천면에 묻혀 있는 하씨인데, 자신의 묘 주위에 있는 소나무를 도벌꾼이 자꾸 베어가니 이를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려고 여러 번 고을 원님을 찾아왔으나, 그때마다 원님이 죽어 소원을 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다음 날 원님을 장사지낼 준비를 하고 있던 아전을 앞세우고 하정승의 묘를 찾아가 도벌꾼을 잡아 엄히 다스렸다. 그러자 이날 밤 다시 찾아온 하정승은 고맙다고 사례하며 바둑을 두자고 하여 그 뒤 날마다 찾아오는 것이었다. 원님은 밤마다 귀신과 바둑을 두느라고 몸이 수척해지자 아전들에게 귀신 쫓는 방도를 물어 복숭아를 준비해두었다. 다시 찾아온 하정승에게 복숭아를 권하니 “주책없이 내가 매일 왔다.”며 “잘 있으라.”하고 떠난 뒤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시흥시 신천동에 하정승의 묘가 있다. 이 밖에도 동네에 자주 화재가 나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는 「신도비전설」, 봄철 나뭇잎이 위에서부터 피어 아래로 내려오면 풍년이 들고 그 반대이면 흉년이 든다는 소사동의 「쌍느티나무전설」·「하우고개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 중 여성노동요가 중심이 된다. 다른 노동요나 비기능요가 거의 없는 것은 서울과 인접해 있어 일찍 소멸되거나 미처 채록하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여성노동요로 구체적인 작업과 관련있는 「바느질노래」는 다음과 같다. “동해바다 한가운데/노상나무 한그루에/동편가지 죽은 후에/해오라비 앉았구나/소음잣을 서른석대/고이고이 솎아내어/명주애기 짝저고리/아삭바삭 말라내어/동편가지 걸어넣고/들며나며 바라보니…….” 이 노래는 바느질을 하며 온 정성을 쏟는 여성들의 아뜰한 정을 낭만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으로, 소박한 내용과 표현을 지니면서도 4·4조를 기본 운율로 하는 음영민요이다.
여성들이 일을 하거나 유흥에 두루 부르는 노래로는 혼인하자 아내를 잃은 불행한 신랑의 넋두리를 잘 표현한 「배좌수딸노래」가 있고,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문답형식으로 읊는 「시집살이노래」도 있다. 이 밖에 길 떠난 부모형제의 안녕을 비는 「부모요」,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쥐노래」 등 여성들의 섬세하고 애틋한 정이 소박하게 잘 표현되었다. 또한, 4·4조의 형식을 지닌 음영민요가 전해진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6-0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