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공이란 인물은 그 아버지가 사실 해적 출신으로 명나라때 복건성 근처의 이권을 챙겨
그 일대 실력자로 군림합니다. 명과 청이 대립하여 싸울때 등거리 외교를 취하는데
정선공은 북경에서 공부한 것이 있어 명나라에 충성을 하죠...
그리고 반청복명의 기치아래 대만으로 이주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실권자가 됩니다. 반청복명의 세력은 일부 미안마까지 깊숙히 도망가는데
이를 끝가지 추격 해결한 인물이 초기 청나라를 세울때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한족인 오삼계란 인물입니다.
오삼계는 결국 청나라에 의해 왕으로 봉해지고 (번이란 개념으로 분활 통치를 했었죠) 지금의 운남성 일대를
토대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됩니다. 오삼계의 영향력은 티벳 및 미안마, 베트남등에 미치게 되었죠...
강희제가 친권을 하면서 먼저 요리해야할 인물이 마지막 남은 반청복명의 핵심인 정성공이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오삼계였죠... 결국 오삼계와 강희제의 대결이 이루어 졌는데...
사실 이 전쟁은 지구전으로 갔습니다. 많은 만주족 병사들이 더운 날씨의 중국 남쪽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전쟁을 길게 끌고 가는 것도 싫어했는데 강희제의 리더십과 한족을 포함한 이민족을 묶어서
단기전이 아닌 지구전으로 긴 전선을 대상으로 오삼계를 스스로 지치게 만들어 승리를 합니다.
문제는 오삼계의 명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명나라를 망하게 해 놓고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거니
그 밑의 다른 군벌들이 별로 호응이 없었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째든 오삼계를 물리친 강희제는 다음 타겟인 대만으로 침공합니다. 이미 정선공이 없는 대만은 비록
바다가 있다고 하지만 청나라의 상대는 아니었죠... 그래서 대만이 복건성의 일부가 된 것이고...
그런데 이떄 몽골에서는 예전의 칭기스칸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 (이름이 생각안남)가 있었는데
대 몽골 지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정신적 고향인 티벳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죠...
강희제 다시 여기도 침공합니다. 그래서 몽골을 물리치고 몽골 족속을 외몽골 (현재의 몽골 지역)로 몰아내고
티벳과 현재의 신장 위구르 지역을 청나라에 복속시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표드로 대제와
네브라.. 조약으로 러시아-청나라 국경선을 그어 버립니다.
예전에 문제가 되었던 미안마, 베트남, 조선 그리고 몽골등과는 지금의 국경선으로 해서
조공을 받고 더 이상 영토 확장을 안하게 되죠... 그 것이 지금 중국이 이야기하는 중국의 국경선입니다.
오삼계 덕분에 운남성을 확보했고 몽골을 치면서 신장지역과 티벳지역을 그리고 정선공 덕분에
대만을 가지게 된 것이죠...
다행인 것은 16세기까지 만주족이나 여진족 일부 잔당들이 함경도 지역이 자기네 땅이라고 생각하고
침략을 수시로 했습니다. 그래서 16세기 까지 조선의 군대는 함경도 방위에 전력을 다하게 되는데
만주족의 나라인 청나라는 함경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병자호란때 그 굴욕을 당하면서도 땅은 내주지 않았죠...
백두산의 영토 문제가 발생한 것은 철종때 일로 백두산 근처에서 수렵하던 만주족 일부가 청나라 중앙정부에 소원수리를 하여
백두산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 것입니다. 그래서 청나라 사신이 왔을때 조선은 그 문제를 나이많은 신하에게 맡겨서
국경을 정하고 오라고 하니까 그 신하가 백두산을 오르다가 힘들어서 천지를 그만 내주고 백두산 중턱까지만
조선의 땅이라고 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와서 김일성은 천지를 반으로 가르는 국경선 재정립을 했는데
중국의 반발이 아주 심했었죠... 당시 우리 언론에서는 북한이 백두산을 팔아먹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어째든 17세기 말에 결정된 청나라의 국경선을 가지고 청나라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중국인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중국인들은 만주족이던 티벳족이던, 위구르인들이건 모두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만주사변때 (일본의 중국침략) 일본의 논리가 만주족은 그들만의 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만주국을 세우게 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의 중국은 자기들은 다민족 국가이고
중국내에서 민족문제로 다른 나라를 세우게 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침략으로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강희제가 몽골을 아주 복속했더라면 현재의 몽골도 없었을 것 입니다.
대만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 1895년 이므로 청일전쟁 이후가 되겠네요...
대만에는 원래 원주민인 고산족 (10%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원래 그네들의 땅이죠), 외성인 (약 70%, 청나라시절 부터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 그리고 본성인들 (45년 이후 국민당 정권, 약 20%)로 구성되는데
첸수이벤 집권까지는 주로 국민당 중심의 본성인들이 집권을 한 것이죠...
45년 부터 국민당과 공산당이 본토에서 싸워서 49년에 국민당 잔당이 대만으로 오게되죠...
근데 45년 부터 국민당은 대만에 있었고 2.28 사건은 공산당과 한창 싸우고 있는 47년에 발생한 것입니다.
49년에 대만으로 온 장개석 정부는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금문도를 사이에 두고 공산당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죠...
대만에 대해서는 1국 2체제 관점으로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중국과 수교하는 모든 국가는 그것을 인정하고
수교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유엔 동시 가입으로 한반도는 2국가 체제입니다. 그것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평화정착을 실현한다는 박정희 시대 말기부터 내려오는 한국 정부의 오랜 입장입니다. 이는 YS나 DJ 때도 바뀌지 않았죠...
물론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중국과 같이 여전히 1국가 체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하나다")
노태우의 북방정책으로 중국과 수교를 할때 북한이나 대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중에 하나가
1국가 체제 논리였습니다.
중국은 한국을 2국가 체제로 인정을 한 것입니다. 북한으로 보아서는 말이 안되는 소리였죠...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그렇게 가난한 나라를 매년 원조만 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대만은 특수한 입장의 한국이 2개 중국을 인정했으면 했는데 실망했겠죠... 결국 공산주의와 싸우는 유일한 나라가
공산국가와 수교를 한 것이라...
그때 부터 대만은 Chiness Taipei로 정말 전락해 버린 것이죠
제대로 된 정부 중에 마지막 남은 한국과 단교를 했으니 가슴도 아프겠죠...
한국이 대외 무역수지 적자가 한창 많이 날때도 대만에 대해서만을 흑자였습니다.
지금도 대 대만 무역수지는 흑자이구요... 흑자라서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 적자가 많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지만요...
어쨰든 북한의 1국가 개념은 시대착오 적인 내용이 되어 버렸고 중국의 1국가 체제는
국제 사회가 인정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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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외국에서 본 한국/국제
Re:대만역사 그냥저냥 써봄~~이해바람~
젊은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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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1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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