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9등일까?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한국은 종합성적이 9등이라고 합니다. 마지막날 태권도 결승전에서 문대성 선수가 그리스 선수에게 '뒤후려차기'를 날리던 순간은 참 짜릿했습니다. 몸을 뒤틀면서 후려 뻗은 발차기 한 방으로 우리는 10위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초등학교 교실마다 이 장면을 따라하는 사내 아이들의 쿵쾅거림으로 꽤나 시끄러울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 기간 저는 이상한 체험을 했습니다. 연일 올림픽 관련 기사가 신문에 오르고 퇴근해서 늦은 시간에 TV를 틀어도 항상 올림픽 관련 중계가 나오고 있는 데 저는 단 한번도 '우리는 이번에 몇등을 할까'를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경기 중계방송은 주로 KBS를 봤는데, TV에서 “우리가 몇등이다” 아니면 “금메달을 몇개를 따야지 10위권 안에 들 수 있다”는 류의 해설을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9등이라는 사실은, 폐막식 중계를 앞두고 MBC로 잠깐 채널을 돌렸을 때 “이것이 마지막 아테네 현지 중계입니다. 서울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여자 아나운서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9등에, 세계 10위권에 재진입하게 됐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했습니다.
과거 올림픽, 특히 88올림픽때 유독 순위 경쟁에 열을 올렸던 보도와 방송 중계를 기억합니다. 왜 그렇게 순위에 집착했던 것일까요. 과연 10위권 안에 든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모든 것에서 10위 안에 든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던 것일까요.
방송에서 메달 집계는 내보내면서도 순위를 매긴 것은 못 본 것 같아, 전화를 해봤습니다. KBS 편성기획팀장님으로부터 “순위를 발표하지 않겠다고 정책을 정하진 않았고 제작진에게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순위에 목을 매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에 비춰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그래서 정보 차원에서 순위를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알려드릴 순 있지만 몇개를 더 따면 몇 위가 될 수 있다하는 식의 보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희 신문에도 매달집계표와 함께 순위가 나갔지만 그다지 크게 순위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이나 신문이나 과거처럼 호들갑스럽게 순위에 목 매달지 않았던 것이 이번 올림픽 보도의 한 특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에게도 어느듯 ‘여유’라는 것이 생긴 것일까요?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10위권안에 들었던 88년,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선진국을 우리가 스포츠 세계에서만은 앞섰다는 생각에 얼마나 뿌듯해 했는 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보다 앞섰던 나라는 소련 동독 미국 밖에 없었죠. 한국의 성적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7위, 아틀란타 올핌픽 10위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보면, 공산권과의 체제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 국제 스포츠경기는 사실상 각 국가들 간의 대리전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쟁의식이 치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로선 북한이나 일본을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시절이었죠.
이제 과거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죽기살기로 북한이나 공산권과 체제경쟁을 벌일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국제 스포츠 경기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던 5공화국 시절처럼 스포츠 성적으로 치적(治績)을 대신할 만큼 정당성이 허약한 정부도 이제 없습니다. 아둥바둥 할 필요없이 경기 자체를 즐기며, 패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여유'가 보입니다.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본 경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여유가 생긴 것일까요. 앞서 말한 변화한 상황이 우리에게 이 여유를 가져다 준 것일까요? 우리에겐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세계에 내세울 것이 많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컨대 자동차나 전자산업, IT산업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여유가 국민소득 1만불의 문턱을 겨우 넘겨 놓고서 갑자기 맥을 ‘탁’ 놓아버린 우리들 자화상(自畵像)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제말은 우리는 아직은 좀더 ‘헝그리’하게, ‘한번 해보겠다’는 정신으로 세계의 경쟁자들과 싸워나가야 되는 때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너무 일반화시키는 걸까요?
올림픽도 끝난 마당에, 과연 우리는 몇등인지, 정말 우리는 9등인지, 정작 중요한 것은 올림픽 성적이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닌지 한번 돌이켜 봤습니다.
퍼 왔음
첫댓글 아.. 동감합니다.. 정말 이번 올림픽때는 순위에 대한 집착이 없어 조금은 편안했던 올림픽 같았습니다. 대신 금메달에 대한 집착은 아직도 너무 심하더군요.. 헨드볼만해도.. 정말 잘해서 은메달 획득했는데.. 해설자는 아.. 비록 우리가 패자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은메달이 패자면.. 그 밑에 피땀흘려 운동한 사람들은 쓰레기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또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조화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감자편입이 학생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주려하는 이상과, 이윤을 추구하려는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데 항상 많은 노력과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최고만을 부르짓는...사회풍토가 아닌가 하네요~^^ 전..그저 상위권만 되도 자랑스럽던데..그 많은 나라에서...손가락 수 안에만 들어도..보통이 아닌데..우리는 늘 일등만을 바랍니다...ㅡㅡ; 어이없게...마라톤도...14위면..그 많은 사람들 중에...14위면 정말 잘 뛴건데...다들 실망만 하더라구요..매달 따준거만 해도
어딥니까..금이면 더 좋겠지만....그저 금은동안에 들었다는 것만 해도 자랑스럽구요....사람들이 관심도 보여주지 않는데 자신의 꿈을 위해서 늘 그자리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그네들의 모습에서 많은것을 배운 올림픽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