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책은 대한민국 장례명장 유재철 님의 『대통령의 염장이』입니다
노무현, 김영삼, 법정스님, 이건희 등 대통령과 유명이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장례지도사가 들려주는 죽음과 삶의 이야기,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유재철 님 책 대통령의 염장이를 소개합니다.
이 책에는 삶과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제가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길이어서, 그 부분을 낭독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길을 함께한 2천개의 만장이 이틀 만에 완성하게 된 감동적인 이야기, 애써 마련한 대나무 만장 깃대가 갑자기 PVC로 바뀌게 된 어이없는 이유, 노란 리본을 만들게 된 계기 등 많은 분들이 아마 처음 듣게 되는 이야기 일겁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5월인데 정말이지 더운 날이었다. 이 더위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분향소를 설치한 마을회관은 냉방시설이 열악했다. 조문객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장례지도사로서 고인의 시신이 부패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이 더위 속에서 7일 장은 불가능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나는 직접 나서서 엠바밍 작업을 했다. 엠바밍은 시신 부패 방지를 위해 몸 속에 약품을 넣으면서 피를 빼내는 작업이다. 후배교수는 몸을, 나는 주로 얼굴과 머리를 정돈해드렸는데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굳게 다문 입술에서 한 시대를 모두 짊어진 듯한 깊은 고뇌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지금껏 잃었던 어떤 장례보다 조문객이 많았다. 조문 행렬이 길다 보니, 조문객 한 명에게 할당된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예를 갖추고 인사드리는 것만으로는 슬프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가 충분치 않아 보였다. '이것 말고 애도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계속 궁리하던 중 문득 옛날 상여 행렬에서 휘날리던 만장과 절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소원지가 떠올랐다. 거기서 착안한 것이 '노란 리본'이다. 리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이었던 노란색으로 준비하고 거기에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게 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저마다의 사연을 적은 노란 리본이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
사진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노제路祭를 지내기로 결정이 났다. 장례위원회에서 급하게 나에게 노제에 쓸 만장 2천 개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이틀 만에 준비하라고?'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장의 글씨를 쓸 서예가들을 섭외해야 했고 만장 깃대인 대나무도 그만큼 필요했기 때문이다. 급히 조계사에 연락하여 협조 요청을 드렸다. 때마침 총무원장이셨던 지관 스님이 만장을 쓰시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전국의 서예가들이 몰려들어 하루 반 만에 만장 1,200장의 글씨를 써주셨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정상옥 동방문화대학교 대학원 총장님께도 사정을 말씀 드리니 학교 서예과 교수, 학생들과 힘을 합쳐 남은 800장을 써주셨다. 그리고 만장 깃대로 쓸 대나무를 구하기 위해 담양군청에 전화하니 그 정도 양이면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노 전 대통령 노제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을 덧붙이자 감사하게도 인력을 총동원하고 밤새 작업하여 이튿날 저녁에 보내주었다. 과연 단 이틀 만에 준비할 수 있을까 싶었던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전까지 만장 2천 개를 겨우 완성한 뒤 서울시청으로 보내려고 할 찰나, 행안부 만장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장 깃대를 대나무 대신 PVC파이프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그건 묻지 말아달라고 했다.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기껏 어렵게 마련한 대나무를 떼어내고 밤새 PVC로 바꿔 달았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만장의 사용한 대나무가 죽창이 되어 청와대로 향하게 될 위험 때문이었다나? 장례 중에 그런 판단을 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걱정을 할 정도라면 봉화 분향소에는 들르지 않더라도 전국 수백 개 분향소 중 어디라도 새벽에 기자들 동행해서 헌화라도 했으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세계적으로 방영된 영결식에서 "살인자"라는 말을 듣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을…
지금도 나는 장례식에 관점을 고인에게 맞추려고 한다. 꽃을 바치더라도 꽃송이가 고인을 향하도록 놓고 유족보다는 고인의 종교나 신념을 존중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엉이바위 앞에 묏자리를 쓴다는 말을 들으니 영 탐탁지 않았다. 부엉이바위를 등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부엉이바위는 굳은 신념의 상징일지 모르나 고인이 죽음을 선택한 슬픈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가 이 책을 사면서 <엔딩노트>를 함께 받았는데요. 죽음을 준비하는 노트입니다. 여기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만의 빛깔과 향기로 세상을 물들이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빛깔과 향기로 세상을 물들였나요.”
세상 모든 꽃 가운데 사람 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꽃을 피우고 계신가요? 저는 또 어떤 꽃일까요? 엔딩노트는 우리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때 혹은 가족들에게 내 마음을 또 나의 기록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때를 위해서 아주 세세하게 하나씩 하나씩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마지막에 죽는 순간에 삶을 돌아보며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아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괜찮은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고 나면 많은 후회를 한다고 해요. 왜냐하면 이번 생에서 내가 더 성숙하도록, 반드시 이겨내야 할 과제들을 안고 태어나는데, 또한 그를 위해 큰 틀에서의 내 삶은 약속을 하고 내려왔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그 전생과 비슷한 삶을 반복하다가 죽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몸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합니다. 몸을 가졌기에 고통스럽고,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괴롭기는 한정이 없지만 그 고통을 통해 몸이 없는 영혼으로 있을 때보다 열배 백배 더 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여기 이 자리에 여러분과 제가 수수천년 수수만년 다시 태어나고 여러 차례 전생과 전생을 거쳐서 이 생의 태어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에요.
우리 참 바쁘게 살잖아요. 이것저것 고민거리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길을 찾지 않을 뿐이다. 또한 길을 찾으려고 하는 생각을 우리는 너무 자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제 생각입니다. 김영사 유튜브 채널에서 유재철 님의 인터뷰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책을 보시면서 그 영상도 꼭 함께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장례명장 유재철 님의 『대통령의 염장이』였습니다.
첫댓글 과정이 그려지고 그래서 가슴 찡해지네요.
그분은 떠났지만 이렇게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고인을 그리워 하니까 이런 책도 나오는 거구요. 이런게 사람의 향기지요.
아름드리느티나무님의 차분한 목소리로 들어서 그런지 더욱 와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 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