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는 열반입니다.
"주목하라 수행자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간곡히 이른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것이 내 제자에게 남기는 최후의 유언이다."
부처님은 열반하실 때가 가까워져 오자 제자들에게 쿠시나가라성 밖의 학림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부처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부처는 카필라국에서 태어나 마가다국에서 성도하셨다. 그리고 바나라국에서 주된 설법을 하시다가 이제 쿠시나라국에서 열반에 드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는 어느 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작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 중생계의 중생을 제도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하얀 숲을 선택하셨다. 학림은 하얀 숲이다. 그 숲이 의미하는 것은 때 묻지 않은 청정한 마음과도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원래의 청정한 마음자리로 환원하신다는 상징을 내보이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는 싸라라는 나무가 학림 입구에 두 그루 있었다. 부처는 그 마주선 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고 누우셨다. 마주 선 나무는 대립과 분별을 말하고 있다. 부처는 부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자 그 둘을 연결한 모양으로 누우셨다. 그러면 그 뒤에 보이는 학림처럼 맑고 깨끗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셨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처가 그 자리에 자리를 펴고 눕자 두 그루의 싸라나무는 때 아닌 아름다운 꽃을 피워 그 분향을 천지에 퍼뜨리었다. 그리고는 꽃잎을 떨어뜨려 꽃비를 내리게 하였다.
그리고서 그 두 나무는 가지를 뻗어 하나가 되었다. 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싸라의 나무 신이 부처님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부처님 몸에 이슬이 내리지 못하도록 한 기이한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그런 뜻만이 아니다. 그것 역시 당신을 중심으로 대립과 분열로 얼룩진 중생세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언 중에 가르치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우파바나라는 장로비구가 부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자 부처님은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시더니,
"우파바나. 자리를 비켜라. 손님들이 몰려오고 있다."
아난존자가 이 말씀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오는 자가 없었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부처님은 범천에 이어 시방허공계에서 무량한 신들과 보살들, 그리고 천신들이 사바세계의 전무후무한 부처의 열반을 목격하고자 몰려들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라한과를 증득하지 못한 아난의 눈에는 그들이 보일 턱이 없었다.
네 번째는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난 뒤에 분명 사리가 쏟아질 것이다. 그 사리를 서로 가지려고 16국의 왕들과 병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16개국이 남의 나라를 건드리지 않고 사방에서 편히 모여들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바로 그 학림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의 장소로 쿠시나라국 학림을 택하셨던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 이제 사바세계에는 화신의 부처가 안 계신다. 다음 부처는 미륵부처다. 장장 56억7천만 년 뒤에나 오신다고 한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린단 말인가.
병상에서 담당의사의 회진을 기다리는 수술환자의 시간은 일각이 여삼추다. 그런데 생사의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이 다음 부처를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이 세계의 범부들에게 정말 너무 가혹한 기다림이 아닌가.
그것을 아신 석가모니부처님이 다른 길을 틔어주셨다. 그게 바로 극락세계로 가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바세계처럼 부처가 오고 가지를 않는다. 거기에는 상주하는 부처가 계신다. 아미타불이다. 그쪽으로 가라. 그렇게 설하신 경전이 바로 수다라고 그 이름이 정토삼부경이다.
사진출처:薬師寺 東西兩塔 釈迦八相像_西塔果相
글출처:대승기신론 해동소 혈맥기 _공파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