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시론으로 시 텍스트 읽기·�
시인의 시론詩論으로 읽는 시인의 시세계詩世界·2
──박인환의 시론과 시
정유화
1. 들어가는 말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하였으며 1945년 광복 후 서울로 상경하여 마리서사 서점을 개업하기도 했다. 그는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이어 김경린, 양병식, 김수영, 임호권, 김병욱 등과 동인지 『신시론』 제1집을 1948년에 발간하였다. 1949년에는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기도 했다. 1955년에는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미국을 여행하면서 「19일간의 아메리카」 등의 시작품을 창작하였으며, 그해 10월에 『박인환 선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56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주지하다시피 박인환 시인은 많은 일화를 남기며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동의 백작으로서 그가 남긴 시문학의 업적은 단순하지가 않다. 그는 1950년대를 전후한 격동의 시기에 왕성한 문단활동을 전개했다. 그런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의 문학 세계는 시대 사회적 현실과 길항하면서 정립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문학적 특성은 세 층위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 하나는 근대적 도시를 대상으로 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이다. 다른 하나는 암울한 시대를 허무주의적인 목소리로 비판한 리얼리즘 계열의 시이다. 마지막은 개인의 실존성을 바탕으로 한 낭만주의적 서정시 계열의 시이다.
물론 이러한 박인환의 시문학적 특성은 우연한 산물이 아니다. 그는 자기 나름의 일정한 시론을 세우면서 이에 준하는 시창작을 꾸준하게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시적 목적과 방법을 분명히 인식하고 문학적 작업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시론은 얼마만큼 시 텍스트 창작에 영향을 주고 있을까. 본 글에서 이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먼저 박인환의 시론을 소개·분석한 다음, 그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시 텍스트를 읽어볼 것이다. 본 지면에서는 초기 시론만을 대상으로 하고, 중·후기 시론은 다음호에서 모두 논의하기로 한다. 이제 감상을 해보도록 하자.
2. 박인환의 초기시론인 ‘시민정신론’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한 싸움 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된 언어작용만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었다.
자본과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市街地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 낀 현실이 있을 뿐…… 더욱 멀리 지난날 노래하였던 식민지의 애가이며 토속의 노래는 이러한 지구에 가라앉아 간다.
그러나 영원의 일요일이 내 가슴 속에 찾아든다. 그러할 때에는 사랑하던 사람과 시詩의 산책의 발을 옮겼던 교외의 원시림으로 간다.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를 즐겼던 시의 원시림으로 간다.
아 거기서 나를 괴롭히는 무수한 장미들의 뜨거운 온도.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자서, 1949년
3. ‘시민정신론’으로 시 텍스트 읽기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신시론 동인인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박인환이 낸 합동 사화집이다. 그러므로 이 사화집에 실린 박인환의 자서를 온전하게 개인적인 목소리 곧, 개인적인 시론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형식적인 구성으로 보면, 그 자서(시론)가 신시론 동인의 이념과 목적을 대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인 구성에 대한 내막을 살펴보면, 그 자서는 전적으로 박인환 개인의 목소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시론 동인 자체가 분명한 이념과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모인 사회단체가 아니라 그저 모더니즘 경향을 추구하는 시인들이면 누구나 동인이 될 수 있는 일종의 친목단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모더니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젊은 시인들의 모임 단체였던 셈이다. 예의 그 모임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이는 박인환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합동 사화집에 실린 그 자서도 다분히 박인환 개인의 목소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시 말해서 신시론 동인의 전체 의견이 반영된 자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합동 사화집의 자서를 박인환의 개인적인 시론으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서에 나타난 시론의 특성은 어떤 것일까. 박인환 시인은 이 시론에서 해방이후부터 1950년 6.25전쟁 이전의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시론에 의하면 한국사회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한 싸움”을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부연하면 물질을 담보로 한 위악적인 자본주의가 도시적 삶의 주체인 시민들의 정신적인 세계를 억압·조종하는 힘이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그러한 부조리함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예의 시민정신이다. 박인환 시인이 규명한 시민정신이란 “자본과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를 해체하는 것이고, 과거의 “식민지의 애가” 및 “토속의 노래”를 다른 형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바로 박인환의 모더니즘 정신, 혹은 리얼리즘 정신을 읽어볼 수 있다. 그의 모더니즘 혹은 리얼리즘은 내용적으로는 도시(식민) 자본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형식적으로는 구태의 언어 형식을 버리고 시민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언어 형식을 체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시적 형식과 내용이 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적인 차원이란 모더니즘 리얼리즘의 이념을 사회 전반적으로 실천·확대해 나가는 문학운동을 의미하고, 사적인 차원이란 그러한 운동을 개인적 차원에서 동조하고 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박인환의 시론에서 사적인 차원을 보여주는 언술은 다름 아닌 “시의 원시림”이다. 이 “시의 원시림” 세계는 “영원의 일요일”, “교외의 원시림” 등이 시사하고 있듯이 도시적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시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를 개인적으로 무한히 누릴 수 있는 낭만적인 시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의 원시림” 공간이 현실과 완전하게 절연된 공간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의 원시림” 공간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무수한 장미들의 뜨거운 온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장미들의 뜨거운 온도”는 현실적인 요소들을 의미한다.
이처럼 박인환의 시론은 다소 자기모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현실 변혁을 꾀하고자 하는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시적 세계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이와 이반되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시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예의 이러한 모순된 시론의 이념은 실제 시 텍스트를 창작하는 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본 글에서는 리얼리즘(모더니즘) 시정신에 해당하는 시 텍스트 하나를 먼저 감상해 보기로 한다. 이와 성격을 달리하는 “시의 원시림” 시론에 해당하는 시 텍스트 감상은 다음호에 해보기로 한다.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믈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 년 동안 너의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믈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홀란드의 오십팔 배나 되는 면적에/ 홀란드 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을/ 밀림처럼 지니고/ 칠천칠십삼만 인 중 한 사람도/ 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도 못하며 살아왔다// 수도 족자카르타/ 상업항 수라비야/ 고원 분지의 중심지 반둥의 시민이여/ 너희들의 습성이 용서하지 않는/ 남을 때리지 못하는 것은/ 회교 정신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동인도 회사가 붕괴한 다음/ 홀란드의 식민 정책 밑에/ 모든 힘까지 빼앗긴 것이다// 사나이는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약한 여자들이 백인 아래 눈물 흘렸다/ 수만의 혼혈아는/ 살길을 잃어 애비를 찾았으나/ 수라바야를 떠나는 상선商船은/ 벌써 기적을 울렸다// 홀란드 인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처럼/ 사원을 만들지 않았다/ 영국인처럼 은행도 세우지 않았다/ 토인土人은 저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축할 여유란 도무지 없었다// 홀란드 인은 옛말처럼 도로를 닦고/ 아시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 자원을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주거와 의식은 최저도最低度/ 노예적 지위는 더욱 심하고/ 옛과 같은 창조적 혈액은 완전히 부패하였으나/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생의 광영은 홀란드의 소유만이 아니다//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인민의 해방/ 세워야 할 늬들의 나라/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성립하였다 그런데/ 연립 임시 정부란 또다시 박해다/ 지배권을 회복하려는 모략을 부숴라/ 이제는 식민지의 고아가 되면 못쓴다/ 전 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국가 방위와 인민 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 삼백 년 동안 받아 온/ 눈물겨운 박해의 반응으로/ 너희 조상이 남겨 놓은/ 야자나무의 노래를 부르며/ 홀란드군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라//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 있는 대로 영웅 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 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 정책을/ 지구에서 부숴 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참혹한 몇 달이 지나면/ 피 흘린 자바 섬에는/ 붉은 칸나의 꽃이 피려니/ 죽음의 보람이 남해의 태양처럼/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려니/ 해류가 부딪치는 모든 육지에선/ 거룩한 인도네시아 인민의/ 내일을 축복하리라//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고대 문화의 대유적 보로부두르의 밤/ 평화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믈란에 맞추어 스림피로/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여라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전문
박인환의 시 중에서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는 매우 긴 장시에 속한다. 그만큼 박인환 시인은 이 텍스트를 통하여 많은 시적 내용을 언술하고 있다. 그 언술 내용이 긴 만큼 시적 주제도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텍스트의 언술 내용은 삼백 년 동안 구미 자본주의에 의해 식민 국가로 살아온 인도네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시적 주제는 인도네시아가 이제 구미 자본주의의 식민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 식민지 조선 인민에게도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인환은 피식민지 인도네시아의 현실을 통하여 피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간접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그 현실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문명 자본과 군대를 앞세운 제국주의의 야만적 폭력성에 항거해야 한다는 현실이다. 이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시민정신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를 리얼리즘 정신으로 투철하게 시로 형상화하여 그 시민정신을 더욱 증폭시켜야 한다. 구시대의 산물인 식민지의 애가와 토속의 노래로는 그 시민정신을 활성화시키고 증폭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시 텍스트를 통하여 시민정신, 곧 리얼리즘 정신을 탐구해 보도록 하자. 이 텍스트는 이항대립 구조로 구축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와 ‘구미·구라파·홀란드’의 이항대립은 ‘약소국/강대국, 피지배/지배, 슬픔/기쁨, 피탈/강탈, 노예/주인, 죽음/삶’ 등의 의미를 산출시키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리얼리즘 정신은 이러한 폭력적인 이항대립 구조를 전복시켜 상호 평등한 자유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야만적이고 비민주적인 이항대립 구조가 고착화되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도 주인으로 살지도 못하고 희생과 슬픔 가운데 모든 것을 강대국에게 빼앗기며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피식민지의 남성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며 이로 인하여 약한 여성들은 결국 백인들에게 몸을 팔아 수만의 혼혈아를 낳게 된다. 더불어 노예적 지위로서 의식주를 해결하게 되며 식민지 고아로서 박해받는 삶을 살게 된다.
주종의 이항대립적 구조는 본래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강대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생의 광영을 되찾아 누려야 한다. 마땅히 인민의 해방을 요구해야 한다. 식민지 지배권을 부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민들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야 하고 “국가 방위와 인민 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홀란드군의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어”야 하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야 한다. 그래야만 이항대립적 구조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면 그 “새로운 나라” 건설은 동일한 아픔을 겪고 있는 약소국들에게 ‘태양의 빛’이 되기도 한다. 박인환이 말하는 시민정신이란 바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좀더 부연하면 폭력적인 제국주의에 해당 국만이 아니라 모든 약소국이 공동적인 연대로 대응하는 것도 곧 시민정신인 셈이다.
가믈란은 인도네시아의 타악기 중 하나이다. 스림피는 자바의 대표적인 무용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가믈란에 맞추어 스림피로/ 새로운 나라를 맞이”하는 인도는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박인환은 그러한 평화가 “조선에 사는 우리에게도” 조만간 도래하기를 욕망하고 있다. 그가 시민정신으로 무장하여 “자본과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를 향하여 끝까지 비판한다면 그 욕망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시민정신을 담보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곧 시의 내용과 형식이다. 그런 만큼 그것이 변모한다면 그의 시민정신도 변모하게 될 것이다. 앞서 논의했듯이 그의 시민정신에는 다소의 모순이 있다. 때문에 그의 시민정신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시민정신과 모순의 위치에 있는 시의 원시림과 갈등하게 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다음호에서는 시민정신에 대한 시 텍스트(모더니즘)를 좀더 살펴보고 난 다음, 이와 갈등 관계에 있는 시의 원시림에 대한 시 텍스트도 마저 살펴보기로 한다.
정유화 /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미소를 가꾸다』가 있고 중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며 서울시립대 강의전담 교수.
출처: 시와산문 그리고 시와녹색 원문보기 글쓴이: 김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