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4월 15일(금)■
(창세기 17장)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묵상/창 17:1-8)
◆ 엘 샤다이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전능한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라고 한다. 엘은 하나님, 샤다이는 전능자라는 의미다.
엘 샤다이께서 아브람에게 '완전'할 것을 요구하신다.
여기서 '완전'이란 말을 언어와 행위에서 실수가 전혀 없는 완벽한 인간적인 의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보다는 욥을 선택하셨어야 했다.
성경에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것은 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완전하라고 요구하신 것은 인간적인 자기 의가 아니라, 의심없이 믿는 완전한 믿음이며 거기에서 나온 순종의 행위다. 하나님께서는 뒤에 아브라함에게 할례 받을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항상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순전함과는 거리가 멀고, 불순물로 가득차 있다.
겸손 속에도 교만이 들어 있고, 구제 속에도 자랑이 들어있으며, 명분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지만 자기 야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온통 세상 근심, 건강 염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에게는 하늘을 소망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는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싸우고 다툰다. 제법 지식은 있어서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정작 믿음의 삶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계시록에서 사데 교회 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 3:1, 2)
이제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불순함이 없는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자.
엘 샤다이 앞에서 완전해지자.
◆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다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하신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나이가 100세가 되도록 아들 한 명 주시지 않은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름까지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바꾸어 주셨다. 심히 번성케 하시겠다고 하신다. 민족들이 나오며, 왕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신 시점을 다시 관찰해보면,
아브람이 75세에 하란을 떠날 것을 말씀하시고, 자손을 약속하셨다(창 12:1).
그리고 가나안에서 85세 이전에 재차 약속하셨다(창 15:1).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99세에 다시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따져보면 창세기에서는 세 번의 사건만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곳에서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도록 말씀하신 것까지 더한다면 총 네 번이나 된다.
기약 없이 기다려온 세월이 얼마인가?
이제 99세이고, 아이를 낳기에는 이미 늦었는데, 여전히 약속하시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현실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합리적인 이성인가, 엘 샤다이를 믿는 믿음인가?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촉구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라함은 엘 샤다이 앞에서 완전하기로 했다.
아브라함은 순전한 믿음으로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차고 넘치도록 완벽하게 부어주셨다.
과연 아브라함은 실제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세상에 오셨고, 자기 혈통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조차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라 칭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심지어 낙원을 '아브라함의 품'으로 묘사하시기까지 하셨다(눅 16:22).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도 여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재물과 장수와 후손에 대한 복된 약속을 받고 누렸지만, 그 모든 것 중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가장 큰 약속과 복은 이것이다.
"내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8절)
이 놀라운 복이 어찌 아브라함에게만 있겠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아멘!
아브라함의 오랜 기다림, 그리고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순전한 믿음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교훈한다.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하옵소서.
머리에서만 맴도는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나타나는 그런 순전한 믿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교리에서만 머물러있는 믿음이 아니라, 삶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믿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현실 문제에 당황하는 믿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는 믿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첫댓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아브라함에게 애를 안 주신게 아니겠지요.
하나님 섭리와 역사에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면 안 주실 수도 있습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애 안 주시기는 아브라함만 아니라 이삭 야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 생각 따라 애를 낳아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두고 약속만 하고 왜 애 안주시나?
이스마엘도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등등
논쟁하는 자체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한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약속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고백하면 만사형통 아니라 고생길 열립니다.
일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