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오후였다. 외출하여 일을 끝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가는 진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
를 받자마자 떨리는 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저 임신했대요. 삼 개월째래요. 제일 먼저 도련님께 알려 드리는 거예요."
하영은 행복한 듯 했다. 하영의 행복은 진혁에게 기쁨이 되었다. 자신이 사랑했고 지금도 마
음으로 그리워하는 여인이, 자신의 아이가 아닌 형의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들으면서도 기뻤
다. 그 사랑하는 여인이 이어준 다영이라는 향기로운 사람이 있기에 아프지도 않았다.
"잘 되었네요. 형수님이 행복해 하시니 저도 정말 기뻐요."
"도련님 사랑이 제게 준 귀한 선물이에요. 고마워요."
형진의 치료를 받으면서부터 지훈은 새로운 모습을 내보이며 하영을 놀라게 했었다. 하영이
자신의 메달을 맡길 수 밖에 없게 했던,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롭게 우러난 지훈의 사랑을 받으며 하영의 마음도 차츰 연애시절로 돌아가게 되었
다. 그 변화는 하영의 몸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고, 형진의 독특한 시술과 합쳐져 임
신이 되었던 것이었다.
진혁이 아파하지 않고 기뻐하는 것을 느끼며 하영의 행복은 배가 되었다. 포만감을 느낄 만큼
자신을 사랑해준 진혁이었다. 이제 그 진혁의 사랑을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소중하게 간직하
고, 진혁이 원하는 대로 지훈과 아기에게 충실하겠다고 하영은 다짐했다.
손이 귀한 집안이라 하영의 임신소식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늘 걱정하던 어머니와 아
버지도 진혁을 볼겸 서둘러 올라오고 현주와 매형까지 들이닥치자 이모 댁이 왁자해졌다. 그
가운데 하영은 얼굴을 붉힌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기쁨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집안이 들썩거리는 중에 진혁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현주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 진혁은 잠
시 후에 돌아왔다. 진혁이 자리에 다시 앉은 뒤, 따라 들어 온 현주가 손바닥을 탁탁 치며 '여
러분!'하고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 소개시켜 드려야 할 사람이 있어요."
이야기를 멈춘 모두의 시선이 자신만을 향하고 있자 현주가 배시시 웃음을 베어 물었다.
"좀 길게 소개해드려야 해요.
소개할 사람은 제겐 작은 올케가 되고, 이이에게 처남댁이 되고, 언니에겐 동서가 되는 사람
이며, 오빠에겐 제수씨가 될 사람이에요.
엄마 아버지껜 질부가 되고 우리 이모, 이모부껜 며느리가 되는 사람이에요."
긴 소개가 끝났는데도 지훈과 하영, 진혁을 제외한 가족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눈으로 현주를 쳐다보았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현주가 문을 열자 다영이 문 앞에 서 있
었다. 가족들의 입이 쩍 벌어지는 가운데 사돈처녀를 알아 본 이모와 이모부가 자리에서 반갑
게 일어났다. 현주의 말이 이어졌다.
"소개할게요. 혁이 색시가 될 사람이에요."
현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족들이 환성을 터뜨리며 박수를 치고 다영과 진혁의 얼굴이 발
갛게 물들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영이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와 이모부께 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너
무 좋아 입이 귀에 걸리고 근엄한 아버지마저도 흡족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른들에 대한 인사를 지켜보던 현주가 다시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아직 소개가 끝난 게 아녜요.
새 올케는 우리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안겨 준, 예쁜 헌 올케의 친동생이에요."
현주의 말에 어머니와 아버지, 매형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영만 보면 어쩔 줄 모르고 예뻐하
며 탐을 내던 어머니였다. 며느리 될 사람이 그 질부의 동생이라는 것을 안 어머니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다영의 곁으로 옮겨 앉아 어깨를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이렇게 고운 처자가 내 며느리라니, 너무 좋아서 정신 줄 놓을 것 같네.
더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우리 질부의 동생이라니......"
그런 어머니마저도 다영은 한순간에 꼴깍 삼켜버렸다. 다영이 웃음을 띤 채 다소곳이 말했다.
"예쁜 딸로 효도하겠습니다. 많이 예뻐해 주세요. 어머님."
너무 좋아서 뒤로 꼬로록 넘어가는 어머니였다. 지훈이 황급히 그 등을 받쳐주었다.
따로 상견례가 필요 없는 만남이었다. 다영의 보호자는 지훈과 하영이었으며,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진혁의 가족이었다. 다영이 진혁보다 한 살 더 많고 양친이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아
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영의 임신과 다영의 등장으로 집안이 들썩거리는 거리는 가운데
아버지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이모부를 쳐다보았다.
"이질부였는데, 지금은 사하생(査下生)이니 호칭에 대해서 형님께서 정리를 좀 해주시죠."
이모부로서도 금방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한참 고민하던 이모부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너무 계촌에 얽매이지 말고 친숙한 예전 호칭으로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우리 며느리를 사하생으로 대하고, 우리집 애가 제 처를 사형으로 불러야 한다면 서로
어색하고 불편해질 테니 말야."
모두 동의하며 그렇게 굳어지려는 것을 제지하며, 이모부는 하영의 의견을 물었다. 아무리 며
느리지만, 새 식구를 맞아들이려는 마당에 자칫 결례를 할 수 있어서였다.
"아버님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아버님과 이모부님께 사돈어른이라고 여쭙
는 건 말이 안되니까, 어른들께서는 전처럼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끼리는 서로 더 가깝
게 느껴지는 호칭으로 부르는 게 어떨지요?"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지훈이 과장되게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흠, 그럼 나는 처제를 제수씨라고 불러야 하나, 부르던 대로 처제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래도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이모부가 명쾌하게 관계를 정리해주려고 작정한 듯 했다.
"나와 집사람은 간단하겠어. 며느리는 전처럼 부르고 새 질부는 질부로 부르면 되니까.
동서와 처제도 우리 아기에겐 전처럼 질부로 부르고, 새 질부는 며느리로 부르면 되겠지.
김서방은 처남의 댁이, 김실이는 올케가 새로 들어온 것이니 고민할 것 하나도 없어."
거기까지는 정리가 그럭저럭 잘 되더니, 지훈과 다영의 관계에서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처제이면서도 제수이기 때문이었다.
진혁과 하영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형수로 불러왔지만, 처형이라는 호칭을 버릴 수 없었다.
동서지간이지만 친자매인, 다영과 하영의 관계도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도대체가 원칙을 정
하기가 어려운 관계였다. 현주가 진혁을 보며 불쑥 말했다.
"혁이가 정리해봐."
"내가 뭘.." 하며 뒤로 빼던 진혁은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더 사릴 수 없어 입을 열었다.
"막내인 제가 정리할 게 아니라 어른들께서 알려주셔야 할 문제인데, 하라시니 해볼게요.
이모와 이모부,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매형은 이모부께서 정리하신 대로 하면 되겠죠?"
모두 그렇다고 동의하자 진혁은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저와 이 사람, 형수와 형, 네 사람의 교차관계인데 명쾌한 기준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다영은 진혁이 자신을 이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말에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마치 진혁의 아내로 거기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더 아늑해졌다. 진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친가에서는 친가의 계촌, 처가에서는 처가의 계촌을 따르면 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처가의 어른들이 안 계시기 때문에 친가와 처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다는 거에요."
진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가족들을 둘러 본 뒤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형집에 가도 처형이 있기 때문에 처가가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형이 우리 집에 오면,
동생집에 온 거면서도 처제가 있어서 처가이기도 하니 기준이 없는 거죠."
그 말에 가족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난마를 쾌도로 잘라버리는 진혁을 보던
다영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그럼 네 사람의 교차관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 해볼게요.
먼저 저와 형수의 관계입니다. 일단 저는 형수나 처형, 둘 다 정감있고 좋습니다. 어른들이 계
실 때는 형수로 부르고, 처형이라는 호칭은 세 가지 상황에서만 쓰겠습니다."
진혁의 말하는 세 가지 상황이란, 자신과 하영자매가 있는 경우, 넷이 함께 있는 경우, 처가의
친인척들을 만날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영이 흔쾌히 동의하여 거기까지도 깨끗이 정리되었다.
"다음은 형과 저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복잡합니다. 사촌형과 친동서의 관계로 놓
고 보면 간단할 수도 있지만, 아시다시피 형과 저는 사촌이면서도 사촌이 아니니 문젭니다.
이건 멋있고 너그러운 우리 형이 많이 양보해야 정리가 됩니다."
그 말에 지훈이 양보할 게 있다면 기꺼이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저야 양쪽으로 다 아우이니 불편할 게 없습니다. 형이 양보해야 할 부분은, 어른들이 안 계시
는 가운데 우리 넷 중에 셋 이상 모였을 때만은 절 동서로 대하는 겁니다. 해라체가 아닌, 하
게체를 쓰며 형수와 이 사람에 대해서 배려하면 정리가 됩니다."
그러자 지훈이 그게 뭐 어렵겠느냐면서 웃더니 말했다.
"알았네, 동서. 이러면 되는 거지?"
진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마무리했다.
"형수와 이 사람은 형과 저의 상황에 따르면 정리가 될 것 같네요."
하영과 다영이 동의하자 복잡한 계촌관계는 그것으로 정리 되었다. 매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남의 댁의 수태와 새 처남댁의 가족 입성, 복잡한 이중 계촌관계를 위하여 건배하죠."
매형의 말에 모두 웃으며 잔을 들었다.
하영의 수태에서, 계촌관계로 이어지던 화제는 이제 다영과 진혁의 결혼으로 흘러갔다. 아버
지가 씻어 놓은 과일처럼 반짝거리는 다영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성례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누?"
다영이 얼굴을 붉히며 언니인 하영을 쳐다보았다. 하영이 곱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영
은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날짜를 잡아주시면 저희들은 그 뜻을 받들겠습니다."
다영의 말에 어머니가 다시 넘어가며 빠른 시간 내에 치루자며 서둘렀다. 평소 차분하고 움직
임이 깊은 어머니였다. 그러던 어머니가 사랑스런 질부의 수태라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깨물
어주고 싶은 예비 며느리의 자태에 빠져 철부지 소녀처럼 덤벙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모
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처제가 얼른 손주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보네..허허.."
그 말에 다영의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고, 그런 다영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예뻐서 어쩔줄 몰라
하다가 덥썩 껴안고 볼을 비볐다.
"요렇게 이쁜 새 아기가 어디 있다가 이렇게 새록새록 나타났남, 그래.."
진혁과 다영의 결혼문제는 대략적인 시기를 봄으로 잡기로했다. 더 자세한 것은 하영과 이모
부, 아버지가 의논하여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따뜻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밤이 깊었다. 어머니와 이모가 눈짓을 주고 받더
니, 각자의 며느리인 다영과 하영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이모가 모두를 둘러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자매들끼리 잘 거니깐 아무도 끼어들 생각하지 마. 뒷 정리는 힘센 남자들 동
원해서 현주가 다 해."
마침 토요일이었다.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남자들은 그 자리를 정리하는 대신 더 뭉개며 술잔
을 비웠다. 유일한 여자로 남겨진 현주는 삼엄한 파수꾼인 다영의 눈으로부터 방치된 진혁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기회다 싶어 진혁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여우같은 예비 올케가 없으니 혁이는 지금부터 내꺼야."
그것을 본 매형이 졌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어릴 때부터 하도 많이 보아 그 광경이 익숙한 가
족들은 그러려니 하며, 관심도 두지 않고 술만 마셨다.
새벽에 가장 먼저 일어나 거실로 나온 사람은 다영은 거실의 광경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 남자들이 서로 뒤엉킨 채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들이 정겹게
느껴지는 다영은 자신도 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남자들 틈에서
현주도 진혁의 팔을 밴 채 아기처럼 잠들어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영
은 소리 나지 않게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이어 잠에서 깬 어머니가 다영이 보이지 않자 거실로 나왔다. 남자들이 깨지 않게 소리를 죽
인 채 설거지하는 다영을 본 어머니가 다가가서 거들었다. 설거지가 끝나자 어머니가 다영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겨주다가 깊숙이 껴안았다.
"이쁜 우리 아기..에미 앞에 와줘서 고마워.."
껴안은 채 등을 두들겨 주는 어머니의 품이 아늑하고 포근하여 다영은 눈물이 나려했다. 등을
토닥거려 주는 어머니를 마주 껴안으며 다영이 앙증맞게 말했다.
"어머님 품이 참 따뜻하고 포근해요. 자주 안아주세요."
그 말에 진탕된 어머니가 다영의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언제든지 팔만 벌리렴. 에미 품은 늘 열려 있단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오던 하영이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아름답고 따
스하게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현주에게 팔을 빼앗긴 진혁도 아까부터 잠에서 깬 채 실눈을 뜨
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영과 진혁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아픔의 흔적이 사라진, 따
뜻하고 편안한 눈빛을 주고받다가 하영이 먼저 곱게 웃고 진혁도 눈으로 따라 웃었다.
이제 진혁과 하영의 마음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쉼표로 굳어지고 있었다. 진혁의 곁에는
다영이 있었고 다영을 아프게 할 어떤 일이나 생각도 할 수 없게 된 진혁이었다.
하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의 사랑을 되찾은 지훈의 온전한 아내로 돌아가 있었다. 진혁과의
사랑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한 채 태아를 생각하며, 좋은 어머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영만 만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던, 현주와 하영의 확신이 확연히 이해되는 진혁
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앞에서는 '이 사람' 이라고 했으면서, 좀 져줄 수 없으세요?
이렇게 고집부릴 땐 꼭 좁쌀영감님 같아. "
어머니와 아버지를 서울역까지 배웅하고 아파트로 돌아 온 진혁과 다영은, 진혁의 깍듯한 경
칭문제로 토닥거리는 중이었다. 공대하는 것이 거리감 느껴진다며, 말을 낮춰 달라는 부탁을
진혁이 들어주지 않자 다영이 토라진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말을 가볍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진혁이었다. 후배인 계일을 제외한, 회사
의 직원들에게도 하대를 않고 있었다.
"다영 씨도 같이 낮추면 따라 할게요."
"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그래요.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 내 남자를 내가 먼저 존중하고 떠
받들고 싶어서예요. 제 꿈이었다구요."
"같은 이유로 저도 마찬가집니다."
진혁의 그 말에 다영은 정말 발끈한 듯 했다.
"어른들 계실 때는 이 사람이라고 말 해줬잖아요. 둘이 있을 땐 왜 못 그래요?"
진혁이 그건 어른들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는 말에 다영이 작전을 바꿨다. 그 예쁜 눈 가득히
녹여버릴 듯한 웃음과 간절함을 함께 담은 채 여우로 변신했다.
"제발요..네? 당신께 응석도 부리고 매달려서 애교도 떨고 싶단 말예요. 응?"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예쁜 변신 앞에서 진혁은 이쯤이 물러설 때라는 걸 알았다.
그대로 계속 고집을 부렸다가는 "정진혁 이병, 차렷!" 하던 호통이 또 뒤따를 게 분명했다.
진혁은 다영의 고운 눈을 마주 들여다보았다. 빨려들 듯한 깊은 눈이었다.
"알았어. 다영아. 이러면 되는 거죠?"
다영이 아이처럼 좋아하다가 눈을 흘겼다.
"못됐어, 정말. 뒤에 건 빼고 다시 해주세요."
진혁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다영아, 사랑해."
"고마워요. ‘다영아’보다 영아가 더 다정하고 좋은 것 같아. 그렇게 불러 주세요."
"알았어. 영아, 사랑해."
다영이 진혁을 껴안으며 입술을 부딪쳐 왔다. 자지러질 것 같은 황홀함이 한순간에 진혁을 아
득하게 했다. 한참 입술을 비비고 혀로 어루만져서 진혁의 넋을 빼놓은 다영이 고개를 들고
꿈결처럼 속삭였다.
"사랑해요. 당신..이제부터 당신을 더 반짝이게 해드릴게요. 기대하세요."
하영과 현주가 갖고 있던 열쇠를 압수한 다영은 두 사람이 하던 역할을 혼자서도 너끈하고 향
기롭게 해치웠다. 진혁의 아파트는 더 아늑해진 채 더 반짝였다.
하영과 현주도 정성으로 진혁을 챙겼지만, 다영의 손길과 정성은 언니들과는 자세부터 다른
것이었다. 미래를 함께 할 약혼자에 대한 정성과 손길이었다.
부둥켜안은 채 잠들었다가 함께 아침을 맞는 날들이 늘었다. 다영을 안는 순간에 진혁은 그
저릿한 감촉과 체온에 몸을 떨고 달콤한 숨결에 허우적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우릿한 황홀함
에 빠져 더 나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거기에 감미로운 다영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내려앉으면 넋이 나가버리는 진혁이기에 아직
그 이상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다영의 눈부신 여체에 감춰진 비밀을 짐작하므로 진혁
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아끼는 마음이 워낙 깊은 두 사람이어서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다영에 대한 사랑이 깊어 갈수록 진혁에겐 새로운 고민거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기처럼
맑은 다영의 눈을 마주 볼 때마다 이제는 쉼표가 된 하영과의 사랑이 걸렸던 것이었다. 자신
을 소년처럼 투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다영이기에 그 고민은 더욱 커졌다. 다영도 진혁의
표정에서 어떤 그늘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비가 내리는 주말 밤이었다. 진혁의 품에 안겨 사부작대던 다영이 진혁을 보며 물었다.
"영아에게 말하고 싶은 것 있어요?"
그 맑은 눈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영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저랑 같이 의논해야 하는 거라면 지금 말하세요. 그게 아니고 지나간 비밀이라면 말
하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은 제게 말한 걸로 하고, 저는 들은 걸로 하고, 둘이서 같이 비운 걸
로 해요. 아셨죠?"
그런 다영을 보며 진혁은 가슴이 벅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담스런 다영이 품고 있는 마
음의 그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다영이 다짐하듯 말했다.
"대신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제게 그 어떤 비밀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영아는 그거면 충분해요."
"응. 비밀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진혁은 다영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다짐했다. 그 다짐은 그 시간 이후부터 진혁의 신념
이 되었다. 그것은 다영이 바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하영이 더 바라고 있는 것이
기도 했으며 진혁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고마워요. 진혁 씨가 말한 이야기 속에 누군가가 있고 혹시 그 사람이 미워하던 사람이면 그
미움까지도 다 끝난 거예요. 맞죠?"
영롱하게 웃으며 껴안아 주는 다영의 품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그 품에서 아이처럼 잠든 진혁
은 맑은 아침에 깨었다. 다영의 햇살 같은 웃음이 지켜주는 그 아침에 진혁은 다시 환한 표정
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고민은 진혁이 자는 사이 다영이 가슴 깊이 품어서 다
녹여 없애버린 뒤였다.
다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진혁의 사무실에 들러 직원들과도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냈다. 그
사이 늘어나서 쉰 명이 넘는 직원이었다. 다영은 짧은 시간에 이름과 직책, 하는 일 등을 전부
기억하여 진혁과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직원들의 생일까지 챙기며 마음이 담긴 글과 함께 정
성스런 선물을 하는 다영이 나타나면, 계일을 비롯한 직원들은 까무러치는 환성으로 반겼다.
다영에 대한 직원들의 호칭은 형수님이나 언니였다. 직원들이 형수님이나 언니로 부를 때마
다 다영은 진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시동생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는데, 여기 한 트럭 있었네요. 전부 어쩜 저렇게도 반짝거리
고 멋있는지 그득하고 든든한 느낌이에요. 당신, 우리 도련님들과 아가씨들께 더 잘하세요."
아직 결혼식 날짜도 잡지 않은 다영이었지만 도련님, 아가씨라는 말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가 없었다. 그 말에 꼬로록 넘어간 직원들은 자청하여 '다영교'의 광신도가 되었다. '형수님
교'이기도 한 그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회사 책임자인 계일이었다.
원래도 똘똘 뭉쳐 있던 직원들은 다영이라는 용액이 첨가되자 하나의 강철덩이로 굳어졌다.
다영은 세 사람만 있을 때는 계일을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맏이라서 형수가 없는 계일은 다영
이 도련님이라고 불러 줄 때마다 입이 귀에 걸리며 좋아했다.
바쁜 일 때문에 토요일에도 단둘이 출근한 진혁과 계일은 둘이서 손발을 맞춰 예상보다 일찍
일을 끝냈다. 마무리까지 마친 진혁과 계일은 느긋한 마음으로 회사운영에 대한 이런저런 이
야기를 나누었다. 책임자인 계일의 일처리가 워낙 빈틈없고 진혁의 의중까지 읽으며 움직이
는 터여서 사실 오래 나눌 이야기도 없었다. 남자 둘이 얼굴 맞대고 있는 게 무료하였든지 계
일이 TV를 켰다. 마침 휴먼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부모를 사고로 여읜 오누이가 3년간이나 자신들을 숨어서 돌보고 있는 독지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내용이었다. 그 독지가는 명절이나 생일뿐만 아니라 어린이 날, 소풍, 수학여행 등 부모
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를 빠뜨리지 않고 챙겨주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부모처럼 꼼꼼하게 챙겨 보낸다는 것이었다. 소원을 묻는 리포터에게 오누이
가, 그 분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며 울먹이는 것으로 프로가 끝났다. TV를 끈 계일의
눈이 진혁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이심전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눈빛만으로도 통하
는 두 사람이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의 때 직원들 의향을 들어보고 결연 맺을 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 봐."
계일이 역시 우리 형님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더니 말했다.
"형님과 둘만 있는 시간도 드문데 모처럼 돼지껍데기에 소주라도 한 잔 하죠?"
둘만 있을 때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계일이었다. 흔쾌히 동의하고 일어선 진혁이 퇴근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계일이 문을 열고 말했다.
"형수님께서 손님 모시고 오셨어요."
계일의 안내를 받으며 다영이 낯선 여인과 함께 들어섰다. 다영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며 진혁은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어떤 앙증맞은 음모를 꾸미는지 알 수 없어 각
오를 단단히 했다.
직원들이 없기에 직접 차를 준비해 주고, 나가려는 계일을 다영이 붙들어 앉혔다.
"도련님, 어디 가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형이 아닌 도련님이세요."
진혁과 계일, 다영과 낯선 여인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다영과 함께 온 여인은 이
목구비가 또렷하면서도 온화하고 지적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인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선하고 고운 분위기였다. 진혁은 그 여인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 누군
가를 닮은 듯도 했다. 다영과 그 여인은 그런 진혁의 표정을 살피다가 서로 눈을 부딪치며 작
게 웃었다. 다영이 계일에게 말했다.
"도련님, 형의 머릿속은 이 아름다운 여인이 누군지 유추하느라 바쁠 거에요. 지켜보자구요."
자신과 다영과 관계가 얽힌 여인이라는 것을 짐작했던 진혁에게 다영의 그 말은 결정적인 힌
트였다. 진혁이 웃음을 띠며 일어나서 낯선 여인에게 불쑥 악수를 청했다.
"우리 연대장님 잘 계시죠? 진영 씨."
진혁을 제외한 세 사람의 표정이 각자 달라졌다. 다영은 역시나 하며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고
그 여인은 기절할 듯 놀란 표정이었다. 두뇌회전이 진혁에 못지않은 계일은 잠시 어리둥절하
다가 다영의 의도를 읽어내고는 매무새를 고쳐 앉았다.
"형부, 처음 뵐게요. 진영이에요. 이렇게 멋진 분인 줄 알았더라면 아빠가 말씀하실 때 냉큼
만났을 텐데, 튕기다가 놓쳤으니 아까워서 어떡해."
그 말에 다영과 진혁이 웃음을 터뜨리고, 그때까지의 대화로 줄거리를 알아챈 계일도 웃었다.
"아버님께서 워낙 바른 분이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언니 만나지 못하고 진영씨에
게 코 꿰었을 겁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을 아버님으로 두셨습니다."
다영이 정식으로 계일과 진영을 인사시켰다. 두뇌가 비상하면서도 심지가 깊고, 부드러운 통
솔력을 가진 계일이었다. 거기에 가슴까지 따뜻한 계일을 보며 다영은 일찌감치, 진영과 연결
시켜 주기로 작정했었다.
마침 사무실 문을 닫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계일과 진혁은, 비 오는 날이라서 순대가 제격
이라는 여인들에게 덜미를 잡혀 신림동으로 씩씩하게 끌려갔다.
진혁은 다영을 만난 이후 대구의 집에도 전보다 더 자주 다니러 갔다. 다니러 갔다기보다는
붙잡혀서 따라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님 품이 그립다고 보채며 떼쓰는 다영을 이길 방법
이 없었다. 떼쓰기 전에, 이른 바 '형수님교' 교주인 계일을 통하여 진혁의 일정을 꿰고 있는
다영이었다. 내려갈 때마다 외톨이가 되는 것에 질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계일에게
도움을 청해도 통하지 않았다.
"머리도 식힐 겸 다녀오세요. 저랑 직원들은 바빠야 신나는 사람들인데 무슨 걱정이세요?
마음 놓고 다녀오세요."
붙잡아 달라는 진혁에게 오히려 등을 떠미는 계일이었다.
대구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진혁은 버려진 인형처럼 외로웠다. 어머니의 눈에는 다영만
보이는 것이었다. 진혁을 혼자 떼어놓고, 다영과 손잡은 채 찜질방으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자랑하느라 진혁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같은 남자인 아버지마저 외출이나 산책을 나갈 때
는 다영만 찾았다.
"아가, 애비 외출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다영이 냉큼 달려나와 팔짱을 끼면, 아버지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 채 진
혁만 내버려 두고 대문을 나섰다. 덩그렇게 남겨진 진혁은 서럽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
집에 다영은 친딸이며 자신은 얻어먹으러 온 천덕꾸러기처럼 느껴졌다.
늘 곁에서 지켜보며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진혁을 빛나게 하던 다영은, 대구에 내려가기만 하
면 어른들 곁에 찰싹 달라붙은 채 진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다영이 얄미우면서도 고
맙고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진혁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이었다. 창가에 내리는 햇살이 바람에 씻겨 투명하게 반짝이고 창문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과 강은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진혁은 옷가지를 챙기며 여행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다영을 위한 여행이었지만 그것을
계획하고 추진한 것은 계일이었다. 다영과 작당하여 청평 북한강변의 펜션을 덜컥 예약해 두
고는 등을 떼밀어버린 것이었다.
"일도 좋지만, 형수님도 좀 챙기셔야죠.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거기 정말 좋습니다.
형님 안 계셔도 여긴 잘 돌아가니까 바람 좀 쐬세요. 형수님께 점수도 듬뿍 따시구요."
안 그래도 다영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진혁은 못 이기는 척 짐을 꾸렸다. 가는 길에 형진
에게 들릴 계획이었다.
짐을 챙기다가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준 진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
어질 만큼 어여쁜 모습으로 다영이 웃고 있었다. 은은한 꽃무늬가 옅게 프린트 된 하얀 원피
스가 새하얀 다영의 피부를 더 투명한 느낌으로 빛나게 했다. 진혁은 눈이 부셨다. 멍해진 진
혁의 눈앞에서 다영은 우아한 몸짓으로 그 자리를 한 바퀴 돌더니 화사하게 웃었다.
"소중한 분들께 인사시켜 주신다기에 신경 많이 써서 단장했어요. 이쁘죠?"
다영의 말을 듣고도 진혁은 입이 얼어 대답할 수 없었다. 여태껏 진혁이 보아온 다영이 아니
었다. 아름답다는 것을 넘어 처연하기까지 한 감동에 짓눌려 입을 열 수 없었다.
"뭘 얼마나 많이 챙겼기에 가방이 저렇게 배가 부른 거야? 형수님 배보다 더 불룩하네."
다영의 차 뒷좌석에 자리를 턱하니 잡고 있는 가방을 보며 진혁이 묻자 다영이 대답했다.
"좀 있다가 보시면 알게 돼요. 옹아리하는 애기들보다도 궁금한 게 더 많은 것 같아..훗.."
진혁과 다영이 대모산 자락에 도착하였을 때, 미리 전화를 받고 기다리던 형진과 현정은 아이
들까지 외출금지를 시켜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저와 미래를 함께 할 사람입니다."
진혁은 반가워하는 형진과 현정에게 다영을 약혼녀로 당당하게 소개했다. 진혁에게 들어서
형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던 다영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지켜준 두 사람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나붓이 고개 숙였다.
"진다영입니다. 남편 될 사람을 보살펴 주신 아주버님과 형님, 감사합니다."
다영이 자신들을 아주버님과 형님으로 부르자 형진과 현정이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띠었다.
진혁의 편안한 표정에서 하영과의 아픈 사랑에 대한 그늘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더 기뻐했다.
명기의 인연을 알기에 진혁이 마음 고생할 것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던 형진과 현정의 걱정
을 다영은 단번에 날려주었다.
정말 잘 어울리는 진혁과 다영을 보며, 흡족하고 그득해진 형진이 마주 인사했다.
"진혁이 형 되는 오형진입니다. 제수씨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형진이 흐뭇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형진이 다영의 손을 놓기를 기다리
던 현정도 정을 가득 담은 눈길을 보내며 다영의 손을 잡았다.
"안현정이에요. 반가워요. 동서."
현정은 스스럼없이 동서라고 부르다가 손만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였는지 깊이 안아 준 뒤
아이들에게도 다영을 소개했다.
"삼촌과 결혼할 작은 어머니셔. 인사드려야지."
진혁이 들고 온 가방을 연 다영이 Buterfly 탁구라켓과 사성(四星) 탁구공 세트를 꺼내며 큰 녀
석에게 말했다.
"민이는 탁구를 그렇게 잘 한다지? 언제 작은 엄마에게도 좀 가르쳐 주렴. 너무 탁구만 하지
말고 지금처럼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해."
선물을 받아든 녀석의 입이 귀에 걸렸다. 버트플라이 라켓은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
나 갖고 싶어 하는 것이었으며, 사성 볼은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녀석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꾸벅 인사하더니 다영을 덥석 껴안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작은 엄마."
녀석의 등을 두드려 준 다영이 볼을 어루만져 주다가 눈을 맞댔다. 그러고는 자상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말했다.
"늠름하고 멋진 우리 민이가 안아주니 작은 엄마 너무 좋다. 어머니도 자주 안아 드릴 거라고
작은 엄마랑 약속할 거지?"
녀석이 얼굴을 붉히면서도 다영에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그러겠다고 씩씩하게 약속했다. 다영
은 이번에는 갈래머리를 귀엽게 땋은, 초등학교 이 학년 꼬마숙녀인 미나를 껴안더니 가방에
서 봉제인형을 꺼내주었다.
"우리 이쁜 미나 주려고 작은 엄마가 직접 만든 거야."
어른들이 보기에도 껴안고 싶을 정도로 예쁜 인형을 본 미나가 폴짝 뛰어올라 안기며 볼에 뽀
뽀했다.
" 작은 엄마. 고맙습니다."
이른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를 한 순간에 휘어 잡아버리고, 녀석들의 대장으로 군림하며 같
이 뒹구는 하영을 지켜보며 현정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쩜, 민이 녀석은 부끄럽다고 제 엄마도 안 안아주던 녀석인데......"
감탄하던 현정마저도 다영은 한 입에 날름 삼켜버렸다.
"이건 형님 스카프에요. 추운 날 외출 하실 때 예쁜 동생 생각 많이 해주셔야 해요."
선물을 받아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현정이 부러워진 형진이 은근히 기대를 하며 순서를 기
다렸다. 그런 형진에게 내밀어진 것은 곱게 포장된 작은 상자였다.
"제수씨, 제 덩치가 제일 큰데, 선물은 왜 젤 작습니까?"
아이처럼 웃으며 포장을 뜯은 형진의 입이 귀에 걸렸다. 멋진 넥타이핀이었다.
"아주버님처럼 멋진 신사분은 넥타이핀도 걸맞아야 해요."
평소 움직임이 태산 같던 형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옷장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는 거울
앞에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뒤에 핀을 꽂아보며 부산을 떨었다. 그런 형진에게 제수
씨 앞에서 채신없다며 현정이 놀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진혁은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지켜보
고만 있었다. 다영은 한 마디로 여우 그 자체였다. 하영을 여우 구단, 현주를 여우 십 단으로
인정했던 진혁은 속으로, 여우계 지존의 자리에 다영을 앉히고 있었다.
다영이 아이들과 휩쓸려 마당으로 나간 뒤 현정이 진혁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제, 삼촌 걱정은 다 내려놨어요. 어쩜 저렇게 곱고 이쁜지, 쳐다보기도 아까운 것 같아."
그러자 형진이 진혁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제 니 형수 마음껏 안아도 내 말 안할게.
저런 꽃 같은 제수씨랑 있으니 할마시가 여자로 보이겠어?"
현정의 손바닥이 형진의 등에서 작렬하고, 얻어맞은 등짝을 아픈 표정으로 쓰다듬던 형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수씨 인상이 낯설지 않아."
진혁으로부터 하영의 동생이라는 말을 들은 형진과 현정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하영의
성품과 진혁의 성격으로 보아 그동안 있었을 갈등들이 짐작이 되어서였다.
다영과 현정이 의좋은 자매처럼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형진은 진혁을 서재로 데려갔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는 했지만, 네 형수랑 걱정을 많이 했다. 하영 씨가 남다른 사람
이라서 네가 많이 아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연이 가까운 데 있었구나."
진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형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아내는 걸 보면, 역시 명기의 마음이야."
그러면서 형진은 뭔가를 짐작한 듯한 표정으로 진혁을 보았다. 진혁은 형진이 눈으로 묻는 것
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형님이 짐작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다른 것들이 형
수님처럼 예사롭지 않습니다. 더하면 덜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영이 들어서는 순간에 그것을 짐작하고 확신했던 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난 듯 물
었다.
"제수씨께 하영씨와의 지난 관계에 대해서 말한 건 아니지?"
사실은 혼자 고민하다가 말하려 했었다며 진혁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형진이 다행이
라며 다짐하듯 말했다.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지 못하는 네 성격은 알지만, 제수씨 생각한다면 그 이야기는 다시 꺼
내지 마. 이제부터는 제수씨를 어떻게 아껴줄 것인지만 생각해. 하영 씨도 그걸 바라니까 동
생을 연결시켜 준거야."
식사준비가 끝났다며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진혁과 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기 전
에 형진이 한 번 더 다짐을 받았다.
"명기는 정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을 꼭 명심해. 네 마음 전부가 제수씨를 향하지 않으면, 너
도 제수씨도 둘 다 아프게 돼. 어떤 여지도 남기지 말고 진심으로 아껴드려."
어떤 여지라는 말 속에 하영에 대한 것도 포함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진혁은 그러겠다고 약속
했다. 그것은 이미 진혁의 신념으로 굳어 있었다.
점심을 같이 하고 나서 차를 마신 다영과 진혁이 떠난 뒤, 형진은 다시 서재로 가서 원화체록
(元化體錄)을 꺼내 명기편을 펼쳤다. 그리고는 글자 하나까지 낱낱이 살피기 시작했다.
화타의 기술형태로 보아, 부연설명이 있을 법한데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찾는 내용이 없었다.
책을 저만큼 밀어낸 형진이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다시 벌떡 일
어난 형진은 명기편의 책장을 손으로 세심하게 만져보며 넘기기 시작했다.
지극과 공극에 대하여 기술한 부분을 만지던 형진의 눈이 빛나더니 그 장의 질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른 책장들보다 확실히 더 두꺼운 것을 확인한 형진은 보일락말락 옅게 비치는
글자들의 윤곽을 찾아내고는 무릎을 쳤다. 몇 백 년이 지나는 사이 두 장이 하나로 붙어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었다.
형진은 조심스럽게, 맞붙은 두 장을 떼어 놓았다. 다행스럽게도 찢어지지 않고 잘 분리된 두
페이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형진이 탄식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 장에서 기술한 공극(共極)에 대한 부연설명이 있었다. 공극(共極)을 가진 여인이 극치감의
끝에 이르면 부분적인 지극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진혁이 경험한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지극(持極)에 관한 것이었다. 화타의 서술에 의하면, 지극은 공극과 같은 차
원의 다른 형태가 아닌, 공극보다 한 단계 위였다. 즉 지극체 여인은 완전한 공극을 포함한 위
에 그 파정형태가 지극이라는 내용이었다. 정로는 공극의 그것과 같지만, 질 속에서 돋아나
는, 새 살 같은 막인 정상(頂裳)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했다. 지극체의 정상에 관하여 설명한
부분을 읽은 형진이 혼자 중얼거렸다.
'불쌍한 녀석. 죽음 문전을 오락가락하게 생겼군.'
거기까지가 새롭게 열어 본 첫 페이지의 끝이었다.
커피를 타 와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던 형진이 나직한 신음을 내뱉었다. 자매 중 한 사
람이 명기체일 경우 다른 자매도 명기체일 확률을 구 할 이상이라고 화타가 서술하고 있었다.
화타는 그 부분에서 오의 강남이교와 함께, 견 씨 자매를 방증으로 삼고 있었다.
강남이교는 오나라 교국로(橋國老)의 딸이었던 대교(大橋) 교정과 소교(小橋) 교완을 일컫는
말이었다. 언니인 교정은 손책의 부인, 동생 교완은 주유의 부인이었다. 미색이 절륜하여 경
국지색으로 불렸던 두 자매를 화타는 모두 명기였다고 했다.
강남이교는 적벽대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자매였다. 조식(曺植)이 조조에게 지어 바친 동작
대부(銅雀台賦)라는 시가 빌미였다. 그 시에 강남이교를 슬쩍 삽입하여 바꾼 제갈량이 주유에
게 읽어주어 격분시켰던 것이었다. 화가 난 주유가 참전하여 발발한 것이 저 유명한 적벽대전
이었다. 화타는 이교의 미모와 어진 성품이 시대의 으뜸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견 씨 자매 중 언니는 정사와 야사를 통하여 많이 알려진 여인이다. 원희의 부인이었다가 원
씨 일가가 몰락한 뒤 조비의 황후가 되었던 여인이었다. 그 언니에 비하여 동생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공자(孔子)의 20대 손인 북해태수 공융(孔融)의 조카인, 대학자 공후(孔厚)
에게 시집을 간 여인으로만 기술되어 있었다.
강남이교와 견 씨 자매를 방증으로 삼은 부분에서 화타는, 자매 중 한 사람이 공극이면 나머
지 자매는 지극이라는 부언을 덧붙이고 있었다.
화타의 기술은 명기체 여인의 파과(破瓜)에 대한 언급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명
기체 여인은 음막(陰膜), 즉 처녀막이 없다고 했다. 평심과 정심, 방심, 극심에 따라 구조가 변
하는 성기이므로 처녀막이 생성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화타의 기술이 끝난 밑에는 유허의 주석이 달려 있었다. 유허는, 후한 대의 역사에 명기가 많
이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전란으로 인해 부녀자의 약탈과 탈취가 성했기에
명기가 표면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읽고 책을 덮은 형진은 황급히 진혁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화타의 마지막 기술에 대해서는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부인과에 정통한 한의사의 눈으
로 보았을 때, 다영은 분명 남자와의 교접이 없는 몸이었다. 그것은 진혁에게 존중받고, 진혁
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였다.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역에 있는지 진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형진은 생각을 바꿔 문자를
보냈다. 다영이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이므로 형진은 글자를 극단적으로 요약하여 순서
를 바꿔서 보냈다. 진혁의 비범한 머리를 형진은 알고 있었다.
[지체극 파무과 초]
'지극체 파과 무'라는 글자를 뒤섞어서 보낸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혁이 보낸, 더 짧은 답신을 보며 형진이 웃었다.
[기 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형진은 그답지 않게 진혁을 조금은 부러워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스스로 자책했다.
진혁이 형진의 문자를 받은 것은 팔당을 지날 무렵이었다. 다영이 명기체라는 것은 분위기나
향기, 키스할 때의 감촉 등을 통해 분명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지극체라는 것과 동정이란
것도 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진혁은 그런 사실들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명기체 여부를 떠나 다영을 가슴 깊이 사랑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은 하영을 사랑할 때보다 더 깊고 뿌리가 튼튼했다.
진혁은 자신이 이토록 깊이 다영을 사랑할 것에 대하여, 하영이 처음부터 알았을 거라고 생각
했다. 알기에 그토록 자신과 다영을 연결시키려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다영은 단아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열린 창으로 스며드는 강바람에 다영의 머리
카락이 곱게 흩날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며 진혁의 콧등이 시큰해졌다.
더워지는 가슴을 통하여 진혁은 자신이 다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감하며 손을 잡았다. 손
바닥 안에 쏘옥 들어오는 작고 보드라운 그 감촉이 아스라했다.
돌아보며 웃는 다영의 모습은 눈부셨다. 진혁은 이제 이 여인이 없으면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진혁은 가슴에 가득 찬 그리움을 입술로 내보냈다.
"영아, 사랑해."
다영이 고개를 돌려 진혁을 보았다. 아름다운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사랑해요, 당신. 그 산모퉁이에서 처음 만날 때부터 내 남자라는 것을 알았어요."
다영이 앞을 보면서도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떨려요. 이제 곧 온전히 당신 여자가 될 텐데, 설레고 기쁘면서도 떨리고 가슴이 저려요."
그 말에 울컥 하던 진혁은 뭔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아득해졌다. 다영의 몸에서 화사
한 빛으로 뿜어진 향기가 순식간에 차안을 채웠던 것이었다. 그 황홀한 향기에 갇힌 진혁은
다영의 방심이 움직인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늑하고 감미로운 질감으로 어루만지는 향기
가 숨을 들이 쉴 때마다 가슴속까지 우릿하게 했다.
"내가 더 떨려. 영아를 너무 사랑해서 가슴이 터질 듯이 설레고 떨려."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하고 손길만 닿아도 아득하게 하는 향기로운 여인이었다. 온전히 안았
을 때의 느낌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면서 두려웠다.
다영의 손을 잡고 있으면 온갖 상념들이 사라지고 편안했다. 아픈 사랑이 아닌, 영혼까지 아
늑해지는 사랑이었다.
하고 싶은 사랑과 해야 할 사랑이 일치하지 않아서 아파했던 진혁은 다영으로 인해 두 가지가
일치를 이룬 가운데 행복했다. 다영은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이었으며, 죽도록 사랑해야
하는 약혼녀였다. 주변과 자신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힘들게 하지 않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
는 사랑이었다.
진혁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다영을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함께 있으면 영육이 혼곤해지도록 감미롭고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에 아련해지는 사랑이었다.
가을로 곱게 물들어가는 강변길은 아름다웠다. 강 이 쪽과 건너 편 산들이 화려한 색으로 옷
갈아 입고 강가의 갈대들은 햇살아래 눈부셨지만, 진혁의 눈은 잠시도 다영의 얼굴에서 벗어
나지 않았다. 진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랑해. 늙어 죽을 때까지 영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고 더 키워 나갈게."
"고마워요. 진혁 씨가 그 약속을 지켜 줄 거라는 걸 영아는 가슴으로 알아요.
이것 아세요, 당신?"
진혁은 그 고운 얼굴을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영이 향기로운 입술을 열어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신 사랑을 머금고 영아가 더 예쁘게 피고 있다는 것 말예요.
영아는 당신만 좇는 해바라기가 되었다구요."
그 어여쁜 말에 진탕된 진혁은 운전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다영의 입술을 덮쳤다. 다영이 핸
들을 잡은 채 입술을 쫑긋 내밀며 진혁의 입술을 맞았다가 다시 앞을 보며 말했다.
"영아는 당신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곧 길이 끝날 거예요."
곧 길이 끝난다는 다영의 말이 깊은 의미로 진혁을 흔들었다.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둘 만
의 일들을 생각하며 두근거리면서도 두려웠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릴 만큼 고운 다영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포옹해도 되는 자신
의 여인, 자신의 영토였다. 함께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자신만의 비옥
한 대지였다. 그리고 진혁의 영혼을 지배하는 주인이었다. 그 달콤하고 감미로운 통치를 받으
며 진혁은 행복하고 아늑했다. 그리고 이제 곧 자신의 몸까지 지배하게 될 다영이었다.
"어머나! 여기 너무 예쁘고 좋다."
다영이 탄성을 터뜨렸다. 저만치 강 언덕에 있는 펜션이 보였다. 그 펜션으로 천천히 오르는
차 속에서 진혁의 가슴이 터질 듯이 뛰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