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간략한 역사
시칠리아가 처음 식민지가 된 것은 페니키아 사람들의 정복
사업에 의해서이다, 그 섬의 자연 경관과 전략적 위치가 용
맹한 항해자들을 잡아 끌었던 것이다, 스타빌레(F, M,Stabie)
가 기술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시칠리아는 매력적인 상륙 지점이 되었다, 서쪽에서는 카르
타로 인이 이미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던 파노르모 (팔레르모)
까지 점령하였고, 동쪽으로는 도시의 대건설자였던 그리스
인이 카타니아에서 시라쿠사까지 그리고 찬클레 (메시나 에서
제라와 메가라에 이르가까지 점령하였다,
이 모든 정복 사업이 기원전 약 8세기 말엽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시칠리아는 옛날 식민지 국가의 발상지였던 그리스와
카르타고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되는, 여러 국가들 중의 꽃이
되었다.
시칠리아는 이렇게 외세와 투쟁하다가 결국 로마에 편입되었다."
로마 인의 정복의 손길
고대 세계의 정복자 로마는 시라쿠사 사람들과 미메르트 사람
들이 한때 서로 적대시하던 시기를 틈타 시칠리아를 합병하기
위하여 공격을 가했다.
애가디의 해상 전투 (기원전 241년) 가 벌어진 후 태양의 섬은
그 대부분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시칠리아는 로마 주
(州)를 방어하는 성체가 되었다,
성녀 루치아의 도시 시라쿠사만 로마가 카르타고와 두 번째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잃어건 독립을 잠시 유지하였을 뿐, 로마가
다시 카르타고와의 제휴를 모색할 무렵 시라쿠사는 파괴되고
말았다.(지원전 212년) , 기원전 210년에 시칠리아르 완전히 정
복한 로마 인들은 시라쿠사의 주님들을 강제로 추방시켰다,
실로 시칠리아는 기원전 509년에 선포된 공화정 시절붙터 로마
의 첫째가는 속주 역활을 하게 되었으며, 로마의 풍요로운 터전
이자 세력 확장의 기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가 지배하던 수세기 동안에 시칠리아는 자주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시칠리아를 다스리던 폼이우스 6세가 옥티비아
누스 아우구스투스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이다.
이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로마를 슬
기롭게 다스리면서 로마 제국 의 기초를 닦아 놓았던, 젊고 박력
이 넘쳤더 인물이다.,
기원후 304년,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포악한 박해자였던 젊은
황제 디오클레티이우스가 다스리던 시라쿠사에서는 성녀
루치아기 순교했는데, 그녀는 귀족 가문 젊은 처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