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성(性)
손님과 초원의 성풍습.
몽골 유목족은 초원에 남자 손님이 찾아오면 아내와 하룻밤 동침시킨다. 이를 두고 유목민의 성풍습은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한다.
드넓은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족은 가까운 혈족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근친혼으로 우수한 혈통을 얻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먼 곳에서 온 외간 남자와의 동침은 아내로 하여금 우수혈통의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래서 유목족은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아내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는 것이다.
이는 족외혼을 통한 우수한 DNA(유전자)를 얻으려는 유목족의 지혜가 숨어 있는 것이다. 손님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유목족의 성풍습. 이를 일부에서는 과객혼 이라고도 한다.
이는 서양 중세시대 장원의 영주가 결혼한 농민의 신부와 첫날밤을 치룰 수 있는 초야권과도 닮아 있다. 유목족이 동쪽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도 이동해 그 성풍습의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목족이 외간남자와 아내를 동침케 하는 데도 법도가 있다.
먼저 손님을 맞은 씨족장이 회의를 연 뒤,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묻는다는 것이다. 남자의 지적 수준이 최우선으로 꼽히고 외모를 보고 결정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씨를 받기로 합의가 되면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한 뒤 손님은 선택된 여인과 동침하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 몽골에서 유학한 사람이 이러한 성풍습 이야기를 듣고 초원의 외딴 게르(천막집)를 방문했지만 현재는 여자를 선뜻 내놓는 유목족은 없었다는 것이다.
마복자와 신라인의 성풍습.
유목족과 신라인의 성풍습은 매우 닮아있어 흥미롭다. 신라인의 성의식을 보여주는 예로 마복자(摩腹子)를 들 수 있다. 화랑세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한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던 마복자.
이 성풍습은 임신한 여성이 남편보다 높은 지위의 남성과 다시 성 관계를 가진 후 낳은 아들을 뜻한다. 이 행위는 남편의 허락 아래 이뤄진다. 이때 보다 높은 지위의 남성은 마복자의 후원자가 된다.
신라시대 지배층 사이에서는 높은 지위의 인물이 부하의 임신한 아내와 성관계를 하는 것이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었다.
마복자 자신도 특혜를 받았다. 화랑세기 양도공조에는 ‘화랑의 우두머리는 상선과 상랑의 마복자가 아니면 될 수 없었다’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는 화랑의 우두머리는 상선과 상랑의 마복자만이 차지할 수 있게 했음을 말해준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은, “신라인의 시각에서 마복자는 화랑도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상하의 결속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마복자의 성풍습은 북방 유목족인 흉노족의 풍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종욱 서강대 교수가 쓴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이야기’에서 삼국유사에는 7세기 문무왕 때 지방관리가 경주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아내를 동침하도록 바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서병국 전 관동대 교수는, “동이족 자료에는 ‘손님이 오면 아내에게 시중을 들게 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며, “손님에 대한 아내의 시중이 성관계까지 허락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성풍습은 중국 북방지역과 산동성을 중심으로 중국 동쪽 해안선을 따라 동이족 분포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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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는 곳을 들어본 적이 있다. 우선 기억나는 게 에스키모들이다. 인도의 토다족, 시베리아의 척치족, 중국의 사천성 그리고 고대 게르만민족도 해당된다고 한다.
물론 증명된 것은 없고, 기록에 남아 있는 객관적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도 여기에 해당된다. (조금 아래 상세히 추가).
660~670년대쯤 김춘추의 서자인 차득공이 거사차림으로 밀행하던 과정에서 오늘날 광주 지방에 살던 안길이라는 향리 집에 묵게되었고, 거기서 숙식뿐 아니라 주인의 아내로부터 하룻밤의 서비스까지 제공받았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기이 제2권 문무왕 법민).
물론 기록 한개를 가지고 그 사회의 만연한 풍습으로까지 확대해석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몽골도 그런 풍습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고위직 공무원들과 한 번은 술좌석을 한적이 있었는데 동석한 사람 중 하나가 그들에게 이런 내용을 물어보았다. 몽골에는 예로부터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아내를 내어주는 풍습이 있고 시골에 가면 여전히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하고 말이다.
그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영 외계인 쳐다보더라는… 그 사람의 설명은 간단하였다. 처음 듣는 말이라는 것이다. 자기도 에스키모들이 그런 풍습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자기나라도 그러하냐는 질문도 처음 받거니와 그런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가서 경험해볼테니 몽골에 그런 곳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는 간절한 부탁도 했다.
좀 이상하다. 몽골사람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한국인들이 그렇게들 알게된건지 말이다. 이런 풍습을 소위 과객혼이라 하던데 다음은 여기저기의 블로거들이 소개하는 몽골의 과객혼 풍습이다.
“몽골고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여행객이나 손님이 자신의 집에 찾아왔을 때 손님을 환대하는 뜻으로 자신의 모든 물건을 여행객이나 손님이 마음대로 사용하게 하고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아내뿐만 아니라 딸등 집안의 여자들로 하여금 여행객이나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이르고 집을 비워버렸다고 한다.
몽골고원에서 아내나 딸을 빌려주는 현상 역시 이십세기 초엽까지 계속되었다고 이 당시 몽골고원을 여행하였던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다.”
“몽골에서 돌아와 만나는 사람들마다 「몽골 사람들은 아내도 빌려 준다는데 진짜냐」는 호기심 반 농담 반의 질문을 해댔다. 내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였다. 몽골인들은 그러나 고비지방 혹은 북서부 산악지대 등 일부에서 전해질 것이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 필자가 3년 가까이 몽골에서 현지인들과 살면서 함께 여러 차례 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한번도 이런 경험을 할수 없었다면 유감일까?”
“에스키모나 몽골족 뿐만 아니라 오지에 사는 많은 종족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죠.” “손님을 맞은 씨족장은 회의를 개최,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물어 결정했음. 씨를 받기로 합의가 되면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 선택된 여인과 동침하게 했었다.”
관련자의 증언이 있다고도 하고, 직접 살다온 사람이라며 그렇다고도 한다. 결혼문화연구소란 곳은 아예 마을회의를 열어서 씨받이를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몽골인 부인과 외국인 남성간의 하룻밤 잠자리는 경험적으로 열성인자 발현 빈도가 많은 경우의 수를 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면서 이는 종족을 지켜내려는 눈물겨운 생존방법이었다는 해석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블로거나 연구소의 글 어디에도 그것을 뒷바침 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완벽히 ‘카더라 통신’이라는 것인데, 구글링해보니 수 많은 주장들은 위 글들이 무한반복 재사용된 것들 이었다.
어느 누구도 과객혼풍습에 대한 학문적 근거를 대지 않고 굉장히 사실적 설명만 하고 있었다. 반대의 주장도 있다.
“씨족사회를 근간으로 성립된 몽골사회는 혈통의 순수성을 간직하기 위해 여자의 정절을 매우 중시한다. ‘대화에는 지혜가 필요하며 몸에는 정절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도덕관념은 17세기 사회적인 변천으로 인하여 예전보다 홀대된 감이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중시되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개인적인 판단으로 몽골의 과객혼 주장은 (말그대로)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아닌가 한다.
몽골사람들은 그럴일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 과객혼풍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근거를 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거가 있는 우리나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펄쩍 뛸 일인데 몽골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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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