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김강호
당신 생각 지평선만큼 끝 모르게 길어서
수시로 둘둘 말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남몰래 숨을 죽이며 보석이듯 꺼내 봤다
당신 생각 아파서 깊은 상처 동여맬 때
작설차는 연둣빛 울음소리로 끓고 있고
뒷산 숲 오솔길쯤엔 싸라기별 쏟아졌다
당신 생각 끊임없이 잔물결로 밀려와
갯돌 같은 이야기를 지그르르 쏟으면
내 귀는 자루가 되어 넘치도록 받았다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슬픔 깊은 이별 강 목을 늘린 새가 되어
강물이 붉어지도록 피 토하며 울었다
한지문을 읽다
넌 이미 나무이면서 포근한 집이었다
온몸을 짓찧어서 한 겹씩 떠낸 살로
빗살문 팽팽히 당겨 시린 별빛 우려냈다
오래도록 젖어들던 처연한 흐느낌을
문양으로 새겨 두고 누렇게 빛이 바랜
벙어리 일대기 담은 가슴 아린 노래였다
깊은 밤 갈기 세운 드센 물결 거슬러
암흑기 헤엄쳐온 빗살 무늬 속에는
칼보다 푸른 목숨이 숨죽이고 있었다
ㅡ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다인숲,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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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조집 『아버지』『귀가 부끄러운 날』『팽목항 편지』『참, 좋은 대통령』『군함도』『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 가사시집 『무주구천동 33경』. 서울문화재단,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받음.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초생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