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金昌烈, 1929년∼), 물방울 S.H.87005, 마포에 유채, 181.8×227.3cm (150호), 1986
생체시계 관장하는 멜라토닌, 뉴런 만나면 스르르 꿈나라로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잠의 역사=생명의 역사
밤낮 있는 지구의 모든 동물 잠자
에너지 보존과 위험 방지 위해 잠이 우연히 등장했을 가능성
기억통합과 쓰레기정보 청소도 / 자는 패턴과 시간은 각기 달라
작은 동물은 에너지 효율 낮아 짧게 자고 자주 깨어 있어야 해
참갯지렁이 유생. 밤에는 수면에서 먹이를 취하고 낮에는 바닥에서 지낸다. 참갯지렁이 유생의 생체시계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멜라토닌으로 조절된다.
잠은 왜 진화했을까? 언뜻 보면 멍청한 질문 같지만 사실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뇌과학자들은 잠이 뇌에 좋기 때문에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잠을 자는 동안 망가진 뇌세포를 수리하고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며,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지우고 중요한 정보는 단기 기억장소에서 장기 기억장소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설명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험증거는 없다.
잠이 진화했다고 하면 생존에 뭔가 분명한 이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먹을 수 없다. 짝짓기할 수도 없고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된다.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이것보다 더 큰 이득이 잠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동물마다 잠자는 시간이 다 다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새나 작은 포유류는 하루에 불과 몇 시간밖에 자지 않지만 큰갈색박쥐(Eptesicus fuscus)는 스무 시간이나 자며, 범고래나 돌고래 새끼들은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지만 곰 같은 동물은 몇 달 동안이나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이렇게 잠의 형태가 다양한 현상을 진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보다 오래 자
큰갈색박쥐는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잔다.
모든 동물은 잠을 잔다. 그런데 잠을 자는 패턴과 잠자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보다 오래 잔다. 고기를 먹는 포유동물은 조금만 먹어도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반면 풀로 배를 채워야 하는 포유동물은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겨우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자는 사냥감을 잡아 한 시간 정도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는 2~3일 정도 지속적으로 잠을 잔다. 하지만 말은 하루에 네 시간도 자지 않는다. 사람 같은 잡식성 동물의 수면 시간은 그 중간쯤 된다.
작은 동물은 큰 동물보다 잠을 많이 잔다. 그런데 코끼리는 한 번에 두 시간씩 자지만 쥐는 한 번에 6분밖에 자지 못한다. 여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작은 동물은 자주 깨어서 포식자의 공격을 경계해야 하므로 여러 번에 나눠서 짧은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정말로 잠을 자면 더 위험할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동물들은 잠을 자는 동안 포식자의 공격에 더 노출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집에서 잠을 잘 때 다칠까, 아니면 나가서 놀 때 다칠까? 아이들은 깨어 있을 때 다친다. 자동차도 주차장에 서 있을 때가 아니라 도로에서 주행할 때 사고가 더 많이 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 깨어서 활동할 때 더 자주 포식자에 노출된다. 큰갈색박쥐는 저녁에 네 시간만 깨어서 곤충을 잡아먹으면 영양공급에 문제가 없다. 괜히 낮에 돌아다니면 새에게 잡아먹힐 위험만 더 커진다.
결국 이 가설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잡아먹힐 위험성과 잠의 짧은 주기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이유는 따로 있다. 작은 포유류는 에너지를 더 빨리 태우기 때문이다. 작은 동물들은 에너지 효율이 낮아서 자주 먹어야 하므로 짧게 자고 자주 깨어야 하는 것이다.
깨어 있으면 짝짓기도 할 수 있고 먹이를 찾으러 다닐 수도 있지만 이때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한다. 잠은 동물을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함으로써 생존가능성을 높이고 잠을 자는 동안에 충분히 쉰 뇌가 깨어 있는 동안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진화과학자들은 잠이 선택적 진화 또는 굴절적응(exaptation)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즉 진화 과정에서 다른 이유로 혹은 우연히 등장했다가 현재의 목적으로 전용되었다는 것이다. 잠은 아마도 에너지를 보존하고 괜히 돌아다니면서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수백만~수억 년을 지나면서 이 수면 주기에 다른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적인 활동이 없는 시간에 기억을 통합하고 쓰레기 정보를 청소하는 식으로 말이다.
잠은 포유류 출현 이전에 등장
그렇다면 잠은 언제 진화했을까? 어떤 동물들이 잠을 자는지 알면 잠이 진화한 시점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잠은 포유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생기는 낮과 밤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삶을 지배한다.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생물들에게 24시간으로 구성된 생물학적 주기(circadian rhythm)가 있다. 즉 생체시계가 있어서 쉬는 시간과 활동하는 시간이 나뉘는 것이다.
해가 저물면 우리 눈에서 시작된 일련의 분자 반응이 뇌의 솔방울샘(松科腺)에 전달되어 멜라토닌(melatonin)을 분비시킨다. 멜라토닌은 인간의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호르몬이다. 멜라토닌이 뉴런에 결합하면 전기신호의 리듬이 바뀌면서 뇌가 점차 잠에 빠져들게 된다. 새벽이 되어 태양 빛이 멜라토닌을 파괴하면 뇌는 다시 서서히 깨어난다. 한밤중에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다음 날까지 영향을 받는 것도 멜라토닌의 역할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대륙 사이를 이동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생체시계도 거기에 맞추어야 하지만 멜라토닌에 의해 유도된 잠의 주기는 아직 거기에 따라 오지 못하기 때문에 시차적응에 애를 먹는 것이다.
멜라토닌은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갯지렁이의 행동도 통제한다. 독일에 있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참갯지렁이(Platynereis dumerilii)의 유생에서 멜라토닌을 비롯한 잠 관련 분자들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활성을 여러 해 동안 조사했다. 태어난 지 2일 된 참갯지렁이 유생은 공 모양이다. 이것들은 밤에는 바다표면에서 조류를 먹이로 섭취하고, 낮에는 포식자와 햇빛의 자외선을 피해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다.
시간에 따른 갯지렁이 유생의 움직임은 어떻게 유발된 것일까? 참개지렁이 유생에는 가느다란 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을 앞뒤로 저어서 움직인다. 단지 빛의 유무로 움직임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낮 시간에 유생을 캄캄한 곳에 두어도 유생은 낮 시간의 활동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유생의 털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멜라토닌이다. 유생의 등 쪽에 있는 일부 세포에는 빛을 포획하는 단백질이 있다. 이 단백질이 멜라토닌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스위치를 끈다. 우리 눈에도 같은 단백질이 있어서 멜라토닌 생성 스위치를 켜고 끄는 역할을 한다. 참갯지렁이 유생은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멜라토닌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참갯지렁이 유생에서 멜라토닌 형성 유전자의 활성을 24시간 내내 감시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멜라토닌은 밤에만 분비되었다. 그 결과 참갯지렁이 유생은 오로지 밤에만 바다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참갯지렁이 유생과 사람의 멜라토닌 작용이 똑같다는 것은 두 생명체의 멜라토닌이 같은 조상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사실은 잠의 진화는 적어도 갯지렁이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뉴런만 있는 해파리도 수면
카시오페이아 해파리는 갓이 아래에 있는 뒤집힌 해파리다. 뇌가 없는 해파리도 잠을 잔다.
척추동물의 조상은 복잡한 뇌가 진화될 때 멜라토닌 유전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빛을 받아들이고 낮-밤 사이클에 따라서 멜라토닌을 분비하는 어떤 다목적 세포가 있었다. 그 후 이 기능이 어떤 특정한 세포에 분산되었다. 눈 세포는 빛을 받아들이고 솔방울샘은 멜라토닌을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해파리는 갯지렁이보다 더 하등한 동물이다. 해파리에는 뉴런은 있지만 중추신경은 없다. 과연 해파리도 잠을 잘까?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과학자들은 카시오페아 해파리를 선택했다. 카시오페아 해파리는 갓을 아래로 한 채 촉수를 흔드는 뒤집힌 해파리다. 이 해파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갓을 움직일 뿐이다. 낮에는 1분에 60번 정도 움직이는데 밤에는 39번으로 줄어든다. 바닥에 가라앉은 해파리를 뜰채로 퍼 올려 수면 위에 놓으면 바닥으로 헤엄쳐 내려가는 속도가 굼뜨지만, 30초 후에 다시 떠올리면 바닥으로 부리나케 내려간다. 잠을 자다 깨어난 것이다. 또 물을 계속 첨벙대서 잠자지 못하게 하면 다음날 비실비실했다. 하지만 숙면을 취하게 하면 다시 컨디션을 회복했다.
해파리 실험은 뇌만 자는 것이 아니라 뉴런도 잠을 자야 하며, 지구에 태어난 동물이라면 누구나 잠을 잔다는 것을 말한다. 잠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캄캄해도 바빠 잠 못 드는 현대인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잠에 관한 연구에 돌아갔다. 미국 의학자 세 명은 초파리에서 낮과 밤이라는 생물학적 리듬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서 생체시계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세포 활동은 낮과 밤이 다르다. 밤에는 생체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세포 안에 쌓아 놓고, 낮에는 이것들을 분해하여 사용하는 일을 반복한다. 세포는 하루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이며, 세포가 모인 생명체 역시 생체 시계 활동에 따라 작동한다.
물론 잠, 혈압, 체온과 같은 신진대사를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주체는 빛에 의해 유발되는 호르몬이다. 수억 년에 걸쳐서 햇빛 주기에 적응한 인체가 요즘은 해의 운행과는 다른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캄캄해져도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침대에서도 스마트폰의 밝은 화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햇볕을 쬐고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잠이 들어야 한다.
[펌] / 출처; 중앙선데이 / 이정모(현 서울 시립과학관장, 안양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역임. 저서 다수) / 2017.10.29 01:08
속리산의 단풍
보안 철옹성 없으면 4차산업 혁명도 사상누각
[로그인 투 매트릭스] ⑨
4차 산업 혁명이 인류를 ‘신세계(新世界)’로 안내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가 모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5세대 통신이 현실과 가상현실(VR)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도 진화를 거듭한다. 200억개가 넘는 사물의 연결, 급속한 클라우드화, 일상화된 인공지능, 가상화폐와 가상현실의 보편화 등이 특징인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조선비즈 특별취재팀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차 산업 혁명이 이끄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 이른바 ‘매트릭스(matrix)’로 불리는 세계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진화의 방향을 알면 우리의 대응 방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 참고로 이번 기사는 ‘로그인 투 매트릭스’ 시리즈의 9번째 연재 기사며 제2부 ‘극단의 사회 분리’편의 5번째 연재 기사다. 독자들이 이전 기사와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숫자 ⑨를 붙였다.
<제2부 극단의 사회 분리> ⑨ 보안 철옹성 없으면 4차산업 혁명도 사상누각
지난 8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최대 번화가인 타임스퀘어에서 허드슨강을 따라 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가량 달렸다. 요크타운하이츠 인근의 한적한 숲 속에 위치한 IBM 토마스왓슨 리서치센터가 나타났다. 이 센터의 ‘Q랩 연구소’는 ‘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양자 컴퓨터 연구의 최전선으로 불린다.
1층 양자 컴퓨터 연구실에 들어서자 추운 기온이 온몸을 감쌌다. 들고간 외투를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물리학자 백한희 연구원은 “양자는 섭씨 영하 270도 환경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를 이용하기 한다"면서 “실온 상태에서는 데이터가 훼손⋅유실될 우려가 있어 극저온⋅밀폐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양자 컴퓨터의 개발 동향을 물었다. 그는 “여러 컴퓨터 학회에서 양자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지만, 그의 표정에선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 2017년 8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IBM 토마스왓슨 리서치센터 Q랩 연구소 백한희 연구원(오른쪽)이 IBM의 양자컴퓨팅에 필요한 극저온의 밀폐 환경을 만드는 설비를 설명하고 있다./ 심민관 기자
실제로 IBM Q랩 연구소는 10월 17일 ‘49큐비트 양자 컴퓨터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다(Quantum Computing: Breaking Through the 49 Qubit Simulation Barrier)’는 소식을 자체 블로그에 올렸다. 전문가들은 49큐비트 양자 컴퓨터의 수준은 기존 어떤 슈퍼 컴퓨터도 풀 수 없는 연산 과제를 수행하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 모든 보안 뚫는 새로운 ‘창’이 온다
양자 컴퓨터의 개발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자 보안 업계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기존 보안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며 경고 메시지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개발 속도라면, 수년 내에 양자 컴퓨터의 성능이 기존 컴퓨터의 성능을 넘어서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이미 2015년 9월, 큐비트를 이용한 양자 컴퓨터의 등장에 따라 현재 암호 알고리즘이 위험하다고 발표했다. 해커 집단이나 불량 국가들이 양자 컴퓨터로 무장해 개인, 사회, 국가를 위협할 수 있다는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베리⋅화웨이 등을 거쳐 보안업체 이사라(Isara)를 창업한 스코트 토츠케(Scott Totzke) CEO는 “양자 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가 풀지 못했던 문제를 풀 정도로 성능이 고도화하면, 어려운 수학 문제로 돼 있는 현재 암호화 체계도 뚫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암호화 방식은 소인수분해를 이용한 ‘RSA 공개키 암호 방식’이다. 소인수분해는 어떤 수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소수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소인수분해에 성공하면 암호문이 풀린다는 뜻이다.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로 300자리 정수를 소인수분해하려면 1년이 필요하지만, 50큐비트 양자 컴퓨터라면 30분내에도 가능하다.
기존 디지털 컴퓨터가 0과 1의 나열⋅조합으로 데이터를 연산할 때, 양자 컴퓨터는 양자 중첩과 얽힘 구조를 활용해 거대 데이터베이스 검색이나 암호화 분석 시간을 대폭 단축한다. 예를 들어, 2큐비트는 00, 01,10, 11의 4가지 값(2의 제곱), 3큐비트는 000, 001, 010, 011, 100, 101, 110, 111의 8가지 값(2의 3제곱)을, 50큐비트는 동시에 1조 개(2의 50제곱) 이상의 값을 각각 나타낼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계산 공간이 늘면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또는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난다.
▲ IBM 토마스왓슨 리서치센터 Q랩 연구소 직원이 양자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을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 / IBM 제공
◆ ‘살인 자동차’ 등장 먼 미래일 아니다…TV⋅냉장고⋅병원까지 안전한 곳이 없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이전이지만, 해킹 사건과 관련 해프닝이 끝도 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안드로이드 비트코인 지갑 탈취 사건(2013년), 스마트 카드의 RSA 인수분해로 인한 비밀키 노출 사건(2013년), 애플의 7세대 모바일 운영체제인 초기 iOS 7에서 취약한 의사난수발생기 사용(2014년),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알려진 난수발생기 알고리즘 백도어 발견(2013년) 등 암호키를 만드는 난수를 예측해 보안이 뚫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지난해 여름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아날로그식 해킹 방지법이 우연찮게 공개돼 화제가 됐다. 그는 인스타그램 월 사용자 5억 명 돌파를 자축하며 페이스북에 기념 사진을 올렸다. 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가 쓰는 노트북 컴퓨터의 카메라 렌즈와 마이크 잭 부분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노트북을 이용한 도청이나 감시는 외외로 간단하다. 사용자 몰래 컴퓨터를 조작할 악성코드만 설치할수 있으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소리를 녹음하거나 영상을 찍을수 있다. 저커버그는 아예 카메라와 스피커의 센서를 테이프를 붙이는 원시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해킹에 대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2015년 트위터와 핀터레스트 계정을 해킹 당해 비밀번호가 공개돼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인스타그램 월 사용자 5억 명 돌파를 자축하며 찍은 사진. 그의 왼쪽에 있는 노트북 컴퓨터를 보면 카메라와 마이크 잭 부분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사진 캡처
미국 보안 서비스업체 프루프포인트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 TV와 스마트 냉장고 등 총 10만개의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통해 75만 개의 스팸 메일이 발송된 사실을 확인했다. 2016년 위키리크스는 미국 CIA가 악성코드를 심어 삼성전자 스마트TV를 해킹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12년 당뇨 환자인 미국의 한 컴퓨터 보안 전문가가 자신의 인슐린 펌프를 해킹, 무선으로 병원 데이터에 접속해 외부에서 마음대로 인슐린 처방양을 조절할수 있음을 증명해 병원 시스템 보안의 중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 주행중인 테슬라 모델S의 트렁크가 활짝 열린 모습. / 킨보안연구소 유튜브 영상 캡처
2016년 중국 텐센트(Tencent)의 킨보안연구소(Keen Security Lab)는 테슬라의 커넥티드 카인 ‘모델S’를 19킬로미터(km) 떨어진 곳에서 해킹해 원격조종하는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렸다. 테슬라는 즉시 성명을 내고 “보안 문제를 해결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했다”면서 “실질적인 위험도는 매우 낮다”고 해명해야 했다.
2015년 7월, 자동차 제조사인 피아트 크라이슬러그룹은 보안 취약을 문제로 자사 신제품 차량인 ‘지프 체로키’ 140만대를 긴급 리콜하기도 했다. 당시 보안 전문가인 찰리 밀러와 크리스 발라섹이 주행중인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프 체로키를 해킹하는데 성공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16km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의 와이퍼를 움직이고 라디오 주파수를 바꾸는 것은 물론, 엔진까지 멈추게 만들었다.
곽승환 SK텔레콤 퀀텀 테크랩장은 “향후 청부 살인의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자율주행차를 해킹하는 방법일 것”이라면서 “모든 것이 연결된 4차 산업 혁명 시대, 보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양자 컴퓨터에는 기존 컴퓨터 보안체계와 다른 새로운 보안체계가 필요할 수 있다. / 플리커(flickr)
◆ 모든 해킹 막을 방패로 ‘양자 난수’ 부상…양자암호통신이 떠오른다
컴퓨터 성능을 높이기 위해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양자를 연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양자 컴퓨터라는 ‘창’에는 양자 암호라는 ‘방패'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찰스 베넷 IBM 박사와 질 브라사드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는 1984년에 양자역학을 이용해 일회용 난수표를 제공하는 양자 암호 방식을 개발했다. 양자암호키로 만들어진 불규칙한 양자의 난수는 기존 슈퍼컴퓨터는 물론 양자컴퓨터로도 해독이 어렵다.
▲ 송신자와 수신자간 양자암호 통신 개념 설명도.
해외에서는 차세대 정보통신기술의 핵심 키로 불리는 양자암호통신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0년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LANL)에서 48km 거리의 광통신 양자암호 시스템 구현을 성공한 경험을 살려,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이 105km의 거리에서 양자암호통신 전송실험을 성공했다.
이후 미국은 2005년부터 양자 정보 과학 분야를 5대 중점 연구 분야로 선정해 CIA, NAS, NASA, ARDA 등 국가 기관을 중심으로 양자암호통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2010년 2월부터 연간 1500만 유로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고 있으며, 여러 벤처기업 등을 설립해 양자난수생성기와 양자암호키분배 시스템을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2000년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해 2003년 87km의 거리에서 광섬유를 이용한 양자암호 전달 실험에 성공했다. 2010년에는 양자정보통신 관련 로드맵을 발표하고 관련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역시 2005년 양자암호 시스템 개발을 국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했으며, 같은 해 베이징과 텐진 간 125km에 이르는 광섬유 통신망을 이용해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2012년 중국 과학기술부는 양자 관련 기술에 5년간 29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2016년 8월에는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 위성인 ‘묵자호’를 쏘아 올렸다.
한국은 양자암호통신의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나마 1위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이 양자정보통신을 이용한 암호화 기술 개발에 나서며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SK텔레콤은 201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자기술연구소(퀀텀테크랩)을 만든 뒤 7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초소형 양자난수생성 칩 개발에 성공했다.
SK텔레콤은 ‘양자암호통신’ 관련 칩과 중계기, 광전송 장비 등을 개발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이미 총 5개 구간의 국가시험망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양자암호 통신 국가시험망은 SK텔레콤의 분당사옥과 용인집중국을 연결하는 왕복 68km 구간 등 4개 구간과, SK텔레콤이 구축하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하는 대전지역 연구소간 네트워크인 슈퍼사이렌(SuperSiReN) 망의 11km 1개 구간 등 총 5개다. 아직은 유선통신망에만 시험 가동하고 있다.
곽승환 SK텔레콤 퀀텀 테크랩장은 “현재는 양자암호통신 장비가 크고 가격이 비싸 백본에 들어가는 정도로 사용되는데, 앞으로 SK텔레콤은 양자암호를 집안의 셋톱박스 형태의 크기로까지 만들어 집안까지 서비스가 가능한 QTTH(Quantum To The Home)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이와이엘은 크기가 1.3밀리미터(㎜)에 불과한 초소형 양자펄스생성기(Quantum Pulse Generator) 'Qu-Ev01'을 개발했다. 양자펄스생성기는 각종 IoT 기기에 부착해 암호키를 생성하고 보안성을 높인다. 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붕괴현상을 이용해 무작위한 양자펄스를 측정하는 기술로 고품질의 양자난수 추출이 가능하다.
양자암호 보안업체인 이와이엘의 정부석 대표는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보안문제가 심각하지만 머지않아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 되면 모든 분야에서 암호가 쉽게 뚫리고 무방비 상태에 노출될 수 있다”며 “보안을 지키는데 실패하면, 초연결성, 초지능화를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도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펌] / 출처; 조선비즈 / 요크타운하이츠=심민관(조선일보 기자) / 2017.10.25 08:20
인형이 후궁에게 ‘스스로’ 윙크 … 인공지능의 위험성 경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상력, 동양 신화] 『열자』 속 어릿광대 인형
인간이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고 통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
“처음 인형 만든 자, 후손 없을 것” 공자도 인조인간 제작 강력 경고
날개로 날다 추락한 이카로스도 테크놀로지 위험성 경계 메시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등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여러 과학 기술 중에서 가장 기대와 우려를 자아내는 분야는 아마 인공지능일 것이다. 이미 알파고와 인간 고수와의 대국을 통해 인공지능의 가공할 능력을 톡톡히 실감한 탓도 있겠으나 향후 더욱 발전된 인공지능이 그간 인간이 누려온 독보적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은 성급한 억측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나름의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설에 의하면 1950, 60년대의 공상과학 소설에 처음 등장했던 신기한 발명품들의 대부분이 현재 이미 실현되었다고 한다.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우리의 경우도 70,80세대의 어린 시절 이목을 사로잡았던 산호 화백의 『라이파이』, 고우영 화백의 『짱구박사』 등 고전적 만화에 등장했던 현란한 과학 기기들이 지금은 거의 구현되었을 것이다.
화가 정지영
이렇게 보면 과학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앞서가면 과학이 그것을 뒤쫓아 가는 형국임을 알 수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투쟁을 주제로 한 공상과학 소설이 끊이지 않고 생산되는 것을 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억측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신화는 우리의 온갖 상상력의 원천이다. 이는 과학은 물론 우리의 모든 행위를 촉발하는 상상력의 근원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과연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는 미래의 인간, 이른바 포스트휴먼인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노자』『장자』와 더불어 대표적 도가 문헌의 하나인 『열자(列子)』에는 다음과 같은 신화가 실려 있다. 주목왕(周穆王)이 긴 여행을 떠나 불사의 여신 서왕모(西王母)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언사(偃師)라는 뛰어난 장인을 만났다. 주목왕이 솜씨를 보여 달라고 하자 이튿날 언사가 자신이 제작한 어릿광대 한 명을 데리고 왔는데 진짜 사람과 똑같았다. 어릿광대는 주목왕이 시키는 대로 걷고 뛸 뿐만 아니라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런데 연기가 끝날 무렵 어릿광대가 임금 곁에서 관람하던 예쁜 후궁에게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속았다고 생각한 주목왕은 대노하여 장인 언사를 죽이려 하였다. 놀란 언사는 황급히 어릿광대를 잡아다 해체해 보였다. 그것은 가죽, 나무, 아교, 물감 등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는데 내장은 사람과 똑같이 오장육부가 있었다. 장인의 솜씨에 감탄한 주목왕은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
이 신화의 메시지는 장인의 솜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형이 후궁에게 윙크를 했다는 데에 있다. 왜 작자는 인형이 인간이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딴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더구나 인형은 딴짓을 함으로써 주인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 『열자』에 담긴 신화가 인조인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었다. 테크놀로지는 믿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양 인문주의의 개조 공자는 인조인간의 제작에 대해 더욱 강력히 경고한다. “처음 인형을 만든 자는 아마 후손이 없을 것이다(始作俑者, 其無後乎).” 인형은 인간의 이미지를 본뜬 것인데 공자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는 힘을 지녔음을 간파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 후손이 없어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의 배후에는 아마도 이와 같은 신화적 상상력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인형 주인, 왕에게 재주 자랑하다 죽을 뻔
이카로스
테크놀로지에 대한 불신은 그리스로마신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사만큼이나 뛰어난 장인인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노스의 왕궁을 탈출하기 위해 정교한 날개를 제작한다. 마침내 다이달로스 부자는 날개를 부착한 후 힘차게 날아올라 왕궁을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비행의 기쁨에 도취되어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그는 한껏 높이 날다가 날개를 접착한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 추락사하고 말았다. 몸에 날개를 달고 비상한 다이달로스 부자는 인간과 기계 장치의 결합체라는 점에서 사이보그의 원조인 셈이고 넓게 보아 인공지능과 같은 포스트휴먼의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그런데 이 신화 역시 테크놀로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른바 이카로스 패러독스가 그것으로 테크놀로지는 적당히 사용하면 인간에게 득이 되지만 그것이 도를 넘으면 해가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다시 동양권으로 돌아가서 공자의 경고 이후 위험한 인조인간 대신 동물로봇을 제작한 사람이 『삼국연의』의 제갈량이다. 그는 사람을 죽여 만두소를 만들던 풍습을 소나 양고기로 대체하여 오늘날의 만두를 창시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공자의 뒤를 잇는 인문주의자인 셈이다. 제갈량은 라이벌 사마의(司馬懿)와 전쟁을 할 때 군량을 운반하기 위해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라는 동물로봇을 제작한다. 그의 목우, 유마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완연히 살아있는 동물처럼 산악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군량과 짐을 날랐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조인간 제작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부장(副葬)하였다. 진시황 역시 이 때문에 수많은 군대 인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병마용(兵馬俑)이다.
진시황 병마용
그런데 인형보다 더 생동적인 인조인간을 향한 꿈은 도교 전통에서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으로 통합된다. 도교의 연단술(鍊丹術)은 초기에는 외부에서 합성한 약물 즉 단약(丹藥)을 복용하여 시공을 초월한 능력자인 신선으로 자신을 변모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을 외단법(外丹法)이라고 한다. 외단법은 당나라 이후 약물 중독 등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신체 내부에서 호흡수련과 명상으로 완벽한 자아를 만들어내는 내단법(內丹法)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다시 서양을 살펴보면 그리스로마신화 이후 기독교가 지배하면서 인조인간 제작에 대한 인식은 변화를 맞는다. 우리는 ‘창세기’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공자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러한 발언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자연의 주인이 된 인간이 마치 하나님처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조인간을 만들어낼 긍정적 소지를 제공한 듯하다.
중세 이후 서양 역시 동양의 연단술과 흡사한 연금술을 통하여 평범한 사람을 완벽한 인간으로 개조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도교의 단약에 해당되는 엘릭시르(Elixir)를 합성하는 데에 몰두했을 뿐 동양의 내단법처럼 관점을 신체 내부로 돌리지 않았다. 그 결과 약물 합성 작업에 치중했던 서양 연금술이 과학의 발달로 연계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양의 내단법으로의 전환과 서양 연금술의 외단적 경향은 근대 과학으로의 방향 설정을 가름 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로봇시대 인간을 구원하는 건 정신의 힘
매트릭스
동양의 내단법이 신체 내부에서 완전한 자아를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하는 동안 서양에서는 근대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이 신체 외부에 “우리의 모양대로” 인조인간을 만들어낼 단계에 이르렀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자신도 기술에 힘입어 신적인 인간 곧 호모데우스가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오늘의 과학기술을 대부분 예견한 공상과학의 상상력은 여전히 인공지능의 예후를 불길하게 진단한다. 아닌 게 아니라 대다수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로봇이 등장하면 인간 의미에 대한 집단 정체성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인문학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인간이 여전히 정체성을 지키면서 로봇과 사이좋게 공존 혹은 제어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정신과 물질의 이원구분, 그 구분의 한 쪽을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여온 오늘의 과학, 그것이 낳은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신체 내부에 대한 집중 곧 정신의 고양이 필요한데 그 궁극적 모습은 과학과 내면세계의 유기적 결합으로 나타날 것이다. 공상과학의 상상력은 이러한 경지까지도 예측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명상, 기공 등의 내면 수행에 의해 업그레이드된 정신을 기계장치와 결합하여 극강한 인공지능 집단을 궤멸시킨다. ‘스타워즈’의 경우도 그러했듯이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의 힘인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처럼 영혼과 물질이 통합된 이상적 사회의 풍경을 근대 여명기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에서 재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청말(淸末)의 거유(巨儒) 강유위(康有爲)의 『대동서(大同書)』에서는 미래에 도래할 이상사회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대동세에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가 없어서 편안함과 즐거움이 극에 달해 오직 오래 살기만을 생각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빛과 전기를 타고 기(氣)를 조절해서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게도 된다. 이것은 대동세의 극치이며 인류의 지혜가 또 한 번 새로워지는 때이다.”
과연 우리는 다가오는 초과학의 시대에 갱신된 지혜의 소유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펌] / 출처; 중앙선데이 / 정재서(이화여대 명예교수. 중국어문학회 회장, 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 저서 다수) / 2017.10.29 00:17
나노기술 통한 암 진단과 치료 기술 빠른게 발전
몇해 전 미국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한 배경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아직 암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유전적으로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선택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렛 에반스 영국 맨체스터대 세인트메리병원 유방암발생예방센터 교수팀이 조사한 결과, 안젤리나 졸리의 신문 기고 이후 유전자 검사를 받고 가슴을 절제하는 여성 숫자가 급증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꾸준히 유지됐다. 이는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완전히 치료하기 어려운 현재 의료기술 수준에서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전보다 암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1. 미국의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적으로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출처: Gage Skidmore
# 나노물질 이용해 정교하게 암 진단한다
유방암이나 구강암처럼 손이나 눈으로 이상을 느낄 수 있는 부위에 생기는 암은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쉽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경우 조직검사를 통해 암세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직검사와 함께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양전자단층촬영(PET) 그리고 혈액검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종합적으로 암을 진단한다. 한 가지 방법으로는 암을 완벽하게 진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검사를 진행한다.
최근 과학자들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나노기술의 역할은 각 기술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컨대 MRI의 경우 암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를 더 잘 알아보기 위해 조영제라는 화학물질을 환자에게 투여한 뒤 촬영한다. 암세포가 화학물질과 반응해서 더 밝게 나타나도록 하는 것으로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뚜렷하게 구분할수록 좋다. 이에 천진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장 연구팀은 2017년 나노입자 조영제를 개발해 이전보다 10배 이상 뚜렷하게 암세포를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원리는 이렇다. 자성을 띤 두 나노입자 사이가 7nm(나노미터) 이상 떨어지면 자기장이 변하면서 이를 촬영한 MRI 신호가 강해진다. 연구팀은 암세포에서 나오는 단백질 효소를 인식하는 물질로 두 입자 사이를 연결해서 나노입자 조영제를 만들었다. 효소를 인식하는 물질이 효소와 반응하면서 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MRI 신호가 증폭되는 원리다.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도 나노기술의 도움으로 더 정밀해지고 있다. 지금은 주삿바늘로 혈관을 찔러서 수십 mg의 피를 뽑아낸 뒤 그 안에 암세포와 관련된 물질이 있는지를 찾는 방법을 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며칠간의 시간이 소요되며 알아낼 수 있는 암의 종류도 혈액암 등 소수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혈액 진단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나노기술을 적용한 바이오센서를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있는데, 2016년 곽봉섭 한국기계연구원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 선임연구원팀은 혈액 속을 떠다니는 암세포(순환종양세포)를 나노자석으로 걸러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암이 진행되면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다른 장기로 이동해 전이를 일으킨다. 혈액 속에서 이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략 10억 개의 혈액세포 중에서 하나 꼴로 암세포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암세포 표면 단백질에 달라붙은 자성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나노입자가 암세포에 달라붙으면 바이오센서에 설치된 자석에 달라붙어 이를 검출할 수 있다. 특히 자성 나노입자는 전이성 암세포에 더 잘 달라붙기 때문에 바이오센서는 환자에게 암 전이가 일어나고 있는지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유방암 세포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비전이성 세포는 100개 중 95개를 찾아낼 수 있었고, 전이성 세포는 100개 중에서 80개를 잡아냈다.
사진2: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도 나노기술의 도움으로 더 정밀해지고 있다. 출처: Pixabay
# 인공 DNA 합성해서 암세포 '원샷 원킬'
진단뿐만 아니라 암을 치료하는 방법도 나노기술을 적용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방법은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유전자 발현 억제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우리 몸 세포는 DNA라는 유전물질에 담긴 단백질 설계도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DNA에서 시작해 단백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몇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때 실제 일꾼 역할을 하는 것이 RNA다. DNA가 건물의 전체 설계도라면 RNA는 이 정보를 가지고 단백질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RNA는 역할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이중 길이가 수 nm에 불과해 작은RNA(siRNA)라 불리는 것들은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율사' 역할을 한다. 아무리 유전자 설계도가 있다 해도 이들이 작용하면 단백질이 생산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끝없이 복제되고 전파되는 암세포를 막기 위해 siRNA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암세포의 DNA가 단백질을 생산하는 과정을 막는 siRNA를 인위적으로 만든 뒤 몸에 넣어 암세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siRNA를 이용하려는 이유는 '원샷 원킬' 특성 때문이다. 현재의 항암제는 암세포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정상 세포의 단백질에도 달라붙을 수 있어 부작용을 일으킨다. 하지만 siRNA는 목표로 하는 단 하나의 단백질만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 없는 맞춤형 신약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약을 목적지로 전달하는 전달체를 매번 새로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현재는 약마다 다른 전달체를 개발해야 해서 신약 개발비가 많이 든다. 하지만 siRNA 치료제의 경우 전달체는 그대로 쓰고 표적 단백질에 따라 siRNA의 염기서열만 바꿔주면 된다. 이런 이유로 현재 전 세계에서 40건 이상의 siRNA 표적치료제가 임상시험 중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아직까지 siRNA를 효과적으로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이상적인 전달체가 나오지 않았다. siRNA는 혈액을 타고 흐르면서 혈액 속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현재까지 개발된 전달체들은 전달 효율이 떨어지거나 독성을 띠는 등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약물 전달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치료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나노의학 연구 또한 계속 되고 있다.
[펌] / 출처; 전자신문 / 글=최영준(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 지원) / 2017.10.22. 17:09
루드베키아
요하문명은 왜 갑자기 끝났을까?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요하문명에 관련된 세 가지 의문이 있었다. 첫째, 과연 요하지방을 포함한 한반도 일대에서 세계 최초의 문명이 있었을까? 둘째, 있었다면 그 문명의 주역은 지금 중국인의 조상일까 한국인의 조상일까? 셋째, 만일 한국인의 조상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고도의 문명을 건설했다면, 왜 그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의 글에서 충분히 나왔다고 본다.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연 ‘YES’다. 앞서 보았듯이 여러 가지 생태학적 특성을 고려해볼 때 한반도는 1만2000년쯤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세계 중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발달된 문명을 이루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두 번째 질문, 요하문명의 주역이 지금 누구의 조상이었을까? 최근 속속 발굴되는 고고학적 유물⋅유적들로 인해 지금까지의 역사기록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과거 인간들의 교류가 훨씬 활발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요하문명에서 홍산문화 직전에 있었던 조보구 문화 유적지에서 벌써 채색토기가 발굴되는 등 중국 문화의 영향이 뚜렷하다. 따라서 지금 중국인과 한국인들도 DNA의 상당부분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하문명이 지금 어떤 국가 국민의 조상이었다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게 선을 긋는 일이다,
하지만 요하문명의 주역이 지금 중국인의 조상이냐 아니면 한국인의 조상이냐, 이렇게 이분법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나만 택하라면, 한국인의 조상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선택은 더 잘 먹고 잘 사는 방향으로 간다. 요하문명 당시 그 지역 주민들이 남쪽에서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올라간 사람들이든, 아니면 더욱 북서쪽 내륙으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이든, 아니면 그 두 계열의 혼합집단이든, 이들은 자신의 거주지를 확대할 때 중국 동해안보다는 살기 좋았던 한반도 서해안을 택했으리라는 건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요하에서부터 한반도 남단, 그리고 빙하기 직후에는 한반도 남부에 거의 붙어있었던 일본 규슈지역까지 하나의 문화권으로서 특징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서해안의 생산성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세 번째 질문, 우리가 왜 그 사실을 잘 몰랐을까? 이 답은 이 연재를 통해서도 여러 번 나왔기 때문에 아주 쉽다. 역사왜곡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보다 열세에 있었던 과거 10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그리고 짧지만 최근 경험이어서 우리의 집단적 기억에 선명한 일제강점기 동안 중국과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은 주도면밀하고 끈질기게 지속되어 왔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우리가 가진 것을 못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부정하는 행동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독자라면 여기서 질문을 멈추지 않고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우리 조상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고 중국은 후진지역이었다면 왜 중국이 더 강국이 되어 역사를 왜곡시켜 왔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아주 포괄적으로 답한다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하는 우주와 지구의 환경요인이 이 지구상에서 삶의 조건을 규정해왔고, 그에 대응해서 인간의 대응전략이 바뀌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연재에서는 그 중에서도 요하문명과 한반도 문명 사이의 그 오랜 단절에 기여했던 두 가지 큰 사건을 조명하려 한다. 하나는 철기제작 유목민에 의한 요하문명의 붕괴, 또 하나는 백두산 폭발로 인한 동아시아 판세의 역전이다.
먼저 요하문명의 붕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된 바가 없다. 요하문명이란 키워드 자체가 세계의 학계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고, 현재까지 중국에 의해 자료가 독점되어 요하문명을 포함한 중국역사 만들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요하문명의 종말을 논할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보로도 요하유역의 유적이 기원전 11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급격히 끝나버렸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엔 이 지역에 고도의 문명생활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일단 한 번의 단절이 생겨난다.
이 단절에는 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 보아왔듯이, 급격한 기후변화가 상당히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 나왔던 요하문명의 기후변화 그래프를 다시 보자. 소하연 문화를 끝으로 요하문명이 끝난 시점인 기원전 1000년 전후 무렵의 기후변화에 주목하자.
© 사진=이진아 제공
이 시기는 ‘철기 시대 한랭화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시기로서, 온난기의 정점에서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쳤던 시기다. 세계적으로 볼 때는 이 기온 급강하 경향이 거의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전 250년까지 지속되지만, 요하유역을 비롯해서, 태평양으로부터 난류를 지원받는 한반도 서해안 지역의 기온은 금방 온난화 단계를 회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보다 내륙 쪽으로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빠르게 추워지는 날씨로 인해 무엇보다 심각한 식량부족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결과 좀 더 기온이 따뜻하고 식량생산성이 높은 곳, 즉 요하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생겨났을 것이다.
요하유역은 북아시아 내륙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꿈의 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기원전 7000년부터 기원전 1000년까지 6000년 동안, 그렇게 넘보는 이방인들을 잘 제어해서 든든하게 고도의 문명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요하인들이 기원전 1000년에 와서 무너지면서 요하문명이 끝나버렸을까?
여기에는 기후변화 뿐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인간전략이라는 차원이 깊이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서쪽으로 철기를 제작할 줄 아는 유목민족의 한 흐름이 요하지방을 공격해서, 흑요석과 청동의 무기를 병용하던 요하문명의 맥을 끊은 것이라고 말이다.
청동기 사용 인간과 철기 사용 인간의 충돌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소재가 되곤 한다. 그림은 기원전 8세기 경 철기 사용인 스키타이족이 동쪽으로 확산되어가면서 슬라브족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에 대한 상상도다. © 사진=Ancient Origins 제공
본격적인 철기 문명은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 즉 이란 및 이라크 일대에서 기원전 200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광석은 지구상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지만 문제는 이를 제련하는 데 필요한 나무다. 앞서 길가메시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아나톨리아 지방은 지구상에서 가장 목재가 풍부했던 곳이기도 하지만 빨리 소진되고 회복되기 쉽지 않았다. 철기 무기를 확보해야 할 필요에 쫓긴 사람들이 여기서부터 동서로 확산되어가면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철기문명은 기원전 3세기 경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하지만 한반도 철기 문명에 관해서는 최근 점점 더 새로운 면이 드러나고 있다. 두만강 유역 동북부 일대, 즉 ‘부여’라고 불리던 곳에서는 기원전 1000년 무렵, 함경북도 무산과 강원도 홍천에서는 기원전 600년 무렵부터 철기가 많이 사용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는 적어도 기원전 1100년 무렵에는 철기를 제작하는 인간 집단이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얘기다.
아직 이 철기제작인들과 요하문명의 관계는 학문적으로 연구된 바 없다. 이 모든 것이 아직 너무 새로운 자료이며, 더욱 새로운 자료들이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추정은 할 수 있다.
비옥한 땅을 기초로 성립한 농경⋅해양 복합 문명이었던 요하문명의 주역이 식량을 가진 자와 흑요석이라는 무기 소재를 가진 자와의 연합으로 오랫동안 막강한 문명으로 군림해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소외되었던 인간집단, 예를 들면 아무르 강을 따라 연해주까지 이어지면서 형성된 부족연합들은 그 문명과 적대적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이들이 서쪽으로부터 아무르 강 연안을 따라 철기 문명을 가져온 유목민 집단을 받아들여 요하문명의 주역들을 공격해서 쓰러뜨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한랭기가 되어 살기 힘들어지고, 문화수준은 낮아도 더 강력한 철제 무기로 무장한 이민족에 의해 터전을 빼앗긴 요하문명의 주역들은 남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고조선 같은 국가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을지 모른다. 또 요하문명 특유의 문물을 한반도 전체에 전파하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펌] / 출처; 시사저널 / 이진아(환경⋅생명 저술가) / 2017.10.25. 19:00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i(1866~1944. 추상 창조의 선구자) / 하늘 색
매우 투명한 그림이다. 푸른색의 공간에 여러 가지 유기적인 형태가 난무하고 있다. 첫눈에 민족적인 요소가 대단히 진한 형태이며, 추상을 벗어나 생명의 원초적 형태 같은 것에 가까워지고 있다. 젊은 시절에 민족학 조사단에 참가하여 북쪽 지방을 여행하였을 때 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흥미를 가진 민예품이나 이콘, 장식무늬, 공예품에서 영향을 받아, 오랜 시간 형태 연구를 통하여 칸딘스키의 내부에서 자라난 형태일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인 기호로써 배열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칸딘스키는 하나의 코스모폴리탄 이었지만 이국에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독한 노년을 보내며,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러한 동화적 세계에 탐닉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