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어린이가 부모에게 온전히 의탁하고 살듯,
주님께 온전히 믿음을 두고 사는 작은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복음).
어린이들도 말을 하고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본성들이 드러납니다.
두세 살만 되어도 먹을 것이나 물건에 욕심을 내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질투를 하고 싸움도 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립니다.
어린이들도 이렇게 본성적으로는 어른들과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것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마음에 쌓아 두는 법이 없습니다.
싸우고 나서도 다시 금방 친해집니다.
아이들은 감정이 앙금처럼 남아 있지 않기에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언어에는 ‘용서’라는 말이 없습니다.
미움이니, 용서니, 화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이미 아이들이 훌쩍 크고 난 다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산다는 것은
아무런 본성적 욕구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분노, 질투, 앙심, 거짓, 허영 등 온갖 쓰레기를
마음이라는 바구니 속에 다 담아 두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이처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아무것도 가두어 두지 말고 물처럼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흐르는 물이 될 때 맑아집니다.
어린이가 맑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어린이가 될 수 있을는지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와 같이’는 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린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이런 어린이처럼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어린이가 편하듯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행복해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느낌과 감정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되라고 해서 ‘자주 토라지고
응석 부리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처럼 살아가려면 단순해야 합니다.
오늘의 삶은 너무 바쁘고 복잡합니다.
이전에는 단순했던 것조차 그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잘 사는 것과 바쁘게 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 줄 착각합니다.
노력 없이는 단순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핵심을 보는 훈련과 절제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가능합니다.
어린이가 엄마를 의지하듯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분명 은총이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