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5일 일요일
1. 탐방지 : 남한산성
2.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3. 탐방코스 : 성남 남한산성역 -> 남한산성유원지 -> 지화문(남문) -> 제 1,2,3 옹성 -> 좌익문(동문) -> 장경사 -> 벌봉
-> 승리문(북문) -> 산성종로 (총거리 : 5.3km / 총 소요시간 : 3시간 30분)
4.날씨 : 맑음
5. 동반자 : 4649 산악회(소재림대장, 민조홍, 소순배, 이명규, 조진경, 최진, 송계연) 총 7명
6. 교통편 : 남한산성역(지하철8호선)
(남한산성유원지 위치)
(산행코스)
<탐방 이야기>
고등학교 친구 모임인 4649산악회의 정기 산행입니다.
오늘은 남한산성 성곽돌기를 테마로 지하철8호선 남한산성역 1번 출구에서 모입니다.
남한산성은 애환이 서려있는 성이었죠.
남한산성은 수도를 수호하고 한강이남의 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로 축성되었지만 인조 14년 청태종의 침략으로 치욕의 장소로 더욱 기억된 산성입니다. 중국에서 새롭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청나라가 기존의 명나라를 통합하기 전 조선에게 조약을 요구하게 되면서 치욕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당시 조정은 청나라의 세력확장을 예상하여 청나라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주화파와 명나라와의 관계를 존속하며 오랑케인 청나라와는 친화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척화파가 맞서게 되었죠. 결국 홍익환, 윤집, 오달제 등을 주축으로 한 척화파의 주장대로 인조는 청나라와의 동맹조약을 거절하게 됩니다. 이에 명나라와 전쟁을 준비하던 청나라는 위협이 될 수 있던 조선을 먼저 침공하게 되지요. 그때가 인조 14년(1636년) 12월 2일입니다. 당시 임경업장군은 백마산성에서 청군을 차단하려 했으나 만주족, 한족, 몽골족으로 구성된 20,000여명의 청군이 우회하여 남하하는 바람에 소기의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고, 화포의 위력을 앞세운 청군은 10여일만에 개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인조는 세자와 함께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지만 이미 양철평(지금의 녹번동 지역)까지 들어왔다는 전갈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된 것이지요.
17일여만에 남한산성에 도착한 청군은 원성밖의 봉암, 한성, 검단산을 장악하고 성내를 들여다 보면서 홍이포 등으로 화포공격을 합니다. 이 위력이 6km를 날아와 행궁의 기둥을 맞추며 성내의 건물을 무너뜨렸다하니 활과 창, 소포로 맞섰던 조선군으로서는 대항할 수가 없었죠. 그러나 청군은 성을 합락시키지 않고 포위 속에서 인조를 압박했죠. 이렇게 인조와 조선군은 47일을 버팁니다. 겨울의 혹한과 식량부족, 전의 상실로 성내는 날이 갈수록 비참해져만 갔죠. 결국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오고 모든 정세가 불리해지자 인조는 1월 30일 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치욕의 의식을 가지게 되며 병자호란은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 후의 청군의 횡포로 조선은 비참했습니다. 그 예로 민간인에 대한 약탈과 겁탈이 어찌나 잔혹했던지 지금도 봄에 피는 제비꽃을 오랑케꽃이라 부를 정도로 오랑케가 쳐들어와 온갖 만행을 저지를 때 피었던 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또 한 예로 겁탈하려는 여인네가 저항하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사정없이 먼저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항하지 않고 빨리 몸을 맡기는 방법으로 그때 밑이 터진 중후(?)라는 속옷이 만들어졌던 것이죠. 파자마형태의 속옷에 사타구리 부위를 터놓은 속옷이죠. 그 속옷을 저의 어린시절까지 볼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패배는 이렇게 비참한 것 입니다. 얼마전 상영된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에 이 당시의 역사적 치욕을 보상받으려는 의도였는지 조선에 파견된 청사신과 청군들의 눈을 피해 화기를 개발하는 역경을 그려낸 내용이었죠. 역사적 사실이 있는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영화에 활화기를 개발한 주인공 역의 박해일이 '이미 나라와 백성을 버린 임금이 제일 역적이 아니겠는가'라는 대화가 나오고, 임금을 알현하고 나가는 주인공들의 뒤에 2배를 하는 인조의 모습과 이에 놀란 신하들에게 임금역의 안성기는 '침략자에게도 4배를 했는데 나라를 위한 백성에게 2배를 함이 어떠한가?'라는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저를 마련한답시고 국비를 들여 시세를 조작하고 주변의 땅을 확보한 한심한 현 정부 대가리가 마음에 찌꺼기로 남아 그런 대화가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이겠죠?
얘기가 헛 나갔습니다. 쯧~쯧
오늘 대장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산행할 형편이 아닌데 대장자리가 위태로워 나왔다고 분위기를 잡습니다.
모두 6명의 친구가 자리를 같이하고 남한산성 유원지를 향하여 도로를 걷습니다.
남한산성 유원지는 성남시민을 위하여 지자체가 조성한 공원입니다. 여러가지 시설과 안내, 공연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원지에 설치된 전광판에 오늘의 현 기온이 영상 7도이고 최고 기온이 13도라고 뜹니다.
그러나 벌써 자켓을 벗고 산에 올라야 할 정도로 따뜻합니다.
약사사의 절 입구를 지납니다. 오늘과 같이 화창한 날씨에는 여유롭게 사찰 경내도 구경하고 그 규모도 살피며 탐방해야 되는데 친구들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탐방로 옆 화단에는 [종지나물]이 만개했습니다.
미국제비꽃이라고도 하지요. 귀화식물이며, 원예식물입니다.
차라리 야생화로 조성해 놓았으면 더욱 좋았을 듯 한데....
우리의 야생화 [호제비꽃]은 길가 언덕에 군데군데 터를 잡고 꽃을 피우고 았습니다.
탐방로 길에는 눈길을 끌을 수 있는 것들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로 통일기원탑이란 돌무너미 탑을 쌓아 놓은 곳도 있습니다.
흰꽃을 핀 제비꽃도 자라고 있습니다. 꽃대에 2개의 포가 있고 잎과 꽃대에 잔털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흰젖제비꽃]으로 추정됩니다. 제비꽃도 그 종류가 많고 변종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그 이름을 맞추는데 쉽지 않습니다.
마침내 남문인 지화문에 도착합니다.
남한산성역에서 약 1시간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곤 동문인 좌익문방향으로 성곽 길을 따라 오르며 걷습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을 바라보며 옛선조의 얼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동문 근처에 난 시구문으로 나가 혹 노루귀가 지금도 피고 있는지 얼마만큼 자랐는지 시간을 내어 관찰해 볼까 합니다.
성남 검단산 정상의 공군 통신대 탑도 여장의 한 화살구를 통하여 잡아봅니다.
잠시 쉬어가는 길목에 분당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돼지 머리 앞에 놓은 돼지저금통이 이색적입니다. 그러나 시산제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 없어 한 잔의 막걸리와 시산제 떡은 주위 나뭇가지에서 배분을 독촉하는 동고비에게 양보합니다.
망월사의 모습도 보입니다.
남한산성에는 몇개의 사찰이 있습니다. 그 중 규모가 제일 크다고 느낀 것이 망월사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탐방로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하니깐요. 대신 탐방로 곁에 위치한 장경사에 들릴 계획입니다.
동문이 보입니다.
시구문을 찾아 잠시 성밖으로 나갑니다. 노루귀 야생화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지요.
이젠 [앉은부채]의 잎이 무성합니다.
그리고 [노루귀]의 꽃도 아직 피어있군요. 그런데 잎도 나와 꽃과 같이 핀 녀석들입니다. 시기적으로 늦어서 꽃과 잎을 같이 피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원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핍니다. 그러나 지난 번 보았던 장소에 꽃을 피었던 녀석들의 잎은 아직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현호색]도 이젠 꽃을 만개하고 있습니다. 노란색을 띤 꽃봉오리는 조금 지나면 파란색으로 꽃을 피울 것 입니다.
시구문으로 다시 들어와 동문의 성곽으로 오릅니다.
동문의 성곽 가파른 언덕에 [복수초]가 피었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복수초는 꽃의 내부 온도가 외부와 7도정도 높아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워 봄이 오는 전령 노릇을 하는데 이 녀석들은 늦깍기로 봄의 따스함 속에서 잎을 훨씬 무성하게 키웠습니다.
화창한 봄날을 만끽하려는 자동차 행렬이 종로 산성으로 가는 길을 메우고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체는 산행을 마치고 다시 이곳을 찾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장경사에 도착합니다.
성곽만 따라 탐방하여서 장경사의 일주문을 보지 못했었습니다만 오늘은 포장 길을 따라 장경사를 들어 갑니다.
그리고 잠시 그 모습만을 카메라에 담고 앞 서간 친구들을 좇아 갑니다.
장경사를 지난 성곽길은 경사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숨을 몰아쉬게 하고 다리 근육을 긴장시킵니다. 그래도 폐에 들어오는 봄 공기는 좋기만 합니다.
벌봉으로 나가는 암문에 도착합니다.
이젠 북문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뭇잎들이 아직 나오지 않아 나무를 관찰하며 나무 알아맞추기를 하며 걷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성곽의 휘들어진 곡선을 따라 멀리 연주옹성을 카메라에 잡아 봅니다.
북문에 도착했습니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의 4개의 문이 있습니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라고도 부르지만 좌익문, 우익문, 지화문, 승리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원에 대하여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젠 포장된 길을 따라 산성종로 로타리로 내려가면 오늘의 탐방은 끝입니다.
점심을 먹어야 될 시간입니다. 청와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닭백숙을 주문했습니다.
연락이 된 희태부부도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늙을 말년에 무엇보다도 부부의 정이 더욱 그리운 것 아니겠습니까?
음식점 토방에 자라고 있는 [별꽃]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빠뜨릴 수 없어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그리고 돌축대의 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제비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산성종로에서 친구들과 헤어졌습니다.
친구들은 이곳에서 버스로 산성역까지 내려가기로 했습니다만 난 동문 시구문을 다시 찾아 야생화 관찰을 조금 더 하고 하산할까해서 입니다.
산성을 찾는 자동차행렬은 더욱 길어진 것 같습니다. 조급한 운전자는 차를 되돌려 오던 길로 다시 가곤 합니다. 내려가는 길은 한적했었으니깐요.
같이 산행했던 친구들은 또 헤어짐이 아쉬워 호프집에서 이별파티를 했답니다.
이유는 '이렇게 대낮에 어떻게 집에 들어가느냐'라는데 모두 동의했다는군요.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기다려지는 친구들의 모임입니다.
술잔을 들고 '4649' 선창하면, '멋진 인생'을 후창하는 초로(初老)가 된 고등학교의 친구들입니다.
다음 주의 산행지는 전북 진안 마이산입니다.
마이산 사찰로 들어가는 길목의 벚꽃도 매우 아름답죠. 그리고 말의 귀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답게 사찰을 가운데 두고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봉이 마이산의 랜드마크입니다. 그 사찰 주변에는 돌탑들이 높이 아름답고 위태롭게 쌓여 있죠. 태풍이나 그 어떤 강풍이 불어도 결코 넘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양 바위봉우리와 뒷편 산능선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 넘어질 수가 없는 요새입니다.
그러나 다음 주에는 가족 모임이 있어 같이 할 수 없습니다. 2주를 기다릴 수 밖예요.
첫댓글 부지런도하시지,,꽃을찾아헤메시드니 수확을많이하셨네,사진도 잘나오고,,,,잘보고 공부도많이하고 수고허셨어,,,,
사진 뿐 아니라 역사에도 해박 하구먼.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건 불문가지. 아마 북한과 전쟁이라도 난다면 툭히면 색갈론 펼치는 조중동을 비롯 수구 꼴통들이 먼저 외국으로 도망갈걸?
남한산성하면 항상 삼전도가 생각나는 참으로 치욕의 역사일세.
지도자의 우유부단이 낳은 참화라고 생각하네.
주화든 척화든 결정을 확실히 했어야했고 일단 했으면 끝까지 밀어붙이고
안되면 장렬히 산화해야 최소한 역사와 백성들에 떳떳했을 듯...
같이 맥주 한잔 더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즐감!
현호색,노루귀에까지 오랫만에 눈이
호강 하누만......
역시 명품... 즐감... 쌩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