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태어나면 '신사'에서 축복, 결혼식은 '교회'에서행복, 죽으면 '절'에서 명복 빌어
오영상(뉴스핌 국제부 기자)
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일본의 종교 문화
일본만의 독특한 신불(神佛)신앙이 배경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말할 때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가깝고도 먼나라'다. 맞다. 일본은 가까운 나라다. 서울 시청에서 도쿄 도청까지 거리는 1,154km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가 475km인 것을 생각하면 외국치고는 무척 가까운 것이 맞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나리타공항까지 두 시간이면 도착한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같은 한자문화권이라는 점도 일본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 요소다.
하지만 한발 들여다보면 은근히 멀게 느껴질 때가 많다. 역사적 문제에 대한 감정의 간극은 차치하더라도 '한국과는 많이 다르구나'라고 느끼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종교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은 종교 구별이 뚜렷하다. 기독교인이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내거나, 불자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일본은 다르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찾아가 건강과 미래를 빌고, 결혼할 때는 교회나 성당에서 식을 올리고, 장례식은 절에 가서 불교식으로 치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가깝고도 먼 나라다.
아이가 태어나면 온 가족이 '신사' 찾아가 축복 빌어
일본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한 달 정도 지난 뒤 신사에 가서 아이의 탄생을 보고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신에게 기원한다. 이것을 '오미야마이리'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하쓰미야모우데’, ‘하쓰미야마이리’, ‘우부스나마이리'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남자아이의 경우 생후 31일이나 32일, 여자아이는 32일이나 33일에 신사를 찾아가지만 지역별로 차이는 있다. 교토에서는 여자아이가 빨리 시집을 갈 수 있도록 남자아이보다 빠른 시기에 오미야마이리를 끝내는 풍습이 있다. 예전에는 부계 사상의 영향으로 아빠와 친조부모만이 함께 갔고 엄마는 산후조리를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 엄마는 물론 친조부모, 외조부모가 모두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가 3세, 5세, 7세 되는 해에는 '시치고상(七五三)’이라고 해서 전통옷을 입고 신사에 가서 지금까지의 무사 성장을 감사하고 앞으로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는 3세와 5세 때, 여자아이는 3세와 7세 때 신사를 찾는다. 에도시대에 3세가 되는 남녀 아이가머리를 기르기 시작하는 '가미오키(髪置)’, 5세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하카마(袴, 일본의 전통의상으로 하반신에 착용하는 하의. 보통 기모노 위에 입는다)를 입는'하카마기', 7세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어른처럼 허리띠를 매는 '오비토키’ 등의 행사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본래는 11월 15일에 행해졌지만 요즘은 10월 중순에서 11월 하순 사이에 좋은 날 길일을 골라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년 정월에는 '하쓰모우데’라고 해서 신사를 찾아가 새해의 안녕과 소원을 비는 신년 신사참배를 한다. 1월 1일이 되면 각 지역의 신사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하쓰모우데를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쓰모우데 후에는 '오미쿠지(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를 통해 한 해 자신의 운을 점쳐 보기도 한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하쓰모우데 장소로는 도쿄의 ‘메이지(明治)신궁'을 꼽을 수 있다. 정초가 되면 3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요즘 한국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도쿄의 관광 코스 오모테산도가 바로 메이지신궁에 하쓰모우데를 하러 가는 참배 길이다.
결혼식은 '교회'가 부동의 인기 1위
현재 일본 내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교와는 관계없이 기독교 스타일의 결혼식을 희망하는 사람이 매우많다. 집에 불단을 두고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사람도 결혼식은 교회에서 기독교식으로 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런 결혼식 스타일을 일본에서는 '채플 웨딩'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결혼식 절차에 따라 예배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이다. 보통 교회에 부속된 작은 예배당을 채플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에 세워진 예식 전용장소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로연을 하지 않고 친척이나 친한 친구들만 불러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커플에게 인기가 많다.
일본의 한 여성 잡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다. 일본 여성들도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평생의 로망으로 여겨지는데 신사보다는 교회가 웨딩드레스와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교회 결혼식만의 멋진 분위기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웨딩마치 선율에 맞춰 하얀 융단이 깔린 버진 로드를 걸어 들어오는 신부는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의 교회 결혼식은 기독교 결혼식을 모방한 결혼식이 많다. 진짜 교회나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회나 성당처럼 꾸며진 예배당풍의 시설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호텔 등 예식장마다 예배당을 하나씩 갖추고 있고, 결혼식이 있을 때만 목사님이나 신부님을 불러 식을 진행한다. 목사님이나 신부님도 대부분은 결혼식장에 고용된 외국인 주로 백인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청첩장을 보내 하객을 초대한다. 다만 일본이 한국과 다른 점은 청첩장을 받은 후 참석 여부에 대해 꼭 답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결혼식은 보통 가족이나 친척, 친한 친구 등만을 초대해 적은 인원으로 진행되며, 경우에 따라 지정된 자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물론 식사도 매우 고급스럽게 준비한다. 따라서 인원수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청첩장을 남발하는 일이 없다. 꼭 참석해 주길 바라는 사람에게만 보내고, 청첩장을 받으면 참석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긴다. 축의금은 꽤 많이 내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보통 5-10만 원 정도 내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3만 엔약 30만 원 정도다. 친한 경우에는 5-9만 엔 정도를 낸다고 한다. 청첩장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짝수는 '찢어진다', ‘갈라진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서 축의금은 홀수로 하는 것이 예의다.
장례식은 90%가 '불교'식으로
마지막 가는 길은 부처님과 함께한다. 일본 장례식의 약 90%는 불교식으로 치러진다. 일본의 불교는 에도시대에 막부의 보호를 받으며 크게 번창했고, 당시 유교에 비해 종교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사찰이 장례 의식을 전담했다. 특히 일본의 사찰은 대부분 산속이 아닌 주택가 주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찰 내에 가족 납골묘도 갖추고 있는 곳이 많다.
사람이 죽으면 검은 테두리의 흰 종이에 기추(忌中, 상중) 라고 쓴 표시를 대문 또는 현관에 붙인다.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행해지며 따뜻한 물로 씻고 흰 수의나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옷을 입힌다. 그리고 스님이 옆에서 경을 읊고 고인에게 가이묘(戒名, 사후의 불교식 이름)를 부여한다. 사망한 밤에는 '쓰야(通夜)’라고 해서 가족이나 친척, 친구가 모여 고인의 곁에서 식사를 하며 밤을 새운다. 쓰야 다음날 불교식 장례식이 집이나 절에서 치러진다. 장례식에 갈 때 검정색 옷을 입는 건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일본에서는 옷이나 가방, 구두 모두 광택이 없는 것을 입고 신어야 한다. ‘고덴(香典)’이라고 하는 조의금을 낼 때도 정해진 형식이 있다. 보통 1만 엔 정도를 내는데 봉투에 돈을 넣을 때 사람 얼굴이 앞으로 보이게 넣어야 한다. 문상을 마치고 돌아갈 때 상주 측에서 주는 답례품에 꼭 소금이 들어 있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몸에 전체적으로 뿌려 준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화장을 해서 납골묘에 안치한다. 화장이 끝나고 뼈가 나오면 가족들이 젓가락으로 뼈를 항아리에 담는다. 이때 뼈의 모습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부처님을 닮았다 해서 ‘노도보토케’라고 부르는 목의 인후 뼈(갑상연골이라고도 하고 경추 2번이라고도 한다)는 분쇄하지 않고 고인과 가장 혈연이 깊은 사람이 수습해 가장 위에 올린다. 여기서 유래한 일본인의 식탁 예절이 밥 먹을 때 절대 젓가락으로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무언가를 옮기는 행위는 사람이 죽은 후 유골을 수습하는 행위에만 허락되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을 다른 사람의 젓가락을 통해 옮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종교에서만은 배타성이 보이지 않는 일본인
신도와 불교는 일본의 양대 종교다. 이 두 종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일본만의 독특한 신불(神佛)신앙을 탄생시켰으며, 일본인의 삶 속에서 생활 속의 신앙으로서 병립하고 있다. 한 집 안에 신단과 불단이 모두 모셔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일본 가수가 사다 마사시다. 1952년생이니 한국식 나이로 하면 70세다. 통기타를 치며 한 편의 시라 해도 손색이 없을 주옥같은 가사를 읊조리는 모습을 보면 정태춘이나 김광석이 떠오른다. 그가 1979년 발표한 〈아버지의 가장 긴 하루〉라는 노래 속에 일본인의 종교 문화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귀여운 딸을 낳은 후 오미야마이리를 다녀오고, 시치고산을 지내고, 딸의 결혼을 허락한 후 손을 잡고 나란히 집 안에 마련된 불단 앞에서 기도를 하고, 웨딩 벨소리가 울려 퍼지는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까지. 한 편의 서사와 같은 가사 속에 신도, 불교, 기독교가 섞인 일본인의 종교관이 스며들어 있다.
태어나서는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며, 장례식은 절에서 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하지만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 믿으며 종교에서 만큼은 배타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 일본인의 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