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제주 여행이라 하면 제주도만의 자연 풍광을 즐기려고 한다. 성산 일출봉이나 섭지코지, 송악산 둘레길, 비자림, 올레길, 우도 등 수없이 갈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이기는 하나 뒤로 밀리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나의 묵은 숙제를 해주듯 미뤄둔 곳을 모두 갔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도 미술관 탐방을 하게 한 주요 원인 이었다. 그러나 여행의 마지막 날은 비가 멎고 화창하게 맑은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보게 되었다. 공항 부근에 자리한 이호 테우해변에서다. 이호는 지역 이름이고 테우의 뜻은 제주도 토속어로 뗏목을 말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 해변을 찾아가는 도중 하늘과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 보이는 커피숍에 들렀다. 나는 여독을 풀기 위해 달콤한 카라멜 마키아토 한 잔을 시켰다. 혀끝에 감도는 단맛은 온몸의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의자에 기대어 창밖에 그림처럼 펼쳐진 제주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자유를 품은 바다는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에서 아름답거나 지독하게 고독해지기도 했다. 나는 씹을수록 더 깊어지는 고독을 기억 속에 곱게 담았다.
그렇게 짧지만, 긴 시간이 흘러간 듯한 순간이었다. 간간이 비행기가 점으로 나타났다가 점점 크게 보이는 하늘을 품은 테우 해변에 도착하였다. 활처럼 휘어진 해변에서 내 몸을 관통하는 바람을 맞으며 보헤미안처럼 걸었다. 걷다가 해변 풍광이 탐이 나서 종이 위에도 슬쩍 그려 담았다. 현장 스케치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할 수가 있어 좋다. 그 매력이 나를 여행 속으로 젖어 들게 한다. 우리는 테우 해변을 떠나 제주 동문시장을 끝으로 여행의 일정을 끝냈다. 나는 동문시장 내부를 바람처럼 둘러보고 짬을 내어 시장 입구 광장에 앉아 어반 스케치했다. 몇 장의 스케치는 제주 여행 일지가 되었다. 나는 지금 작업실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시려고 잔을 들었다. 잔 속에서 제주의 바람 소리가 휘파람처럼 들려왔다.
첫댓글 좋은글과 사진. 멋진 그림을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