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철학자들-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경제혁명:새로운 전망의 탄생
.인간은 전통에 따라 사회를 조직함으로써 영속성을 확보해왔다. 필요한 다양한 과업을 관습과 관례에 따라 다음 세대로 계속 물려주은 방법이다.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고대 이집트는 종교원칙에 /따라 아버지가 하던일을 계승→타직업:신성모독, 인도의 카스트제도-최근까지 전통에 따라 대를 이음
.사회문제를ㄹ 다른 방법으로해결-사회는 권위적 통치라는 채찍을 사용해서 과업이 수ㅇ행되도록 할 수 잇다. 소련이나 이집트는 모두 명령 사회엿다. 이런 문제해결방식에서는 경제학이란 특수한 연구분야가 생겨날 수 없었다.
.시장체제 하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전통이나 권위의 채찍이 아니라 이익의 유혹 때문에 과업을 수행햇다. 개개인의 이익추구의 코가 이끄는 대로 이익이라는 냄새를 따라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데도, 사람들은사람들 상호간의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난 결과 사회에 필요한 여러 활동들이 제대로 수행될 수ㅜ 있었다.
관습과 명령이 가진 단순성과는 달리 각 개인에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하면서 사회기 실제로 잘 유지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각 지역마다 각각의 화폐와 규칙과 구제가 있으며 각기 다른 법률과 질서가 있다. 이때는 부를 윌한 부의 추구는 탐욕의 죄라는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과거의 단편적 사례에서는 공통점이 잇다. 1.개인적 이익을 바탕으로 조직된 체제에 필요한 적절성(필요가 아니라)개념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햇다. 2.분리되고 자율적인 경제셰계가 아직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세계는 정치적.사회적.종교적 세게와 뒤엉켜 있었다. 두 세계가 분리될 ‘때까지는 현대생활의 속도나 감정과 유사한 것은 생겨날 수 없었다. 두 세계가 분리되기 위해서는 길고 치열한 투쟁이 일어나야 했다.
이익이라는 개념 즉 노동하는 모든 사람은 물질적 안락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만 아니라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집ㄴ트, 그리스, 로마와 중세문화의 대다수 하층 및 중산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런 개념은 서구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는 동안에도 일부에서만 관찰되었다. 이런이익 개념은 대부분의 동양 문화권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사회 보편적 특징이 된 이 개념은 인쇄술과 마찬가지로 현대적인 발명품이었다.
이익이라는 개념은 보편적이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와서 용인되었고, 점차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이런 가르침 뒤에는 상인은 사회 효모 중에서도 교란적인 존재일 뿐이란 생각이 깔려 있엇다.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 시민들의 목표는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청교도도 이익이 인생에서 용납되고 유익한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악마의 교리뢰 여겼다.
초기 자본가들은 추방당한 자이거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떠돌이인 경우가 많았다. 10~16세기와 스미스의 이전의 1,2세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근본적인 차이는 생활비를 ㄹ번다는 생각이 16세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 자체가 목적이었고 일을 하면 당연히 돈과 일용품을 얻을 수 있었다.
시장은 유사 이래 존재해왔다. 교환이라는 개념은 인ㄴ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이익개념의 경우는다르다.
물품을 우연히 땅바닥에 떨어뜨려서ㅓ 하는 원ㄴ시종족 사이의 물물교환이건 재미난 이동박람회건 그런 시장은 현재의 시장체제와는 달랐다. 시장체제는 단순히 상품을 수단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장체제란 전체 사회가 지속되거ㅗ 유지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었다.
시장체제가 배분하는 생산의ㅣ 기본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이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니 중세와르네상스와 종교개혁시대,즉 16~17세기까지의 모든 세계가 시장체제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매우 당연할 일이다. 흙과 인간과 도구라는 의미의 토지와 노동과ㅏ 자본은 물론 사회와 공존햇다. 그러나 사람들은 추상적인 토지나 추상적인 노동이란 개념을 추상적인 에너지나 추상적인 물질이란 개념처럼 머리로 그릴 수 없었다. 생산요소로서 그리고 비개인적이며 비인격화된 경제적 실체로서의 토지와 노동과 자본은 미적분처럼 대단히 현대적인 개ㅇ념이다. 실제로 그 개념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토지를 보자.14~15세기까지도 토지는 자유롭게 사고팔며 지대수입을 올리는 재산이 아니었다. 토지는 사회생활의 핵심을 이루고, 명예와지위ㅣ의 기초를 제공했으며, 사회의 군사.사법.행정조직의 기초가 되었다. 어떤 조건하에서는 토지를 팔 수도 있었지만(물론 많은 단서를 붙여서)일반적으로 파는 것은 아니었다.
매매할 수 없은ㄴㄴ 것은 노동력의 노동력도 마찬가지엿다. 오늘날 노동시장은 노농자가 가장 높은 임금을 주겠다는 자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뜻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에는 그런 네트워크가 없었다. 농노와 도제와 직인의 무리가 일을 했지만 이런 노동력의 대부분은 사고팔리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었다. 농민은 영주의 영지에 매여 일생을 보냇다. 그는 영주의 오븐에서 빵을 굽고, 영주의ㅣ 방아에서 곡식을 찧고, 영주의 땅을 경작했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영주ㅡ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봉사에 대한 보수를 받은 경우는 설령 있다 해도 아주 드물었다. 그것은ㄴ 농노로서의 의무이지 결코 자유로운 게약자의 노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신에서는 도제가 장인의 휘하에서 봉사햇다. 그의 도제수업기간, 동료의 수, 보ㅗ수수준, 작업시간, 그가 사용할 생산방법 등 모든 것을 길드가 규제햇다. 작업조건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일어난 간헐쩍인 파업을 예외로 한다면 하인과 주인 사이에 흥정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다. 이것은 수련의들이 병원에서 하는 봉사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노동시장의 노동이 아니었다.
자본의 경우를 보자. 사적인 부라는 뜻의 자본은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에도 분명히 존재햇다. 그러나 자금은 있었지만 그 자금은 새롭고 의욕적인 용도로 활용하도록 하는 자극이 없었다. 모험과 변화 대신에 안전제일이 지상목표였다. 가장 짧은 기간 내에 가장 큰 효율을 올리는 것보다 가장 긴 시간에 가장 많은 노동력을 소모하는 생산기술을 더 높이 쳤다. 광고는 금지되엇고 길드에 가입한 어떤 장인이 동료보다 더 좋은 물건을 생산ᄒᆞ겟다고 하면 그것은 반역적인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16세기 영국에서 직물업 분야의 대량생산이 처음으로 그 추한 머리를 들었을 때 길드들은 국왕에게 항의했다.200개의 직조기를 가지고 종업원들을위해 도살업자와 제빵 일꾼을 포함한 다수의 직원까지 거느렸던 경이로운 공장은 이 때문에 국왕으로부터 위법 판결을 받았다. 그런 능률과 부의집중은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 이유엿다.
중세 세계가 시장체제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확실하고 충분한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 세계가 아직 생산의 추상적인 요소를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중세에는 토지와 노동과 자본이 없엇기 ’ 때문에 시장이 없었다.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물론 다체로운 시골시장이나 박람회는 있었지만- 사회는 지방적인 수준의 명령과 관습으로 움직였다.영주들은 명령을 내렸고 생산은 그에 따라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햇다. 명령이 없을 경우 사람들의 생활은 고정된 궤도를 따랐다.
책을 펴고 보는 시험처럼 장원과 교 회 및 도시의 법률과 평생토록 변함없는 관습ㅇ속에 세계에 대한 모든 설명이 있는데 누가 수요공급이나 비용이나 가치라는 추상법칙을 찾아 헤매겠는가?
토지를 상품화하는 행위-사회관계의 위계질서를 많은 공백과 유익한 직책으로 바꾸는 행위-만으로도 완강하게 고수되어 온 봉건적 생활방식을 뿌리 ㄹ뽑을 수 있었다.가부장제의 허울이 아무리 수탈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보호받던 농노와 도제를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산계급이라 불리는 놀라고 방향 잃으ᅟᅳᆫ 계층을 창조할 필요가 있었다. 길드장인을 자본가로 만드는 것은 포도원의 소심한 주민에게ㅔ 정글의 법칙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어느 것도 평화로운 전망은 아니었다. 누구도 이런 생활의 상업화를 원치 않았다.
*변화와 혁신이 몰고 온 공포
1666년 당시의ㅣ 자본가들은 확대되고 있는 시장기구가 잠에서 깨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초래하는 혼란스ㅡ러운 도전에 직면한다. 즉 변화라는 도전이다.
직물업 분야의 한 장인에게 혁신적인 생산방법을 도입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판결문은 이렇다. “자신이 발명한 방법으로 천을 짜려는 제조업자는 직조기를 이용해서는 안되며, 신품목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가 요구하는 실의 수와 길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시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신청을 위해서는 네 명의 최고참 상인과 길드조직에 소속된 네 명의 최고참 직조공의 의견을 첨부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변화가 얼마만큼 허용되었을ㄹ지 상상이 갈 것이다.
직물업의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단추제조업 길드가 분노의 목소리를 높인다. 양복제조업자가 천으로 단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기술혁신이 안정된 산업구조를 위협하는 데 성난 정부는 천으로 된 단추 제조업자들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단추제조업 길드의 감시원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 가정과 옷장을 수색할 권린, 나아가서 이 파괴적인 상품을 부착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매기고 체포할 수 있는 권리까지 요구한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이런 공포는 소수의 놀란 상인들이 벌인 단순한 희극적 저항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자본이 변화에 심각하게 저항하고있었으며 변화는 그것을 막을 아무런 힘도 없었다 영국에서는 양말기계의 혁신적인 특허신청이 기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추밀원은 그 위험한 발명품을 폐기하라고까지 명령한다.
시장체제 위험을 회피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생산요소는 자본만이 아니다. 노동에서 일어나는 일은 더욱 필사적이다.
16세기말 영국이 확장과 모험을 펼치던위대한 시대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이 통치하는왕국을 의기양양하게 숞찰한다. 그러나 여왕은 불평만을 품고 돌아온다. ‘가는 곳마다 거지들이구나’하고 여왕은 외친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100년 전만 해도 영국 농촌 주민의 대부분은 자신의 경작하는 농민, 즉 영국의 자존심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독립적이고 자유를 누리며 사는 부유한 시민인 자작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거지들이구라니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일은 수탈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또는 그런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수탈은 겨우 태동단계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양모가 이익이 남는 새 상품이 되었다. 양모를 얻기 위해 양모생산자들은 양에게 풀을 뜯어 먹일 초원이필요했다. 초원은 공유지를 폐쇄함으로써 마련되었ㅇ다.공유지가 갑자기 영주의 땅으로 공포되어, 교구민들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전에는 공동소유지였던 곳이 이제는 사유재산이 된 것이다.
울타리치기가 진행된 범위와 영향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18세기 중엽에벌써 그에 반대하는 폭등이 일어난다. 어떤 봉기에서는 3500명이 살해된다. 공유지 사용권을 박탈당한 농민은 더 이상 농부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었다.당시에는 일할공장도 없었기 때문에 농민은 비록 갈망한다고ㅗ 해도 공장노동자로 변신할 수 없었다. 그는 가장 비참한 사회계층인 농업무산자로 젆락한다. 농사일이 없으면 거지가 되었고 때로는 강도짓도 했으며, 흔히는 빈민이 되엇다.
빈민이 수용되는 교구 구빈원은 공포의 집이었다.
영국ㅇ의 지배계급은 시장의 명령에 따라 일거리가 잇으면 어디건 찾아가는 유동적이고 이동성을 가진 노동력이란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본의 상업화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상업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이것에 저항한다. 토지.노동.자본이란 본질적인 구성요소와 함께 시장체제는 수난을 겪으면서 태어낫다.
*경제적 인간의 탄생
대체 어떤 힘이기에 안락한 기성세계를 무너뜨리고,새롭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탐탁하지 않은 이런 사회를 거뜬히 세울만큼 강력했을까? 그것은 자생적이고 다면적인 변화의 과정이었다.
1.유럽에서 국민적 정치단위가 점진적으로 대두했다. 고립되어 존재했던 초기 봉건주의는 농민전쟁과 왕의 정복이라는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중앙집권적 군주국가로 변모했다. 군주국이 대두하자 이에 병행하여 국가정신이 태동햇다. 왕실에서 후원한 산업이거나 여러 위성산업을 거느린 해.육군 양성하는 것을 의미했다. 16세기에 그의 동료 상인들을 괴롭히던 수많은 규칙이나 규제는 공통법규, 공통 도량형, 그리고 공통화폐로 통합되었다.
유럽에 혁명을 가져온 정치정세의 변화 가운데 한 측면은 해외를 향한 모험과 탐험을 격려하는 것이었다. 사적 탐험에서 국가적 탐험으로 변화하는 것은 사적인 생활로부터 국가적 생활로 변화하는것의 일부이면서 한 꾸러미엿다. 콜럼버스의 정서는 이익과 기회를 지향하고 돈을 추구하는 사회가 오는 것을 촉진했다.
2.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회의적.탐구적.휴머니즘적 세계관의영향을 받아 종교적 정신이 서서히 쇠퇴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의 세계가 내일의 세게를 밀어냇다. 현세생활이 더욱 중요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물질적인 기준과 일상생활의안락을 중요시하게 되엇다. 신교는 일과 부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탄생하도록부추켰다. 로마 카톨릭는 상인을 불신의 눈으로보앗고, 고리대금업을 죄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인계급의 사회적 지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고, 그들은 단순히 유용한 부속물이 아니라 새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기에 상인의 기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게 되엇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정신생활과 지상생활이 융합되느 길을 열었다. 찰나적 환락이 아니라 신의 영광을 위한 축재의 의지는 공인된 미덕이 되었다. 이로부터 부를 정신적 우월과 동일시하고 부유한 인간을 성스러운 사람과 동일시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데는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되는 일이었다.
또 하나의 깊은 흐름이 시장체제를 성립시킨 물질적인 변화 가운데에 있었다. 흔히 중세를 침체 즉 진보의 부재시대로 생각해왓다. 그러나 500년 동안의 ㅇ봉건시대에 1000개의 도시가 성장햇고(큰 업적), 조악하지만 그런대로 사용할 만한 길로 도시들을 서로 연결시켰고, 농촌에서 가져오는 식량으로 도시인구를 먹여살렷다. 이 모두로 인해 사람들은 돈과 시장과 사고파는 생활방식에 친숙하게 되엇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자연히 권력은 돈을 모르는 냉소적인 귀족의 손에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 즉 상인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회계법이 발달하는 기술적인 발전도 잇었다. 17세기에 비로소 복식부기법이 표준적인 회계법으로 자리잡앗다. 그리고 돈을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규모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엇다.
영향의 범위면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과학적 호기심이 높아진 것이다. 애덤스미스 시대 후가 되어서야 기술이 눈부시게 꽃피엇지만 기초적인 하위산업에서 연속된 발명으로 그 터전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산업혁명은 일어날 수 없엇을 것이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실험과 혁신을 우호적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 인간 즉 계산기 같은 두뇌가 이끄는ㄴ 대로 따라가는 창백한 유령 같은 존재가 생겨난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는 부와 ㄱ투기의 새 열풍이 유럽을 사로잡았다. 1718년 프의 존 로는 부정증권회사를 설립-막대한 금채굴 선전-주식팜 주식을 살 특권을얻기 위해 살인사건일어남, 하룻밤 사이에 떼돈 번 사람도 있음, 회사가 많은 투자자에게엄청난 손실-프정부 급히 수천 명의 거지들에게 삽과 곡괭이를 들고 마치 엘도라도의 땅으로 출발하는 광부무리처럼 파리거리 행진→대참사 막을 심산
산고의 진통은 지나고 시장체제가 탄생했다.ㅏ이제부터 생존 문제는 관습이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자유로운 행동에 의해 해결될 수 있게 되엇다. 그런 인간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장뿐이엇다. 자본주의체제의기초가 되는 이익개념은 너무나 뿌리 깊은 것이어서 사람들은 곧 그것이 인간의 본성 가운데 영원하고 보편적인 부분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게되엇다.
*경제의 철학적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
관습과 명령이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에는 빈부문제가 초기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햇다. 철학자들은 한숨을 내쉬며 빈부문제를 받아들이거나 인간의 내면이 원래 형편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비난햇다. 다수를 차지하는 하층 노동게급의 존재은 당연한 것으로 간단히 간주되엇고, 금전이나 시장에 관련된 일은 신사나 학자가 진지하게 ㅁ고려하기에는 너무나 땀내 나고 천한것이라고 치부해버렷다. 이미 개인의 부가 세계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고 잇음에도 불구하고 부를 향한 투쟁이ㅣㅣ일반적이고 보편화되며 사회에아주 긴요한 것이 되기 전까지 부에 대한 일반적인 철학은 필요 없었다.
무자비한 생존경쟁은 처음으로 황금축적을 궁극 목표로 삼았다.콜럼버스는 국가가 파견한 모험가엿을뿐만아니라 동시에 경제적 진보의 담당 주체로 간주되엇다.
중상주의자들은 국력은 모든 경제적 노력의 자연적 목표이고 국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황금이라고 믿엇다. 그들의 철학은 거대한 무역함대와 모험의 철학이었고 국왕의 부와 국가적 인색에 대한 철학이엇다. 또한 보물을 추구하는 과정이 순조로우면 국가는 반드시 번영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철학이었다.
전능한 국가는 홉스의 설명한 상태 즉 인간이ㅣ쓸쓸학로 가난하고 더럽고 야만적이고 부족한 상태로 전락하지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상업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존의 존재인 국가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혼란스럽게도 한다.
18세기에 와서야 새로욶 학파가 대두하여 상업이 국력의 위대한 원천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햇다.그들이 제기한 철학적 문제는 황금ㅅㅣ장을 어떻게 차지하느냐가아니라 신흥 상인계급이 더 많은 과업을 숭행하도록 도와줌으로서 어떻게 더욱 많은 부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엇다. 이 새 철학은 새 사회문제를 수반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가난한 상태로 있게 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빈자들ㄹ이 가난한 상태로 있지 않으면 그들은ㅇ 정직한 하루의 노동을 하는 데 엄청난 임금을 요구할 것이 뻔했다.
**애덤 스미스의 놀라운 세계
중농주의 문제는 농업노동자만 진정한 부를 생산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자연이 농업노동자의 편에서 작용하는 반면 제조업 노동자는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단지 물체의 형테만 바꿀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케네의경제표는 실용적인 정책의 측면에서는 유용성이 떨어졋다. 사실 경제표는 자유방임이란 급진 정책을 옹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공업부문을 단지 비생산적으로 조작하기만 하는 것으로 기술함으로써 토지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노동이 이루어지면 부가 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햇다.
자연이 아니라 노동이 가치의 원천임ㅇㄹ 파악한 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통찰 가운데 하나다.
*개인과 시대의 혁명적 산물, 국부론
국부론은 결코 교과서가 아니다. 그는 교실의 학생들이 아니라 당대인들을 대상으로 저술하엿으며, 학자들을 위한 추상적 연구가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원리를 개진했다.
스미스는 자본가의 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존경했으나 그 사업동기에대해서는 의심을 품었다. 노동계급의요구에 대해서도 마음을 썻다. 스미스의 목적은 어떤 계급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라 전체의 부를 증진시키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에 의하면 부란 사회성원 전체가 소비하는 상품으로 구성된다.
황금과 보물과 국왕의 재산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상인이나 농부나 길드조직의 특권도 사라진다. 우리는 만인이 소비하는 상품과 용역의 흐름이 경제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을 이루는 현대세계에 와 있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은 손
스미스가 관심을 집중한 두 가지 문제가 잇습니다. 1.그는 사회가 서로 결합되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데 관심을 두고 잇다. 각자가 분주히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는 어떻게 하여 원심력에 의해 산산조각 나지 않은 걸까? 각 개인의 사적 사업이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중앙계획당국이 없고 오랜 전통의 견고한 영향이 없는데도 사회는 어떻게생존에 필요한 과업을 수행해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스미스는 시장법칙이란 공식을 만든다. 그가 해명하고자 한 것은, 그가 말한 보이지 않은 손이었다. 인간의 사적인 이익과 열정을 전체 사회의 이익과 가장 잘 조화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이다.
국부론은 스미스가 상업적 자본주의를 표현하기 위해 쓴 완전한 자유의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스미스의 시장법칙은 기본적으로 단순하다. 그 법칙은 우리들에게 특정한 사회조직 속에서 어떤 특정한 종류의ㅏ 행동은 완전히 확정적이고 또 예상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해준다. 특히 유사한 동기로움직이는 개인들이라는 환경에서 개인적인 자기이익의 추구가 어떻게 경쟁을 야기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 법칙은 경쟁의 결과 사회가 원하는 상품을, 사회가 원하는 양과 사회가 기꺼이 지불할 가격으로 공급하게 된다는 것까지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이유는 자기이익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하려는 어떠한 일도 떠맡게 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있은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나 제빵업자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도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얻게 될 이득을 말한다.
자기이익으로만 움직이는 사회는 무자비한 모리배의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규제자가 바로 경쟁, 즉 시장이라는 무대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간의 갈등이다. 사회적 결과에 대한 고려없이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개인은 같은 동기로 똑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다른 개인들과 마주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는 이웃의 탐욕을 이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자기이익에만 막무가내로 열중할 경우 그는 경쟁자들이 자신의 영역에 슬며시 침입하여 일거리를 빼앗아가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제품의 값을 너무 높게 부르거나 자신이 부리는 노동자에게 남과 같은 액수만큼 지불하기로 거절한다면 앞의 경우 구매자가 없어진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뒤의 경우에는 노동자를 잃게 될 것이다. <도덕감정론>에서처럼 인간의 이기적 동기가 상호작용하여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사회적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가격무넺를 놓고 생각해보자. 가령 100명의 장갑제조업자가 있다고하자. 각자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산원가보다 비싼 값으로 제품을 팔아서 초과이익을 남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초과이익을 많이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가 값을 올리면 그의 경쟁자들이 밀고 들어와 더 싼 값으로 팔아 그의 시장을 가로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제조업자들이 결속하여 견고한 연합전선을 펴는 데 합의한다면 지나치게 높은 값을 매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분야의 제조업자가 담합을 깰 수 있다.예컨대 자본을 장갑 제조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구두제조업자는 싼 값으로 그 시장을 가로챌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법칙은 생산품에 경쟁가격을 강제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사회가 필요로하는 상품의 양을 생산자들ㅇ게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이 바로 시장법칙이다. 소비자들이 현재의 생산량보다 많은 장갑과 생산량 이하의 구두를 원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대중들은 시장에있는 장갑을 서로 사려고 야단일 것이고, 구두점은 파리를 날릴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구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장갑을 사기를 원하기 때문에 장갑 값은 올라갈 것이고, 대중들이 구두점을 지나치기 때문에 구두 값은 떨어질 것이다. 장갑 값이 오름에따라 장갑제조업의 이익 또한 상승할 것이고, 구두 값이 떨어짐에 따라 구두제조업계는 침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자기이익이 개입하여 균형을 바로 잡기 시작할 것이다. 제화공장이 생산을 줄임에 따라 노동자들은 제화공장에서 나와 경기가 좋은 장갑공장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하다. 장갑생산은 증가하고 구두 생산은 감소할 것이다.
이것이 사회가 무엇보다도 먼저 원했던 것이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장갑이 시장에 나오게 됨에 따라 값은 원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한편 구두 생산이 줄어듦에 따라 구두의 잉여재고는 곧 없어질 것이고 구두 값은 다시 정상 수준까지 오를 것이다. 시장기구를 통해 사회는 새로운 요구에 맞도록 생산요소의 할당을 변경ㅇ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누구도 이런 언명을 발표한 일이 없었고 어떠한 계획당국도 생산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엇다. 단지 자기 이익과 경쟁이 상호작용하여 전환을 이루어낸 것이다.
시장은 최종 중재자인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상품의 가격과 양을 조절하는것ㅇ처럼 이런 상품을 생산하는 데 협력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규제한다. 어떤 사업분야의 이익이 터무니없이 높으면 다른 사업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들어 경쟁이 격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잉ㅇ여이익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어떤 직종의 임금이 적정선을 넘어 치솟으면 그 직종으로 많은 일꾼이 몰려들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같은 정도의 기술과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다른 직종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어떤 산업분야의이윤이나 임금이ㅣ 지나치게 낮으면 자본과 노동의 탈출이 일어나 마침내 공급은 수요에 더 잘 맞춰지게 될 것이다.
스미스가 자기이익이란는 자극과 경쟁이란 조절요소로 이룩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1. 스미스는 한 상품의 판매가격이 실제 생산비로부터 터무니없이 괴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2.그는 사회가 어떻게 상품생산자들로하여금 사회가 원하는 만큼 공급하도록 유도하는가를 설명했다. 3.그는 치솟은 가격이 저절로 치유되는 병에 불과한 이유를 설명했다 값이 비싸면 그 물품의 생ㅎ산이 증가하고 결국 가격은 다시 내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국가에서 다양한 생산계층의 소득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스미스는 시장기구 속에서 사회의 질저정연한 물품 공급을 위한 자율체계를 발견한 것이다.
시장이 거둔 성과는 시장이 바로 자신의 보호자라는 점이다. 만일 생산량이나 가격이나 어떤 분야의 보수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수준에서 벗어나면 그것들을 원상으로 되돌리는 힘이 작동된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절정을 이루는 시장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엄격히 규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기묘한 역설이다.
18세기 영국에서 사업은 경쟁적이었고 대부분의 공장은 규모가 작았으며 가격은 수요의 증감에 따라 오르내렸고 가격변동이 생산과 고용의 변화를 자극했다. 스미스의 세계는 원자적 경쟁의 세계라고 불렀다. 생산기구의 어떤 주체도, 노동이든 자본이든 경쟁의 압력에 개입하거나 그것을 거스를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각 주체가 거대한 사회적 자유방임 속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도록 강요당하는 세계였다.
오늘날 시장기구의 특징은 참여자 각각의 규모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거대회사와 강력한 노동조합은 개인 기업주나 개별 노동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 규모에 힘입어 그들은 경쟁의 압력에 맞설 수 잇고, 가격신호를 무시할 수 있으며, 매일의 매매활동이라는 직접적인 압력보다는 장기적인 시야에서 자기이익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경제사회가 어떤 특징을 가지건 간에 자기이익과 경쟁이라는 거대한 힘은 비록 약화되고 여러모로 제한되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행동원칙을 제공하고잇다.
*사회적 보편적 부를 향하여
토지,노동력, 자본을 생성시킨 3세기에 걸친 소란은 더욱 요란한 반란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듯하다.. 왜? 최근에 자유롭게 된 생산요소들이 새롭게 추한 형태로 결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합체가 바로 공장이다. 지방노동력은 기계운전 과정의규치적 미첩성을 미처 따라갈 수 없었다. 임노동은 경멸받았고, 노동자들은 기계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로 일부 자본가들이 새운 세운 공장에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기도 햇다. 그들의 작은 손가락은 민첩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린이들은 농장이나 제조업분야에서 독립생활에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들보다 공장생활의 규율에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공장에 대한 감탄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 이외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득 없은 빈민층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라 안의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문제엿다. 1720년 영국의 150만 명의 빈민(전체 1200~1300만 명) 이들을 처리할 방안이 넘쳐났지만 대개는절망적인 것일 ‘뿐이었다. 빈민들의 고질적인 나태성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불평거리, 게다가 빈민들이 부유층 생활을 흉내내는 모습은 경악!! 노동자 주제에 차를 마시다니!!하층계급이란 엄청나고 무서운 문제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태도는 그야말로 경악 그자체엿다. 스미스의 철학은 경악스러울 정도는 아니엇다. 그는 구성원의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는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는 끊임없이 향상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생산성을 크게 상승시킨다는 것이엇다.
분업이 준 큰 선물은 그 복잡성에 있는 것이아니다. 그것ㄱ은 대부분의 노역을 단순화시킨다. 분업의 이점은 하층민에까지 확산되는 보편적 부를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번영하는 문명국가의 평범한 기술자나 노동자의 생활용품을 살펴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용품을제공하는 데 종상하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입고 있는 털외투는 조잡하고 거칠어 보일 테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의 종합적인 노동의 산물이다. 양치기, 털 선별공, 보풀공, 염색공, 얼레빗질공,제사공, 방직공, 축융공ㅇ, 마무리 직공,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물건ㅇ르 만들어내기우해 각자의기술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 밖에 고용되는 상인과 운반노동자들은 얼마나 많겟는가....얼마나 많은 상업과 항해... 얼마나 많은 조선업자, 선원, 돛제작공, 밧줄제작공...
문명국가에 사는ㅁ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수천 명의 조력과 협력이 없다면, 비록 우리의 상상이 아무리 빗나간 것이라도해도, 평범한 생활용품을 그렇게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공급받지는 못할 것이다. 상류계층과 귀족들의ㅣ엄청난 살치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생활용품은소박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과거 수만 명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아프리카 절대군주의 생활용품이 농민의 생활용품을 크게 능가한것에 비하면, 유럽대륙의 왕자가 누리는 생활용품은 영국의 근면하고 소박한 농부의 생활용품을 크게 능가하지 않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사회 부와 재산을 놀랄 정도로 증식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시장기능 자체가 그 ㄷ원동력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시장은 인간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발명하고, 혁신하고, 확장하며, 위험을 무릅쓰라고 격려하고 심지어 강요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이 중단없이 작동하는 배후에는 보다 근본적인 압력이 있다. 스미스는 시장기능을 강력히 촉진시켜 생산성이 나선을 그리는 상승곡선을 이루도록 하는 두 개의 뿌리깊은 행동법칙을 발견한다.
1.축적의 법칙이다. 대다수 신흥 자본가의 목적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고 언제나 저축한 돈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축적을 위한 축적을 용납하지 않앗다. 그는 철학자였고, 부의 허무함에 대해 철학자적 경멸을 느꼇다. 대신 스미스는 자본축적이 사회에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보았다. 자본은-만약 기계에 투자되면-인간의 생산적 에너지를 몇 배 증가시키는 경이로운 노동의 분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적은 스미스에게 양날의 칼 가운데 한쪽 날이 되엇다. 사적 탐욕은 또다시 사회의 후생을 초래한다. 스미스는 사적자본축적이 과연 더 많은 고용을 가져올 것인가라는,20세기 경제학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염려하지 않았다. 스미스가 보기에는 세계는 무한히 개선될 수 있고 시장규모는 다만 지리적 한계의 제약을 받을 뿐이었다. 축적하라, 그러면 세계에 이익이 된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 축적을 계속하면 곹 더 이상의 축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축적은 더 많은 기계를 의미하고, 더 많은 기계는 더 많은 노동자의수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렇게 ㄱ되면 조만간 임금의 계속적인 상승이 뒤따를 것이고, 마침내 이윤-축적의 원천-은 잠식될 것이다.
*축적의 법칙과 인구법칙
^^^이 문제는 인구의 법칙에 의해서 극복된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노동자는 다른 상품과ㅑ 마찬가지로 수용에 따라 생산될 수 있다. 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인구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임금이 하락하면 노동인구의 수또한 감소할 것이다.
...다른 상품에 대한 수요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수요가 필연적으로 인간의생산을 조절한다.라고 스미는 말했다. 스미스가 살던 시대는 하층게급의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축적의 첫 번째 영향이 노동계급의 임금상승으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곧 노동자의 수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시장기구가 이어받는다. 높은 시장가격이 더 많은 장갑의 생산을 유발하고, 더 많은 수의 장갑이 치솟았던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과 같이 높은 임금은 더 많은 수의 노동자를 양산할 것이며, 노동자의 수의 증가는 그들의 임금수준에 반대로 작용할 것이다. 장갑의 생산과 마찬가지로 인구도 임금에관한 한 자연치유되는 질병이다.
이것이 축적이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자본축적이 가져오는 임금상승은 더 이상 축적을 해도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위험성은 있지만 인구증가로써 상쇄,완화한다. 축적은 파멸로 치닫지만 아슬아슬한 순간에 구제받는다. 고임금이란 장애물은 바로 그 ㅅ 때문에 가능해진 인구증가로 말미암아 제거된다.
^^^스미스가 사회를 위해 구축한 거대하고 무한한 연쇄에 대해 살펴보자. 서로 맞물린 일련의 수학적 명제처럼 사회는 규칙적이고 필연적으로 상향운동을 시작한다 출발점이어디이든 시장기구는 돌아가는 상황ㄹ을 면밀히 조사하여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는 노동과 자본에돌아가는 보수를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나누고, 수요가 있는 상품의 적정한 생산량을 보장하며,나아가 경쟁을 통해 상품의 가격이 생산비 수준으로 끊임없이 내려가게 만든다. 이것에서 더나아가 사회는 동적이다. 출발지점부터 부의 축적이 일어나면, 이 축적은 생산설비의 증가와 분업의 확대를 불러올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새 공장에 충원할 노동자를 ㄴ두고 경쟁함에 따라 축적은 임금상승을 유발할 것이다. 임금이 상승하면 축적은 더 이상 이윤을 내지 못한다. 이 체제는 붕괴될 처지에 놓인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높아진 임금을 자식을 양육하는 데 사용하고 이에 유아사망률은 감ㅂ소한다.따라서 노동자의 공급이 증가한다. 인구가 증가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일어나 다시 임금은 하락한다. 그리하여 자본의 축적은 계속되며, 사회의 또 다른 나선형적 상승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스미스가 묘사한 것은 경기순환이 아니다. 그것은 장기적 과정이며 중단되지ㅇ 않은 진화이다. 또한 이 진화는 놀랄 만큼 확실하다. ^^^^시장기구가 아무 간섭도 받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바로 앞에 존재하는 고리에 의해 결정되도록 되어 있다. 그 내부에 사회 전체를 포용하는 거대한 왕복운동을 하는 기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생산자를 안내하는 소비대중의 기호와 국가의 실질적인 물적 자원만이 인과관계 연쇄 바깥에 존재한다.
우리가 경제성장이라고 부르는 장기적 개선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노동계급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노동인구의 증가가 임금을 낮추어 결국 생존수준의 방향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미스의 견해로는 노동계급처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개선될 것이다.
*시장을 그냉 내버려두라
스미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신흥 자본가계급은 시장을 그냥 내벌두라는 메시지로 지지했다.스미스는 어느 한 계급ㄷ을 옹호하지는 않았다.그는 자신이 세운 논리체계의노예엿을 뿐이다. 그의 경제철학은 시장이 체제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점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고히 믿었다. 사회적인 기계인 시장은 만약 그냥 내버려두면 사회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것이다. 그래서 진화의법칙이 사회을 떠맡아서 약속된 보답을 실현하도록 끌어올릴 것이다. 스미스는 반노동도 반자본도 옹호하지 않았다. 그에게 편견이 있엇다면 그것은 소비자 편을 든것이었다. 그는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표이며 목적이다. 나아가 소비대중의 이익보다 생산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체제를 혹평했다.
신흥자본가들은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은 시장을 옹호하는 스미스의 찬사에서, 그 시대의 수치스러운 여건을 치유하려는 정부의 첫 시도를 봉쇄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정당성을 찾았다. 왜냐하면 스미스의 이론으 분명히 자유방임원리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스미스에게는 최소한의 간섭을 하는 정부가 최선의 정부이다. 정부는 낭비자이며 무책임하고 비생산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보편적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 행동을 반드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그는 대량생산이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효과에대해 아래와 같이 경고한다. 평ㄱ생을 몇 가지 단순한 일로만 보내는 인간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우둔과 무지에 이를 것이다. 만일 정부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다면 노동자의 인간적 미덕이 쇠퇴할 것이라고예언한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특별히 강조한다. 1.정부는 다른 사회의 폭력과 침략으로부터 사회를 지켜야 한다.2.정부는 모든 시민을 위해 정확한 사법행정을 수행해야 한다.3.정부는 좋은 사회에매우 유익하기는 하지만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들이 그로부터 이윤을 얻어 비용을 보상받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공공기관과 공공사업을 설립하고 유지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스미스는 민간부문에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사업-도로와 교육 등-에서 이루어지는 공공투자의 유익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반대한흔 것은 시장기구에 대한 정부의 쓸데없은 간섭이었다. 그는 수입제한이나 수출보조금을 반대하고 경쟁으로부터 산업을 보호하는 정부법령을 반대하며, 비생산적 목적을 위한 정부의 지출을 반대햇다.이런 정부활동은 모두 시장체제의 적절한 작동을 억압한다는 사실에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정부가 복지법안을 가지고 간섭해올 때 정부는 시장체제를 약화시킬 것인가는 문제에는 직면하지 않았다. 그의 시대에는 빈민구호를 제외하고는 복지법안이라는 것이 사실상 없었다ㅣ 정부는 지배계급의 뻔뻔스러운 동맹자였고,정부 내논쟁은 이익을 누려야 하는 세력이 지주인가 산업자본가인가 하는 문제엿다.
스미스 체게의 큰 적은 정부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독점이었다. 시장기구의 작용이 가장 낮은 값으로 가장 많은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시장에 간섭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복지수준을 저하시키는 일이 된다. 당시 도제 제한된 고용제도/극빈자를 구빈원 구속-
이런 모든 방해물은 없어져야 한다고그는 말한다. 시장이 자연적 수준의 가격.임금.이윤.생산을 찾는 데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시장에개입하는 모든 것은 다만 국가의 참된 부를 희생시킬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스미스의 전망은 합리성과 질서가 자의성과 혼돈을 누르고 반드시 승리할 거이라는 18세기적 신념의 증언이다. 스미스는 선행을 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이기적 행동의 부산물로 선행이 나오도록 하라는 것이다. 거대한 사회적 기구를 그처럼 신봉하고, 또한 이기적 본능을 사회적 미덕으로 합리화하는 모습은 철학자이다. 스미스는 법관들이 국가가 아니라 소송당사자들로부터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햇다. 그래야만 법관들이 자기이익 때문에 자신에게 할당된 소송을 신속히 처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등장한 비인격적 사업체인 주식회사에 장래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이 조직은 복잡하고 힘든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이기심을 분발할 가능성이 아주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 폐지를 동원하였다.
그ㄴ의 주장은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세계는 인간이 분자처럼 손해라는 극을 떠나서 이익이라는 극을 향하도록 하는 일종의 합리적 기구로 전환된다. 거대한 체계가 작동하는 것은 인간이 그것을 지도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이익과 경쟁이 대열을 적절하게 정렬하기 때문이다.
***맬더스와 리카도의 우울한 예감
*진보의 수혜자는 지주라고 본 리카도
리카도가 예견한 것은 모든 사람이 진보의 승강기를 타고 함께 올라간다는 사회이론의 종말이었기 때문이다. 스미스와는 달리 리카도는 승강기가 각기 다른계급에게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스미스에게 사회란 거대한 가족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리카도는 사회를 내부적으로 분열된 병영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가 사회를 그렇게 본 것은 당연하다. 국부론이 발표한 후 40년 동안 영국은 두 개의 적대적인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편은 신흥 자본가들로서 그들은 공ㅇ장운영에 분주하면서 의회의 대표권과 사회적 명성을 쟁취하려고 햇다. 다른 한편은 대지주 계급이었다. 그들은 부유하고 강력하며 견고한 진지를 구축한 귀족으로서 뻔뻔스러운 신흥부유층이 자신들의 지위를 잠식해오는 것을 분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주ㅜ를 분노케 한 것은 자본가들이 돈을 번다는사실이 아니었다. 자본가들이 항상 식량가격이 너무 비싸다고주장하는 가증스러운 사실 때문에 그들은 분노했다.
곡물가격이 치솟자 기업심이 강한 상인들은 외국에서 밀과 옥수수를 구입하여 영국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해외로부터 곡물을 값싸게 유입하는 것을 관대한 눈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의회를 지배하고 있던 지주계급은 강력한 보호체제를 스스로 입법화했다. 지주계급이 통과시킨 곡물법은 곡물 수입에 가격연동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외국시장의 곡물가격이 하락하면 그것에 반비례해서 높은관세를 부과하는 식이엇다.
흉년에 나폴레옹과 전쟁으로 곡물값의 폭등.노동자들은 관심이 없엇는데 이는 소매가격이 한 쿼터에 84실링 하건, 105실링 하건 노동자가 마른 빵을 먹기는 마찬가지다. 곡물법이 완전히 폐기되고 값싼 곡물을 영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것이 허용되기까지는 3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햇다.
*찬양받은 증권업자와 지탄받은 목사
맬더스는 빈민구호금의 철페를 주장하고 노동게급을 위한 주택건설계획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빈민계급의 이익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엇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근본 문제는 그 안에 너무 많은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이므로 조기결혼을 촉진하는 모든 조치는 인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쉴집이 없는 사람은 자선에 의지해서 목숨을 연명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다시 가족수를 늘릴 것이므로 결국 그러한 자선은 위장된 잔인일 뿐이라고 맬더스는 말했다.
리카도는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의이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충되며, 지주계급의 이익은 사회에 유해했다. 따라서 신흥자본가들은 그를 이해하든 못하든 그를 자신들의 챔피언으로 삼았다.
*인구증가율을 둔화시킨 변수들
인류의증식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맬더스는 토지가 사람과 달리 증식할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대립시ㅁ켰다. 인구와는 달리 토지는 번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구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반면 경작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은 겨우 산술급수로 증가할 뿐이다.
맬더스는 <인구론>에서 이렇게 기술했다.ㅣ
지구 전체의인구, 예컨대 10억을 가지고 생각해보면....인류는 1,2,4,8,16,32,64,128,256,516이라는 식으로 증가할 것이고, 식량은 1,2,3,4,5,6,7,8,9,10이라는 식으로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225년 후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는 512 대 10이 될 것이고 300년 후에는 4096 대 13일 것이고, 2000년 후에는 그 차이를 계산할 수도 없을 것이다.
품행절제라는 연약한 갈대 외에 인류를 자체의 중압에서 오는 끊임없는 익사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맬더스는 옳ㄹ았는가? 1970년대 초반까지 세게 인구 증가에 대한 일반적은 전망은 그의 선견지명있는 예상과 들어맞는것처럼 보엿다. 최소한 세계의 저개발지역에서는 분명 그랬다. 오늘날 신중한 낙관주의는 기술적 진전 특히 이른바 녹색혁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녹색혁명으로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작물 수확고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대에 에티오피아와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영양실조로 해골같이 마른사람들을 ㄹ보고 맬더스의 예측이타탕햇다고 보기보다는 가뭄이나 부적절한 수송체계 등과 같은 지역적인 조건의 결과로 그 문제를 이해햇다.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되는 인구증가가 농업생산성의 증가를 압도하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는 맬더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방정식에서 공급측면과 함께 수요측면을 통제할 필요하 남아 있다. 식량생산만잉 아니라 유아생산에 대한 통제도 요구된다.
세계적 차원의 인구조절은 가능할까?1970~1975년 사이에, 인구증가율이 사상 최초로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구증가가 결코 멈춘 것이 아니다.
식량이 크게 부족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그런 지역 역시 출산율은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맬더스가 예언한 곱절, 또 곱절이란 함정에서 서구사회를 구해 준 것은 무엇일까? 산아제한이 분명히 중심적인 역할을 햇다. 이를ㄴ 신맬더스주의라 한다. 서유럽에서 맬더스예언을 논파하는 데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엄청나게 진행된 도시화였다. 농장에서는 자식이 자산일 수 있지만 도시에서 그들은 부채엿다. 이렇게 경제적 배려가 산아제한에 관한 지시과 결합되어 두려운 인구폮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엇다.
*리카도와 맬더스의 논쟁
인형극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는가? 첫째 노동자들이 있다.그들은 가족생활에서 얻은 기쁨에절망적으로 중독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이런 기쁨에 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임금이 상승할 때마다 인구증가로 곧 상쇄되고 만다. 장기적으로 그들은 나약함 때문에 겨우 연명하는 생활수준에 머무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맬더스와 마찬가지로 리카도도 자제만이 노동자 대중의해결책이될 수 있다고 ㅁ보았다. 그는 노동자의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이엇지만 노동자들의 자기통제 능력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자본가들을 만난다. 그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은 축적이다. 즉 이윤을 저축하고, 자신들을 위해 일할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저축을 재투자하는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이런 축적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게 수행한다. 그들은 서로 심하게 경쟁을 하는데 이 때문에 새 생산공정을 발명했거나 수지맞은 거래 선을 발견한 운 좋은 자본가에게 쏟아졌던 부당한 이윤까지 빠른 시간 내에 없애버린다. 또 한가지 이유는 그들의 이윤은 주로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임금에 좌우된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안게 된다.
여기까지는 실제적인 세부사항이 없을 뿐 스미스의 세계와 크게 동떨어진 ㄱ세계는 아니다. 그러나 리카도가 지주를 다루는 데 이르면 사태는 전혀 달라진다.
리카도는 지주를 사회조직에서 혜택을 받은 유일한 계층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일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은다. 자본가는 사업이라는 쇼를 하고 그 대가로 이유늘 받는다.그러나 지주는 토지의 힘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그의 수입인 지대는 경쟁이나 인구의 위력에 하등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로 그는 모든 사람을 희생시켜 이득을 얻는다.
리카도는 이자가 자본의 값이며 임금이 노동의 값인 것과는 달리 지대는 단순한 토지 사용료가 아니라고보았다. 지대란 모든 토지가 동등한 생산성을 가지고있지는 않다는 사실에 근거르 ㄹ둔 특별한 종류의 보수엿다.
리카도에 따르면 이런 생산비의 차이로부터 지대가 생겨난다. 덜 생산적인 농장의 땅을 경작해도 이윤이 나올 정도로 곡물의 수요가 높다면, 더 생산적인 농장에서 곡식을 재배하는 것은 엄청난 이윤이 남는 사업일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두 농장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차액지대도 커질 것이다. 예컨대 척박한땅에서 1부셀의 곡식을 생산비 2달러를 들ㅇ 수확할 경우 이윤이 있으나마나 한다면, 부세달 50센트로곡물릉 생산하는 비옥한 토지의 운 좋은 지주는 실로 엄청난 지대를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ㄴ 두 농장은 수확한 곡식을 같은 값 예컨대 부세달 2달레 10센트로 시장에 팔것이고,그렇게 되면 비옥한 토지의 소유주는 두 생산비 차이인 1달러 50센트를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경제가 끊임없이 확대해 나간다고 생각했다. 자본가들은 자본을 축적하는 한편 계속해서 새 상점과공장을 건설햇다. 따라서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햇다. 이것이임금을 끌어올렷지만 잠시뿐이었다. 임금상승은 어쩔 수 ㅇ도리없는 노동계급을 유혹ᄒᆞ여 가정이 주는 위험한 기쁨에 탐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더 많은 노동자가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게 만들ㄹ어 그들의 유리한 위치를 망쳐버렷다. 이것이 스미스의 희망찬 전망과 전혀 다른 길로 갈라지는 점이다. 리카도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경작의 한계선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햇다. 더 많아진 인구는 더 많은 곡물을 요구하고 더 많은 곡물은 더 많은 경작지를 요구하게 된다. 신개척지는 기존 경작지보다 생산성이 떨어질 것은 당연하다.
인구증가는 더 많은 땅이 경작됨에 따라 곡물 생산비는 상승할 것이다. 물론 곡물의 판매가격도 오를 것이며 비옥한 토지를 가진 지주의 지대도 오를 것이다. 또한 지대뿐만 아니라 임금도 오를 것이다. 곡물의 생산비와 시장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자가 마른 빵이라도 사 먹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비극은 자본가는 양쪽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1.그가 지불해야 할 임금은 노동자가 먹어야 할 빵값이 더 비싸졌기 때문에 더 높아진다. 2.척박한 땅도 이제는 사용되기 때문에 비옥한 토지를 사용하는 지대가 올라감에 따라 지주드은 더 잘살게 된다. 사회의 결실 속에서 지주의 몫이 커짐에 따라 지주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옆으로 밀려나는 게급은 자본가이다.
스미스는분업이 증가하고 사회가 더욱 부유해짐에 따라 만인이 점차 유복해지게 된다.이런 결론은 ㅅ스미스가 토지를 진보의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스미스의 비젼에서는 비옥한 토지의 부족이란 있을 수 없은 일이고, 따라서 인구증가와 함께 지대가 상승할 여지가없다.
리카도세계는 오직 지주만이이득을 얻는다 노동자는 영원히 최저생활에 묶여 있어야 할 운명이다. 왜냐하면 임금이 상승해도 자식들이 늘어나 이득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한 자본가는모든 수고의 대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지급은 늘어나고 그의 이윤은 감소한다. 한편 지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대만 거둬들인다. 그는 편안히 앉아 지대가 증가하는 것을 관망한다.
맬더스는 지대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대는 과거의 힘과 솜씨에 대한 보상임과 동시에 현재의 용기와 지혜에 대한 보상이다. 자신의 근면과 재능으로 얻은 결실로 사람들은 매일 땅을 구입하고 있다.
리카도에 따르면 지대란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의 비옥도 차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만일 인구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면 이 차이는 지대수입이 사회가 이룩한 결실 가운데 놀라울 정도로 큰 몫을 횡령할 정도까지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맬더스는 열려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찾아냈다. 그는 자신이 말한 전반적 과잉-구매자가 없은 상품의 홍수-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러나 리카도가 자신의 수학적인 사공방식으로 볼 때, 전반적 과잉이란 개념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ㅇ르 밝혓다는 점이다.
^^^세이가 리카도의 증명을 발견했다. 매우 간단한 두 가지 명제를 말했다.1. 그는 상품에 대한 욕구는 무한하다고믿었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식량에 대한 욕구는 위의 용량에 따라 한계가 있지만 의복4,가구, 사치품 및 장신구 등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셈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처럼 ㅗ보엿다. 그러나 욕구만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 구매 능력 또한 보장된다고 세이는 말햇다. 왜냐하면 생산되는 모든 물품은 생산비가 드는데 모든 생산비는 누군가의 소득이되기 때문이다. 그 생산비가 임금이든 지대이든 이윤이든 그 판매 가격에서 누군가의 소득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는데 어떻게 전반적인 과잉이 일어날 수 있겟는가? 다만 일시적인 오판이 있을 경우에만 시장에서 상품을 깨긋이 팔아치우는 데 필요한 구매자들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세 사람이 가진 기본적 전망은 사회가 이윤추구로 움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경쟁의압력으로 규율되며, 정부가 할 역할의 범위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범위 내로 제한하는 신중함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메커니븜이라고 파악하는 견해다. 이윤동기, 시장의 역할, 정부의 위치에 대한 인식은 모두 같았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기술효과의 변화에서ㅗ 비롯된다.
스미스는 그 효과에 잇어서 분업으로묘사된다. 분업의 큰 효과/ 맬더스와 리카도는 경제적 팽창이 제한된 생산능력을 돓파하는 즐거움을 더 이상 누지리 못하게 됨에 따라 인구성장이 훨씬 위협적인 양상을 띠게 되엇‘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꿈
***칼 마르크스의 냉혹한 체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본 자본주의
흔히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불린다. 변화원리라는 헤겔 사상을 포용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이고, 관념의 세게가 아니라 사회적.물리적 환경이라는 영역에 기초를 둔다는 점에서 유물론인 것이다.
엥겔스는 <반뒤링>이란 소책자에서 이렇게 썻다.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은 생산과 함께 생산물의 교환이 모든 사회 질서의 토대라는 원리, 역사상 등장한 모든 사회에서 생산물의 분배 그리고 이를 통한 사회의 계급 혹은 신분으로서의 분열은 무엇아 생산되는가와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는 그리고 생산물이 어떻게 교환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인식에 따르면 모든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혁명의 궁극적 원인은 사람들의 의식이나 영원한 진리와 정의를 향한 그들의 통찰력의 증가가 아니라 생산 및 교환의 양식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즉 철학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경제적 토대-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해야 하는인류의 엄혹한 현실-위에 구축된다. 이런 조직은 그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양한게 나타날 수 있다. 목축이나 수렵에 기반을 둘 수도 있고 수공업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거나 복잡한 공업단지로 구조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초적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가 무엇이든 사회는 비경제적 활동과 사상이라는 상부구조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사횐는 법률을 통해 결속하고 정부에 의해 감독되며 종교와 철학을 통해 고취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상의 상부구조가 제멋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성립하는 기반인 토대를 반영해야만 한다. 어떠한 수렵공동체도 진보하거나 산업사회의 법적 틀을 이용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산업공동체도 원시촌락의 법, 질서, 정부에 대한 관념을 써먹을 수 없다. 유물론의 원리ᄀᆞ 관념이 수행하는 촉매의 역할과 창조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사상과 관념이, 비록 환경의 변화를 의도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바로 그 환경의 산물임을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본래 유물론은 관념을 경제활동의 단순한 수동적 부속물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결코 맑스의 생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새 이론은 유물론이면서 동시에 변증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화, 세상의 원리인 끊임없는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 끝나지 않은 흐름속에서, 관념은 특정한 시대로부터 태동하지만 다른 시대의 틀을 짜는 데 도움을 준것ㅇ디ㅏ
맑스는 나폴레옹의 쿠데타에대한 1852년도 저작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는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직접 발견되고 주어지며 이전된 환경속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이론의 변증법적 즉 내적 동학의 측면은관념과 사회구조 사이의 상호작용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훨씬 더 강력한 요소가 작동되고 있었다. 바로 경제가 그 자체도 변화하고 있었다. 관념이라는 상부구조의 기반을 이루는 토대 역시 변화의 와중에 잇었다.
예를 들면 중세의 고립된 시장은 착취와 정치적 통합이라는 자극 아래 서로 결합되기 시작햇고 마침내 새로운 상업적 세계가 등장햇다. 낡은 수동식 작업장은 발명이라는 자극 아래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작업장으로 대체되었고, 공장이라는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조직이 나타났다. 두 경우 모두 경제생활의 결정적 틀이 그 형태를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과거에 그랫던 것처럼 이런 변화는 그것이 배태된 공동체에 새로운 사회적 적응을 강요했다. 맑스는 이렇게 적엇다 수동기관은 당신에게 봉건영주의사회를 줄 것이다. 그리고 증기기관은 당신에게 산업자본가의 사회를 줄 것이다.
일단 이런 변화가 시작되면 일련의 전반적 결과가 나타난다. 시장과 공장은 봉건적 생활방식과는 화합할 수 없다. 비록 이것들이 봉건제의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시장과 공장에 조응하는 새로운 문화적.사회적 조건이 요구된다. 시장과 공장은 자신들의 고유한 사회계급을 창출함으로서 이 고통스러운 출산과정을 촉진한다. 시장은 새 상인계급을 양육하고, 공장은 산업프롤레타리아를 낳은다.
사회의 변화과정이 단순히 새로운 발명이 낡은 제도에 가하는 압력의 문제인 것ㅇ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새 계급이 낡은 계급을 대체하는 문제이다. 맑스에 따르면 사회는 계급구조, 즉 현존하는 생산형태에 유리하든 불리하든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집단으로 편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적 변화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을 위협하게 된다. 생산의조직적. 기술적 능력이ㅣ 변화함에 따라-예 공장이 수공업을 붕괴시킴에 따라-생산의 사회적 관계도 변화한다. 꼭대기에 있던 사람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게 되는가 하면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이 상승할 수도 있다. 우리는 리카도 시대에 영국에서이미 사회계급의 상대적 지위가이렇게 전복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ㅑ. 이 당시 산업혁명의 급물살을 탄 자본가들은 지주계급의 유서깊은 특권을 빼앗으려고 위협했다.
이에 따라 갈등이 전개된다. 지위가 위태롭게 된 계급은 지위가 강화된 계급과 싸운다. 봉건영주들은 막 ㅅ부상 중인 상인들과 싸우고, 길드 장인은 신진 자본가들에 저항한다.
하지만 역사의 과정은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다. 상황은 점차 변화하고, 사회계급도 점차 그러나 확실하게 재정비된다. 혼란과 고뇌 속에서 부의 분배가 바뀐다. 결국 역사는 사회적 부의 분배를 둘러싼 계급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사회의 기술수준이 변화하는 한 현존하는 어떠한 부늬 분배구조도 변화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곧 기술적.조직적 토대와 법.정치적 권리.이데올로기의 건축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기술적 토대가 진보한다면 필연적으로 상부구조도 더욱더 심각한 긴장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경제적 ㄴ토대는 공업생산이엇다. 그 상부구조는 사유재산제도였다. 이 제도 아래서 사회적 생산의 일정 부분이 사회의 거대한 기술적 수단을 차지한 이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 토대와 상부구조가 서로 모순을 빚는다는 사실에 바로 갈들의 이유가 존재했다.
그 이유는 공업생산의 토대가 더욱더 조직되고 통합되며 상호의존적인 과정이 ㅣ되는 반면 사유재산이라는 상부구조는 사회제도 중 가장 개인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부구조와 토대 사이의 충돌이 벌ㄹ어졌다. 공장은 사회적 계획을 필요로 한 반면 사유재산은 그것을 혐오햇다. 즉 자본주의는 너무 복잡해져서 방향의 설정을 요구한 반면, 자본가들은 파면적인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그 결과는 이중적이었다. 우선 자본주의는 조만간 자멸할 것이다. 생산의 비계획적 성격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끊임없는 혼란에 빠져, 위기와 불황 그리고 공황이라는 사회적 혼돈이 나타날 것이다. 체제는 너무나 복잡했다. 체제는 지족적으로 엇나가고 휘청댔으며 어떤 재화는 광잉생산하는 반면 다른 재화는 과소생산햇다.
다음은, 자본주의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잉태하고야 만다. 자본주의는 그 거대한 공장들을 통해 사회주의-합리적을 계획된 생산-의 기술적 토대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담지자가 될 훈련되고 단련된 계급 즉 분노한 프롤레타리아트 또한 낳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체의 내적 동학을 통해 스스로의 몰락을 자초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숙명의 적을 길러낼 것이다.
*자본주의경제에 관한 상반된 전망
맑스의 분석에 담긴 두 가지 특성 1. 맑스의 체계는 또 다른 경제학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맑스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사회 연구 주제과제 즉 경제학 자체의 비판을 창안햇다. <자본론>의 상당 부분은 초기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연구가 함축하는 현실적 도전을 이해하지 못햇음을 보여주는 데 할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스미스와 리카도를 괴롭혔던 가치의 문제를 보자. 두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상품에담긴 노동시간의 총량이 어떻게 가격에 반영되는지, 혹은 반영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햇고 다소 차이는 있지만 얼마간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맑스는 ^^^진짜 복잡한 문제는 사람들이 실제 노동이 각기 다른데도 어떻게 노동을 가치의 공통분모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리카도는 연어 한 마리를 낚는 데 걸리는 시간과사슴 한 마리를 잡는데 드는 시간이 그 물품의 교환비율, 즉 그 물품의 가격을 확정짓는다고 말했다.하지만 어떤 사슴도 낚시대로 낚이지 않으며 어떤 연어도 숲에서 사냥꾼에 의해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노동을 교환비율을 결정하는 공통분모로 사용할 수 있겟는가?
맑스는 자본주의사회가 특별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인 노동을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추상적인 노동이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특수한 개인적 속성과 동떨어진 노동이며, 밀이나 석탄과 마찬가지로 사고팔 수 있는 노동이다. 따라서 노동가치론의 진정한 통찰력은 스미스와ㅑ리카도가 생각한 것처럼 가격 결정원리를 설명하는 것이아니라 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특수한 사회체제를 식별해냈다는 점에 의의ㅣ가 있다. 그 사회는 역사적 ㅎ힘(인클로저 운동같은)을 통해 아무런 자산도 갖고 있지 못한 까닭에 자신의 노동력-순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파는 것 외에 살아갈 다른 방법이 없는 노동계급을 창조한 사회 곧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체제의 운동법칙-이윤창출,자본가의 새 기계도입,호황은 어떻게 파국으로 끝나는지, 중소기업들은 위기 때마다 어떻게 대기업에 흡수되었는지 등
자본주의 경제에서 이윤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맑스가 처음 생각한 것도 아니고, 또 이윤이 떨어지는 것이 꼭 그가 제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스미스나 리카도 혹은 밀이 지적한 것ㅇ처럼-그리고 기업가라면 누구나 선선히 인정하는 것처럼-경쟁과 임금상승 압박은실제로 이윤을 하락시킨다. 엄청난 힘을 가진 독점기업을 제외하면 이윤은 자본주의의 품질보증서인 동시에 아킬레스건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기업도비용을 훨씬 상회하는 가격을 영구히 유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윤을 영원히 보장하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기업 혹은 경제 전체가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요구에는 새로운 기술의 끝없는추구이다. 맑스가 말한 것처럼 기술진보란 자본주의의ㅣ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지극히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기업은 혁신하고, 발명하고, 실험해야만 살아남을 수있다.
맑스 시대의 다른 어떤 경제학자도 공황-경기순환-발생하는 경향을자본주의의 내재적 특성으로 인식하지않았다. 하지만 호황과 불황의 연속에 대한 맑스의 예언은 이후의 사건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맑스는 소규모 독립 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대량생산의 압박에 견뎌낼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더욱더 많은 노동자들이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게 될 것이라고 즉 프롤레타이라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빅토리아 시대와 경제학의 지하세계
***케인스의 이단론
*탁월한 분석, 실패한 문제해결 <화폐론>
^^^번영과 침체의 교차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는이런 경기순환이 일종의 집단적 신경불안으로 생각되었다.이런 주기적 붕괴는 절망, 희망ㅇ, 흥분, 실망 그리고 공포의 교차에 의존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것이다.
^^^초기의 몇몇 이론은 경제과정의 바깥에서 해답을 찾았다. 제번스는 모든 것이 태양의 흑점때문이라고 설명햇는데 보기보다 억지스런 이론은 아니었다. 1721년부터 1878년에이르는 기간에 경기순환 주기는 호경기에서 다음 호경기에 이르는 평균기간이 10.46년이었다는 사실과 태양 흑점이 10.45년의 주기를 가졌다는 사실에 제번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상관관계는 너무나 밀접해서 순전한 우연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제번스는 확신했다. 태양의 흑점은 기후 주기에 영향을 미치고, 기후주기가 강수량 주기에, 강수량 주기가 곡물주기에 영향을 미치며, 곡물주기가 결국 경기순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만 제외하면 그리 나쁜 이론은 아니었다. 태양흑점 주기는 더 정밀하게 계산해본 결과 11년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체 역학과 경기변덕 사이에 빈틈없는 상관관계는 깨어지고 말앗다.
맬더스의의문 즉 저축은 어쨌든 전반적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는 느낌을 말햇다. 이 주장에 리카도와 밀은 일소에 부쳤다.
그러나 초기 경제학자들이 저축이경제의 저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도덕적 개종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실제 세계의 사실을 관찰햇을 뿐이다.
1800년대 초반에 저축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저축한 돈을 사용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리카도나 밀의 압축된 세계에서는 저축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지주계급과 자본가들이엇다.그들이 모은 돈은 이러저러한 생산적 투자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저축을 축적이라 불러도 별 문제가 없었다. 동전의 양면과 같ㄴ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논 일정한 액수의 돈을 축적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도구나 건물이나 땅을 구입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경제구조가 바뀌었다. 부의 분배가 개선되었고 그와 동시에 저축의 가능성도 사회의 더 많은 성원에게 열렸다. 또한 기업은 대형화되고 제도화된 성격을 띠게 되엇다. 기업은 점점 새 자본을 찾기 시작햇는데 그것은바로 기업주의 주머니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무명의 저축자의 주머니에 있는 돈이었다.그리하여 저축과 투자는 서로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저축과 투자는 별개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행하는 별개의 활동이 되어버렸다.
국민소득은 정태적인 개념이 아니다. 경제의 핵심적 특징은 바로 한손ㄴ에서 다른 손으로 소득이 흐른다는 것이다.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우리는 소득의 일부를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넣어준다. 그것이 임금, 임대료,이자, 이윤 등 어떤 소득이든 우리의 소득은 모두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이 소비한 돈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당신의 서비스를 이용했거나 당신이 일하는 가게의 단골손님이 되었거나 당신이 주주나 채권자로 있는 회사의 제품을 구입한 결과인 것이다.
경제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화폐를 차례로 돌리는 과정 곧 위에서 설명한 대로 어떤 사람이 쓴 돈을 다른 사람이 수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우리의 소득이 직접 시장으로 가서 타인의 소득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즉 우리가 저축하는 돈이 있다. 우리가 저축한 돈을 양탄자 바닥에 숨기는 등 현금을 쓰지 않고 쌓아 둔다면 분명히 소득의 순환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사회로부터 얻은 소득보다 적은 양을 사회에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동결과정의 폭이 광범위해지고 기간이 지속된다면 매번 순환될 때마다 수량이 점점 줄어들어 모든 사람의 화폐소득은 누적되어 감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경기침체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ㅐ 없다.
그러나 이런 소득순환의 위험한 중단은 보통 일어나지 않는다. 대개 저축을 동결한 상태로 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축을 주식이나 채권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거나 은행에 예금한다. 이렇게 되면 그 저축된 돈을 다시 활용될 수 있다.우리가 새 주식을 산다면 그것은 우리의 저축을 ㄹ직접 기업에 주는 셈이다.우리가 은행에 예금하면 그 저축은 자본을 찾는 기업을위한 대부자금으로 이용될수 있다.
^^^이런한 저축-투자의 연결고리에는 자동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기업이 매일의 사업운영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우리의 저축을 필요로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판매수입금으로 소요경비를 지불한다. 저축된 돈은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경우에만 필요하다. 기업의 통상적인 수입만으로는 새 공장을 세우거나 장비를 크게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충분히 조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검약하는 사회는 항상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려 한다. 그러나 기업이 항상 사업을 확장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시장에 과잉이 발생하거나 국제 정세가 불안하다거나 기업가들이 물가인상에 대해 불안을느끼거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사업전망이 흐려질 때, 투자의욕은 감퇴된다. 기업가들이 걱정에 휩싸여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데 시설을 확대할리 있겠는가?
바로 여기에 경기침체의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저축한 돈이 사업ㅇ을 확장하는 기업에 투자되지 않으면 우리의 소득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을 집에다 감추어 동결하는 것과 꼭 같은 나선형적인 불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저축과 투자의 상호작용에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은 경제적 자유??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라 할 수 있다. 소련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고, 파라오가 지배하던 고대 이집트에도 그런 문제는 없었다ㅓ.
저축과 투자가 시소게임을 한다는 그의 이론은 핵심문제ㅐ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그 책은 어떤 경제가 어떻게 해서 오래 끄는 경기침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햇다.
^^^저축과 투자 곧 검약과 기업의 의욕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은 경제활동은 아니다. 양자는 기업가들이 저축을 구매하거나 적어도 차용해 쓰는 시장에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금융시장은 그렇다. 여기서는 저축도 다른 상품처럼 가격이 있다. 바로 금리이다.따라서 저축이 홍수를 이루는 불경기의 바닥에서는 금리가 폭락한다. 구두과잉공급되면 구두값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저축의 가격이 하락하면 즉 금리가 하락하면 투자 유인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만일 금리가 10%일 때 공장 건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했다면, 자금을 금리 5%로 얻을 수 있을 때 공장건설로 훨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소게임 이론은 경기순환 자체에 자동안정정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저축이 많이 늘어날 때는 돈을 싸게 빌릴 수가 잇고, 따라서 기업은 투자할 유인을 갖게 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경제가 위축된다 해도 곧 다시 활기를 띨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공황 때 이 자동안정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금리가 계속 떨어졋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소게임에서 저축과 투자가 균형을 이루도록 작용하는 금리에 관한 산뜻한 공식은 분명히 무언가가 결여되어있었다.
*장기적 경기침체의 진단과 치유책
<일반이론>에는 자동안정장치란 것은 없었다. 경제란 언제나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시소이기보다는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닮았다. 경제는 게속 오르내일 수 있지만 완전히 멈춰버릴 수도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맨 위층에서 멈출 수 있는 것처럼 1층에서 멈출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불경기는 결코 저절로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불황의 밑바닥에서는 저축의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침체하면 소득이 감소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저축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쪼들릴 때 어떻게 번창할 때만큼 저축할 것을 사회에 기대할 수 있겠는가하고 케인즈는 물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경기침체의 결과는 넘쳐나는 저축이 아니라 저축의 고갈을 불러올 것이다
저축감소가 주는 충격적인 결과는 그것이 초래한 개인적 안정의 상실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가 가장 역동적이어야 할 때에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넘치는 저축이 없다면 기업인들이 돈을 빌려 쓰도록 유도할 금리인하의 압력도없을 것이고 대부와 투자지출이 없다면 기업확장 움직임도 없을 것이므로, 경제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 실업자들과 가동률이 낮은 공장과 설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는 균형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따라서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역설과 일자리가 없이 노는 사람과 가동되지 않는 기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변칙적 상황이 발생한다. 경기침체가 바닥인 상황에서는 한편에서는 실업자들이 먹고살 일용품이 모자라 아우성인데 다른 한편에서ㄴ 공장은 제품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비정한 모순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모순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순일 뿐이다. 경제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위해 ㅎ상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수요는 개인의 돈지갑만큼 작다.
한 가지 투자계획이 끝나갈 때 바로 위험한 공백을 메울 다른 투자계획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다른 투자계획이 있다면, 즉 투자내용이 바뀌더라도 투자 규모가 유지된다면 경제는 순탄하게 항해를 곟속할 것이다. 그러나 중단되는 각각의 투자에 대한 대체투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으면 경제활동은 수축하기 시작할 것이다.
<일반이론>은 우울한 전망을 내린다. 미국과 서구 세계 전체가 직면하고 잇는 파국이 기업에서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을 결과일 뿐이다. 그는 기업이 확장될 수 없다면 정부가 불황을 떠맡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정부 프로그램을 기업의 진로에 대한 영구적인 간섭으로 보지 않았다. 즉 미끄러졋지만 다시 균형을 되찾으려 애쓰는 체제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치유책이 더 나은 효능을 보이지 못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정부지출 프로그램은 완전고용 수준으로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한 규모로 수행된 적이 결코 없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루면서 정부지출을 1030억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으로 증가햇다. 이것은 완전고용을 달성햇을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도 초래햇다. 그러나 1930년대의 평화시기 경제체제라는 테두리안에서는 그러한 전면적인 지출증가 ㅂ거의 불가능했다.
2.1과 밀접한 관계가 있엇다. 정부지출은 실업계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의미했다. 그러나 실업계는 그것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몸짓으로 해석했다. 뉴딜정책은 반기업 풍조라는 물결에 편승하여 도입되었다. 사람들은 그동안 신성불가침이었던 가치와 기준을 갑자기 회의적으로 음미하고 비판의 도마에 올렷다. 영업권, 재산권,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개념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실업자를 일소하기 위해 충분한 규모의 사업을 벌이려는 정부의 모든 노력은 사회주의적 계획이라는 이유로공격당햇다. 동시에 정부가 채택한 어중간한 조치조차도 실업계를 놀라게 하여 전력투구하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베블런의 눈에 비친 야만사회
*현대사회의 야만성을 성토한 <유한계급론>
유한계급은 과시적 소비를 통해 우월성을 과시하며 유ㅜ한계급의 품질증명에 해당하는 여가도 대중의 눈앞에서 과시함으로써 만족감을 배가시킨다고말한다. 1000개나 되는 수많은 예를 들면서 그는 더 비싼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의미한다는 유한계급의 태도를 심술궂게 검토햇다. 하나의 예
우리 모두 집안에서의 개인생활에서조차 수공예 은식기를 사용하고, 손으로 무늬를 그려 넣은 사기그릇을 값비;싼 테이블보 위에 놓고 음식을 담아 먹으면서 나도 가진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그리고 불안감없이 떠올린다. 이런 점에서 늘 품위 있다고 여겨온 생활수준에서 퇴보하는 것은 곧 우리의 인간적 존엄성을 비참하게 파괴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한 경제적 정신 병리학의 조사와 밀접한관계가 있다.
그의 관심은 여행의 최종 목적지즉 경제적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엇기에 유한계급 집단을 만들어내는가, 여가는 경제적의미는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고전경제핚자들은 그런 의문에 상식으로도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자기이익을 향상시키려고애쓰는 개인이라는 관점으로 세계를 보았다. 때로는 절망적으로 증가하는 노동계급을 본 맬더스의 경우처럼 야수적인 인간의 본질이 보다 우세하다고 보기도 햇지만 고전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인류를 이성적 존재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묘사햇다 경쟁적인 투쟁속에서 어떤 사람은 꼭 대기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바닥으로내려갓으며, 운이 좋거나 영리하여 번영한 자는 자신의 노력을최소화하려고 당연히 재산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간단하지만 꽤 합리적이엇다.
그러나 이런 인간관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사회를 결속시키는 힘이합리적으로 계산된 자기이익의 상호작용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고, 여가가 당연히 노동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ㅎ않았다. 그는 독서를 통해 인디언과고 일본의 아이누족과 호주 삼림지대의 주민등을 연구햇다. 이 종족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간단한 경제에서는 유한계급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생존하기위해서 당연히 노동을 해야만 하는 공동사회는 모두가 무슨일이든 천하게 생각하지ㅣ 않고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경제를 움직이는 적극적인 힘은 이윤과 손실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솜씨에 대한 자연스러운 자부심과 다음 세대에 대한 어버이 같은 배려의 감정이엇다. 사람들은 매일 할당된 일을 수행ㄱ하는 과정에서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햇다. 그리고 비록 노동으로부터 면제 즉 여가가 허용된다 해도 그것이 존경받을 만한 일을 아니었다.
다른 형태의 사회도 주목했다.폴리네시아인과 쇼균이 지배하는 봉건적인 일본사회는 위의 원시사회와는성격이 다른 산업사회 이전의 사회였다. 그 사회는 잘 정의된 유한계급이 있었다. 이 계급의사람들은 무위도식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 사회에서 가장 분주한 계급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강제로 또는 술숳를 써서 자신들의 ㅁ부를 탈취했을 뿐, 땀을 흘리거나 기술을 사용하여 부를 직접생산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이 유한계급이 생산적 봉사는 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부를 취하기만 햇/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행위은 사회의 전적인 승인하에 이루어졌다. 그 사회는 그런 비생산적 계급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찬양할 만큼 대단히 공격적이기도 햇기 때문이다. 사회는 유한계급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낭비가 심한 자나 쓸모없는 자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강자나 능력을 가진 자로 우러러보았다.
그 결과 일에 대한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강제로 부를 탈취하는 유한계급의 활동은 명예롭고 위엄있는 행위로 여겨졌다. 그와 대조적으로 순수한 노동은 비천한 것이라는 오명을쓰게 되었다. 고전경제학자들ㅇ은일을 지겨워하는 마음이 인간본성에 내재해있다고 여겻지만 베블런은 한때는 명예로운 생활방식이엇던 일이 약탈정신의 영향으로 가치가 격하된 것이라고 보앗다. 폭력과 잔인한 무용을 칭찬하는 사회는 인간의 노고를 미화할 수 없다.
그는 현대사회 속에서 과거의 유산을 보앗다. 유한계급은 그 소임을 바꾸고 수법에 세련미를 더햇지만 목표는 변하지 않아 여전히 노동하지 않고 물품을 약탈했다. 물론 그 게급은 전리품이나 여자들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럴 정도로 야만성은 이제 탈피햇다. 대신 유한계급은 돈을 추구했다. 돈의 축적이나 돈의 요란한 또는 섬세한 과시는 토인들의 움막집에 걸어놓으 머리가죽에 해당하는 현대적 재료가 되엇다. 유한게급은 아직도 옛날과 같은 약탈유형을 따랏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힘을 찬양하는 옛날의 태도가 이 계급을 뒷받침하고 잇엇다. 사회에 비친 유한계급의 구성원은아직도 호전적이며 무서웠고 그 밑에 깔린 평민들은 우월한 유한계급을모방하려고 들었다. 자본가들은 물론 노동자와 중류계급의 시민에 이르는 모든 성원이 돈을 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정말 눈에 띄게 낭비함으로서 자신의약탈적 묘기를 과시하려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의젓한 사무직에 비해 육체적 노동을 멸시하는 풍조가 잇다. 적어도 성공한 고용직 사장의 경우 합리적인 수요와 필요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들타운>에서 대공황 때 극빈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게층이 꼭 필요한 사치품을 줄이기 앞서 음식과 의복에 대한 소비지출을 줄엿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대 중류계급과 상류계급의 형태에서 과시를 위한 과시라는 규범은 어느 잡지에든 실려 있는 광고란을 보면 명백히 입증할 수 있다.
거죽만 문명화된 야만인이라고 우리 인간을 파악한 그의개념은 유한계급이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소비지출 기준으로서 과시가 왜 용인되는가를 설명하는 이상의 공헌을 했다. 그것은 사회 응집력의본질을 파악하는 실마리 제공해주엇다. 초기의 경제학자들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계급들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결속시켜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약 맑스의 견해가 옳고 프롤ㄹ레타리아가 자본가와 서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존재라면 즉각적인 혁명 발발을 막은 것은 무엇인가? 베블런의 논리가 그 답을제공한다. 하층계급은 상층계급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 그들은 만져지지는 않지만 아주 강력한 공통된 태도의 끈으로 묶여 있다. 노동자들은 경영자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과 경쟁하려고 할 뿐이다. 그들은 주인이 하는 일보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다소 덜 근사하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상층계급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유한계급의 이론속에는 사회적 안정 이론의 핵심이 들어 있따.
*기업귀족에 대항하는 기계의 시대
자본가는 경제적 진보를 만들어가는 중심적인 존재로 간주되엇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거꾸로 보앗다. 기업가는 여전히 중심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더 이상 원동력은 아니엇다. 이제 기업가는 체제의 깽판쟁이로 묘사되엇다.
그는 리카도나 맑스처럼 이해관계의 상충이라는관점에서 출발하지않았다. 그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인간이 아닌 기술이라는 하부구조에서 출발햇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기계엿다. 그는 기계에 지배된 사회 즉 규격화에 얽매이고, 일정한 주기로 실행되도록 시간을 맞추어야 하며, 정확과 정밀을 요구하는 기계의 강요에 따라 돌아가는 사회를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서 경제적 과정 자체가 성격상 기본적윽로 기계적임을 예견햇다. 경제학은 생산을 의미하고, 생산은 상품을 만들어낼 때 사회가 기계처럼 맞물리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의 각 부위가 서로 협조해서 최대한 능률을 발휘하도록 조정을 해나갈 전문가와 기술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는 거대하면서도 온전히 실제적인 메커니즘, 즉 고도로 전문화되고 고도의 상호협력이이루어지는 인간 시계로 묘사될 수 있다.
기계는 가치와 이윤에는관심이 없다. 다만 상품을 만들어낼 뿐이다. 따라서 스스로 기술자가 되지 않는다면 기업가는 수행할 기능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한계급의 구성원인 그는 기술직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축적을 원한다. 그렇지만 기계는ㄴ 축적할 임무를 띠고 설치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업가는 사회적 기계의 틀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계에 저항하여 음모를 꾸밈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 기업가의 기능은 상품생산을 돕는 것이 아니라 상ㅎ품ㅇ의 정규ㅂ적인 흐름에 장해를 초래함으로써 가치가 변동되도록 하고 그 혼란을 이용해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가는 기계처럼 믿을 수잇는 실제 생산체제 위애 신용, 대부 및 가공의 주식자본과 같은 상부구조를 ㅅ세운다. 사회는 하부에서 기계적인 일상작업을 반ㅇ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