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홍대앞 재즈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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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로 한껏 머리 모양을 낸 한 남자가 트럼펫을 들었다. 클리퍼드 브라운의 '왓츠 뉴' 연주가 끝나자 고교생 청중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어 그 남자 입에서 나오는 말. 모두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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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곡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났어요? 저 푸른 초원 위를 달리는 말을 상상해도 좋고, 뉴욕의 저녁 거리를 떠올려도 좋아요. 아니면…." 재즈 연주와 함께 영어 공부를 곁들이는 '영어 콘서트'의 밤은 그렇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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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EBS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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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실까요. 히어 위 고(Here we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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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튜디오 한켠의 크로마(화면 합성때 쓰이는 파란색 판) 앞으로 달려간다. 어느새 배트맨 복장으로 변신한 그, 망토를 휘두르며 영화속 대사를 읊조린다. 교육방송 TV 강좌 중인 선생님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그는 개구장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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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클럽과 교육방송 스튜디오. '영어'라는 무기를 들고 두 곳을 자신만만하게 오가는 남자가 있다. EBS 수능 영어 특강을 담당하는 이근철(36)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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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주 수.목요일 밤 11시 30분 어김 없이 TV에 나타난다. 흰색 와이셔츠나 양복 차림이 아닌 캐주얼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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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눈을 부비며 TV 앞에 앉았던 학생들도 그가 쉴새없이 내뱉는 현란한 영어에 정신을 바짝 차린다. 통통 튀는 그만의 강의 5년째, 어느새 학생들은 그의 수업 방식에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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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일단 재미있어야 합니다. 문법 설명
하고 정답 맞추기만 하면 얼마나 지루합니까. 더군다나 그런 방식으로 배우는 영어는 오래 못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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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점수도 잘 나오고 사회에 나가 써먹을 수 있는 영어를 위해 그가 창안한 것은 '재밌는 강의'다. 문장을 독해하는 대신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려보라며 배트맨.투우사로 변신해 상황을 설명하는 건 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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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휴 그랜트 등을 흉내내는 '영어 개인기'는 그만의 주력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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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강의론 내심 성이 차지 않았는지 지난해부턴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영어 콘서트'를 열고 있다. 직접 연주도 하고 청중과 영어로 얘기를 나누는 일종의 토크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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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외국물 한번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사춘기 시절부터 AFKN을 통해 영화와 음악에 심취했고 자연스레 영어를 체득했다. 때문이었을까.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영어 강사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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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는 분의 소개로 대학 실용 영어를 맡게 됐어요. 강의가 재미 없으면 학생들이 떠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참 많아요. 그때 알게 됐죠. 어떤 애드립을 치면 학생들이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딱딱한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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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라디오를 거쳐 TV 특강 강사에 발탁된 그는 아직도 그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의 강의법이 효과가 있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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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 오버액션에 학생들이 거부감을 많이 느꼈나봐요. 하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적응이 됐는지 이젠 재밌어 해요. 성적이 오른다고 감사 편지를 보내는 학생도 많고요. 5년을 해왔으니 지겹지 않냐구요? 노우! 학생들 가르치는 건 제 천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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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요새 9월말부터 시작하는 3단계 강의를 위한 수업 준비에 한창이다. 오는 11월 수능 시험을 앞두고 그 또한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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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기자<nazang@joongang.co.kr>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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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철식 '영어잘하기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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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영어 발음을 원한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세요. 그냥 말할 때 듣는 발음과 녹음 테이프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나지요. 테이프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원어민처럼 발음 연습을 하다 보면 영어를 잘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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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철씨는 대학원에서 영문학.언어학을 공부했다. 그만큼 언어 습득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 찾기에 골몰했다. 그가 터득한 결론은 누구나 다 잘 알면서도 정작 실행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바로 '독해를 하든 듣기를 하든 이미지를 떠올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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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비법=첫째, 본인의 문제점을 찾아라. 수능 시험은 문제 유형이 일정한 틀이 있다. 나는 주제파악이 안된다, 긴 글은 못읽겠다, 빈칸 채우기를 못한다 등 자신이 모자란 부분을 찾아 집중 공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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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독해나 듣기를 할 때 절대 해석하지 말고 항상 그림(이미지)을 떠올려라. 해석하는 사이 시간은 간다. 소설을 읽을 때 자연스레 장면을 연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근철(외국어)〓하위권은 문장해석의 관건이 되는 접속사나 기본 단어를 정리한다. 독해할 때 전체를 해석하지 않고도 문제가 요구하는 바를 정답과 연결하도록 한다. 중위권은 자주 틀리는 문제를 유형별로 점검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한다. 상위권은 일주일에 1,2회 모의고사로 공부하되 올해 영어가 2,3점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새롭게 변형된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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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비법=먼저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동시통역사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한다. 더구나 자신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 앞에선 절대 입을 떼지 않는다. 잘못된 영어라도 입으로 내뱉어야 자기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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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적절한 목표를 세워라. 전화로 미국인과 통화하고 싶다, 비즈니스상 경제용어를 많이 쓴다 등 자신에게 필요한 영어를 선택해 집중 공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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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쓸 데 없는 공부는 하지 말자. 두꺼운 2만.3만자 보캐뷸러리 책부터 버린다. 'have''lose' 등 쉬운 단어 5백개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