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어머니
날씨가 추워지면 걱정거리가 많이 생긴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더욱 걱정되었다.
앞마당에 있는 샘*(우물의 방언)에 설치한 모터 펌프 얼지 않을까, 또는 너무 심하게 얼어서 펌프 내부가 터질까, 더 나아가 부엌 싱크대에 연결한 플라스틱 호스가 덩달아 얼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이다.
겨울철이 오면 전기모터 펌프가 자주 얼고, 펌프와 연결한 호스도 얼고, 샘 속으로 늘어뜨린 호스를 헝겊으로 감쌀 방법이 없기에 호스는 가벼운 추위에도 곧잘 언다. 호스를 안마당 땅속에 깊게 묻지 않은 탓으로, 가늘고 길게 관통하여 부엌으로 들어오는 도중에서도 얼고, 물 쓰는 사람이 혼자라서 수도꼭지를 틀 일이 적으므로 더욱 쉽게 언다.
차갑게 언 모터, 꽁꽁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녹이려면 화로(火爐)에 잿불을 담아서 불을 쫴 주어야 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작은 무쇠화로를 펌프와 싱크대의 호스 곁에 오랫동안 놔두어야 했고, 때로는 전기난로도 켰다. 불의 열기로 얼음이 녹았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도 소용이 없을 만큼 꽁꽁 얼어버리면 어쩔 수 없이 물이 부족한 상태로 살아야 했다. 해동(解冬)될 때까지 물을 아껴야 했고, 물이 부족한 부엌 싱크대와 화장실 이용은 불편했다. 유류 보일러에는 주전자로 물을 이따금씩 채워 넣어야 했다.
별도리가 없다. 그저 옛날 방식대로 샘물(우물물)을 긷는 방법뿐이다.
어머니는 깡통(분유통)을 꺼내서 두레박*을 임시로 만들었다. 깡통 위 부분 양쪽에 구멍을 뚫고 구멍 속에 나이론 줄(끈)을 넣어 길게 쩝맸다(묶었다). 깡통을 샘에 깊숙이 넣어서 물을 조금씩 채운 뒤에 물기가 꽁꽁 어는 줄을 두 손으로 잡아당겨서 물을 퍼 올렸다. 차가운 날씨에 깡통으로 만든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것이 여간 귀찮고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울안에 있는 샘은 제법 깊어서 물 긷기가 더 어렵고, 더욱이나 손이 시렸다.
자식들이 출가하여 도시로 빠져나간 뒤, 시골에 홀로 남아서 적적하게 사는 어머니한테는 겨울철은 무척이나 길었고, 물 때문에 더욱 힘들어하셨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헌 요(이불)와 헌 옷으로 자동모터기를 꽁꽁 싸맸고, 또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조금만 틀어놓아서 물방울이 밤새도록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해야 했다. 쇠붙이인 모터 펌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자주 퍼올려서 펌프 안에 가득 찬 물이 얼 틈새를 주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혼자서 쓰는 물의 양이란 너무나 보잘것없기에 모터는 종일토록 멈추었고, 또 안마당 땅에서 부엌으로 들어오는 배관을 낮게 묻은 탓으로 호스 속의 물은 흐름이 정지된 탓으로 어지간한 추위에도 쉽게 얼어붙었다.
서울에서 사는 나는 이런 약점을 알기에 해마다 시골에서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부했다.
“물을 펑펑 퍼 쓰세요. 물을 많이 써야 호스가 얼지 않아요. 물 쓸 일이 없어도 그냥 물을 내버리세요.”
어머니는 “그려” 대답하고는 물을 별로 쓰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모터를 작동시키면 전기가 많이 단다(닳다의 방언)는 계산이 먼저였고, 결국에는 아끼는 것이 탈이 되었다.
모터 내부가 터지거나 땅속의 호스가 얼면 천상* 얼음이 녹는 봄철에서야 이를 수선했다.
내가 시골로 내려가는 이른 봄철 주말에서야, 일요일에야 새장터에 있는 모터 장사꾼을 불렀고, 수리비가 만만찮게 들었다. 애물단지의 고장과 수선이 어디 한두 번이랴.
울안에 있는 샘은 어머니가 혼자서 팠다.
산고라당 아래 생골(샘골의 방언)에 있는 이웃집 소유의 허드레 샘을 이용하기가 무척이나 꺼끄러워서 내 어머니는 샘을 파기로 작정했다.
울안 마당 한 구석에 둥근 금(線)을 긁고는 삽질 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땅을 깊게 팔수록 긴 나무사다리를 샘 안에 넣었다. 흙은 삼태미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는 사다리를 올라탔고, 흙을 쏟아내고는 다시 샘 안으로 내려가기를 숱하게 거듭해야 했다. 땅바닥 바위 틈새로 샘물이 처음으로 내비치기 시작할 때까지...
이게 가능할까, 여자 혼자서 샘을 판다는 게 가능할까?
어린 딸, 젖먹이 쌍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살면서 젊은 아낙은 그렇게 혼자서, 어른 키 몇 길이나 되게끔, 깊게 팠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집안 어른과 일꾼들이 큰 돌을 날라다가 돌을 곧게(수직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마무리를 했단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늙은 어머니는 물이끼가 많이 낀 샘을 유난히 아꼈다.
1949년 1월 생인 나는 짐작하건데 어머니가 샘을 팠던 시기는 1949년으로 추정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전으로 추측한다.
어머니는 십리길도 더 넘는 새장터(웅천면 대창리 소재지)에 걸어가서 함석으로 만든 두레박을 사 왔다.
두레박은 여러 종류이며, 얇은 함석을 잘라서 동그랗게 또는 삼각형으로 만든다. 또 조그만한 크기와 알맞은 길이의 나무(刻木)로 두레박 위쪽 입구 양쪽을 단단하게 고정한다. 이 나무토막의 한가운데를 조금 깎아내서 낸 홈에 기다란 끈을 옭아맨다.
두레박은 손으로 잡아당겨 끌어올려야 하기에 그 크기도 알맞아야 한다. 두레박 안이 너무 크고 넓적하면 물이 가득 차서 위로 퍼 올리기에는 힘이 달렸으며, 반대로 너무 작고 좁으면 물을 조금밖에 채울 수가 없다. 자기 팔뚝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의 두레박 크기가 가장 적합하다.
늙은 어머니가 사는 시골집은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곶뿌래(花望마을)에 있다. 산고라당*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샘골(샘굴)이란 지명처럼 샘물은 시원하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에는 변질되기 쉬운 음식물은 샘 안에 보관했다. 양동이나 바구니(채반)에 긴 끈을 단단하게 옭아맨 뒤 그 안에 음식물을 담아서 샘 아래로 내려 보냈고, 샘물에 닿지 않을 만큼만 줄을 길게 늘어뜨렸다.
전기가 없었고, 냉장고가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기에 이렇게 해서 무더운 한여름을 났다.
겨울철 샘 안에서는 김(수증기)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김이 서린 샘물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어제는 2004. 1. 24. 토요일.
물이 또 얼었다. 이번 설 대목의 한파로 얼었다.
내가 전화를 자주 걸어서 수돗물 꼭지를 때때로 콱 틀어놓도록 말씀드렸건만 늙은 어머니는 정신을 깜박했고, 방울방울 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안심한 게 탈이었단다.
또 이러면 ... 어머니는 겨우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서 쓰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다. 이번 추위가 대단하였다 하니 아마도 땅 속에서도 호스가 얼었을 것 같고, 또 별 수 없이 해동하기만 기다려야 한다.
올 겨울철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물 걱정이 더욱 앞선다.
웃풍이 센 옛집에서 살려면 추위에 얼마나 떠시랴.
나는 직장생활한다며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시골에 내려가 있으며, 수돗물을 마음껏 쓰는 서울 잠실 아파트에서 사는 것도, 서구식 방에서 따뜻하게 지내는 것도 죄스러워한다.
* 두레박(타래박은 방언)
* 샘(우물의 방언, 새암굴고랑) : 물이 저절로 땅속에서 솟아 나오는 곳
- 우물 : 물을 얻기 위하여 땅을 파고 물이 괴게끔 만든 시설
※ 내 입말에는 '우물'보다는 '샘', '두레박'보다는 '타래박(방언)'으로 고정
* 천상(천생 天生의 방언) : 어쩔 수 없이
* 산고라당(산골짜기의 방언)
2004. 1. 25.
수필이 아닌 산문일기로 처리 바랍니다.
수십 번을 다듬어도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나타납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지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첫댓글 옛날, 내 소싯적엔 집안에 우물(샘)이 없어
산으로 가는 언덕을 올라가야 샘이 있어서
그 물을 길어다 식수 및 허드렛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겨울에 빙판길이 되면 물지게로 물 깃는 일이
대단히 어려웠지요.
그 물 깃다 넘어져 다쳐서 고생한 분도 있구요.
동네 아랫말은 우리가 사는 웃말 보다는 물이 흔해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쓰는 샘이 있었지요.
지금 고향에 가 보면 우리가 길어다 쓰던 샘은 그대로 있는데
아랫말 두레박으로 퍼내던 샘은 없어졌더라구요.
흔적도 없이......
서해안 산골마을...
나는... 마을사람네 집에 가지 않습니다.
아주 친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샘은 다 메꿔서 없앴대요.
저 집의 경우에는 샘가 옆에 별도의 집을 짓고,,, 뚜껍을 덮고... 등의 조치를 해서 남아 있지요.
저도 구태여 없애고 싶지는 않지요. 물론 위험합니다. 1m 높이 위에 나무판자 뚜겅을 했다고 해도 전부 올릴 수 있기에...
제 산골마을의 샘 90% 이상이 없어졌습니다만..
박 선생님의 어린시절에는 물 때문에 고생 많았군요.