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성경 매일 1장씩 읽기를 하는 중에 사도행전을 읽어 가며 초기 교회 상황을 이해해 보고자 살펴보며 정리한 것을 올려봅니다.
(유추한 내용 중에 잘 못 이해된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도 행전 1장의 개략
.4복음서의 기록 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냄 되심에서 사도행전 1장의 연결 내용은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신 3일 째인 일요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변화되신 부활의 몸으로 나타내 보이시고 >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하며 걸어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그 날 밤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어떤 집에(마가의 다락방 일 가능성이 높다 )문을 닫고 모여 있을 때(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음)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나타내 보이시고 >
.그 8일 후 도마도 함께 있을 때 나타내 보이 셨다 >
.그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서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이를 할 때 또 나타내 보이시며 베드로에게 3번씩이나 제자들을 잘 이끌라고 명하신 후 >=
사도 행전으로 연결됨이다.
.사도행전 1장 12절의 내용으로 유추해 볼때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다시 유대로 올라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제자들과 자주 찾았던 그리고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군병들에붙잡혔던히셨던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기 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시며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우신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였었고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던 다락방 곧(마가네 집의 다락방=마가네 집은 120명이 모일 수 있는 큰 다락방을 갖는 정도의 부유했음과 대 제사장을 잘 알고 지낼 정도의 위치에 있을 만큼( 요18장15절) 유력한 집안 이었을 것이다 .
이 곳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가족들과 따르는 120명쯤의 사람들이 모여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증거할 사도를 뽑은데
그 조건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실제 목격 했던 사람만이 그 자격 조건이 갖춰지고 그 중에 제비 뽑아 맛디아가 가룟 유다를 대신한 제자로 선정된다.
1,320년경에 활동했던 헬라 역사가 '니케포루스'의 교회사 기록(Historia eccl., 2, 40)에 따르면, 사도 맛디아는 유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터키 카파도키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했고 A.D 80년경 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오늘날의 조지아 공화국에 해당하는 콜키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사도행전2장 읽음
.사도행전 2장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시어 성령이 제자들에게 역사 하심이며
성령이 임하신 후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1.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세계 각 나라의 말 곧 방언을 하게 하신다.
2. 이 방언을 들은 각 국에서 모여든 무리가 성령의 역사에 놀라워 할 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그들에게 이 성령의 역사의 나타냄과 예수님과 자신들이 목격했던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함으로 거기에 모인 약 3천명쯤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여 제자들이 된다.
3. 이 일 후에도 사도들로 인하여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냄이 되자
그 무리들이 삶의 목숨과도 같은 재물들은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내어 놓아 같이 서로 나누며 통용하는 상황이 전개 된다.
☆. 2천년 전에 있었던 이러한 일의 상황 전개를 읽고 있는 우리들은 이러한 일이 과연 사실로 있었던 일일까?를 그랬을 거야 라고 대충 넘어가려 하지 말고
확실하게 증명되어 흔들림이 되지 않는 믿어짐이 자신의 마음에 이루어 져야 함이다.
즉
. 그 때의 상황을 공감해 보며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갑자기 수천명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음이 가능 할까.
.1,400년이 넘게 지켜왔던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유대교의 신앙을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바꾸어
자신들도 예수 죽임이 마땅하다고 동조 했거나 방임 했던 사람들이 이미 십자가 사형으로 죽어 없어진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을까?
.초기 곧 오순절 날 이러한 기적이 일어남이 없었다면 제자들이 가족과 생업으로 돌아 가지 않고 목숨 버려 복음 전도에 올인 하는 일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
.초기 성령의 강한 역사로 기록된 내용 같은 일이 없었다면 복음 전파자들을 가두고 죽이는데도 죽음을 무서워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이 불이 타 오르듯 전파될 수가 있었을까?
.목숨을 버려가며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세상적인 얻음의 유익이 하나도 없고 다 잃어 버려도
자신들이 겪었던 사실들을 목숨까지 잃어가며 전하는 힘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그들이 추구한 진리와 거짓 없는 진실된 마음의
증언이 조금이라도 또 무엇을 얻기 위해 거짓 꾸밈이라 할 수가 있을까?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
.만약 그 때에 내가 그 제자들과 같은 일에 동참 했다라면 왜 그럴 수가 있었을까? 를 생각해 봅시다.
사도행전 3장 읽음.
.사도행전 3장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날 때 부터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남이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놀랍게 여김으로
베드로와 요한은
☆☆"이러한 기적의 영광이 나타남은 자기들의 능력이 아니라고 즉시 거부하고 주 예수님의 역사하심이라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는 그 앉은 뱅이를 일으킬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잡아 일으킴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냄이 되셨다.6절
.그러면서 베드로와 요한은 놀라워 하며 모여든 무리에게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일으켜 세운 능력이 나타남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하므로 이 사람이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16절에 증거한다.
그렇다
내 능력과 내 이름으로 아닌 하나님과 주 예수님과 성령 역사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심이니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범사에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삶을 살 때
특히 심한 난관에 처했을 때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주님을 의지 하는 마음으로 그 난관을 해결 하려 행하면 그 바램이 선한 구함 일때 자기로써는 불가능 했던 놀라운 이루심이 있을 때가 있다.
.반면 성령의 은사로 자기에게서 범인보다 뛰어난 능력이 나타냄이 될 때 = 사람 속에 있는 육신의 욕망은 자기가 높아지려 하고 자기가 자랑스러워 지려 하는 본능적 죄성이 작용을 하게 되어
자기의 뛰어남을 사람들이 높여 줄 때 자기가 받아 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사람의 결국은 하나님께 강한 징계 심지어 돌이키지 않으면 버림과 죽음에 이르게 까지 하심을 성경 여러 부분은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누군가가 그러한 사람을 높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아니요 사람에게 하나님이 받아야할 영광을 돌리려 함이니 매우 잘 못된 신앙으로 이에 대하여 고린도 전서3장21절 에서는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라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으며
. 그러한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 또한
이 능력의 나타남이 내가 아니고 주님께서 하심이라고 사람들의 높임 받음을 철저히 배격 하여 뿌리쳐 버려야한다.
그렇다 이러한 사람들 곧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거짓 없는 순수한 거룩함을 좇는 사람들로 성령을 받아 바뀌어 버린 사람들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과 성령의 나타남을 죽음까지도 두려움 없이 전하는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는
보고 듣는 사람들의 영혼에 진실의 감화를 일으켜 그 영혼들을 회개케 하여 성령이 그 영혼들을 변화 시켜 거듭나게 하는 역사가 불길이 번짐 같게 하는 큰 복음의 역사를 일으켰기에 이 구원의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우리까지도 구원을 받게 역사하심이 되었다 생각 되어집니다.
.우리는 2천년 전에 그리고 그 전의 놀라운 하나님의 수 많은
피조물에 불가한 사람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성경 속의 기적들을 우리 마음이 믿게 됨은
그 기적들을 기록한 사람들의 거짓 없는 마음과 거짓 없는 행함이 그리고 하나님과 주 예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심이 우리 마음에 믿어짐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사도행전4장 읽음
.1장=예수님이 부활 후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늘로 승천. 맛디아를 제자로 뽑음
.2장= 120명쯤 되는 제자들 각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 방언함을 목격한 사람들이 복음의 설명을 듣고 3천명 쯤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됨
.3장 =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40세 쯤 되는 날때 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일으켜 세워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목격하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 모여듦에 이 기적의 일어남이 부활하신 구주 예수로 말미암음 임의 복음을 전한다.
.4장= 이를 목격하고 복음 설명 듣는 5천명쯤 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핵심의 예루살렘 곧 정치와 종교의 심장부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환호하며 이스라엘 전체가 예수님을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로 받아들일 기세로 들썩이니
메시아 예수님을 하나님의 배역자 이단으로 몰아 사형 시키게 하였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인 대 제사장과 제사장들과 각 지파의 대표인 장로들과 나라의 사건들과 결정들을 기록한 서기관들 곧 나라를 이끌어 가던 중추 세력들의 큰 위협이 되었다.
.이를 대처하고자 공회(나라 일을 결정 하는 현재의 국회와 같은)를 열었으니 이 공회는 종교 재판의 2번째 공의회로
첫번째는 예수님 처형을 결정할 때인 요한복음 11장47절~53절(...공회를 모으고 ..죽이기로 결정 53절 )이며
.사도행전4장5절~가 두번째 공의회이다
.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난 기적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 하였음을 목격한 사실을 전하여 온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섰던 이스라엘 지도자인 권세자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그들은 예상하게 되었을까?=
1.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죽인 하나님의 대적자들
2. 이스라엘 지역뿐만 아니라 각 국에 흩어져 살던 수 백만의 유대인들 중에 신앙을 지키려고 유월절등 3대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에 헌금하고 또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돈을 뿌렸으니 당시의 예루살렘과 성전에는 엄청난 재물이 걷히게 되었고 이렇게 걷힌 돈들은 권력자들의 지위를 유지 시키는 뒷배가 되어 지배국인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나 헤롯왕을 통하여 서로 윈윈 하는데 쓰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송두리째 뒤 엎어 버릴 상황이 전개 되고 있으니
.그들을 어떠한 방법을 다 동원 하여서라도 하나님께 향한 신앙을 제쳐 놓고 이를 강제로라도 막으려 대적한
.성령의 역사와 세상 권세의 전쟁 내용이 사도 행전의 역사적 내용의 기록이다.
.곧 그들은 4장16절~에 ..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라고 기록된 것 같이 자기들도 성령의 기적의 나타남을 알고 인정 하면서도
자기들의 지위를 지켜내기 위하여 제자들을 겁박하며 성령의 역사를 막으나
제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하심 전함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
4장 27절 28절의 이해가 난해 하나 25절 ~28절을 자세히 읽고 묵상 하면 27절이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해된 사람은 올려 주세요.
사도행전 5장 읽음
.예수님께 임하셨던 성령이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임하고 그 성령의 큰 기적의 능력이 제자들에게 나타냄 되어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성도들은 자기 소유를 팔아 복음 활동과 모인 사람들의 의식주등에 필요한 비용 충당에 참여함을 기쁨으로 참여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도 동참하나 그들은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목에 어쩔 수 없이 참여 하였기에 토지를 판 값의 일부만을 내어 놓으며 전부를 내어 놓는 것 처럼 속인다.
처음 부터 내어 놓을 때
우리는 이렇게 하겠노라고 떳떳하게 내어 놓았더라면 문제 될 것이 없으니 이는 그들의 믿음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 하였더라면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의 상황이었기에 설령 참여치 아니하였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 속임은 순수한 성령의 역사의 흐름을 거짓으로 흐리는 것이 되었으므로
어떻게 생각하며 너무 지나치다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목숨까지 빼앗김 되게 하였다.
(이렇게 크게 징계 하였던 베드로 자신도 후에 이방인 성도들과 같이 음식을 먹다가 유대인 성도들이 나타나자 같이 먹지 않는 것 처럼 외식하다가 바울에게 호되게 당한다 ).
. 이 사건은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능력의 높고 낮음 더하고 덜함에 있지 않고 거짓 없는 순수함이 중요함이니 이는 거짓과 죄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그 순수성을 버리고 타인을 의식 하며
위선과 외식을 하므로 스스로 마음에 큰 짐을 짊어 지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삶들이 되고 있음인가를 되돌아 보며 그 잘못됨을 하나님께 고하고 돌이켜 순수한 믿음으로 돌이킴 되도록 하여야 함이다.
곧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이 되어야 함이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가 온 예루살렘에 들불처럼 일어나자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섰던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큰 위협을 느끼고 강제로 억압하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지만 하나님의 사자가 사도들을 감옥에서 꺼내 복음 전도를 계속하게 하니
그들은 또다시
3번째로 공회를 소집하여 사도들을 처치 하려고 할 때 백성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던 바울의 스승이었던 율법 선생 가말리엘이
이 억지 스러운 제사장들의 행동을 막아 사도들을 놓임 받게 하는 내용이다(사도행전5장34~40절).
.이 사건을 살펴 보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 무리들은 부활과 영을 믿지 않는 자들 이었기에(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함이라. 행23장8절)
그들의 신앙은 현세의 삶의 목적에만 있는 정치적 신앙 이었기에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일을 두려움 없이 저질렀을 것이다.
사도행전6장 읽음
.교회가 성령이 충만하여
자기 재산을 내어 놓고 공동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죄성의 육신을 입고 있는 다수가 함께한 생활 속에서 문제점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문제점이 발생 될 조건 속에서
때로는 성격 차이
때로는 어떤 사람으로 인한 불편한 상황
본문에서는 고르지 못한 분배로 말미암은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킴이다.
"우리 모임 초창기인 70~90년 대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통용을 실천했었습니다."
상당기간 지속 되었으나
자기 혼자만이 아닌 가정적인 문제등 또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으므로 한때 활발했던 통용이 지금은 미미하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신앙 생활의 실천 행동의 열심있는 마음은 본받을만 하다 생각된다.
다만 공통 생활에서 현실적으로 닥치는 여러 문제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본문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순수하고 지혜롭게 이끌어 가야할
모본이 되는 사람들을 선정하여 그 일을 맡꼈다.
그리고 이일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지옥에서 하나님께로 구원 시키는 일이라며 복음 전파에 힘을 쏟았다.
사도행전7장 읽음
.6장에서 유대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스데반의 논리에 이기지 못하자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스데반을 고발함에 7장에서는
스데반이 무리 앞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 까지 얘기하니 이는 고발한 자들이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다 폐하고 이 거룩한 성전을 헐겠다 함에 대한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신앙 전체를 뿌리채 뽑아 내 버리겠다고 선동 했다 고발 당함이기에
스데반은 하나님의 참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이 아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실 곳은
선지자들이 미리 말한 대로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발등상이 될 정도로 위대하시다 말하며 조상들 부터 여기에 있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을 잘 못 인식하며 섬기고 있다 지적하니 이를 듣는 그들의 양심이 찔림이 되었으나 반박할 말을 잃고 분이 가득하여
강압적으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며 사울 역시 스데반을 처 죽임이 율법에 합당하다 여기고 증인이 된다.
.그러나 스데반은 죽어 가면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 보게 되었으며
.죽음 직전의 기도가
이제 무거운 육신의 껍데기를 나비가 번데기 집을 벗어 버리고 하늘로 날아 오르듯 홀가분하게 벗어 버림 됨이 임박함을 느끼고 이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십시요(곧 주님 계신 낙원으로 인도하소서 )기도 드리며
.또한 자기를 돌로 친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으니. 곧 저들이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기도를 마친 후
스데반의 영혼은 육신의 껍데기를 훌훌 벗어나 주님이 약속하신 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심이 이루심을 입으리라.
그러므로 성도들도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성도의 죽음은
번데기가 껍질을 벗어 땅에 두고 나비되어 하늘을 날 듯이
우리 영혼의 집으로 사용 되었던 육체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참 주인인 내 영혼은 주님계신 슬픔과 죽음이 없는 참 행복의 낙원으로 올려감이 된다.
사도행전8장 읽음
.성령에 충만함을 입은 스데반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 하다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도 복음을 깨닫아 주님을 믿고 죄 용서 받기를 기도 하는 주님의 마음이 나타난다.
.모세로 부터 주어진 하나님 섬기는 유대교를 송두리채 혼란 시킨 마땅히 죽임을 받을 자들이라고 여긴 청년 사울은 제자들을 잡아 가두는데 발 벗고 나섰고
유대 세상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위기를 모면하고 또한 누리고 있는 특권과 권력을 유지하고자
예수님 대속과 부활의 도 전함과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성령의 큰 역사를 뿌리까지 근절 시키기려고 심한 핍박을 가함으로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타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핍박을 피해 흩어진 성도들로 부터 오히려 여러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어 버리니
하나님의 능력을 사단의 힘이 막아낼 수가 없음이라.
.복음 전파와 함께 성령의 역사 하심과
.에디오피아 내시가 복음을 듣고 깨달아 구원 받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간과함이 되지 말자.
.제자들의 열심만으로 복음이 전파 되지 않고 항상 성령이 복음 전도에 표적의 능력으로 나타나 불신자들을 놀라게 하며 불신자들의 마음을 돌이켜 복음을 듣는 마음이 되게 하여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사도들에게 역사 했던 성령의 기적과 표적의 나타냄이 왜 ?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가에 대하여서는
복음의 비밀이 성경 말씀으로 완성된 사도시대 이후에는 오직 복음만으로 라는 에베소서3장3절~6절을 읽고 의문이 해소 되길 바랍니다.
사도행전 9장 읽음
.9장 내용을 그 상황을 유추해 보고자 합니다.
.21절을 살펴보면 사울은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잔해 하던 자가 아니냐 ") 앞장 서서 활보하며 제자들을 핍박 했고 제자들이 핍박을 피해 타처로 옮겨 가 복음을 전하자
대 제사장들에게 공문을 써 받아서 타 지역까지 쫓아 갔다.
.그 공문이란 = 각 지역에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그 지역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향한 신앙을 지켜가기 위하여 회당 곧 지금 같으면 교회당을 마련하여 안식일날 등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그 회당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회당 마다 회당을 관리하는 회당장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나 전도사 같은 위치의 구심점의 사람을 세워 신앙 생활을 하였음을 신약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발견하여 잡아 오려면 회당을 중심으로 모인 유대인들의 도움이 필요 했기에 신앙의 중심부에 있는 대 제사장의 회당장에게 보내는 공문은 명령서나 마찬가지이었다고 볼 수가 있다.
.이렇게 기독교를 말살 시킴이 유대교 신앙을 지키는 하나님의 일이라
확신했던 사울은 온 힘을 쏟아 복음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다메섹에 제자들을 잡으러 가던 중에 예수님 부활이 거짓이라 철저히 믿었던 사울에게 하늘로 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또 그 강한 빛으로 눈이 멀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사울(바울)의 마음은 어떠 하였을까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잘못한 자는 법대로 처벌함이 정당하다는 율법을 철저히 준행 해온
바리새인 중의 하나인 사울이었기에
은혜의 대속의 구원의 복음과 예수 부활의 사실을 증거 하며 복음을 전파 했던 제자들을 처단 하기에 앞장서 많은 성도들에게 위해를 가했던 사울 자신은 틀림 없이 부활의 예수로 부터 극한의 징벌과 죽음과 지옥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눈이 먼 고통뿐 아니라 그 영혼이 녹아 내리는 심정이었을 것이고 또 젊은 청춘이 이대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임에 대하여 본능 적으로 심한 번민에 쌓여 있었을 것이다.
.3일 동안 그러한 사망의 두려움 가운데서 사울의 기도는 어떠하였을까?=
.자기의 잘못 됨의 회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함과
긍휼의 베푸심을 입어 살림을 받으면 앞으로 복음 전파를 위해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 가겠노라는 다짐의 서원함이 있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제자들의 복음 전도가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이라 확신 하고 자신이 이 복음에 대하여 모르고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방해 했노라고 고하며 용서와 자비를 구하며
죽음과 멸망 앞에 혼신을 다하여 진실된 기도를 드리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던 자기에게 주께서 아나니아를 보내신다 말씀 하셨고 그 주의 말씀 대로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사울을 찾아와 그 과정을 설명하고 주의 긍휼하심을 입어 용서를 받아 눈 띄움을 받아으니.
.이 때의 바울의 주님께 은혜 받은 마음은
하나님의 선의 완성은 자기가 평생 배워왔던 법대로에서 이루어 짐이 아니라
오직 자기가 주님께로 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의 진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사랑과 긍휼의 사고로 바뀌어 버린 사울은 그 진리의 참됨을 깨닫고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
예전의 사울이었던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사망으로 달려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 하고자 목숨을 바쳐 복음 전하려는 마음이 굳혀 졌고 서원함이 되었을 것이며 그 다짐한 마음대로 성령의 힘을 입어 평생을 살아 감으로
주 예수님의 사울을 바울이 되게 하신 사랑의 은혜의 역사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심이 되었다.
사도행전10장 읽음.
.복 받았다 복을 받아
고넬료 집이 복 받았다
선민 유대인이 아닌데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고넬료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
반대로 선민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관습의 고집이 마음 눈 가려
성령을 훼방하고 핍박하여
은혜의 축복을 걷어차 버리고
스스로 저주의 길을 선택했도다.
복 받았다 복을 받아
우리 집안이 복 받았다
대부분 식구가 구원의 복 받았으니
영원한 천국의 복받음 보다
더 큰 복이 어데있으랴.
.육신이 힘들고 괴로워도
잠시 잠간 후에는 우리가 육체의 번데기 껍질 벗어 버리고
나비 되어 하늘 날으 듯
내 참 주인인 영과 혼을
주님 계신 낙원으로 옮겨 주시리.
사도행전 11장 읽음
.11장에서는 사람들의 관습의 고집스러운 마음과 이러한 관습의 고집이 하나님의 뜻하심과 대치 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떤길을 따라 순종해야 생명의 길로 가게 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즉 10장에서 이방이지만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심으로 섬기고 기도함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지들 까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입어 구원 받음으로 베드로가 그 들에게 세례까지 베풀어 성도로 인정 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된 유대인 성도들이 아직도 율법적 관습에 매여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일을 잘 못한 행동이라 비난을 하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그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그들에게 설명하므로 그 때서야 그들도 받아들인 상황이다.
곧 17절과 같이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이방인 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 생각 내 고집 그동안의 율법적 관습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하신 성령의 역사를 많은 유대인들은 그 역사함을 목격 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하나님 보다 자기를 내 세움이 되었기에 그들이
영생 얻음을 스스로 배척해 버린 것이었다.
. 지금도 마찬 가지이다
.성경이 은혜의 구원의 복음을 낟낟이 알아 듣게 설명을 하고
또 설령 자기가 그 복음의 비밀을 온전히 이해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변지 않을 하나님과 심판자이신 주 예수님이
확실하게 약속하신 영생의 약속의 말씀을
내 생각을 앞세워 자기 마음만 바라보고 그 자기 마음을 버리지 않고 고집 부림으로 구원의 말씀을 버려 버린다는 것이다
사도행전12장 읽음.
11장19절 부터의 전개되는 내용은 8장1절에 유대인 무리들이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심히 핍박 하므로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각 곳으로 흩어진 가운데 그 중에 일부가 가까이 있는 섬 지역인 구브로(키프러스) 까지 피신 하였으며 그곳은 4장36절에 기록된 성도들이 통용을 시작할 때 자기 소유를 팔아 성도들 앞에 내어 놓은 ☆바나바☆의 고향이다
이 바나바는 바울이 회심한 후 다메섹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매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성밖으로 내려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바울의 일을 상세히 고하여 교회의 핍박 자 바울을 교회와 함께 하게 하였으며(9장27절~)후에 바울과 함께 1차 이방인 전도 여행을 하였으나 2차 전도 여행 때 조카인 마가를 전도에 함께 동참 시킬 수 없다는 바울의 반대로 심히 다툰 후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인 구브로 섬에서 주로 전도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바나바가 구브로로 피해 갔던 성도들에 의하여 구브로에 거주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났고 그 성령의 활동의 힘으로 그들이 구브로 섬에서 가까운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 있는 육지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많은 헬라(그리스)사람들이 구원을 받음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구브로가 고향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 시켰으며
바나바는 안디옥과 가까운 지역인 고향 다소에 가 있었던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와서 같이 복음 전도 활동을 하여 안디옥 교회가 왕성하여 사람들이 그 무리를 처음으로☆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렀다
.이 때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그렇지 않아도 많은 핍박에 힘들어 있는 예루살렘 교회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하자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도우려 성도 돕는 모금을 하여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다.
이 무렵 분봉왕 헤롯은 유대인들의 비위를 마추려고 교회를 핍박 했으며
그 중에 그 어머니가 예수님께 자기 두 아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혀 주라 했던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이를 본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므로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옥에 가두어 놓았는데 밤중에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구해 감옥 밖으로 끌어 내며
감옥에서 벗어난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 방(예수님이 최후의 마찬을 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 내었고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장소)☆ 모여 있는 성도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로데라는 소녀가 베드로가 왔다는 소식을 전했으나 제자들은 도저히 이런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믿지 못하다가 베드로가 놀라는 그들에게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 처럼 성령을 훼방하고 교회를 핍박 하며 세상적으로 높아져 하나님을 거역한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아부하며 하나님 처럼 자기를 높이자
이를 당연시 하며 받아들여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자기가 받은 교만에 이르자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쳐 충이 먹어 죽게한다.
그렇다 하나님께 가장 큰 범죄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받아야할 영광을 자기가 잘해서라는 사람들의 높임을 자기가 받음으로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내쳐짐 되는 사건이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이에 바울도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3장21.22절) 하였고 또 바나바와 자기를 신처럼 높이려는 무리들에게 자기 옷을 찢어 버리면서 까지 소리를 지르며 높임을 부정한 일에(행14장13~15절) 경각심을 갖고 교훈 삼아야 함은
사람들의 심리가 무리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능력이 있는 인기 있는 사람을 지나치게 추겨 세우는 본능의 습성이 있기에
이런 일로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순수한 신앙을 무너뜨려 버리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13장 읽음
.이방인 지역에 떨어져 살면서 회당에 모여 안식일등을 지키며 하나님께 열심한 유대인들임에도 모세로 부터 주어진 율법에 굳혀 있어서 은혜의 복음 전함에 얼마나 적대적이었나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면서도 구원을 받지 못한 유대인들에 비허여
우리가 쉽게 얻은 구원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생각케한다
사도행전14장 읽음
. 두 곳의 안디옥
1. 첫번째 안디옥은 = 이스라엘 북쪽에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다메섹을 지나 더 북쪽으로 지중해를 끼고 있는 ㄱ 자 꼭지점 모퉁이 부분에 있는 시리아 지역의 안디옥으로
☆. 11장26절에 나온 성도들 무리를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 된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와서 교회를 크게 형성 시킨 지역이며 이 곳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택하여 1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한 지역이다.
2. 두번째 안디옥은 = 첫번째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베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구부로에 머무르며 복음을 전하다가 ㅡ 구부로 섬에 있는 바보 항구를 배를 타고 출발하여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버가항구에 이르렀는데 이 때 마가(요한)는 되돌아 가 버린다 ㅡ 거기서 윗쪽으로 향하여 ☆ 터어키 내륙 지역에 있는☆ 안디옥에 이르른다.
☆. 안디옥이라는 도시 이름이 지어진 것은 = B.C 170년 경에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 영토를 분활 해 다스렸던 셀류쿠스 왕조의 ☆ 안티오쿠스 왕이 그 지역들에 도시를 세우고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하여 안디옥 이라 명명한 지역 이름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프리카 북쪽 지중해 해안에 도시를 세우고 알렉산드리아 라고 명명 했고. 로마 황제 이었던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의미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북쪽 지중해 해안에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 이름을 가이사랴 . 라고 명명함과 갔다)
☆. 우리 교회가 성도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 아가페 큰 글 성경의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 곧 말라기서 뒷면에 있는 말라기로 부터 그리스도까지. 교회 역사 내용을 참고 하면 교회사에 대하여 많이 이해할 수가 있다.
. 14장에 기록된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에서 복음을 들은 아시아 지역(지금의 터어키)이방인들의 많은 수가 복음을 받아들이나 그 지역에 거주한 유대인들이 무리를 동원하여 핍박 하므로 핍박을 피해 옮겨 가며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가는 곳 마다 쫓아 다니며 방해를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가는 길에 그동안 복음을 전했던 지역들을 방문하여 교회에 힘을 실어 주며 다시 배를 타고 처음 출발 했던 다메섹 북쪽에 위치한 안디옥 교회로 돌아 온다.
☆. 전도 여행 중에 루스드라 지역에서 날 때 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 낫게 하므로 그지역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받들려 함에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 옷을 찢어 부인 하여 하나님이 받아야할 영광 받기를 강력히 저지 시킨다.
사도행전15장 읽음
1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안디옥 교회에 오래 있으면서(14장28절) .
.사람의 선이나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지 않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만으로 모든 죄가 사함 되어 의롭게 된다는 복음을 받아들였던 유대인 성도들 중에 율법주의 바리새인의 어떤 사람들의 주장은
이방인 형제들도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 하나님께 열심 하는 종교 활동이 옳다고 주장하여
이를 사도들을 중심으로
의논 하고 결정하는 내용이다.
13절에 나오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며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이다(12제자중 하나이었던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12장2절에 헤롯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
사도행전 16장 읽음.
.안디옥 교회에 이방인 성도들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 할례자들의 주장이 잘 못 되었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온전히 구원 받았듯이 은혜로 말미암은 자유함 속에 감사에서 나오는 자원하는 사랑의 나타냄의 교회가 되는 것으로 결정된 후에
바울은 바나바에게 1차 전도 여행 때에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 보자며 2차 전도 여행을 제안한다.
이에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시 중도에 되돌아 가 버렸던 마가도 데려 가자고 하나 바울이 거부 함으로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며 갈라서 버린다.
.이에 바나바는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인 구로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2파 전도 여행을 하였던 갈라디아로 행하되 1차때는 배를 타고 갔으나 2차때는 육지로 걸어서 간다.
1차 전도 여행 때에 마지막 전도 지역인 더베와 루스드라 지역에서 제자가 된 디모데에게 전도를 돕게하는 것 같다.
(후에 데모데가 바울을 가까이서 보조하는 부분이 성경 여러 곳이 언급되고 있다
사도행전17장 읽음.
.2차 전도 여행 중에 주의 사자의 인도하심을 따라 아시아 지역 전도를 중지하고 동 유럽 곧 지금의 그리스로 건너 가서 복음을 전한다.
.그 지역 역시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세력과 종교적 열심이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 회당이 각 곳에 있었으며 매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유대교 전통 예배를 드리며 또 모세의 율법 . 구약 성경들을 읽고 논했음을 엿 볼 수가 있다.
.1~3절에는 바울이 3주간 그곳에 있으면서 세 안식일 날 그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메시아 대한 구약 성경 말씀들의 뜻을 풀어 가며 그 메시아가 십자가에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 이심을 증명하며
또 자기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공부한 바리 새인으로 예수의 부활의 도를 전하는 제자들에 대해 앞장 서서 핍박했음과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등을 낟낟이 간증하며 구원의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이 바울의 설교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는 귀 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4절)
.이렇게 순수하게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환경은 성령의 역사에 의함이겠지만 그 지역 사람들의 지성적 수준도 크게 작용 하였을것이니
당시 그 지역 곧 헬라 지역은 높은 지성적 수준을 갖고 있었기 때문(1. 지중해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각 곳의 문화를 받아들였고. 2.소크라 데스 , 플라톤 등의 사상가들을 배출, 로마가 정복 하기전 곧 예수님 전 330년 경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연안 지역 뿐 아니라 머나먼 지금의 이스라엘,이집트 ,이라크,이란, 심지어 인도 국경 지역까지 점령 )으로 문화가 발달한 합리적인 지식인들이었기에(21절 참조. 고린도 전서 1장 5.6절 참조) 바울의 구약 성경에 예언한 메시아에 대한 뜻을 풀어 그 메시아가 예수님 이심을 증거함에 믿어짐이 되게 하였으니 곧 현대에 우리가 복음의 전도를 받고 구원 받은 상황과 흡사 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한 부류인 유대인들은 기존 유대교에서 그 사상이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들의 신앙을 송두리채 흔들어 버린다며 끝까지 쫓아 다니며 복음 전도를 방해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이 이 도 전함을 강제라도 억제 시키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겁박 했던 것과 같이 7절 로마 황제인 가이사를 내 세우며 까지 핍박의 세력을 키운다.
.이에 바울과 실라는 핍박을 피해 그리스 남쪽으로 내려 가며 복음을 전하며 육지의 최 남단인 아테네까지 이르른다.
.그 곳 아테네는 현재의 그리스 수도 일 만큼 해상 무역이 발달된 해안 지역으로 부와 문물이 발달되었던 곳이며
한편으로는 16절에 명시된 것 같이 온갖 우상들로 가득찬 지역임을 고린도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우리 나라 해변 지역에 우상이 가득함과 같음을 예상할 수 있으니 바닷가 사람들은 바다 생활 곧 배를 타고 어업이나 무역을 하며 예측할 수 없는 폭풍우로 말미암아 불의의 죽음에 이르는 사건들이 허다 했기 때문에 신을 섬기는 풍습이 만연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들을 만들어 그것들을 섬기고 심지어 단체로 그 우상의 신전을 만들어 단체가 섬기는 풍습이니 곧 우리도 어렸을 때 우리 지역에 명절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꽹가리를 치며 정해진 풍습을 따라 정해진 지역을 돌며 절을 하는 행사를 하였고 이웃 마을에는 옛날 부터 섬겨 왔던 지역 우상 섬김의 장소로
큰 당리 (대 당리)= 큰 당(굿 당= 염등리와 큰 당리 사이에 큰 당나무가 있어서 큰 당나무를 돌로 둘러 쌓아 우상을 섬기 지역)
.소 당리 ( 도청리 옆 마을로 작은 당 나무 동네)
.당 산리 = 마을 한 가운데 솟아 오른 동산 지역에 당(굿 당)나무가 있음.
. 이처럼 섬 지역과 해변 지역 특히 제주도에는 우상과 잡신을 거의 집 집 마다 섬기는 풍습이 있고
우리 지역도 집 집 마다 성주 동우 (집을 새로 지은 후 그 집을 보호 하라는 우상 단지)가 있지 않았는가.
. 이 처럼 문화가 발달된 도시 지역이면서도 바다를 끼고 있는 아덴 지역에 우상과 잡신 이 많은 것을 본 바울은
그 알지 못하고 본능 적으로 섬기는 그들의 종교의 잘 못 되었음에 대하여 그 종교성 곧 신을 섬기게 되는 근본이 이러한 잘 못된 잡신이나 우상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자세하게 설명 하니 곧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 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논 이러한 보잘 것 없는 신전에 있지도 아니 하고 또 만물이 다 하나님 것인데 무엇이 부족하여 너희가 드린 제물 따위를 받겠느냐.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사
사람들이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와 비와 공기와 모든 사물의 생육을 가능케 하여 너희가 살아갈 수 있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부여 받은 유일한 대상으로 다른 짐승들과는 다르며
그 인류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의 번성함에서 번성하고 번성하여 세계 각 곳의 모든 사람들의 혈통이 다 똑 같으며
그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 시키기 위하여 미리 메시아를 보내기로 예정 하셨고 그 때가 이르름에 그 메시아를 보내어 하나님의 은혜 베풂의 구원의 길을 다 이룸되게 한 그 메시아가 지금 우리가 전한 예수그리스도 이며 그 예수님이 세상 죄를 다 댓가 치르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고 이를 다 이루신 후 하나님께서는 온 전히 죽으신 예수님을 죽지 않는 변화된 몸으로 부활 시켜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또 이를 핍박하는데 앞장 섰던 나에게도 나타내 보이 셨을 뿐만 아니라.
이 구원의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믿게 하시려고 사도들과 나에게도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어 너희가 목격 했듯이 기적과 이적 곧 사람의 힘으로써는 절대 불가한 날 때 부터 앉은뱅이 된 자 온갖 병에 걸린 자들을 약 하나 쓰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며 일으켜 세우면 병이 나음을 보지 않았느냐 라며 설명과 증명과 간증함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내용이다.
사도행전18장 읽음.
1. 17장에서의 문명의 도시요 우상이 가득한 아테네 도시를 떠나서 더 안쪽 해변의 도시 고린도에 이르른다.
2. 고린도에 처음 이르렀을 때 만난 사람인 (고향이 흑해 근방 곧 지금의 터키 북부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하여 자꾸 소란을 일으키므로 로마 황제가 그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몰아 내므로 고향을 떠나 헤메는)
장막 만드는 직업인 유대인 부부 ="아굴라 와 그 아내 브리스길라 "를 만나게 되어 바울 역시 장막을 만들어 팔아 생활함과 복음 활동을 하였으므로 그들과 직업이 같으므로 같이 활동 하였고 (1.2절) 후에
그 두 부부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당초 출발 했던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수리아(시리아)의 도시 안디옥 교회 까지 동행했고(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18절 )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도 같이 동행하여 터키 지역의 에베소 교회에 이르렀을 때 두 부부는 아볼로에게 전도 하여 아볼로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데려다가(아볼로를)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26절)
2. 바울은 아덴에서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 전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마게도니아에 머물러 있었던 실라와 디모데가(17장14절)고린도에 내려오매(18장5절) 그 때서야 바울이 힘을 얻어 복음을 전하되
이방인들과 기본 신앙이 다른 유대인들이기에 유대인들에 맞는 상세한 구약 성경 말씀들을 들어서 효과적인 복음 전도가 되게 하기 위하여 (그랬을 것으로 추측됨)유대인들을 별도로 모아서 복음을 전하나 자기 민족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바울의 마음과는 달리 오히려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 하므로
그들 앞에서 옷을 떨어 너희들에 대해 내 할일은 다 하여 너희가 지옥 심판을 받게 됨에 내 책임은 없다 하고 이방인 들이나 구원 받게 전도 할련다 하고 그들에게서 떠난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1년반을 있으며 전도한 결과가 고린도 교회가 만들어 진다.
.이 처럼 고린도 지역에 복음이 활성화 되자 어디서나 마찬가지 이었듯이 또 유대인 무리가 바울을 방해하고 피박 하므로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처음 출발 했던 안디옥 교회로 돌아온다. 22절까지
3. 3차 전도 (23절) 역시 육로를 통하여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그동안 전도하여 교회가 형성된 지역들을 차례로 들러서 제자들을 굳게 하고 터키에 있는 에베소 까지 이르른다.
이 때 브리스길라 부부가 아볼로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성경 지식이 풍부했던 아볼로가 터어키 지역에서 동 유럽 남쪽 지역인 아테네와 고린도 교회가 있는 아가야 지역으로 간다 함에 그 곳 교회에 아볼로를 추천 하며 도움을 주라 하는 편지를 써 주고 아볼로가 그 곳 교회에 이르러 교회를 핍박한 유대인들의 교리를 유식한 성경 지식으로 억눌러 버렸다는 내용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 로마서16장 3절. 고린도 전서16장19절등에 나온다
사도행전19장 읽음
. 3차 전도 여행 중 28장에서 아볼로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한 아덴.고린도 교회에 활동할 때 바울은
1.2차 전도 때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형성된 아시아 지역을 순방 하다가 에베소 교회에 이르러 2년 동안 있으면서(10절)복음을 전하는데 성령의 기적 이적의 역사가 크게 함께 하여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 역사로 에베소 지역에 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음이 크게 왕성하여 그동안 그 지역에 마술을 행하는 문화가 활발 했었는데 바울을 통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가 마술이라는 사단의 거짓됨을 밝히 드러나게 하므로 사회적 분위기가 하나님께로 돌이킴 되어
사단의 거짓 권세가 꺾이어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으며 마술을 연마하였던 값 비싼 그 마술 책들을 불살라 버렸으니 ...
곧 우리네 문화에 섬기던 우상과 잡신을 복음을 받아들임과 함께 깨 부수어 버림과 같은 큰 변화로써
몇 몇 일부의 사람들 만이 아닌 그 지역 다수의 사람들에게 크게 사회적으로 크게 역사함이다.(예를 든다면 마을 몇 몇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고향 노화도 라면 노화도 전체에 크게 복음의 역사가 지역 사회를 변화 시켜 버리는 크나큰 현상을 상상해 보자)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그 곳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크게 반발하여 앞장서서 물의를 일으키지만 그 지역을 다스리던 관리가 슬기롭게 대처하여 그들을 제지 시켰으니
그 관리도 이 분란을 제지 시키지 않는다면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무리와 또 복음을 받아들인 많은 무리들의 충돌로 사회가 크게 혼란 될 것임을 사전에 예방 시켜야 했기 때문일 것으로..
. 곧 에베소 지역이 안디옥 지역 교회와 같이
바울이 2년 동안 그 곳에 있으면서 교회가 크게 번성 했었음이 알 수가 있다.
사도행전 20장 읽음.
.3차 전도 여행의 19장 터어키의 에베소 교회에 있으며 교회를 크게 번성 시킨 후 》2차 전도 여행 때 전도 시킨 동유럽으로 건너가 마게도냐 교회들 곧 그곳에 있는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뵈뢰아 교회☆를 굳게 한 후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그곳 헬라 지역에 2차 전도 여행시 세워진 아테네 지역을 거쳐 ☆고린도 교회와 겐그리아 교회☆에 3개월 동안 있으며 교회를 굳게 한 후
그곳에서 바로 배 타고 빨리 처음 출발한 안디옥 교회로 돌아 오려고 하였으나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 지역에 은혜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 지역등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교회가 크게 번성함으로 자기들의 유대교에 크게 대적 됨이 된다 하여 바울을 해하려 배 타는 길목에서 벼르고 있어서 배를 타지 못하고 다시 왔던 길을 따라 육로로 행하여 윗쪽에 있는 마게도냐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인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아세아(지금의 터키) 에 있는 ☆드로아 (트로이 목마)☆에 이르른다. ☆ 이때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여 없애려는 의지가 너무도 강했기에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바울이 가는 길에 고린도 교회에서 부터 아시아까지 동행한 사람이 6명이나 되었으며(4절)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 올 때도 아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까지 해 당함을 받을까 미리 예방하기 위하여 호위하던 형제들이 먼저 배를 타고 아세아로 건너갔음을 볼 때 당시 유대인들이 바울 죽이기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었는가를 짐작케한다(6절).
.드로아(트로이)에서 7일 동안 있으면서 교회를 굳세하고 마지막 고별 인사를 한다 곧 앞으로 더 이곳에 올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다른 곳 곧 로마 지역의 서 유럽 전도를 계획 하고 있었기 때문 일 것이다.
이렇게 고별 설교를 하며
그동안 바울 자신이 교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목숨을 바쳐 있는 힘껏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복음을 전할 때 그 누구로 부터도 재물을 탐하지 아니 하였고 오직 자기 손으로 일하여 비용을 충당 하여 본을 보였으므로 이러한 복음의 열매가 맺게 되었음을 상기 시킨다.
.그러나 이후 바울 자신이 더 이상 이 곳 교회들을 돌볼 수 없게 되면 그동안 바울을 핍박 했던 사단의 권세가 교회들을 해 할 것이며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거짓 교인들이나 혹은 구원 받은 성도 중에 세상에 미혹된 자들이 일어나 교회를 혼란케 할 것이니
너희 형제들아 이를 대비 하라고 미리 말을 한다 .
사도행전21장 읽음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의 교회에 이르른다.
육지인 두로에 내렸는데
그 주위 지역에 복음이 다 전파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두로 에서 형제들과 7일을 같이 있었고
.돌레마이에 형제들과 하루를 있었고
.가이사랴에 이르러 형제들과 같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예루살렘에 들어 가면 잡혀 묶이게 되니 가지 말라는 예언을 들으면서도 바울은 결박 받음 뿐 아니라 설령 잡혀 죽는 일이 일어난다 하여도 주님의 일을 멈출 수 없다며 예루살렘 교회에 이르른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를 찾아 만나게 되니 당시 예수님 육신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기도의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기도에 얼마나 힘을 다 했는가 야고보의 무릎이 낙타의 발 바닥 처럼 옹이가 박혔다 한다
그리고 그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제사장들 무리에게 밀쳐 아래로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해 주라 기도 드린다
그러함에도 그 제사장들 중에 하나가 곤봉으로 야고보의 머리를 내리쳐 야고보가 순교하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 온다.
20절~26절의 내용이 이방인인 우리로써는 이해하기가 난해한 내용이다.
곧 교회 안에 믿는 성도들 중에 율법을 중시하여 율법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제들은 바울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기를 바울은
모든 유대인들을 가르치되
1, 모세를 배반 하라 하며
2, 할례를 행하지 말라하며
3,규모 (전해 내려오며 지켜 가고 있는 장로들의 유전 곧 생활의 본보기가 되는 제도)를 지키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자이다 라고 알고 있으니
그 유대인 형제들이 바울에 대하여 반감을 같고 있으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 그 형제들의 반감을 해소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이게 무슨 말이냐 의아해 할 수가 있다 =
이는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배반 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곧 하나님이 명하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거나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등등의 선한 율법을 다 버리고 악을 행해도 예수만 믿으면 그만이다 라는 식으로 바울이 전도 했다고 곡해를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로마서 3장31절에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라고 하였고
로마서 6장 1절에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라고 하였다
곧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신 바와 같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마5장18절 는 말씀 같이 사람이 해 낼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다 이루심이 되어 의롭게 되었고
그러므로 로마서6장14절 말씀과 같이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있음이라.
는 은혜의 법을 바울을 철저히 반대 했던 유대인들의 무리로 부터
곡해 하여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의 이방인들에 대한 전도가 잘 못 되지 않았다고 사도행전21장25절
또다시 강조 한다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 하고 편지 하였느니라.
라고 말한다
사도행전22장 읽음
.3차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 교회에 이르른 바울은 사도들이 하라는 대로 율법을 좇아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 결례를 다 행하였음을 고할 때에 바울이 전도 했던 아시아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바울의 말함을 발견하고 바울이 아시아 지역에서 자기들의 유대교를 얼마만큼 혼란에 빠뜨린 자인가를 말하며 무리들을 충동 하고. 또한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을 거룩한 성전에 들이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서44장9절에 분명 말씀 하셨는데도
이 바울은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 성전을 더럽힌 자라고 모인 무리들에게 충동질 하매 모인 무리들이 바울을 죽여 없애려 함에
이를 전해들은 천부장이 자기 관할에서 살인함을 막고 법대로 집행하기 위하여 붙잡아 결박하고 채찍질 함에 바울은 자기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법의 보호를 받아 정당한 로마 법에 따라야 할 사람임을 말하며
천부장에게 자기를 해하려는 무리들에게 해명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말을한다.
자기는 어디 사는 누구며
유대교를 믿는 열심은 철저한 율법 주의 자인 바리새인으로 그 열심에 인정을 받아 여기에 있는 제사장들로 부터 인정을 받아 예수를 전하는 성도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기 까지 하였으며.. 또 그들이 도망가서 예수 도를 전파함을 듣고 그곳 까지 그들을 잡아 가두려고 쫓아 가던 중에 부활의 주 예수를 만나게 되어 제자들이 말한 예수의 부활이 사실 이었음을 간증 하니 여기까지 바울의 말을 듣던 무리가 절대로 살려둘 수 없는 자라고
바울을 죽이려 달려 듦에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는 내용이다.
.이 상황 또한 유대인들이 자기 유대교에 대하여 어떻게 열심함인지를 알 수가 있다.
사도행전23장 읽음.
유대인들의 고발로 천부장에게 감금된 바울의 재판을 위해
천부장이 유대 권력자들을 모으니 이것이 제 5차 공의회 이다.
.1차 공의회(유대 자치 권력자들)=예수님이 죽은 나사를 살리어 백성들이 예수님을 좇으매 공의회(유대 대표 회의)를 열어 예수님을 죽여 없앨 것을 결의함. 요한복음11장17절~
.제 2차 공의회 =오순절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여 방언을 하여 놀라게 함에 3천명 쯤이나 되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데다
바울과 요한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되어 줄곳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여 생계 유지를 해 오던 40세 가량의 남자를
예수 이름으로 잡아 일으키며 걸으로 함에 그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아 걷고 뛰고 함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제자들을 좇음으로 제자들의 증거로 대속과 부할의 복음이 유대에 사회에 크게 번창케 됨에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섰던 유대 산헤드린 공의회가 이를 저지 시키기 위해 사도들을 잡아 가두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결의한다.
(사도행전4장)
.3차 공의회 소집=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많은 병자들이 나음을 받는 기적이 크게 역사 하여 교회는 자발적으로 통용을 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울 전함으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 크게 늘어 나니 그들은 제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으나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어 제자들을 감옥에서 풀려 나오게 함에 그들은 또다시 "3차 공의회"를 열어 제자들을 해하려 할 때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이 제지하여 풀려 나게 한다"
(사도행전5장27절)
.4차 공의회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 공의회가 소집된다(사도행전 6장12절)
.5차 공의회= 바울을 죽이기 위해 공의회가 소집된다(사도행전22장30절~)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주축이된 무리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임을 간파하고 사상이 다른 두 파의 신앙 사상이 부딪히게 만들어 버림으로 위기에서 벗어남이니 곧
사두개인들은 모세 5경만 인정하여 육신적인 면만 추구하므로 천사,영 , 부활을 부인 하는 정치적 집단이요.
바리새인들은 구약 성경을 다 경전으로 받아들여 모든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부활과 천사와 영적 세계를 인정 하는 무리들임에
바울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잡혀 심문을 받게 되는가 곧 부활과 영의 세계를 전함 때문이라 함에 바리새인 무리들이 바울의 편을 들어 위기에서 벗어 나게 된다.
.사두개인 무리들이 궤계를 써서 바울을 죽이기로 모의함을 바울의 조카가 천부장에게 아뢰어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게 하기 위하여 극우 위험 지역인 예루살렘에서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 로 270명의 호위 군사로 호위 시켜 총독에게 사연을 기록한 편지를 써서 보내는 내용이다.
사도행전24장 읽음.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빌라도 총독 이후 로마 총독부가 극렬 주의 유대 지도자들로 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총독부를 유대에 두지 않고 지중해 해안의 가이사랴로 옮기지 않았나 추정된다)로 옮겨졌음을 알게된
바울 사도를 죽여 없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대속의 은혜와 부활의 복음 전도를 억제 시키려 했던 공의회가 대표자격인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말을 잘하는 변사를 대동하고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총독을 찾아 가이사랴 까지 내려온다.
이들은 바울이 법적으로 고소될 일을 하지 않았음을 그들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임은 예루살렘에 파견된 로마의 천부장이 270명의 군사까지 대동 시켜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부 까지 바울을 안전하게 이송 시킴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대 공의회에서 그 대표들을 총독부 까지 보내어 바울을 처단 하고자 함은
백성들이 메시아라고 떠 받들었던 예수님을 사형을 받게 사주 했는데
자기들이 앞장 서서 십자가에 사형시켜 버린 예수가 부활 했다 하며 또 그들이 죽어 무덤에 묻어 그 무덤을 군병들로 지키게 하였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져 찾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들은 죽은 예수님이 부활 하여 자기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 났음을 여러 사람들이 증거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부활을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엄격히 금하여 공포하며 자기들이 정한 법을 어기고 부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잡아 죽이고 심한 핍박을 가해도 그 제자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전파하며 심지어 핍박을 피해 터전을 다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해 옮겨 가면서 까지 교세가 확장 되고 있으며
심지어 유대 지역을 벗어나 저 멀리 타국인 아시아 지역과 더 나아가 유럽의 헬라 지역까지 걷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을 향해 자기들이 죽인 복음이 전파되고 있고
그렇게 복음의 전파 활동의 주축이 된 바울이 잡혀 있으니
그들은 기회를 놓지지 않고 기어코 바울을 죽여 없애 자기들의 입지를 최대한 곤란 당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 그들은 바울을 죽여 버리 수만 있다면 거짓되고 흉악한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악행도 감수 하고자 하였으니
불법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매복 시켜 암살을 시도 하려 하였었고
또 지금은 원수나 다름 없는 로마 총독에게 아부하기를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 하기에 로마의 뛰어난 문명과 재력이 이스라엘 국가 개량에 큰 은혜를 끼치고 있다 아첨의 말을 한다.(2절~5절)
.마치 현재 우리나라에 내국노나 다름 없는 어떤 교수나 이름 있는 극우 지식인들이 일본이 우리 나라를 36년간 지배 하였었기에 우리나라에 철도도 놓게되고 신식 문물이 들어 오게 발전 시켰다고 떠들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곧 그러한 자들은 국가와 민족과 정의를 챙기기 앞서 개인의 사익을 챙기기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악한 짓을 서슴 없이 저지른 무리들이다.
이들의 신앙과 양심을 팽개쳐 버리는 아첨의 말과 달리
바울은 총독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알고
☆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 하나이다.
라고 ☆. 기쁘게 변명 한다는 말은
총독에게 아첨하는 말이 아니라.
총독 당신이 나로 이들의 고소함에 떳떳하게 변명할 수 있는 배려에 기쁘게 변명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바울 자신은 법적으로나 이들이 고소하는 종교적으로 전혀 범죄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온 날 수도 며칠이 되지 않아 그들이 말한 범법의 시간도 없었기에 전혀 고소 당할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18~19절 내용과 같이 나를 처음에 모해하여 선동한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대면 시켜 당신에게 고소케 하여 그들의 고소함이 내가 범죄자 인지 아닌지 재판을 받게 해 보면 될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에 총독은 유대에서 바울을 내게 보낸 천부장이 내려 오면 처결 하겠다며 재판을 보류 시켜 버리며 바울을 자유롭게 한 상태에서 관리하게 한다.
.그리고 그 후 총독 벨릭스가 26절과 같이 자주 바울을 불러 같이 얘기함은 바울로 부터 돈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는데
이는 17절에 바울이 기근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자기 민족을 돕기 위하여 이방 지역 교회로 부터 많은 기금을 거두어 가지고 와서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도왔음을 총독이 알고 바울로 부터 돈을 챙기려 했을 것이다.
그 후 2년 동안 바울은 총독의 통제 아래 갇혀 있었으며 총독 벨릭스는 임기가 끝나 베스도 총독이 새로 부임 하게 된다.
사도행전25장 읽음.
.2년 동안 바울을 구류했던 총독 벨릭스의 임기가 끝나 물러 가고 베스도가 새로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관저에서 유대 고관들이 모여 있는 핵심부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이에 이스라엘의 대표 고관들인 대 제사장 무리들이 또다시 바울을 새로 온 총독에게 고발하며 궤계를 써서 죽이려 한다.
이에 신임 총독은 두 가지 문제에서 결정하여야 할 입장에 놓였다.
1. 첫째는 유대 대표자들의 요청을 무시하여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그들의 반감을 사게 되므로 그들을 통치하기가 매우 힘들게 된다.
2. 둘째는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대로 바울을 그들에게 내어 줄 경우
죄의 확정도 되지 않는 사람을 죽게 만들어 버리게 되니
.세계를 통치하는 로마의 관리로써 로마의 합법성을 해침이 되며 또한 자기의 다스림 아래 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굴복함이 되어 버린다.
.이에 둘다 충족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취하니 곧
.너희가 나와 같이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너희가 고소한 바울을 재판하여 죄가 인정 되면
그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의사를 내세워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내려와 고소인들의 고발 내용과 바울의 변론을 들어 보았지만 죄를 찾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유대 고관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그들의 마음을 충족 시켜 주기 위하여
그들의 요청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재판을 받을 것이냐고 바울의 의사를 묻는다.
.이에 바울을 그들의 궤계를 꿰뚫어 보고 이를 거부하며 자신은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 한다.
.재판이 끝난 후에도 바울 내어 주기를 요청한 유대 고관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지 않고 있으면서
끈질기게 로마 신임 총독인 베스도에게 매달렸던 것 같다.
베스도의 재판이 끝난 후 유대에서 내려 온 제사장 무리들은 되돌아 간 것으로 보인다
25장23절에 아그립바 왕과 함께 재판을 열 때 제사장 무리들은 없다.
사도행전26장 읽음
.신임 총독이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와 유대에서 내려온 천부장들과 성중에 높은 사람들을 모아서 재판한다 25장23절
재판을 받은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유대인들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고소 했으며
자기도 그들과 같이 이 교를 없이 함이 옳다고 앞장서서 핍박 하였었는데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후 자기에게 일어난 사실들을 낟낟이 사실대로 설명하며 우리 민족이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예수가 곧 메시아 임을 증거하자 아그립바 왕은 그 말은 배척 하되 바울은 죄가 없지만 바울이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 받기를 요청 하였으니 가이사의 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다.
이 결론에 따라 바울은 로마로 호송 되게 된다.
사도행전27장 읽음.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왕과 버니게와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을 모아 바울을 재판함으로(행25장23절)골치 아픈 바울의 문제를 종결 짓는 명분을 세운 후 결정한 대로 바울을 유대 지역에서 로마황제한태로 호송 시켜 버린다.
이 일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으나 실상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로
이 일이 있기 오래 전 사도행전19장21절에는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이미 로마로 갈 것을 예측하였고
행27장23절~24절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하나님 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느니라 하셨으니"
곧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은 바울로 로마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으로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16장33절
구브로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14일 동안 떠다니다가 지중해의 로마와 아프리카 중간 쯤에 있는 멜리데라는 작은 섬의 육지에 오르게 된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로마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
당시 귀족인 원로원(현 시대의 국회의원과 비슷한)의 아들 "부대"라는 성도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로마 네로 황제에게 자기 재산을 담보 하고 언제든지 황제가 명하면 바울을 재판 자리에 세우겠다며 바울을 감옥에 갇히지 않게 자기에게 내어 주라하여 바울을 자유롭게 복음을 전 할 수 있게 하였고
바울은 로마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함을 이루기 위하여 대서양을 접한 땅 끝이라고 생각된 서바나 곧 지금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 네로 황제가 로마 대 화재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교회를 핍박 할 때 바울은 칼로 죽임을 당하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러 달려 죽임을 당했으며
바울을 도운 원로원의 아들인"부대"는 네로 황제가 사람을 "부대"의 집에 보내어 비공개 암살 시켜 버렸다고 사도행전 이후의 교회사에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