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년) / 벽화(Mural, 1943년 작)
그들의 할로윈, 우리들의 동지(冬至)
내일, 즉 10월 31일은 할로윈(Halloween) 날입니다. 30여 년 전 일인데 할로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신문기자를 하면서도 30대 초반까지 할로윈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신문지면에 나오긴 했겠지만 개념을 모르니 마음에 새겨두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1980년대 초 유아원 나이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로스앤젤레스로 일하러 갔습니다.
10월 중순이 지났을 때였는데, 아이들 입에서 가끔 “할로윈”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도 못 하면서 말입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한 사진기자 동료가 놀러 가자며 밴에 두 집 식구들을 태우고 베이커스필드라는 농장지대로 갔습니다.
넓은 호박 밭이 있었고 이파리가 떨어진 호박 덩굴에는 축구공만 한 노란 호박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드넓은 호박 밭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호박을 안아보기도 하고 따서 바구니에 담는 등 난리를 쳤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까만 마귀 모자를 썼습니다. 사진 기자는 이 모습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호박 밭 풍경이 생경했는지 기껏해야 호박을 세어보고 만지는 정도였습니다. 돌아올 때 호박 몇 개를 안고 온 게 그렇게 신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할로윈’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 저녁만 되면 마귀할멈 복장을 한 여자가 나오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10월 말이 되자 동네 아이들이 오면 쵸콜릿 같은 선물을 주어야 한다며 엄마에게 졸라댔습니다.
드디어 할로윈 저녁이 되자 애들 인기척이 들리더니 현관문을 두드리며 “트릭오트릿”(trick or treat)이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쵸콜릿 봉지를 주자 애들은 얼른 받아들고 떠들며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튿날 신문 방송에는 미국 여러 곳에서 할로윈 과자를 어린이들이 먹고 중독이 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그 몇 해 전에 미국에서는 할로윈 사탕을 먹고 어린이가 죽는 일까지 생겨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해마다 할로윈이 되면 우리 아이들도 마귀 모자를 쓰고 동네 애들과 어울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선물을 받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커 가면서 할로윈이 즐거운 행사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로윈 때 입을 복장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문화에 익숙지 않은 한국 아이들과 엄마는 복장 종류 선택과 가격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할로윈의 뿌리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사는 켈트족의 가을수확 축제와 기독교 신앙이 융합된 민속 행사로 차차 기독교를 신봉하는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즉 복장은 켈트족의 유령에서 나왔고, 그날은 성자와 순교자들의 영혼뿐 아니라 온갖 잡귀도 출몰한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귀신을 달래고 액운을 내쫓는 민속인 셈입니다.
그런데 신대륙발견으로 기독교를 따라 미국에 건너간 할로윈이 소비문화가 극도로 번창한 오늘날 돈벌이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로윈이 가까워지면 백화점과 쇼핑몰은 물론 시골 가게에도 할로윈 광고가 쏟아지고 할인 판매행사가 벌어집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할로윈 날부터 연말까지 쇼핑 시즌으로 굳어졌습니다. 즉 10월 말의 할로윈에 이어 11월 말의 추수감사절, 12월 말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긴 홀리데이시즌이 되며, 이 기간 중 매출을 놓고 경제동향이 점쳐지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할로윈이 한국으로 건너와 난리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 준수되는 민속적인 본령은 온데간데없고, 주로 쇼핑과 파티를 부추기는 상업성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25일 네이버에 뜬 상품만 13만 건이 넘었습니다.
해외여행의 보편화, 조기 유학붐, 조기 영어교육,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 문물이 순식간에 한국에서 유행합니다. 할로윈도 그런 영향으로 퍼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해외문화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쏠림현상도 한몫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은 할로윈 파티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친구들 복장과 할로윈 선물을 비교하는 아이들의 성향 때문에 부모들의 지출도 많지만 물품을 선택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할로윈 복장을 사주는 데 100만 원이 들고, 할로윈 선물 쿠키 상자 마련하는 데 10만 원이 들었다고도 합니다. 특히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은 유치원의 특성상 할로윈 파티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애들이 기죽지 않게 한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복장과 선물을 챙길 수밖에 없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할로윈이 이렇게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극성을 부리는 것은 한국사회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라는 아이들이 우리 문화의 뿌리가 없는 할로윈에 너무 경도되는 것도, 또한 부모들이 할로윈 파티에 너무 돈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허영(虛榮)의 시장입니다.
할로윈에 견줄만한 한국의 민속은 무엇이 있을까요? 동지(冬至)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귀신이 많이 돌아다녀서 이를 쫓기 위해 팥죽을 끓여 먹는 것이 할로윈과 닮은 점인 것 같습니다.
올해 동지에는 식당마다 색다른 팥죽파티 등 다양한 동지 축제로 어린이도 기분 좋고 어른도 흐뭇한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지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여전히 눌려버릴 건가요?
[펌] / 필자소개; 김수종(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 LA・뉴욕 특파원, 주필 역임. 현재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서울시민옴부즈만 및 제주그린빅뱅공동추진위원장, 저서 4권) / 2017년 10월 30일 (월) 00:03:39
속리산의 단풍
500년 전 루터 "의인은 없나니…"
“모금함에 동전이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날아오른다.” 중세 도미니크 수도회의 요하네스 테첼이 면죄부(免罪符⋅가톨릭 용어로는 면벌부⋅免罰符)를 팔 때 사람들을 꼬드긴 말이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유럽의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각 교구에 할당된 금액만큼 면죄부를 팔았다.
아우구스티누스회 수사인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순응할 수 없었다. 그는 목회자의 양심에 따라 설교할 때마다 이를 비판했다. 그래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1517년 10월31일 엘베 강변의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내걸었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의 논제가 처음부터 급진적인 것은 아니었다. 기록에 따르면 ‘누군가를 비방⋅중상할 의도를 찾아볼 수 없는 조심스러운 시도’였다. 그러나 ‘95개 논제’는 2주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으며 제후들과 지식인, 농민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얼마 뒤 그는 교황 레오 10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철회 요구’를 잇달아 거부함으로써 파면됐다.
이때부터 종교개혁은 단순한 신학 논쟁이나 교회 내 갈등을 넘어 정치⋅경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대결 국면으로 바뀌었다. 루터는 내성적인 데다 말주변도 없어 토론할 때 어눌했다. 하지만 논쟁이 끝나면 상대의 모순을 신랄하게 공박한 기록물을 인쇄해 배포했다. 이로써 독일 민중의 폭넓은 지지와 결속을 끌어내며 개혁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교황청은 이를 얕잡아봤다. 뒤늦게 맞불을 놓으려 했지만 라틴어만 고집해서 독일 민중의 대부분은 읽지도 못했다. 루터와 지지자들은 15세기 발명품인 인쇄술의 위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파급력을 키워갔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은 각 지역 방언과 이질적인 문화를 융합해 근대 독일어의 문장 체계를 확립했고 민족의식까지 키웠다. 루터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유럽의 한 변방 수사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 개혁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태동과 로마 가톨릭의 쇄신 외에 약 1000년간의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 각국은 교황청의 통제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국민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성로마제국은 볼테르의 말처럼 ‘더 이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닌’ 존재가 됐다.
개혁을 촉발한 면죄부는 1563년 없어졌다. 하지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는 깨달음에서 출발한 루터의 개혁 정신은 500년이 지난 오늘도 ‘빛’과 ‘소금’이 돼 우리를 비추고 있다.
[펌]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7-10-30 03:25
애기백일홍
기준금리
돈은 단 하루도 놀려선 안 된다. 금융이 낯설던 조선시대에도 개성상인들은 남달랐다. 시변(時邊)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했다. 결제일은 언제나 매월 마지막 날로 고정이다. 이자율은 매달 1∼5일에 빌리면 월 1.25%이다. 6∼10일에 빌리면 1.0%, 11∼15일은 0.75%, 16∼20일은 0.50% 식이다. 닷새마다 0.25% 포인트씩 이자를 낮췄고, 25일 이후엔 이자를 물리지 않았다. 달마다 5일 간격으로 이자율이 뚝뚝 떨어지기에 낙변(落邊)이라고도 불렀다.
담보는 따로 없다. 월초의 여유자금을 높은 이자로 맡기고, 월중에 돈이 필요하면 낮은 이자로 빌려 그 차이만큼 이익을 얻었다. 짧은 기간에도 여유자금을 놀리지 않았던 것으로 오늘날 금융기관 사이 단기자금을 주고받을 때 쓰는 콜금리와 유사했다.
한국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도 초단기금리다. 은행은 금융소비자의 인출에 대비해 중앙은행인 한은에 지급준비금이란 돈을 예치해야 한다. 이게 하루 단위로 은행마다 적거나 많을 수 있다. 여유 있는 은행이 부족한 은행에 담보 없이 짧게 빌려줄 때 의존하는 금리가 바로 한은이 정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 입찰 때의 기준금리다.
삽화=이영은 기자
지난해 6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린 연 1.25%로 낮춘 이후 16개월째 동결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역대 최저 금리의 역대 최장 동결 타이기록이다. 한은은 2009∼2010년 16개월간 금리를 동결하다 17개월째 금리 인상으로 돌아선 바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는 구간으로 표시한다. 현재 연 1.0∼1.25%다. 미국도 예전엔 우리식 연 1.25%처럼 단일 목표를 가지고 운영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뀌었다. 양적 완화, 즉 추락하는 경기를 막기 위해 돈을 마구 풀다보니 제로 금리로도 모자라 다량의 채권을 사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자 연준이 목표한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결국 연 1.0∼1.25%처럼 구간으로 표시하게 됐다.
시장은 미 연준의 12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을 90% 이상으로 본다. 한은도 이주열 총재가 얘기했던 금리 인상 조건들이 하나둘 채워진다고 보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3% 달성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물가는 큰 변동이 없다. 금리 상승기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도 마련됐다. 저금리의 종언과 긴축의 시대, 현명한 부채관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펌 / 출처; 국민일보 / 글=우성규(국민일보 차장) / 2017-10-29 17:49
나이를 부끄러워해야 하나
1920년대 한국인 평균 수명은 37.4세였다. 10년 후 40.9세로 늘었다. 불과 100년 전 마흔 안팎 나이로 노인 행세를 했고 그런 대접을 받았다. 소설가 이무영이 1950년대 소설에서 묘사한 일흔 노인의 모습은 이렇다. '허리는 불에 튀긴 새우 꼴, 손가락은 갈퀴 발, 손등은 기름기 뺀 가죽….' 지금 우리 주변에서 그런 고희(古稀) 어른은 보기 어렵다. 한국은 지금 평균 수명 83세 사회가 됐다. 그러고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하는 중이다.
▶1960년대 아프리카 민속학자가 말했다. "아프리카에선 한 노인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공자는 나라 정치가 잘되고 못되고를 '동네에 돌아다니는 어른이 얼마나 있나'로 판단했다고 한다. 어른의 경험과 식견이 활용되는 곳일수록 튼튼한 나라라고 본 것이다. 영국에서는 왕이 40년 전까지 100세가 된 국민에게 손수 축전을 보냈다. 지금은 관공서에서 대신한다고 한다. 어른을 높이 모시는 것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나이 듦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 독일 작가 막스 프리슈는 "사회가 노화를 터부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드러나는 신체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고 썼다. 대표적 신체 노화가 관절 약화일 것이다.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세 가지 비결이 관절, 인간관계, 할 일이라고 한다. 어른들에게 수영이 인기 있는 이유는 관절을 보호하면서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을 불편하게 하는 수영장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재(再)등록하려면 건강검진 결과 제출하라' '1년 등록은 안 되고 한 달씩 등록하라'고 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핑계는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잦고, 생리 현상을 통제 못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멀쩡히 다니던 수영장에서 그런 식으로 눈치를 주면 섭섭할 수밖에 없다. 헬스클럽도 60세를 넘으면 새로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 곳이 있다. 요즘 60세면 '한창'인데 물을 흐린다고 한다.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가 이렇게 썼다. '노령은 젊음보다 못한 기회가 아니고/ 다만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저녁 황혼이 스러져갈 때/ 하늘은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로 가득하다.' 칸트는 칠십 대 중반에 '인간학'을 썼고, 미켈란젤로는 팔순을 넘기면서 성베드로 성당 천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제임스 와트는 예순 넘어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고 여든까지 발명했다. 누구나 늙는다. 나이 드는 걸 서럽게 만들면 곧 자신이 당한다.
[펌] / 출처; 조선일보 / 안석배(조선일보 논설위원) / 2017.10.30 03:02
무인편의점
‘편의점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편의점 직원이 쓴 소설도 탄생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2016년)을 수상한 ‘편의점 인간’이 그것이다.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편의점에서 18년 동안 알바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매뉴얼대로 상품이 진열된 편의점 풍경과 함께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꿈도 야망도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 군상을 그렸다.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로 우리나라도 편의점이 급증해 2016년에 3만 개를 돌파했다. 인구 대비 편의점 수는 일본의 1.5배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에 간단한 끼니 해결과 생필품 구매는 물론 세탁, 택배, 금융서비스까지 가능한 편의점이야말로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인 생활방식과 잘 맞아떨어지는 공간이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저서 ‘편의점 사회학’에서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기능을 한곳에 집결시켜 거대한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편의점은 새로운 통치 장치”라고 했다.
▷편의점에서는 사람들끼리 알은척 하지 않는 것이 에티켓이다. 아르바이트생과 손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편의점 직원은 손님에게 물건을 권유하지 않고 오로지 계산만 한다. 익명성을 토대로 한 이런 ‘쿨’한 관계가 현대인이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으로는 편의점에서 유니폼을 입은 아르바이트 직원조차 보지 못할 것 같다. ‘2020년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앞두고 이를 감당 못 할 편의점들이 미리 무인점포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 계열 이마트24의 서울조선호텔점과 전주교대점은 24시간 내내, 성수백영점과 장안메트로점은 심야와 새벽 시간대에 점원을 두지 않는다. 손님이 셀프계산대에서 신용카드나 후불 교통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롯데 계열 세븐일레븐이 5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오픈한 스마트 무인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는 정맥인증 결제 시스템을 채택했다. 손님이 손바닥을 대면 결제 끝이다. 좋은 의도로 마련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역설을 편의점에서도 확인하게 돼 씁쓸하다.
[펌] / 출처; 동아일보 / 정성희(동아일보 논설위원) / 2017-10-30 03:00
3D 프린터가 하루 만에 찍어낸 집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3D 프린터가 우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잉크(합성수지)를 겹겹이 뿌려가며 쌓아올려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3D 프린팅 기술의 발전으로 아무리 복잡한 형태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한때 3D 프린터의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작은 모형이나 소품을 만드는 데나 쓰였지만, 이제는 집처럼 큰 인공물도 자유자재로 찍어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아피스 코어(Apis Cor)는 세계 최초로 원심형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작은 크레인처럼 몸체에서 뻗어나온 긴 팔이 돌면서 작동하는 원심형 3D 프린터는 곡면 형태를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원자재의 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다. 크기가 작고 무게도 가벼워서 트럭이나 트레일러 등에 싣고 건설 현장에 옮겨갈 수 있는 이동식이라는 게 큰 장점이다. 필요에 따라 몸체의 높이는 3.1m, 팔의 길이는 8.3m까지 늘일 수 있어 집을 짓는 데도 유용하다.
위: 원심형 3D 프린터로 찍어낸 집, 면적: 38㎡. 아래: 원심형 3D 프린터. 높이 1.5m, 길이 4m, 무게 1814㎏.
2016년 12월 아피스 코어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의 스투피노 타운(Stupino Town)에서 38㎡(약 11.5평) 규모의 집을 단 하루 만에 찍어냈다. 원통형 집채에서 세 개의 돌기가 뻗어나온 기본 골격과 외벽 등이 모두 24시간 내에 프린팅됐다. 지붕, 배선, 보온 및 방음, 내⋅외부 도색, 가구 배치에는 숙련된 인력이 투입돼 신속히 마무리했다. 표준형 호텔방만 한 크기의 내부 공간은 구획을 나눌 수 있고, 창문도 3개나 돼 주거용으로나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겨울에 러시아에서 모델하우스를 지은 이유는 혹한에도 프린팅이 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아피스 코어가 개발 중인 특수 잉크인 지오폴리머(Geopolymer)가 완성되면 영하 35도에서도 집을 찍어낼 수 있게 된다. 향후 건설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전망된다.
[펌] / 출처; 조선일보 / 정경원(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이노베이션) / 2017.10.30 03:11
부용
강은 역사를 가르지 않는다
2003년 일본의 고고학계를 뒤흔드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은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야요이문화의 개시 연대를 기존의 통설인 기원전 300년에서 무려 600년이나 올린 기원전 10세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새로운 주장의 근거로는 발달한 방사성탄소연대법과 함께 중국 요서 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를 들었다. 요서 지역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중화문명과 북방 초원문명이 교차하며 문화가 번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야요이문화의 기원지로 한반도 대신 요서 지역, 나아가 중원문명에서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새로운 야요이문화론은 논란에도 일본 고고학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쇠⋅철⋅강] 전시회에 설치된 철의 역사 연표를 보면 한반도에 철기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4세기인데, 남한에서 제작된 것은 기원전 1세기라고 돼 있다. 한반도 북부에서 남한까지 철기가 도입되는데 약 30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이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대부분 남한의 선사시대는 만주 및 북한과 연대 차이가 많이 난다. 그 이유는 북한과의 소통이 오랜 기간 단절된 상태에서 남한 중심의 역사관이 너무 깊어지며 단절적으로 역사를 인식한 결과다.
이러한 단절적 역사 인식의 또 다른 예로는 강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 국가의 영역 논쟁이다. 최근 고조선의 패수 및 동북아역사지도 등의 논쟁은 주로 고대사의 영역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대의 국가나 문명이라면 학창 시절에 사회과부도에서 배운 컬러로 영역이 표시된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고대에는 지금과 같은 국경도 없었고, 영토에 대한 관념도 없었다. 사실 역사지도의 영역은 대부분 불충분한 자료에 근거한 참고적인 것이다. 고대의 역사가들이 나라나 민족의 경계로 강을 드는 이유는 각종 물류가 수계를 통해 교환되고 사람 간의 정보 교류가 모두 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강이 경계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고학적 연구를 보아도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계통의 문화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대처럼 국경에 말뚝을 치거나 철조망을 치지 않는 이상 강을 사이에 두고 다른 집단이 살 리는 없다.
고대에도 강가의 비옥한 농토와 강을 통한 정보와 물류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들이 문명을 선도했다. 근동의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비롯해 4대 문명은 모두 강을 중심으로 서로 통해 교류하며 발달했다. 17세기에 러시아가 시베리아에 진출한 지 60여년 만에 캄차카반도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수계를 통한 접근 덕택이었다. 코사크인들은 짧은 여름에 북극해를 통해 시베리아를 흐르는 레나강, 예니세이강의 하구에 접근해 강을 따라서 각지에 진출했다. 실크로드나 유라시아 초원에서도 사람들은 가축들을 먹일 수 있는 실낱같은 강줄기를 따라서 이동하고 번성했다. 고조선이 중국에 처음 알려진 계기도 사실 압록강 및 두만강의 수계를 따라 백두산 일대의 모피를 교역하면서다.
중국은 진시황 때가 돼야 본격적으로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영토 중심으로 나라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 춘추 전국시대에 중원의 각 지역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 교역하고 청동기를 주고받으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니 영역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강의 이름을 들어 영역을 밝히려는 것은 현대인의 관념이 투영된 소모적인 논쟁이다. 설사 어떠한 결론이 난다고 해도 고고학 자료가 그러한 결과를 뒷받침할 리도 없다.
지난 세기에 제국 열강은 현대적 관점이 투영된 역사관으로 자신들의 침략을 합리화했다. 이제 세상은 무력과 역사적 정당성을 내세운 영토 확장 대신에 세계를 순식간에 잇는 정보와 문화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가 고대사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 가는 동안 세계의 문명사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역점을 두는 일대일로는 결국 고대 문명 간의 교류를 들어 자국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지 자국의 영토를 넓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고대사에 필요한 것은 해결되지 않을 강을 통한 영역 논쟁이 아니라 세계사적 보편성과 교류의 흔적이 아닐까.
[펌] / 출처: 서울신문 /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 2017-10-29 23:47
남천 열매
연구장비 수출할 수 있어야 선진국
1000만 건의 바둑 기보가 있다고 치자. 그중 임의로 선택한 한 기보의 임의의 수가 어디에 놓였는지를 알 수 있을까? 바둑 한 판에 놓이는 바둑돌이 약 300개이므로 1000만 건의 기보는 무려 30억개의 돌이 놓인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암호를 해독하는 인간유전체프로젝트는 바로 이와 유사한 작업이었다. 1990년 미국이 주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로서는 인간의 달 착륙에 버금가는 거대한 과학기술 연구개발 계획이었기에 영국⋅독일⋅일본⋅중국 등 나라들을 끌어들여 역할을 분담했다. 30억쌍에 달하는 인간 DNA 염기서열을 알아내는 데 30억달러의 예산과 1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1998년 미국의 셀레라제노믹스라는 한 바이오 벤처회사는 인간 DNA 분석을 인간유전체프로젝트의 10분의 1에 불과한 3억달러로, 그것도 3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고 발표한다. 이 주장은 2000년 6월 26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인간 유전체의 첫 번째 조사 완료`라는 역사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증명됐다. 이 사건은 현대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있어서 도구, 즉 연구장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셀레라제노믹스사는 DNA 염기서열을 분석할 수 있는 230여 대의 DNA시퀀서를 마치 공장같이 깔아놓고 여기서 얻어진 데이터를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분석했다.
신약이 시장에 하루 먼저 출시되면 약 100만 달러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유사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경우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기업의 사활을 좌우할 정도로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다. DNA 마이크로어레이 등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장치로 과거 하나씩 진행하던 실험을 수백 건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와 같이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현대 과학기술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동시에 도구, 즉 연구장비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장비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는 절대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새로운 도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첨단 연구장비를 통해서 가능하다. 단일세포 수준에서의 다양한 단백질의 특성을 보고자 하는 연구, 북한에서의 핵 실험 여부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분석, 동물보다 빠르게 지진을 예측하는 분석기술 등 인류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연구는 동시에 새로운 연구장비를 필요로 한다. 올해 노벨 화학상은 바로 단백질을 포함한 생체물질의 구조를 변형되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는 장비인 초저온전자현미경(Cryo SEM) 기술을 개발한 자크 뒤보셰 외 2명에게 주어졌다. 이렇게 새로운 연구장비의 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과거에 불가능했던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첨단 연구장비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가의 첨단 연구장비는 아직도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연구장비를 사다가 연구만 잘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어떤 연구장비가 상품화되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그 장비를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해당 분야 최고 성능 연구장비를 개발해 보유하지 못한다면 첨단 분야 과학기술 연구개발은 다른 나라에 항상 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가 총량 규모로 세계 다섯 번째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과학기술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구개발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도 현대 과학기술에서의 연구장비가 갖는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펴지 못했기 때문에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추격형 성장에서 선도형 경제로 탈바꿈하는 데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상품⋅기술이 절대적이고 그 바탕에는 첨단 연구장비를 핵심 기반으로 하는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연구장비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펌] / 출처; 매일경제신문 / 이덕희(한국분석과학기기협회장) / 2017.10.29 19:16:23
포인세티아
좌회전 깜빡이 켜고 '毛澤東의 길' 가는 시진핑
'당이 국가의 모든 일 결정한다' 마오의 말, 40년 만에 黨章에 부활
시 주석, 불평등 해소 共富論 제기… 좌회전 강압 통치로 성공 거둘까
최근 19차 당대회를 통과한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당헌) 수정안에는 '비밀 코드' 같은 글귀 하나가 들어 있다. '당정군민학, 동서남북중,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黨政軍民學,東西南北中,黨是領導一切的)'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발언이다. 정부와 군,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과 중국 전역에 걸쳐 모든 일을 공산당이 결정권을 갖고 처리한다는 뜻이다. 마오쩌둥이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한 것은 1973년 12월에 열린 정치국 회의 때였다.
마오의 이 지침은 1978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자취를 감췄다. 덩은 반대로 '당정 분리'를 정치 개혁의 1 순위로 삼았다. 공산당의 영도라는 것이 모든 일을 다 맡아 하라는 뜻이 아닌데, 당이 시어머니가 돼 시시콜콜 정부 일에 개입하면서 행정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당 조직만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당의 권한을 정책 노선 설정, 주요 인사 추천 등으로 한정하고 권한을 대폭 아래로 이양하도록 했다.
당정 분리 원칙으로 당의 시어머니식 통제에서 풀려난 정부는 놀라운 효율로 고도 경제 성장기를 이끌었다. 후진타오 집권기가 끝날 무렵엔 서방식 거버넌스를 받아들여 정부와 군의 독립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나왔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 2기의 문을 여는 이번 당대회에서 마오의 이 발언을 당장에 넣은 것은 이런 덩샤오핑식 당정 분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공산당이 전면적인 통제를 하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후진타오 집권 말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관료 부패 사건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곳곳에서 시위⋅소요사태가 터졌다. 광둥성 우칸촌에서는 촌 간부 비리에 항의하는 시위가 3개월 동안 계속돼, 광둥성 정부가 결국 주민들의 요구에 굴복한 일도 있었다. 여기에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중국에도 밀려들면서 중국 공산당 내에서 집권 위기감이 고조됐다.
시 주석의 대대적인 반부패 사정은 이런 배경하에서 시작됐다. 지난 5년간 250명 넘는 고위 인사들이 당⋅군에서 쫓겨났고, 중⋅하급 관료 200만명 이상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처벌 면제의 불문율이 적용됐던 상무위원, 정치국원 등 고위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 주석이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황제 수준의 권력 기반을 쌓은 데는 이런 반부패 사정을 통해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이번 당대회에서 부패로부터 자유로워진 공산당이 강한 통제로 사회를 이끌어야 중국이 2050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시 주석이 이번 당대회에서 공부론(共富論)을 제기한 것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덩샤오핑 이후 30년간 계속돼온 선부론(先富論⋅먼저 일부 국민과 지역이 잘살게 한다)이 중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교육, 주택 건설 분야에 걸쳐 불평등 해소 정책이 강화되고 대대적인 복지 확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지식인들은 덩샤오핑에 대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고 평가한다. 천안문사태 진압 등으로 공산당 지배를 유지하면서도 과감한 시장경제 개혁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같은 화법을 적용한다면 시 주석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좌회전으로 중국이 21세기 중반까지 미국 반열의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중국은 수년 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길 전망인데, 그 이후에도 계속 강압 통치가 통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경찰국가가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로 올라설 것인지도 의문이다. 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둔 중국이 막대한 복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시 주석은 이번 당대회에서 2050년까지 중화민족 부흥의 대업을 완수한다는 멋진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그의 앞길엔 첩첩산중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펌] / 출처; 조선일보 / 최유식(조선일보 국제부장) / 2017.10.30 03:15
줄점팔랑나비
복지, 외국 껍데기만 따라가는가
선진국 제도 파악하는 '知彼', 우리와 맞는지 따지는 '知己'
정책의 맥락 아는 게 중요한데 선진 복지라면 무조건 도입해
아동수당 월 10만 원 준다지만 저출산엔 일⋅가정 양립 더 중요
추격형 경제를 졸업하고 선도형 경제로 진입해야 한다는 다짐이 지난 십여 년간 경제정책의 화두였지만, 복지 정책 입장에선 그 다짐이 부럽기만 하다. 제발 추격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싶기 때문이다.
후발자의 이득을 제대로 챙기기 위한 기본 요건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 선진국의 특정 제도가 좋아 보인다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 그렇게 된 사연을 생각해보는 것이 '지피'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필요에 의해 그리되었는지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기'는 우리의 맥락에 맞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선진국 복지제도들이 대부분 2차대전 이후에 크게 확장됐는데, 이는 4년간의 세계대전 동안 사회적 연대와 국가에 대한 신뢰가 크게 강화됐을 뿐 아니라 전후 30년이 '자본주의 황금기'라 불릴 만큼 역대 최대의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그들의 호시절을 그대로 재현해내지 못하는 이상 맥락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은 복지 정책 설계의 핵심이다.
이 정도 지피지기가 뭐 어렵겠나 싶지만, 우리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불과 몇 년 전 보육 지원 확대 과정을 떠올려보자.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 급식 문제가 불거진 후 스웨덴 같은 보편 복지를 지향해야 한다는 논쟁으로 확대되더니, 급기야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는 엄마의 취업이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어린이집에 자녀를 주 68시간까지 맡겨도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막상 보편 복지와 관대한 양육 지원의 상징인 스웨덴도 전업주부 엄마에게는 주 15시간 정도의 어린이집 이용을 지원할 뿐이다. 더구나 소득 수준에 따라 양육 지원에 차등을 둔다. 가구마다 사정이 다르니 모두가 필요한 서비스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려면 사정을 감안해 지원에 차등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 복지를 추구한다며,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바람에 어린이집 이용이 갑자기 공짜가 됐고 전업주부들은 대거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기 시작했다. 예산은 급증했지만, 정작 어린이집 이용이 절실한 취업모들이 어린이집 자리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됐다. 결과적으로 당시 결정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해진 정책 실패 사례이다. 초보적인 '지피'를 못해 후발자의 이득을 홀랑 낭비한 것이다.
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내년 예산안에는 1조 1000억원이라는 액수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아동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잡혀 있다. 5세 이하 아동을 가진 전체 가구에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월 10만원 때문에 자녀를 가질 것이라 믿고 예산을 짜다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동수당을 주장하는 복지학자들의 근거는 어지간한 선진국이 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의 복지 확장이란 시대적 경제적 맥락뿐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저출산에 관해 새로이 쌓인 지식까지 간과한 주장이다. 근래의 많은 연구들은 젊은 세대가 자아실현과 일⋅가정 양립에 대해 가진 기대치가 사회규범 및 제도와 괴리된 것이 저출산의 근본적인 병목이며 이 때문에 금전적 지원으로 출산율을 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우리의 복지정책은 여전히 '지피'를 익히지 못했다.
자녀를 가진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 간의 소득 재분배가 아동수당 도입의 주된 의도였다고 말을 바꾼다고 해도 이런 안타까움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유럽식 복지제도와 함께 복지제도를 세제에 내장하는 미국식 복지모델(hidden welfare state)도 차용해왔다. 그 결과 자녀세액공제, 자녀장려금(CTC) 등 세제를 통해 유자녀 가구의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를 이미 가지고 있다. 만약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기존의 다른 제도들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의 재분배가 더 필요한지, 유사 목적의 다양한 제도를 어떻게 조율하고 통합할 것인지 등을 언급했을 것이다. '지피'에 더해 '지기' 역시 문제인 것이다.
선도자란 자타의 경험과 그로부터의 교훈을 숙지하고 성찰한 후 모방이 아닌 새로우면서도 진일보한 경로를 설계해낼 수 있는 지적 능력자다. 우리는 스스로 선도자에 가까워졌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적어도 복지 정책에서는 아직 추격자로서도 하수다.
예측하건대 다음 대선 즈음해서는 아동수당을 배로 올리고 대상 연령을 두 배로 넓히는 공약을 놓고 정당 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이제껏 봐왔듯 설명 없이 슬며시 시작하고 선거 때마다 늘리는 방식이다. 그때쯤은 정책 목표나 제도 간 조율에 대한 합리적 계획이 마련될 것이라 기대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펌] / 출처; 조선일보 / 윤희숙(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2017.10.30 03:17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
전두환 말기 美 한국과장 방한
全 만나자 정부⋅국회 요인 줄서… 위 단추 잘못 채우면 아래 단추도…
文 정부 반 년, 대통령 과거 집착
아랫사람 ‘오버’로 정치 보복… 수사 종착역 ‘MB 욕보이기’인가
질서 있었기에 힘 있었던 촛불… 누굴 공격하는 횃불과는 달라
전두환 정권 말기에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블랙모어가 방한했다. 그런데 전 대통령이 덜컥 블랙모어 과장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다. 한국 대통령과 미 국무부 일개 과장의 ‘잘못된 만남’은 결국 성사됐다. 그만큼 한국이 미국이라면 껌뻑 죽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4⋅13 호헌 조치로 미국의 ‘민주화 압박’에 직면한 전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과장을 만나고 나니, 정부와 국회의 요인들이 블랙모어를 만나려고 줄을 섰다. 외교 의전을 아는 외무부에선 국장이 만나려고 했으나 “대통령을 능멸하는 거냐”는 ‘상부’의 압박에 결국 차관이 만나야 했다.
돌아보면 얼굴이 후끈할 정도의 과공(過恭)이요, 사대주의다. 지금이야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크게 나아진 것도 없다. 국무총리를 지낸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의 동아태차관보 정도를 만난다. 중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것이 우리의 능력과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대통령과 과장의 만남은 너무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 한 가지. 위 단추를 잘못 채우면 아래 단추까지 계속 잘못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촛불집회 1주년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덕을 크게 봤지만, 얼떨결에 집권한 것은 아니다. 2012년과 올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2012년에 집권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나았다. 그만큼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 패배 1년 후부터는 대선뿐 아니라 집권도 준비했다는 것이다. 집권 이후 시나리오와 국정 운영 프로그램을 점검했다고 한다. 대통령직 인수 기간도 거치지 않은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숨 가쁘게 정책을 쏟아내고 각종 화두를 던진 것은 오랜 준비의 결과였다.
‘적폐청산’ 구호나 검찰 국가정보원 개혁 프로그램도 급조된 것이 아니라 수년간 묵히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온 데 따른 것이다. 서훈 국정원장이 국내 정보 파트의 핵심 부서인 정보보안국과 정보분석국을 폐지한 것도 이미 준비된 개혁 프로그램에 들어 있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선 가능한 한 연내에, 안 되면 집권 1년 내에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2007년의 10⋅4선언을 복원하고 임기 내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반년이 다 된 지금, 뭔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선 남북관계부터 예상과는 크게 빗나갔다. 서른세 살의 김정은은 놀라운 속도로 수소폭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 국면에 한국만 발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대화 상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김정은은 핵보유국의 자격으로 미국과 ‘빅딜’을 한 뒤 돈이 필요하면 남쪽을 바라볼 것이다.
외부의 큰 그림이 깨지면서 문 대통령은 내부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여권에서도 걱정이 나올 정도로 ‘적폐청산’에 집착하는 것은 조급증의 발로는 아닐까. 문제는 대통령이 이렇게 위 단추를 채우면서 아래 단추들이 계속 잘못 채워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윗사람의 집착은 아랫사람에게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하고, 때론 ‘오버’로 나타난다. 급기야 문 대통령의 ‘잘 드는 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입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 실소유주 논란이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실제 소유주가 누군지 확인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대선도 아니고 지지난 대선, 10년 전 쟁점까지 까뒤집겠다는 건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정치 보복’ 이외의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현 여권 내에 윤석열의 오버를 제어할 만한 정치의 순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수 수사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수사를 하더라도 불필요한 인격 모독이나 압박용 계좌추적, 별건(別件)수사 등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MB 청와대와 국정원의 여론 조작은 수사하되, 그 종착역을 ‘MB 욕보이기’로 정해 놓고 몰아가선 안 된다.
단추를 잘못 채웠을 땐 풀고 위 단추부터 고쳐 채우는 방법밖에 없다. 문 대통령부터 과거를 향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아래 단추들은 저절로 바르게 채워질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촛불이 타오르며 하야 요구가 들끓었지만 결국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그리고 촛불의 선택은 문재인이었다. 질서 있었기에 힘 있었던 촛불은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횃불과는 달랐다는 점을 문 대통령이 기억했으면 한다.
[펌] / 출처; 동아일보 / 박제균(동아일보 논설실장) / 2017-10-30 03:00
히에로니무스 보슈(Bosch, Hieronymus, 1450~1516) / The Temptation of St Anth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