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움직이는 刺客
펑!
모충은 갑자기 방문이 열리자마자
맹렬히 양손으로 침상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서 날아올라
벽에 세워진 검을 낚아채 갔다.
실로 날렵한 동작이고 전광석화와 같은 임기웅변이었다.
차앙!
모충의 손이 검집을 잡는 동시에 검이 빠져나왔다.
하지만 바로 같은 순간 한 줄기 서릿발같은 검광이
번쩍 등잔불빛에 빛이 났다.
{크흑!}
직후 참혹한 비명을 토하며 퉁기듯이 물러서는 모충의 오른손은
팔뚝부터 깨끗하게 베어져 나갔다.
그의 팔을 베어버린 보검(寶劍)은
이미 다시 청삼청년의 검집 속에 들어가 있었다.
가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쾌검(快劍)이었다.
모충 역시 손 속의 빠름과 신랄함으로
그 세계에서 이름을 얻은인물이었지만
이 청삼청년의 놀라운 신수(迅手)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랑!}
진여상은 모충과 정사를 벌이던 반나의 모습임도 잊고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침상에서 뛰어내려와 모충을 껴안았다.
하지만 팔이 잘린 고통보다도 앞으로 닥칠 무서움에
모충의 뇌리는 새하얗게 비워져 가고 있었다.
이들에게 붙잡히기만하면
모충은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르는 것은 살인의 수단으로 선택될 방법 뿐이다.
잘려진 팔뚝의 상처에서 분수같이 솟구치는 피는
삽시에 방바닥을 가득 적셨다.
진여상은 너무나 놀라 손발이 굳어진 채 눈이 휘둥그래져서
마치 얼어붙은 양 망연히 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은 무슨 말을할 듯이 벌어져 있었지만
정작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네명의 이방인은 진여상의 탐스런 알몸을 바라보고도
눈빛에는한 점의 변화도 없었다.
청삼청년은 무심하게 두 명의 장한에게 눈짓을 했다.
세 명의 흉한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잘알고 있었다.
그들중가장 왼쪽에 서 있던 장한이
주머니에서 가죽을 꼬아 만든 끈을꺼냈다.
그가 포승을 들고 진여상에게 다가서자,
그녀는 본능적인 반응으로 주춤 물러섰다.
한 순간 모충의 눈빛에 분노의 빛이 스쳐갔다.
하지만 한 옆에서서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있는 장한을 일별한 순간
그의 동공에는 절망감이 서렸다.
모충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무슨 짓을 한다고 치더라도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눈에는 눈물이 괴어
흡사 막이라도 덮인 듯이 보였다.
모충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그가 만약 조금이라도 저항을 한다면,
그 뒤에 따른 참혹한현실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여상이 느끼는 공포는 전신이 마비되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일이 없었다.
손발이 묶여진채 한 구석에 내던져진 진여상은
자신이 흡사 육지에 내동댕이쳐진 물고기인 듯 여겨졌다.
공포와 흥분으로 폐는빠른 숨을 간단없이 몰아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진여상은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정랑과
몸을 불태우던 침상에 편안한 자세로 앉은
청삼청년을 향해 애원하는 눈길로바라보았다.
청삼청년은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혈도가 점혈되어 무릎을꿇고 있는 모충을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모충, 아니 본명은 모전일(毛田一)이지.
난 지금까지 자네한테알맞은 대접을 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네.
그렇지 않은가?}
청삼청년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모충의 대답을 기다리려는 듯이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모충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청삼청년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네.
즉 자네를 싫어하지 않았단 말일쎄.
비록 거래하는 입장으로 우리는 만났지만
나는 자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지.}
이어 청삼청년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스쳤다.
{헌데 자네는 서로 거래하는 단계에서 지켜야 할 일을 어겼고
나의 기대 또한 무산시켰단 말이야.
굳어진 모충의 몸으로 가는 파문이 스쳤다.
직감으로 자신에게내려질 판결이 결정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심판(審判)하기 위해서가 아닐세.
약속을 어긴다면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을 테니까.}
청삼청년은 서서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모충! 자네로 인해 우리 일이 몹시도 힘들게 생겼네.]
침대를 떠난 그는 일정한 걸음걸이로
꿇어앉은 모충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게다가 이번 일로 나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네.
자네야 지금 이대로 사라지면 모든 것이 끝이 나겠지만
앞으로 몇십년을더 살아가야하는
나의 고통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나?}
청삼청년은 서두르지 않았다.
다만 마음 속의 흥분을 억누르지못해 모충의 정면에 섰다.
{이제 어느 정도 자네로 인해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알았으리라 믿네.
어떤가?
나를 위해 몇 마디 듣기 좋은 이야기를해보지 않겠나?}
모충의 표정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마침내 그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무... 무엇을 알고 싶소?}
바싹 마른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임종을 앞둔 노인의 그것같이 쉬어 있었다.
{별 것 아니네. 자네가 항주성 무림맹 지부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는 사소한 말을 듣고 싶을 뿐이네.}
청삼청년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모충은 눈물 고인 얼굴로
그에게 애원하듯이 말 했다.
{원하는 건 무었이든간에 다 이야기 할 테니
상매는 살려 주시오.}
순간 청삼청년의 검미가 슬쩍 모아졌다.
{모충, 결과를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다니...
자네는 나에게 끝까지 실망만 줄 셈인가?}
그는 말을 하면서 오른발을 모충의 무릎 위에 올렸다.
{으아악_ 크아악!}
모충의 입에서 폐부를 쥐어짜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우지직...
청삼청년의 발이 느릿하게 내려갔다.
그에 따라 모충의 무릎뼈가그대로 으스러져 내려앉고 있었다
. 살이 터진 사이로 허연 뼈조각이 튕겨져나오고
끊어진 혈관에서 뿜어진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아악...!}
생살이 터지고 뼈와 골수가 으스러지는 그 끔찍한 고통에
오랜수련을 걸친 모충의 입에서도
짐승같은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처절한 부르짖음을 들으며
진여상은 눈앞에서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무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 참혹한 공포 앞에
그녀가 할 수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여상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호흡이거칠어지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점점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숨쉬기도 곤란함을 느꼈다.
이윽고 청삼청년의 발이 모충의 무릎에서 떨어졌다.
그때서야 모충의 비명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모충의 눈빛은맥없이 초점이 풀려 있었다.
{진소저...!}
청삼청년은 공포로 떨고 있는 진여상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말했다.
상대방이 절망적으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예의를지켰다.
{당신 같은 절세미인이 이런 추잡한 사건에 관계되어
정말 유감이오.}
그는 실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표정마저 애처로운 기색을 띄웠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때로는 죄없는 사람이 날벼락을 맞는 수도 더러 있고,
옛말에도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있지 않소.}
모충의 신형이 절망적인 공포로 부르르 떨렸다.
청삼청년이 느릿하게 품 속에서
조그만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소도(小刀)를 꺼내는것을 본 것이다.
청삼청년은 소도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가만히 손톱을 손질했다.
소도는 비록 여인의 장난감처럼 앙증맞아 보였지만
칼날에 서릿발같은 예기(銳氣)는
필시 신물이기(神物異器)임이 분명했다.
세 명의 흉한은 잠자코 그를 보고 있었다.
모충은 다음에 올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문득, 모충의 신형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그의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청삼청년은 그런 모충을 스산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접한 모충은 자신도 모르게 팔다리에 끌어올렸던
그나마의 힘마저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쓸데없는 짓이야.)
청삼청년의 무감정한 차가운 눈빛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모충은 무익한 저항이 고통만을 더할 것임을 깨닫고
완전히 의지를 잃고 말았다.
고개를 떨구는 모충을 흘깃 돌아본 청삼청년은
다시 진여상에게시선을 몰렸다.
{진소저 당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지만
이 불쾌한 사건에 가담시키지 않을 수 없소.}
{안돼! 그녀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소. 제발 상매만은 살려주시오.}
절망감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모충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애원했다.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었다.
{흠... 말할 기력이 남아있다면 어디 마음 속의 말을 해 보실까?}
청삼청년이 비정한 눈빛으로 모충을 노려보며 말했다.
결국 모충은 체념한 표정으로
저녁 무렵 조중과 만났던 이야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실토할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모충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삼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솔직이 말을 했으니 고통만은 주지 않겠다.
잘 가게 모충.}
친한 친구에게 인사하듯이 말을 한 청삼청년은
슬쩍 손을 흔들었다.
쉿!
그의 수중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한줄기 섬광이 흘러나왔다.
{컥!}
직후 짧은 단말마의 비명이 모충의 입에서 터짐과 동시에
옆으로 쓰러졌다.
그의 미심(眉心)에 박힌 소도는 손잡이만 남기고
날이 거의 다머리 속에 파고 들어가 있었다.
모충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이 툭 불거져 나오고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켰다.
예리한 소도의 칼날이 뇌속으로 파고들며
생명을 끊어놓는 사이의 불과 잠시 동안이
그에게 있어서는 무서운 고통의 영원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을 섞으며 열락에 몸부림치던 정인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 진여상은
이제 공포로 인해 몸을 움직일수마저 없었다.
그녀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방안의 사람들과 모충의 참혹한표정이
무시무시하게 춤을 추며 그녀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완전히 얼이 빠져
사타구니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훤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무르익은 석류 같은 그녀의 은밀한 곳에는
아직도 모충과의 격렬했던 정사의 흔적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그런 진여상의 난잡한 자태를 바라보는 세 흉한의 눈빛은
피를본 맹수처럼 붉은 핏발이 서렸다.
청삼청년은 모충의 이마에서 자신의 소도를 회수한 후 몸을 돌렸다.
{기왕지사 이 땅을 떠날 생명,
시간이 잠시 지체된다고 해서 안 될 것은 없겠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상관인 청삼청년의 모습이 완전히 방 안에서 사라지자,
세 명 흉한들의 표정에 잔인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자들은 진여상에게 다가서며 허리춤을 풀기 시작했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자세로 주저앉은 진여상은
망연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려는 일이
그녀에게는 그저 남의 일을 보는 듯 몽롱하게만 느껴졌다.
사내들의 흉칙한 실체가 눈앞에 들어나는 것도,
자신의 몸이 개나 소처럼 끌려가 침상 위에 눕혀지는 것도
그녀에게는 꿈결인 듯만 싶었다.
침상에는 아직도 그녀와 모충이 뜨겁게 뒤엉켰던 체온이 남아있었다.
한순간 진여상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뜨거운 이물질이 하복부로뻐근히 파고들며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이 혼미하던 그녀의 정신을일깨웠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 정인을 머금고 있던 그곳에
다른 사내의 실체가 무자비하게 삽입된 것이다.
(안 돼...!)
절망의 신음을 토하려고 했지만
입만 벌어질 뿐 소리가 되어나오질 않았다.
내장까지 휘젓는 듯한 사내의 거대한 육괴,
그리고 바로 눈 위에서 이글거리는 욕정에 가득한 사내의 얼굴,
그녀는 자신의 미끈한 두 다리가 쳐들려
모양 좋은 자신의 젖무덤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사내는 그녀의 두 다리를 쳐들어 겨드랑에 낀 자세로
세차게 하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자연히 둔부는 둥글게 들려지고
진여상은자신의 무참한 하체로
사내의 검붉은 흉물이 나타났다가
세차게 삽입되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당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반항할 엄두도 못내고
그저 어서 이 악몽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극에 달한 공포로 인해 그녀의 뇌리는 점차 하얗게 탈색되어갔다.
땀에 젖은 얼굴이 연신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하며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헌데 그녀의 정신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지만
이율배반적으로 그녀의 육체는 급격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정인과의 행위로 달아올랐다가 방해를 받아 사그라졌던 본능의불길이
무참하게도 겁탈의 행위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으!]
악다문 입술 사이로 비명같은 신음이 흘러나오고
하체가 절로요동을 쳐대었다.
그녀의 그같은 반응에 땀에 젖은 사내의 얼굴에도
언 듯 놀라움의 빛이 스쳤다.
기대하지 않았던 진여상의 반응에 흥분한 사내는
한층 더 격렬하게 그녀를 압박해대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인은 몸 안 깊은 곳에 격렬한 남자를 느끼며 마침내 단말마의 신음성을 터트렸다.
사내의 긴 한숨이 얼굴 위로 뿜어지며 이윽고 하체가 허전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아니 시작에 불과했다.
다시 내려다 보는 얼굴이 바뀌고
또 다른 강렬한 힘이
깊숙이 자신의 중심부로 파고 들어옴을 느끼며
여인은 자지러지는 신음성을 내뱉았다.
한스런 여체여!
정인이 핏물 속에 시체로 누워있는 지척에서
진여상은 몇번이고열락의 절정을 느껴야만 했다.
육체의 본능에 몸부림치면서도
그녀 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몸둥이가
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이윽고 세 번째 흉한도 욕심을 채우고 일어섰다.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그자가 바지를 입는 것을 보며
축 늘어진 진여상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정말 굉장한 몸이군. 한 번으로 끝내긴 아쉬울 정도야!]
[하지만 이미 결정된 운명은 돌이킬 수 없지.]
두손이 뒤로 묶인 채 상아빛의 하체를 벌리고
망연히 누워있는진여상을 내려다보며
세 장한은 아쉬운 표정이었다.
고자가 아닌한누군들 진여상의 육체에 매료되지 않으랴?
서로 눈길을 주고 받은 세 장한중
첫 번째로 진여상을 범했던자가 침상으로 다가왔다.
그자의 눈빛에 떠오르는 냉혹한 광채를 발견한
진여상의 봉목이하얗게 치떠졌다.
그런 그녀의 가냘픈 목을 흉한의 두툼한 손길이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점점 커지는 여인의 눈망울, 경련을 일으키는 동체...
투툭!
한 순간 여인은 놀라운 힘으로 뒤로 묶인 포승을 끊어버렸다.
절망에 빠진 인간은 종종 믿기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운 팔목이 다 까진 진여상의 섬섬옥수는
죽음 앞에 마지막 발버둥인 양 사내의 무쇠 같은 팔을 잡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되지 못했다.
사내의 강철같은 손아귀에 힘이 가해짐에 따라
진여상의 까만동공에 흰자위가 덮여가고,
경련을 일으키던 동체의 움직임도 서서히 멈추었다.
이로써 두 개의 생명은 영원히 이 땅을 떠난 것이다.
뒷처리를 마친 세 명의 흉한들은 무표정한 신색으로
방 안을 둘러본 후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비릿한 피의 향기,
밤은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삼월(三月)도 막바지에 이른 항주는 포근한 봄 날씨로
하늘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무림맹 감찰전의 부전주인 귀견수(鬼見手) 조중은
자신의 수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모충이라는 젊은이가 죽었단 말인가?}
여전히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진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의 어리석음으로 그만....}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두 명의 인물은
바로 소방원(小房院)이란 홍루에서 모충을 놓친 그 흑의 장한들이었다.
그들은 무림맹 감찰전 소 속의 고수들로
부전주인 조중의 지시로 모충의 뒤를 미행했던 것인데
그만 일시의 실수로 모충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었다.
둘 중 귀 밑에 사마귀가 난 장한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허나 다행히도 우리의 눈에 빨리 발견되어
시신만은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조중의 눈빛이 밝아졌다.
{찾은 것이 있나?}
옆에 서 있던 삐쩍 마른 장한이 안도의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것은 조사할 수는 없었지만
여인의 내력은 밝혀 냈습니다.}
{좋아, 잘됐어.}
조중은 약간 흥분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래 시신은 어디다 두었나? 내가 직접 살펴보겠네.}
두 명의 장한은 급히 앞장을 섰다.
지하석실,
사방 오 장 가량의 썰렁한 석실에는
하나의 등잔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그 석실 중앙에 놓인 나무침대 위에는 두 구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둘 중 사내의 시신은 한 팔이 잘려있는데
죽기 전에 고문을 당한 듯이 다리가 으스러진 처참한 몰골이었다.
반면 여인의 시신에는 별달리 상처가 보이지는 않았다.
목을 졸린 것이 직접적인 사인(死因)으로
그녀의 육감적인 몸에는 누가 봐도 확연한 겁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노련한 귀견수 조중은 최소한 둘 이상의 사내가
그녀를 유린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상태가 서로 다른 이 두구의 시신에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죽기 직전에 극도의 공포를 느낀 듯 툭 불거져 튀어나온 동공에
초점이 없다는 점이었다.
귀 밑에 사마귀가 난 장한이 조심스럽게 조중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모충의 내력은 밝혀 내지는 못했지만
여자의 내력은 월화루의기녀로 밝혀졌습니다.}
성명:월몽(月夢), 본명은 진여상(秦汝霜)으로 밝혀짐.
나이:십 구 세.
내력:절강성 진씨세가(秦氏世家)의 무남독녀로,
이 년 전 그녀의 부친 진호중(秦護中)이 관부에 재직시
역모에 연루되어 일가족이 참살되었음.
하지만 그녀만은 극적으로 월화루의 주인 월화에 의해 구출되어
일 년 전부터 기녀로 일해옴.
장한의 설명이 끝나자
조중의 눈빛에 일순간 칼날 같은 광채가 스쳤다.
(월화루의 기녀라...)
조중의 뇌리에 번갯불 치듯 하나의 사건이 뚜렷히 떠올랐다.
{지금 월화루에는 누가 가있나?}
{지부장께서 직접 월화루로 가서 동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조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시신들의 상태는 내가 살펴 볼 것이니
자네들은 월화루로 가서 단서를 찾아보게.}
두 명의 장한은 허리를 숙인 후 재빨리 지하석실을 빠져나갔다.
모충의 미심에 난 상처를 살피는 조중의 눈빛은
몇 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실로 고절한 수법이다.
피의 응고 상태로 보아 살인자의 무예는 상상 이상이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일은 자명한 사실
한 시라도 빨리 이 사건에 뿌리를 찾아내야 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조중의 눈빛은 횃불같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의 눈빛이 이러할까?
사실 몇 년 동안 하는 일없이 태평스럽게 보낸 조중은
평온한 하루하루에 맥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평생을 피가 난무하는 격전과
치밀한 두뇌로 강호를 마음껏 질타하던 그에게는
평화라는 것은 서서히 목숨을 끊어가는 독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무림맹 감찰전 부전주라는 요직에 있는 그가
총단을 떠나 이곳절강성의 지부에 관사라는 신분으로
위장하고 나와있는 것도 현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그의 타고난
체질 때문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조중의 내면에서는
무인의 뜨거운 피가 전신 혈관을 타고 맹렬히 치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한 조중은
잠시 동안 꼼짝하지 않은 채로
그 동안 그의 부하들이 작성한 문서를 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두 번 읽고는, 등을 의자에 편안히 기대고
한동안 눈 을 감은 채 머리를 정리했다.
일다경(一茶更)이 흘렀을 때 조중은 자신의 심복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들어와서 자리에 앉은 세 명의 사내는
귀견수 조중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수족과도 같은 인물들이었다.,
약간 지친 듯한 표정을 지닌 이 세 사내들은
오랫동안 해온 일이어서
이번에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싶었다.
오른쪽 첫째 편에 앉은 장한은 장차수(張차手)라는 인물이다.
현재 나이 삼십 이 세로 날카로운 눈매에 강퍅한 얼굴을 지녔다.
오 년 전 무림맹 형당(刑堂)에서 감찰전으로 넘어왔는데
조중은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다.
장차수 옆에는 장차수와 비슷한 나이의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장한이 앉아있었다.
그의 이름은 사공표(司空表)로 동료를 사이에서
흔히 흑심수라(黑心手羅)라고 불린다.
평범한 용모의 그가 흑심수라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린데는
다음과 같은 비사가 있었다.
십 년 전, 산동성(山東省)에서 하나의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
강호에서 살인이야 다반사였으나
문제는 그것이 무림맹에서 파견한
산동 지부장(支部長)의 피살사건이라는데에 있었다.
지부장을 잃은 무림맹에서 이 사건이 대외적인 명분의 문제인지라
거의 반 년 간 필사적으로 사건을 조사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사건은 끝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헌데 사건 일 년 만에 산동성지부의 소속이던 무명의 무사
사공표는 단신으로 범인을 추적, 결국 체포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사공표는 단숨에 승진을 하여
지금은 감찰전의 제이인자인 조중의 충실한 수하가 되었다.
맨 마지막의 장한은 자운유(紫雲儒)라는 인물로서,
이들 삼인 가운데 가장 젊고
문사풍의 치밀한 성격을 지닌 수려한 미목의 청년이었다.
그는 소림사(少林寺)의 속가제자로
소림사의 장로인 영허선사(靈虛禪師)의 제자였다.
감찰전 내에서도 최고의 인재들로 꼽히는 그들은
나이에 비해직급도 높아서
외당(外堂)의 당주(堂主)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조중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이들 세 심복의 지식과 판단력,
그리고 충성심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자네들의 보고서는 비교적 잘 되어있었네.}
조중은 말했다.
{그 동안 암살이다, 자객이다 하는 정보로 몇 번 허탕을 쳤지만
다행히도 실제 큰 시련에 직면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싫든 좋든 그런 일은 닥쳐온다.}
조중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우리 앞에 실제로 그 일이 닥친 것이다.
그것도 우리로서도 상대하기가 벅찬 강적(强敵)이라는 것이다.}
탁자를 둘러싼 삼인은 잠자코 있었다.
조중은 이미 그들이 말해야 될 사실을 눈앞의 문서로서 읽어본 상태였다.
{현재로서는 이쪽은 모든 상황이 의문시 될 뿐이고 해답은 하나도 없다.}
조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조사하던 순찰사자(巡察使者)의 죽음과 이일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과 암살의 표적이 누구일까 하는 점이네.}
조중은 한숨을 돌리고 나서 혼잣말처럼 조용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문제는 누군가가 암살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점이다.}
조중은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는 듯했다.
{자객은 움직이고 있다.
현시점에서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까?
동기를 하나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쉽게 풀어 갈 수 있겠는데....}
그러자 조중의 세 부하중 장차수가 입을 열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이
헛기침을 터뜨리며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번 일에 관련된 사람이 죽은 이상
무리를 해서라도 월화루의 주인을 족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가 제안을 했다.
{차수의 말에 동감입니다.}
사공표가 말을 받았다.
{그 동안 조사한 결과로는 자객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표적이 누구인지 언제 실행을 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모르는 이상,
유일한 단서인 월화루에 주목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월화를 족치는 일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운유가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조사한 그녀의 내력은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조중의 시선이 의아스런 빛으로 자운유를 향했다.
{문제라면...?}
자운유는 침착한 표정으로 낭랑히 열변을 토했다.
{첫째, 그녀는 항주 태수 등을 위시하여
관부의 몇몇 거물인사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운유의 말에 조중 등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림인들에게도 관부(官府)의 인간들은 실로 골치덩이들이다.
월화의 심문이 관부의 멍청이들을 자극하면
무림맹을 위해서 하나도좋을 것이 없는 것이다.
{둘째,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경호무사들의 무예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월화라는 여인 역시
녹녹치 않은 무예를 갖추고 있는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조중등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무공으로 해결해야하는 일이라면 어차피 고민거리도 아닌 때문이다.
{셋째, 지금으로써 아직 아무런 단서도 확보하지 못한 이상
빈대한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운유의 조리정연한 설명이 끝나자 조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자네의 의견은 뭔가?}
조중의 물음에 자운유는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모충의 죽음으로 일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월화가 그녀의 사업을 내버려두고 잠적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운유, 너의 말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인가?}
조중의 물음에 자운유는 확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쪽에서 월화루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는 이상
조만간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조중도 동감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일은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차수는 운유를 도우고
사공표 자네는 비마영(飛魔影)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게.}
조중은 말을 마치고 일어섰다.
{벌써 늦었군. 오늘밤은 이 정도로 해두지.}
세 사람이 일어서 밖으로 나가자 조중은 문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상관인 감찰전의 전주(殿主)를 만나 설명할문구를
열심히 짜맞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