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을 가장한 구라청의 오락가락 예보로 망설이다 결국 토요일 저녁 순천으로 내려갔다.
다음날 올라오는 기차시간과 라이딩 외 맘 속에 담아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4시 기상, 5시 라이딩 출발.
아직은 어두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닭의 꼬끼오 소리와 함께 자전거 위의 전조등이 움직인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여명은 밝아오고 조계산 자락 상사호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조용히 매화가 "나 여기 있어요" 한다.
차 소리 없는 도로를 아침 산책하듯이 주변 사물 깨어나지 말라는 마음으로 달린다.
조계산을 향한 임도를 본격적으로 업힐하는데
보리밥집 팻말이 반갑다.
흐린 날과 간간히 뿌려대는 빗방울로 아직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이미 이곳의 나무들은 옷을 갈아입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새벽 4시 일어나 컵라면과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신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고 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소비한 칼로리가 있어
보리비빔밥과 파전 곡주로 에너지를 다시 채운다.
잠시 내린 비로 젖은 옷가지도 장작불에 말리고
오리지날 원적외선을 이용한 찜질로 면역력도 강화시키고..
이른 출발의 혜택으로 잠시 여유를 가져본다.
다시 조계산의 위성봉인 고동산을 향한 업힐..
주변의 편백나무 수림이 장흥 축령산 못지 않다.
그렇게 올라올라 고동산 정상.
흐린 하늘이 옥의 티랄까..
주산인 조계산 북쪽을 제외하곤 사방이 틔여 눈에 걸리적거림이 없다.
발 아래로 낙안읍과 벌교벌판, 멀리 여자만의 바다가 펼쳐져있다.
이슬비와 함께 불어대는 바람을 뒤로하고 낙안읍성에 입성.
저자거리와 동헌 그리고 그야말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 돌담 사이를 즐기고
따뜻한 커피로 피로를 풀어본다.
잠시 몸이 뎁힌 후 벌교로 다시 출발.
사실..
이번 라이딩의 숨겨진 목적지 태백산백 문학관에 왔다.
젊은 시절 연속극 기다리 듯 한권 한권 출간될 때를 목 빼며 기다렸던 태백산맥.
마침 대기하고 있는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요청해 조정래 작가의 삶과 집필사연을 들었다.
이미 40여년 전이지.. 1983년부터 89년 까지의 대학 재학시절이 집필기간과 딱 일치한다는 해설을 들으며
이런 우연이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콱 박힌다.
지금은 책꽂이 어느 구석에 먼지 쌓여 있을 태백산맥을 다시 꺼내 볼 요량이다.
또한 문화해설사가 절절한 목소리로 읊어주는 박기동 시인의 "부용산"..
벌교 한 자락에 누워있는 일찍 요절한 동생을 그리워 하며 지은 시.
이별의 아픔을 여과없이 우리의 가슴에 스며들게 한다.
벌교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단어 "참꼬막"
주변에 널려있는 꼬막정식 집을 패쓰하고
벌교시장에서 싱싱한 참꼬막을 사서 바로 조리해 주는 집으로 갔다.
낙지 도다리 멍게의 호위를 받고 나타난 주인공 "참꼬막"
좋은 건 다 올라온다는 서울에서도 맛보기 쉽지 않은 참꼬막을 벌교 본진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이번 라이딩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흐린 날씨가 아쉽기는 했지만
이미 봄이라 알리는 꽃들이 반겨주는 조계산 원정이었다.
라이딩은 말할 것도 없고
시골미 넘치는 보리밥집
옛내음 풍기는 낙안읍성의 초가
피 끓던 젊은 시절을 잠시 소환하게 해준 태백산멕 문학관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식도락.
다섯 사내의 1박2일은 멋졌다.
부 용 산
박기동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1947년)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데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1998년)
첫댓글 독수리 오형제(?)의 이야기
마음 맞는 멋쟁이 님들의 발자취가 결코 예사롭지 않았음에 박수를 치며 대단히 수고 많이 하셨다는 말씀 드립니다.
다섯 독수리 모두 저마다의 개성이 있지만
마음만큼은 하나로 똘똥 뭉쳐 즐겁게 라이딩하고 왔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이번 여행의 묘미는역사문화탐방 라이딩인 듯 합니다
1일차 새벽 35킬로를 달려 용산역에 도착하여
5시7분에 출발하는 KTX열차에 몸을 싣고 순천에 도착하여 봉화산 상사호 선암사를 찾아보는 맛이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라이딩였고
2일차 조계산 낙안읍성 그리고 이번 여행의
최대 백미인 벌교 조정래 문학관을 보면서 어렸을적 살았던 우리동네의 모습과 너무 똑같은 추억을 잠시 회상해봅니다
물론 사진에서 보는게 다가아닌 힘든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5분이 뭉쳐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모습 또한 건강 수명을 5년은 늦출수 있다고 감히 장담합니다
코스 기획하고 안내하시느라고 봉사하신 하이웰님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 날 100키로의 부담에도 본 라이딩에 즐거운 맘으로 함께 해주신 블랙님께 감사드립니다.
역사 문화 탐방의 기회가 더해지니 지방 라이딩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 같군요.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번짱님덕에 힘든(?)라이딩과 멋진구경 문화탐방 했습니다
힘든게 아니라 호사지요 ^^
감사합니다 ~~
내가 좋아 하는 일이라면
힘든 일도 즐거운 일이 된다는 아주 일반적인 원칙이지요.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시의 배경 : 오빠의 동생이 시집을 가서 24세 요절한 동생의 넋을 표현한것이라고 함>
부 용 산
박기동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1947년)
저의 꿈은 문학가 인데... 세상 밥먹고 살자고 문학가 꿈을 펼치지 못한 한을 시로 적어 보려는데
처음 시작할 한구절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천에서 돌아와 부용산 시에 얽힌 사연을 찾아보니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펼쳐진 여러가지 사연이 있더군요.
어쨌거나 태백산맥이라는 소설과 부용산의 뒷이야기가 어우러질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계속해서 순정님 일진이 안좋은것 같던데
본인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하시길요.
수고 많았습니다..
조정래선생의 태백산맥...
장편이었지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던 나에겐 가슴에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벌교에 조정래문학관까지 라이딩중에 다녀오셨다니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셨네요?
왕부러워요~^^
문학관 탐방이 기억에 남는 라이딩이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뒷이야기를 접하니 더 흥미로웠습니다.
참고로 조정래 문학관은 이곳 태백산맥 문학관 외에도 김제에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 고흥에 조정래 가족문학관 등 세 곳이라는 이야기도 여기서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에 여행하실 때 들러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포루투칼 한달살기는 어떠신지.. 제가 더 부럽다는..
나중에 여행기 많이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