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破閑雜記-5]
불쌍한 ‘버지니아 울프’
요즘 우리 카페의 화두는 ‘버지니아 울프’다. 카페지기와 몇몇 친구들이 약간은 우울한 이벤트를 치르면서, 가을타령하고, 떠나고 싶다, 잊고 싶다는 둥 자조섞인 이야기들을 한다. 그리고는 급기야 박인환의 시를 끌어들이고 낭낭한 목소리의 시낭송 ‘목마와 숙녀’를 들추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 저녁 모임에서는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타킷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가슴속 어느 깊숙한 곳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그 무엇인가가 스멀거리고 있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중얼거린다. 그녀가 나를 아는데, 아니, 내가 그녀를 아는데... 기억이 날 듯 날 듯 하면서, 웅덩이에 흙탕이 어지럽듯이 온갖 상념이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그녀를 알게 되었다면 책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다 버리지 않은 잡동사니 같은 책을 넣어둔 궤를 열어 뒤적이니 모든 것을 밝혀 줄 문고판 책 하나가 눈에 띈다. ‘V. 울프의 作品과 生涯’ (D. 데이셔스 著, 金龍澈 譯, 1969)
그래, 이런 책을 읽은 적이 있지 하면서, 첫장을 넘겼다. 그리고는 나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내 손으로 그리고 쓴 것 같은 그녀의 초상화와 두 줄의 글이 씌여 있었다. ‘Woolf, Adeline Virginia' '1882-1941'
이 정도였었나 하고는 책장 몇 장을 들추어 보니, 내가 한때 우상처럼 여겼던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문맥도 보인다. 여기에는 밑줄도 쳐 있었다. 어떤 페이지에는 주석까지 달아놓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에 대하여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한때는 이 여자의 작품이나 생애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아쉽기는 하다. 그녀를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이번 주에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 누가 이야기 했지, 가장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고. 불쌍한 ‘버지니아 울프’여.
<문고판입니다. 오래되어 누렇게 바랬네요>
<그려다가 내지에 붙여놓았습니다>
<울프의 첫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때 좋아했던 제임스 조이스도 나옵니다>
첫댓글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생각하다가
작가가 아닌 한 여자로써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즉,그 녀의 이름에 woolf 와 vergin이 앞뒤로 들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서양인들에게도 이름(작명)과 관련된 운명 철학같은 것이 있을까?
엊저녁 강교수 上京기념 회식자리 에서
난 버지나아 울프의 全文 유서를 읽은 소감을
여러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물론 이 자리에는 吉成商會가 있었고...
내 눈을 토기눈 모양 빤히 보고 있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눈치를 못 챘는데...
이글을 보니 왜 그랬었나 나는 알수 가 있다.
길성이는 공부 할 시기에 조숙하여
책만 많이 읽은 것 같다.
길성에게 돌맹이를 한아름 택배로 보내 줄 까 한다고
돈묵에게 이야기 하니 재미있게 웃고 만다.
왜 길성이는
버지니아 울프를 예쁘지 않게 그렸을까?...
권수석!
문과출신이 대림건설의 대멘토가 되고
이렇게 문학에 까지 조예가 깊으니````
항상 배웁니다.
48회 위해서 더욱 활약해 주시길 부탁해요.
얼굴이야 어떠면 어떻겠냐만,
그의 삶이 때리는 각성이 있으면 되지.
다만 길성이 그 젊은 날에 버지니아 울프를 알았다는 게 무섭군.
대충만 알어. 넘 깊이 알면 테클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