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age to Catalonia. pp.180-183
그날 오후 아내와 나는 코프를 방문하였다. 당신이 독방에 감금되지 않은 수감자를 만나는 것은 허용되지만 한두 번 이상 만나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다. 경찰이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고, 만약 당신이 감옥을 너무 자주 방문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트로츠키주의자’의 친구로 낙인찍는 것이며, 아마도 당신은 감옥 안에서 끝장 날 것이다. 그런 일은 이미 수많은 사람에게 일어났었다.
코프는 독방에 감금되지 않았고, 우리는 어려움 없이 그를 만나도록 허락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철문을 통과하여 감옥 안으로 안내 할 때, 내가 전선에서 알고 지냈던 스페인인 민병대가 두 돌격대 사이에서 끌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나와 마주쳤고, 그는 다시 영혼이 빠진 것 같은 눈짓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본 첫 번째 사람은 며칠 일찍 집으로 출발한 미국인 민병대였는데, 그의 서류는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모두와 마찬가지로 국경에서 체포되었는데, 아마도 그가 아직도 코르덴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민병대로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수개월 동안 알고 지냈고, 대피호를 그와 함께 썼으며, 내가 부상당하였을 때 내가 전선에서 후송되는 것을 도왔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푸른 옷을 입은 경비병들이 모든 곳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소위 감옥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한 가게의 1층이었다. 각각 약 20평방피트 정도의 두 개의 방에는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곰팡내 나는 먼지투성이의, 가구하나 없는- 맨 돌바닥의, 긴 의자 하나에 누더기 담요 몇 장이 있는- 그리고 희미한 조명과 주름진 강철 덧문이 창문을 가리고 있는 18세기의 뉴게이트 칼렌더Newgate Calendar(런던 뉴게이트 감옥의) 사건 기록부;Subtitled the Malefactor's Bloody Register, the Newgate Calendar's weekly accounts of sensational trials presaged modern crime reporting, treating highwaymen and other criminals as celebrities가 실재하는 곳이었다. 지저분한 벽 위에는 혁명구호- POUM 만세! 혁명 만세! 등등- 가 휘갈겨져 있었다. 그곳은 지난 몇 달 동안 정치범 수용소로 이용되었었다. 그곳은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그때는 면회시간이었고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이동하기 어려웠다. 그들 거의 모두는 노동계급의 주민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였다. 당신은 여성들이 수감된 남성들을 위해 가져온 가련한 음식꾸러미를 푸는 것을 본다. 수감자들 사이에는 모린 요양원에서 온 몇 명의 부상자들도 있다. 그들 중 두 명은 다리를 절단하였고 그중 한 명은 목발도 없이 감옥으로 보내져서 외발로 깡충거리며 다녔다. 열두 살도 채 안된 소년도 있었고, 그들은 분명 아이들이 분명한데도 체포되었다. 그곳에서는 적절한 위생적 처리 없이 많은 사람의 무리들이 갇혀있을 때 항상 당신이 맡을 수 있는 악취가 났다.
코프는 우리를 만나려 사람들을 밀치며 길을 뚫고 나왔다. 그는 그 지독하게 지저분한 곳에서도 단정하게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면도까지 하고 있었다. 수감자들 중 다른 장교도 인민군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와 코프는 과거에 싸웠던 사이로서 경의를 표하였고 그 몸짓은 어쩐지 애처로웠다. 코프는 빼어난 정신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 우리는 모두 총살당할 거라 생각했어.’ 그가 쾌활하게 말하였다. ‘총살’이라는 단어가 내게 내면적 전율로 다가왔다. 최근에 총알이 내 몸을 뚫고 들어왔었고, 그 느낌은 내 기억에 생생하였으며, 당신이 잘 아는 누군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때 나는 코프를 포함한 POUM의 주요 인사들 모두가 총살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닌의 죽음에 대한 최초의 소문은 이제 막 스며들어 왔고, 우리는 POUM이 배신과 간첩혐의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작된 재판에 이어 지도적인 ‘트로츠키주의자’의 학살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의 친구가 감옥에 있고 당신에게 그를 도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코프가 이곳에 오면서 그 자신의 나라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벨기에 당국에 호소하는 것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대화를 아내에게 맡겨야 했다. 그 소음 속에서 나의 꺽꺽거리는 목소리로 나의 의견을 말할 수는 없었다make myself heard. 코프는 다른 감옥에서 그가 만든 친구들에 관하여, 그 중의 몇몇은 좋은 놈들이었지만, 그중 몇몇의 더 소심한 수감자들을 학대하고 구타하였던 간수에 관하여, ‘돼지가 목욕하고 간’ 음식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음식꾸러미를 가져갈 생각을 했었고 담배도 챙겼다. 그리고 코프는 우리에게 그가 체포되었을 때 그로부터 압수된 서류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는 동부군의 공병작전을 지휘하는 대령에게 전쟁성에서 보낸 그의 편지도 있었다. 경찰은 그것을 압수하고 돌려주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것은 경찰서장실에 놓여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드러난다면 매우 큰 차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즉시 알았다. 전쟁성과 포자 장군의 권고가 포함된 그런 종류의 공식적인 편지는 코프의 진실성을 확고히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어려웠고, 만약 그것이 경찰서장실에서 공개된다 해도 어떤 경찰 앞잡이나 다른 것들이 그것을 파괴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그것을 받은 장교였다. 코프은 벌써 그것을 생각했었고, 그가 쓴 편지를 내가 감옥에서 몰래 가지고 나가 우체국으로 가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분명히 직접 가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하였다. 나는 내 아내와 코프를 떠나 튀어 나가서 한참을 찾은 후에 택시를 찾았다. 나는 시간에 모든 것이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다섯 시 반쯤 되었고, 대령은 아마 여섯 시에 그의 사무실을 떠날 것이며, 내일이면 그 편지는 아마도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쌓여 있는 서류더미 속에서나 용의자가 체포된 후에 파괴되거나 신만이 아는 어느 곳에서 분실될 것이다. 대령의 사무실은 부두 아래 전쟁부에 있었다. 내가 급히 계단을 오르자 문 앞의 돌격대원이 그의 긴 총검으로 길을 막으며 ‘증명서papers’를 요구하였다. 나는 그에게 나의 제대 증명서를 흔들었다. 그가 읽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였지만 그는 나를 통과시켰고, ‘종이’의 모호한 신비로움은 인상적이었다. 각 층마다 수백 개의 사무실이 있는 내부는 중앙 안마당을 둘러싸고 거대하고 복잡한 토끼장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스페인답게 내가 찾는 사무실이 어디인지 모호하게라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계속 되풀이하였다. ‘대령- 수석 엔지니어, 동부군!’ 사람들은 미소 지으며 우아하게 그들의 어깨를 으쓱하였다. 모든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내게 의견을 표했다. 저 계단 위로, 저 아래로, 막다른 골목이 끝없이 계속되는 복도를 따라 헤맸다. 시간은 미끄러지듯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악몽을 꾸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계단을 위 아래로 날아다니고, 이상한 사람들이 오가며, 사방에 서류들이 흩뿌려져 있고 타자기가 딸각거리는 혼란스러운 사무실의 열린 문을 통하여 흘깃 본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가 버리고 생명이 어찌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a life perhaps in the bal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