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토요일, 오케스트라가 찾은 곳은 산맥님 진행의 왕방산(해발 737m) 임도였습니다. 포천과 동두천에 걸쳐있는 왕방산은 포천시의 진산으로 많은 전설과 유래가 전하는 명산이며, 특히 신라 헌강왕, 조선 태조와 태종 등이 방문해 ‘왕이 방문한 산’이라 해서 왕방산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문(訪問)의 ‘방’과 왕방산(王方山)의 ‘방’은 한자가 다릅니다. 포천의 진산인 만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왕이 방문한 산’이라는 네이밍을 하지 않았나 합니다. 어쨌거나 왕방산 하면 ‘임도’가 연칭될 만큼 왕방산 임도는 연칭되고 이 임도는 산악자전거(MTB) 타는 사람들에게 성지나 마찬가지인 곳, 왕방산 둘레길로 연결된 임도는 걷기 편한 길로 유명해서 ‘왕방산 여유길’로 불립니다.
오지 임도 연구만 30년의 산맥님, 공지에서도 “왕방산 숲길은 초보회원도 걷을 수 있는 길 많은 참석기대 합니다”라며 참가를 권유합니다. 산맥님의 명성(?)과 넓직한 임도, 그리고 여유길, 무엇보다 왕방산 임도 걷기 후 동두천 미2사단 내 클럽하우스에서 ‘스테이크 파티’가 강렬하게 유혹합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 카풀 4대로 14명이, 동두천 문화체험을 위해 재만님과 이스텐더님까지 참가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지 임도 전문가인 산맥님은 결코 편한(?) 임도로 만족할 분이 아니었습니다. 보통의 왕방산 임도는 예래원에서 시작 오지재에서 끝나는 8.2km의 순하고 편한 길, 이른바 ‘여유길’입니다. 모임장소인 오지재에서 시작할 때 당연히 넓직한 임도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산속 오솔길로 올라갑니다. 순간 몇몇 분이 당황, 조심스레 ‘험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산의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전망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방산은 737m 만만치 않은 산입니다. 동두천과 포천의 경계, 옛날 옹기 등 도자기를 구운 곳이라 오지재라 불린 곳에서 시작해도 왕방산 정상 가는 길은 멀고 험합니다. 몇몇 분은 외칩니다. “임도 간다고 해서 왔는데 왕방산 정상이 웬말이냐!” 그러거나 말거나 산맥님은 왕방산 정상을 향해 갑니다. 초반 구간 힘들어 하시는 분이 계셨지만 약간 더운 화창한 날씨, 시원한 하늬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바람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왕방산 산행이 힘들어도 나무 사이로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 상쾌하게 올라 갔습니다. 정상 근처에 가니 오른쪽은 포천시 전경이, 왼쪽은 동두천 일대가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마치 말 안장에 올라탔는데 좌동두천, 우포천을 거느린 형세, 왕이 방문할만한 곳이더군요.
왕방산 산행과 임도를 넘나든 걷기, 다이나믹 해서 좋았고 무엇보다 포천과 동두천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왕방산 정상까지는 잘 올라갔는데 힘들어 하는 분이 계셔 산맥님이 과감하게 코스를 단축합니다. 이어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데 지난번 영월 잣봉 보다 더한 급경사,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등 난데없는 릿지(ridge) 산행, 졸지에 왕방산이 유격훈련장이 됐습니다. 정상에서 임도까지 곧바로 내려오는 길, 밧줄에 의지하고, 갈수기 바닥을 드러낸 계곡을 따라 내려갑니다. 700m 밖에 안되는 ‘길없는 길’을 내려오니 임도, 모두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치며 비로서 얼굴이 활짝 펴집니다. 임도 중간, 다시 오지재까지 3.55km를 여유롭고 편안하게, 가을분위기를 만끽하며 걷습니다. 걷다보니 오지재 입구, 시작할 때 눈길이 자주 갔던 넓직한 임도 바로 옆이었습니다. 그런데 코스를 단축하다보니 예정보다 1시간이나 일찍 끝나 여유가 생겼습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근처 소요산으로 갑니다.
동두천의 대표적 명산, 가을에 특히 아름다운 곳, 왕방산 산행 후 찾은 소요산은 덤 정도가 아닌 진품이었습니다. 워낙 짧은 시간 둘러봐야 하기에 소요산 자재암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소요산 자재암이 풍기는 뜻대로 40여 분 동안 ‘소요자재(逍遙自在)’ 구속됨이 없이 자유로이 슬슬 거닐어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되어 동두천 보산동 앞 미2사단 캠프 케이시(camp casey) 앞으로 갑니다. 방문자 센터에서 수속을 하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풍경이 달라지는데 부대 안은 한국 땅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입니다. 미군기지를 한국 땅 안의 미군주둔지로 이해하는데 힘없는 나라, 1950년 한국전쟁 시 단 한줄로 전시작전권을 넘겨준 나라라 해외파병 미군 중 가장 특수지위를 누리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1953년 휴전 이후 미군주둔이 시작, 동두천은 기지촌으로 유명합니다. 미국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며 동경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민족적 모멸감이 동시에 드러나는 곳, 그 불안하고 불편한 동거는 1992년 10월 28일 기지촌 여성 윤금이(당시 26살)가 미군 케네스 마클 이병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일로 인해 주한미군지위협정(약칭 SOFA) 개정요구가 빗발쳤고, 그나마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은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낙화가 이 사건으로 93년 4월 동두천을 찾았을 때, 보산동 주민들의 무표정과 무척 추웠던 기억이 강하게 남은 곳이기도 합니다.
동두천 기지촌하면 안정효 원작으로 장길수 감독이 연출한 <은마는 오지않는다 1991>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뮤지컬 아닌 스크린으로 보는 <미스 사이공>을 보고 후기로 올렸던 글인데 그 글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전쟁의 참상은 여성에게 더 가혹합니다. <은마는..>는 미군에게 (영화에서는 반미감정을 드러내지 않을려고 UN군이라 표현) 겁탈당한 강원도 금산(가공의 곳)의 언례(이혜숙)라는 젊은 과부의 얘기를 따라갑니다. 미군에게 겁탈당해도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선 여자, 살기위해 기지촌 양공주 삶을 시작한 그에게 손가락질 하던 동네주민들, 마지막에 언례는 분노해서 외칩니다 “니들이 한게 뭐 있냐고...” 이혜숙과 김보연, 그리고 방은희가 나와 높은 작품성과 흥행을 올렸던 영화였는데 촬영 대부분을 보산동 기지촌에서 했습니다.
1992년작 <은마는 오지않는다> 스틸 컷. 기지촌 여성의 굴곡진 삶을 다룬, 어쩌면 <미스 사이공>은 우리 얘기인지도 모를 정도로 유사성이 강하다. <은마...>에 나온 방은희 이혜숙 김보연
[참고] 낙화, <미스 사이공>, 참혹한 전쟁에서 핀 것은 사랑 아닌 모성애...| 관람느낌♠후기방 (2016. 12. 1)
여담으로 미2사단 부대마크는 인디언추장(Indianhead)이고 반전의 상징으로 존 레논이 즐겨입은 군복에는 미2사단 마크가 선명하게 나옵니다. 가수 나미는 동두천에서 태어났는데, 집에서 레코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레코드에서 나오는 노래를 때라 부르며 춤을 추곤 했는데, 지나가던 미8군 관계자의 눈에 띄어 미8군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그 때 그녀의 나이는 6세 였습니다. 나미의 히트곡 중 하나가 ‘인디언 인형처럼’이 있는데, 노래와 미2사단은 아무 관계없는 댄스곡이지만 묘한 인연을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부연하자면 우리가 즐겨 먹는 '부대찌개'도 미군기지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미군기지 주변에서 나온 (폐기)음식을 한데모아 끓여서 먹던 일종의 탕, 의정부 미군기지에서 시작됐다고 하나 가장 큰 미군기지였던 동두천에서 더 일반화된 것이죠. 동두천 하면 부대찌개인데...
동두천과 기지촌, 어두운 얘기를 오래한 것은 산맥님 덕분으로 클럽하우스에서 스테이크 등 다양한 음식을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 대부분의 회원들은 서울로 돌아 갔는데 하우스 와인을 좀 드신 젠틀맨님 덕분(?)에 몇분이 남아 보산동 거리를 거닐고 예전 거리를 추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철로만 있고, 기찻길 옆으로 허름한 건물에 조명만 휘황찬란 했던 곳, 2006년 경원선이 전철화 되면서 신설된 보산역으로 거리는 깨끗하게 정비됐지만 미2사단 병력 대부분이 평택으로 이전, 규모가 줄어든 미군으로 인해 토요일 저녁이 너무 한산,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산맥님 진행으로 왕방산 임도 아닌 산행(?)과 릿지 하산, 시간이 남아 찾은 소요산, 그리고 동두천에서의 ‘스테이크 먹방’, 하루에 너무 다양한 체험을 즐겁게 한 날이었습니다. 호연지기가 연상된 왕방산도 좋았지만 동두천에서의 음식문화 체험과 시간여행도 값진 기회였습니다. 임도 걷기 아닌 산행으로 다이나믹한 걷기를 하려다 바짝 긴장하신 산맥님과 함께 즐겨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동두천과 포천의 경계, 오지재에서 시작한 왕방산 임도... 저 넓직한 임도로 가는 줄 알았는데...
왕방산 안내도를 보시면 오른쪽 왕방산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임도로 내려오는 코스
넓직한 임도를 버리고(?) 왕방산 안내문 옆 오솔길로 올라갑니다.
왕방산 정상 3.1km... 초반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전망이 끝내줍니다.
화창한 날씨,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왕방산 정상 근처. 동두천이 보입니다.
사진 왼쪽이 포천시. 발 아래는 대진대학교. 포천의 너른들이 한 눈에~~
왕방산 정상은 포천시. 737.2m 높진 않아도 위엄 가득한 산
도장 찍는 곳~~
영월 잣봉 보다 더 가파른 내리막길
유격훈련 하듯이~~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왕방산 정상에서 임도 까지 능선길 700m, 체감상 꽤 길었습니다.
고생 끝~ 행복시작. 참가자들 모두 이런 임도만 생각하고 왔다는데~~
가을 분위기 물씬 납니다.
왕방산 임도, 여유길...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요~~
1시간의 여유~ 근처 소요산으로 갑니다.
가볍게 걷기에 좋은 길... 단풍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네요~~
소요산 자재암까지 안 간 이유는.... 입장료 때문~~
한국 안의 미국땅... 미 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
샐러드
빵
티본 스테이크 세트가 26달러. 한화 31,200원 정도 합니다.
90년대 철로변 허름한 건물, 휘황찬란한 조명이 기묘한 공존을 이룬 곳, 수도권 전철이 놓이고 보산역이 신설된 곳. 너무 말끔~~
잠시나마 동두천 시간여행을 즐겼습니다.
* 가을이라 웬지~~ 문득~~ 가을우체국이 생각나네요... 윤도현의 '가을우체국 앞에서'를 듣습니다...
* 인물사진은 잠시 후에 올립니다.
첫댓글 낙화님 의 후기는 항상 지역
해설가 보다 더 섬세하게
올리는 정성에 저도 감탄 ! ㅎ
수고에 감사합니다 ^^
가깝고도 먼 동두천
이제서야 가봤네요ㅎㅎㅎ
왕이 방문했다하여 왕방산!
가을이 왔음을 세삼느끼며
지대로 느끼고 왔어요~~~^^
왕방산 정상에서 극하강 길을 내려올때
밧줄을 어찌나 꽉 잡고 내려왔는지
아직도 손바닥 통증이 남아있네요~ㅎ
힘들었던 순간도 잠시,
한없이 걸어도 좋을 가을햇살 찬란한
천국같은 임도길이 너무 짧아
아쉬움 맘까지 있더랬어요~ ㅎ
사진이 예술이에요
수고하셨습니다
흥! 한개도 안부러워요~
유격~~유격~~~!! 그정도면 특전사해도 될듯요~^^
너무나 파란하늘과 구름에 힘든기억 다 날아가버렸죠 ㅎ
스테이크 밑에 자를대고 사진 찍어야되는데 ~~
옛날 군대 말년차때 용산 출장가서 장교식당에서 스테이크 시켜먹었는데 크기가 진짜로 쟁반크기. tea 한잔이 500cc, 게다가 무한리필 ~~
정말이지 배가 터질거같아서 질려버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