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예식 강설
유아세례는 성경적인가? 사변적인가?
창세기 17:1-8; 사도행전 2:38-39; 히브리서 8:8
이번 달 성례식은 우리에게 기쁨을 더해줍니다. 왜냐하면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의 딸 송예슬이가 유아세례를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주보에다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 이 부부를 통하여 이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보내어 주신 언약의 자녀인 송예슬이가 처음 교회에 나오는 날에 유아세례를 받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우들 모두가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에게 그리고 송예슬이에게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축하해 주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우리 교우들 모두도 축하를 받기를 바란다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송예슬이는 두 분 집사님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이고 우리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송예슬이가 비록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교회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두 분 집사님에게 축하하고 또 여러분들도 축하를 받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천국 백성들에게는 이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두 분 집사님의 자녀이고 어린아이 생명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천국 백성으로서 함께 교회를 이루는 정신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을 이 땅에 보내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송예슬이가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은 분명히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의 살과 피를 받고 희로애락의 감정과 오감을 받아서 출생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 가정의 자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인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 부부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점에 대해서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이 아이를 대신하여 문답하러 왔을 때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내 살과 피를 받고 이 땅에 태어난 내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을 보내시는 방식으로 두 분을 사용하셨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물론 송예슬이와 부모인 두 분 집사님과의 관계는 살과 피를 나눈 관계로써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고, 피로 맺어진 부모 자식의 관계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고 끊을 수 없는 관계로서 이 땅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족보를 파가라 호적에서 파가라는 말이 오고 간다고 할지라도 그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송예슬이가 두 분 집사님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고, 우리 교회의 지체로 보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교회는 송예슬이에게 유아세례를 베풀면서 바로 이 점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우들도 우리의 지체가 이 땅에 출생해서 하나님과 연합되었다는 표시로서 세례를 받기 때문에 축하를 받아야 합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함께 교회를 이룬 우리도 축하를 받아야 합니다.
로마 가톨릭의 세례관
그런데 로마 가톨릭은 우리 교회처럼 성례에 대해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오도하여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구원의 수단이라고 가르침으로서 성경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주장을 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세례, 즉 영세를 죄인이 죄사함을 받는 수단으로 원죄와 자범죄 그리고 그에 따른 죄에 대한 벌(罰)까지 온전히 사함을 받으며, 영혼이 없어지지 않는 확신한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을 오도한 것으로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찢기신 살과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것(벧전 3:21)이고,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당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어디에도 세례가 원죄는 물론 개인적 자범죄와 죄로 인한 벌을 온전히 면해 주신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은 세례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근거 성경 구절을 사도행전 2:38을 제시합니다. 즉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는 말씀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자신이 행한 복음 설교를 듣고 마음의 찔림을 받은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죄인이 회개할 때 죄를 용서받습니다. 하지만 이 회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세례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약속의 표로써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듭난 새사람이 된 이후에 그것을 확증하는 표로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듭났을 때 그것을 세례로써 확증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드리면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받는 것이지 구원 자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지 구원 자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이 약속을 참되게 믿을 때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은혜 언약의 표와 인(印)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라는 베드로전서 3:21 말씀에 의하면, 세례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 씻음을 받았다는 약속의 표시(sign)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한결같이 죄를 용서받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3:16; 롬 4:1-17; 11:6; 갈 3:8-9; 엡 2:8, 9). 따라서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므로 로마 가톨릭의 주장은 비성경적으로 거짓된 주장입니다.
재세례파의 세례관
그리고 또 우리 교회처럼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문제를 놓고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침례교단입니다. 이들을 재세례파라고 합니다. 재세례파라고 하는 것은 유아세례는 자기의 의식과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받았기 때문에 무효이고 다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다시 재’(再)를 써서 재세례파라고 합니다. 침례교에서는 모두가 신실하게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신실하게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만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교단에서도 ‘세례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표와 인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신실하게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신실하게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만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재세례파는 유아들은 아직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없기에 유아들은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마가복음 16:16, 즉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라는 말씀에 근거를 둡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분명히 먼저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야 하고, 이어서 믿는 사람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으므로 재세례파는 먼저 공적인 신앙고백이 오고, 그다음에 세례가 따라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도 재세례파 사람들의 해석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유아세례가 성경에 없으니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재세례파 사람들, 즉 침례파 사람들은 성경에는 유아세례, 즉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이 없으므로 유아세례는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가 없듯이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라는 직접적인 말은 단 한 구절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성경 구절은 분명히 있으므로 모두가 삼위일체라는 말을 사용하여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유아세례라는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유아세례와 관련된 말씀들은 많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은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을 회심시킬 때에, 그를 반역과 불신에서 회개와 믿음으로 돌이키실 때, 그 사람은 반드시 세례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28:19과 마가복음16:16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찬에 참여하여야 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하고, 고의적으로 회피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고, 주님의 명령으로 정면으로 거역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혹 죄를 짓고 회개함이 없이 양심이 거리끼는 것이 있다면 몰라도 세례를 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성찬에 참여하여야 하고 성찬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유아세례의 근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관련한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언약의 징표로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10-11절).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통치 아래에 있는 가솔(家率)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 제도를 주시면서 남자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자손 대대로 할례를 시행해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것을 잊지 않고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12절). 하나님께서는 신자들과 신자들의 자녀들을 당신의 언약 안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당사자와 그 자녀들과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할례와 관련하여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언약의 표인 할례를 자기 자녀에게 시행하지 않으면, 언약을 파기하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14절).
재세례파 사람들, 즉 침례파 사람들은 새 언약 시대에는 옛 언약의 사실이 변했다고 주장합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당사자와 그의 자녀들과 맺은 것이 분명하지만, 새 언약은 그 사실이 변하여 중생한 개인들과 체결된 것이지 신자들의 가정(家庭)과 체결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즉 새 언약은 언약의 당사자들과 맺은 언약이지 그들의 자녀들과 맺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8: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여기 “날이 이른다”라는 말씀은 ‘종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종말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시는 날이 바로 종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종말은 두 단계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해 오심으로 최종 종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미 시작된 종말과 최종 종말 사이가 바로 종말론적인 구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 시작된 종말과 최종 종말 사이인 종말론적 구간에 살고 있습니다. 그 종말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사람이 사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옛 언약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옛 언약이 새 언약에서 성취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본질적인 면에서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이 같습니다. 따라서 옛 언약이 자손 대대로 언약 백성의 표시로서 할례를 받았다면, 즉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 시대에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 대대로 할례를 받도록 하심으로 언약이 당사자와 그의 자손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은 새 언약 하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새 언약 시대에도 언약의 당사자와 그의 후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가정에서 출생한 어린아이들에게도 유아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린 자녀들이 새 언약에 여전히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주님께서 누가복음18:16에서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하신 말씀과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 2:39에서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라고 한 것과 또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7:14에서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새 언약에 믿음의 가정에서 출생한 어린아이들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맺은 언약이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과 맺은 언약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주님의 은혜로 회심한 성인들뿐만 아니라 믿는 부모들의 자녀들에게도, 즉 언약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성경의 정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의 자녀인 송예슬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개혁교회, 즉 장로교회의 우월한 신학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유아세례와 관련하여 거룩한 세례의 교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죄악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였습니다(엡 2:3). 그러므로 본성상 진노의 자녀이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 3:35). 그래서 우리의 죄악된 옛사람이 죽어야 하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물에 잠기거나 혹은 온몸이 담길 정도의 물이 없는 곳에서는 물을 머리에 붓는 행위입니다.
둘째, 세례는 언약의 표와 인침입니다. 표라는 것은 언약이 확실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고 인침이란 어떤 사실이 확실하다는 의미에서 도장을 찍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표시하고 확실히 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가 씻겼음을 우리에게 표하고 인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마 28:19).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사역으로, 즉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서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새 언약에 참여하게 되었고, 우리 자녀들도 새 언약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름 안으로는 이름은 그분의 됨됨이를 표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삼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붙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부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은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으셨음을 표하고 인쳐주십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으시고 모든 선한 것을 제공해주시고 모든 악을 피하게 하시거나 혹은 우리의 유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롬 8:28).
우리가 성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은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롬 6:5). 그리하여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은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로 만들어 주시고(롬 8:5), 우리가 최종적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받은 자들의 모임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엡 5:27)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 즉 죄의 씻음과 날마다 우리 삶을 새롭게 하심을 주신다는 것을 이 성례로써 우리에게 확신하게 하십니다.
셋째, 모든 언약은 약속과 책임이라는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 새로운 순종을 하도록 부름을 받고 순종할 책임이 뒤따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할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며, 그분을 신뢰하고 우리의 모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마 22:37). 또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우리의 옛 본성을 죽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요일 2:15; 엡 4:22). 우리가 때때로 연약함으로 인해 죄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죄 가운데 계속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골 3:5). 왜냐하면 세례는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었다는 인이고 온전히 신뢰할 만한 증거이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자녀들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사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을 세례에서 배제시켜서는 안 됩니다. 마치 그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아담이 받은 정죄에 참여하고 있듯이, 그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7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또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9)고 말할 때 이 사실에 대해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옛 언약 시대에는 유아들에게도 할례를 베풀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할례는 언약의 인이고 믿음의 의에 대한 인입니다(롬 4:13).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손을 얹으시어 축복하셨습니다(막 10:16). 이제 새 시대에는 세례가 할례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유아들도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로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골 2:11). 그리고 유아들이 자랐을 때 부모는 이 모든 사실을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송성호 집사님과 안순영 집사님 가정에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인 특별한 관계가 있는 송예슬이를 보내주신 것에 대해 두 분께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인 송예슬이를 보내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저를 포함한 우리 교우들 모두도 하나님께서 언약의 자녀를 보내주셨음으로 인하여 축하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오늘 세례를 받는 송예슬이를 위하여,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유아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을 위하여 항상 잊지 않고 기도하고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주의 이름으로, 즉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이 있습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시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슬하에 사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 이루어진, 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 영적인 가족에 대한 애착이 더 크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면, 여러분은 큰 믿음을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아멘.
(2023. 5. 7 주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